<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다. 오전 시간에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았다. 보고 싶은 영화들은 모두 오후 시간에 배정되어 있었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최종병기 활>이었다.
극장에서 포스터를 집어 들고서야 박해일, 류승용, 문채원이 나온다는 걸 확인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니 우선 안심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병자호란.
청에게 온갖 굴욕을 당해야만 했던 치욕스러운 조선의 역사를 배웠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왜 해야만 하는 것일까?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복수를 갚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터에서 수없이 죽어 간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평화로운 마을에 갑작스럽게 들어닥친 군사들에게 짓밟힌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힘없고 약한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전쟁은 결국 우두머리들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던가.
재미와 흥미의 요소를 가미한 상업 영화라고 혹평을 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두루 갖추어진 영화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와 흥미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 할지라도 분명 생각할거리가 많았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목숨을 부지하는 일, 그것 이상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수없이 날아드는 화살촉을 피해 피로 물들어진 창 칼을 피해 목숨을 부지해서 살아 남는 일, 그것처럼 쉬운 듯 어려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활을 쏘는 목적이 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남이. 그의 목적은 그럼 무엇인가? 살기 위해 활을 쏘는 것이 아닌가.
살아도 그냥 살지 않고 죽어도 그냥 죽지 않겠다던 자인. 그녀처럼 살아가고 죽어가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배워 온 역사의 기록은 결국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누가 승리했는가의 기록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로 기록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기록들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하는 한 개인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치욕스럽게 끌려가던 누이들, 함께 끌려갔어도 구해줄 수 없었던 남정네들, 그들 모두 그 전장 속에 있었을테니 말이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숨어 적들이 물러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을까? 적에게 끌려간 백성들 생각은 했었을까? 전쟁이 일어나며 가장 먼저 도망가는 사람이 바로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6.25전쟁에서도 수많은 피난민을 뒤로하고 다리를 폭파했던 일을 기억한다면 전쟁의 피해자는 역시 힘없는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언제나 사랑이 함께 한다. 그것이 가족간의 정일 수도 남녀간의 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모두가 하나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역적으로 몰려 죽어가던 아버지의 절규를 뒤로하고 두 손 꼭 묶고 사지의 현장을 도망치던 오누이에게는 살아야한다는 것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했겠는가 말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들은 자연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자연 상태란 누구에게도 지배를 받지 않고, 법에 의해 구속받는 일도 없으며, 오로지 개개인의 의지에 의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키지요. 즉 인간들은 스스로 법을 세워 평화를 유지하고 자유를 정착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끼리 만날 대는 법은 온데간데 없고 야만적인 관계가 되고 맙니다."(p.105)
"용서는 용서를 낳고, 평화는 평화를 낳는다. 복수를 거부하는 이에겐 망각이 피어난다. 그 망각은 우리의 사악함을 잠재운다. - 막스 루케트"(p.111)
"서로 맞붙어 살아가느느 인간들에게 존재하는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칸트"(p.104)
역사 속 전쟁이야기에 단순히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핍박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한다. 미친 전쟁은 이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일은 이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다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