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안데르센 걸작그림책 1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키릴 첼루슈킨 그림, 김서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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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 원작의 동화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한 그림책. 김서정씨가 원작의 느낌을 살려 글을 쓰고 러시아 화가 키릴 첼루슈킨가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아버지가 창문에 낀 성에를 바라보며 한 말-봐라, 얼음 아가씨가 나를 데려가려고 와 있구나.-이 모티브가 되어 탄생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에 두툼한 안데르센 평전을 읽어 보았는데 그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독자로 생각하고 작품 곳곳에 많은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눈의 여왕>에도 기독교적인 배경과 해석이 작품에 깔려 있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 그림책에서는 그런 의미를 해석하기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무게를 싣고 있다.

 못된 악마가 만든 거울이 깨지면서 산산조각 난 파편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게 되는데 무엇이든 흉하게 보이게 만드는 이 거울 조각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박히면 사람들이 차갑고 잔인하게 변해 버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카이와 게르다는 친한 친구 사이로 다락방 장미 정원에서 사이 좋게 함께 놀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카이의 눈과 마음에 악마의 거울 조각이 박히면서 카이는 차갑게 변해 버린다. 그 후 겨울이 되자 눈의 여왕이 나타나 카이를 데려가 버린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나 서양의 신화에도 여인이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고난에 찬 길을 가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설정처럼 게르다는 카이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눈의 여왕의 성에 다다른다.

 이 그림책의 압권은 눈의 여왕의 성에서 카이를 찾아 낸 게르다가 눈의 여왕의 호위병들과 맞서는 장면이다. 호위병들의 기괴한 모습이나 게르다의 사랑이 형상화 된 천사의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눈물의 흔히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이 작품에서도 게르다의 눈물은 얼어붙은 카이를 녹이고, 카이 또한 눈물로서 자신의 안에 박혀 있던 거울 조각을 몰아 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스케치 선의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을 그대로 살린 화풍이며 붉은 색과 대비되는 백색으로 눈의 여왕의 차가운 이미지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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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단다 그림책 보물창고 25
엘리자베트 브라미 글, 얀 나침베네 그림,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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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어린 아이였을 우리들 또한 나이가 들면 되어야 할 노인의 삶을 차분하게 들려주는 그림책. 노인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아는 것과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깝게 살면서도, 혹은 멀리 떨어져 사느라 아이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노인으로서의 그분들의 어려움과 외로움, 서글픔, 기쁨 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연세 드신 분이 자신에 대해 조용하게 들려주시는 것 같은 글을 한줄 한줄 읽다 보면 "아, 부모님들이 이런 마음으로 사시려나, 나도 언젠가는 이런 삶을 살겠지..." 하는 서글픔이 찾아온다.

 나이가 들면 삶의 연륜 같은 깊은 주름이 생기고, 몸도 느려지고, 머리도 세고, 틀니를 껴야 하는 등 신체적인 불편함이 생긴다. 체력이 소진되어 손도 떨리고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되고, 몸 여기 저기가 아프기도 한다. 기억도 흐려지고 정신도 온전치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생활의 곤궁함과 가족이나 친구도 없는 적적함, 자식들이 찾아오거나 전화 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삶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두분만 살고 계신 시부모님은 손주들 목소리 듣는 낙으로 매일 전화를 하신다. 그리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시부모님은 종종 자식들에게 짐스러운 존재로 취급 받는 것 같다며 서운해 하신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듯이 노인들도 옆에서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함께 놀아 줄 상대가 필요하고,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자식들이 이를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탓에 마음의 상처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노인들 또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그 분들도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기쁠 때가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면 병문안을 받고 싶어하고, 생일이면 축하 받고 싶고, 가족으로서 사랑 받고 싶은 것은 그 분들도 마찬가지 이다. 그리고 음악을 듣거나 여행을 하고, 컴퓨터를 하는 등 활동도 할 수 있으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한 사람의 인간임을 가벼이 지나치지 말아야 할것이다.

 가끔 길에서 낡은 유모차를 수레 삼아 밀고 다니면서 재활용 종이를 담아 가시는 노인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나고 자식들도 어려운 형편이다 싶어 손 벌리지 못하고, 스스로 벌어먹고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는 노인들의 모습을 뵐때면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온다. 이 그림책에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는 아이와 근사한 음식을 먹는 젊은 사람 사이로 솔기가 ?어져 벌어진 구두를 신은 한 노인이 한 조각의 빵과 야채 한 묶음이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쳐진 어깨가 너무 안쓰러워 보인다.

 남편과 집에만 계신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나이 들면 뭐하고 지내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지금이야 나이 들어서 자식들 독립하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것 저것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등산, 여행 등을 다녀 보자고 하는데 실제로 노인이 되어서 기력이 딸려서 집에만 들어 앉아 있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은 나도 벌써부터 눈이 침침해지는 기색을 보이는지라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좋아하는 책도 못 읽을 만큼 시력이 안 좋아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어릴 때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몸살을 앓고, 젊어서는 청춘이 쉬이 감을 아쉬워 하며, 나이 들어서는 하루 하루가 아까워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나도 어느 사이에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때가 된것 같아서인지 이 책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언젠가 주름 가득한 얼굴에 갓 이가 나기 시작한 갓난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 한 노인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가 가슴에 와닿았던 모습이다. 이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 엄마의 삶,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기를 바란다.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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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야! 내인생의책 그림책 4
마리 루이스 피츠패트릭 지음,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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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임을 외치는 두 아이를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찾아 올 메마른 세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 글자수는 많지 않지만 축약된 문장과 그림에 녹아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말의 힘과 단절과 화합을 표현한 작품이다. 저자는 ’강을 뜻하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기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이 동시에 강 양 쪽에 설 수 없는 것처럼 두 가지 문화에 동시에 속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 건너 쪽 사람과 닿을 수 있다는 촉토족 인디언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파란 머리의 한 아이가 ’나는 나야!’라고 외치며 언덕 위로 올라가서 보니 작은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언덕에 또 다른 아이가 서 있다. 파란 머리 아이는 자신이 "세상 만물의 왕"이라고 외치자 맞은편에 선 금발 머리의 아이도 맞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왕!"이라고 외친다. 둘은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날카롭게 날이 선 말들을 내뱉는다. 그러자 이 말들은 뽀족뾰족한 가시 철조망으로 변해 둘 사이를 가로지른다. 나에게 속한 것이 상대보다 더 우월함을 드러내려 애쓰고, 내 것만 따지고 들자 거대하게 변한 물줄기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나를 인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는 중요한 인식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 혼자 잘났다고, 나만 위대하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쳐대는 두 아이가 서로를 비난하고 미움이 담긴 언어는 불을 내뿜는 거대한 용으로 형상화 되어 대지를 사막처럼 만들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우리 사회도 그렇다.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현대에 들어서는 자신이 속한 문화와 다른 문화도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며 화합하고 공존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자세를 버리고 독선을 고집할 때 우리 사회, 이 지구촌은 정이 메말라 버린 사막이 되어버릴 것이다.

 물줄기도 말라버리고 땅이 거북 등처럼 갈라진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자 두 아이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림은 실의에 빠진 아이들을 점차 작아지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둘은 겸손하게 "나는 나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상대의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자 다시 싹이 움트고 꽃이 활짝 피어난다. 이 세상에 평화가 오는 길은 이렇게 쉬운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오직 나만을 내세우는 이들이 가시철조망을 세우고 세상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

* 석가가 태어났을 때 이 우주만물 중에서 내가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뜻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외쳤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하는 이 말이 현대에는 자기 혼자 잘났다고 뽐내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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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아 풀아 애기똥풀아 - 식물편, 생태 동시 그림책 푸른책들 동시그림책 3
정지용 외 지음, 신형건 엮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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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 동시 그림책 동물편 「'똥'자 들어간 벌레들아」에 이어 식물편 「풀아 풀아 애기똥풀아」가 출간 되었다.(시집 제목을 읽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제목에도 '똥'자가 들어 있네~' 하며 살짝 웃었다.^^) 이번 책에는 정지용, 박목월 등의 시인 이준관, 김용택, 양인숙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한 명이 쓴 동시 16편이 실려 있다. "밤티 마을"시리즈의 삽화를 그린 양상용님이 그림을 그려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덤불과 어우러진 화사한 노란 꽃들이 핀 풀밭에 웃음 짓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담긴 표지 그림이 눈에 안겨온다. 김재홍님이 그림을 그린 동물편은 섬세한 화풍으로 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비해 여백의 미를 살린 양상용님의 동양적인 화풍의 그림은 정적인 느낌을 주는것 같다.
 
「동화 읽는 가족」을 통해 처음으로 생태 동시를 접하면서 참 좋아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낭송해 주기도 했다. 소리 내어 동시를 읽고,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실물을 보거나 책등을 통해 접하여 친숙한 느낌을 주는 동물, 식물의 특징이나 느낌이 동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 점도 어른인 나에게 생태동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요인이다. 아이들에게도 읽어 보라고 권유하는 이면에 동시로 감성도 자라고, 동식물에 대한 지식도 얻는 일석 이조의 이득을 생각하는 부모의 욕심(?)이 살짝 배여 있기도 하지만~. 
 
  <버들 강아지>는 하얀 꽃눈의 특징을 살려 털모자 쓴 어린 버들 강아지를 통해 추운 날에도 바깥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투영한 동시이다.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늘 보라색을 꼽는 나는 눈에 뛸듯 말듯, 그 작은 꽃망울에 보랏빛 고운 꿈을 간직한 <제비꽃>이란 동시에도 마음이 간다. 노랑나비 같은 꽃잎을 보아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민들레 꽃>은 그림에 노란 병아리를 함께 두어 꽃의 노란 색감을 살려주고 있다. 아이들은 어딜 가다 동그스름한 솜방망이처럼 생긴 민들레 씨앗을 발견하면 서로 불어보고 싶어 다툼을 벌인다. 책 속에도 씨앗을 훨훨 날려줄 누군가의 숨결을 기다리고 있는 솜방망이 두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이 시집을 볼때면 우리 아이들이 하나씩 훅훅~ 불어준다.

  세상 빛을 본지 며칠 밖에 안됐어도 할미로 불리는 할미꽃을 시상으로 담은 <그랬었구나>, 봄에는 애기 같더니 여름 되니 할머니처럼 눈곱을 너덜너덜 달았다는 <애기똥풀>, 꽃며느리 밥풀의 꽃을 흥부 뺨을 때린 밥주걱으로 비유한 <놀부네 밥주걱> 등은 식물의 이름을 재미있는 시상으로 담아 낸 동시가 아닐까 싶다. <쑥> 또한 식물 이름의 느낌을 잘 살린 동시로 많이 나와도, 늦게 자라도 쑤욱~ 자라는 느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식물의 특징이나 느낌을 살린 고개 숙인 모습이 새색시를 닮은 꽃을 노래한 <해바라기씨>와 꽃의 빛깔이 여러 가지인 분꽃을 묘사한 <분꽃과 하늘>. 그리고 <담장 밑 강아지풀>은 담 밑에 무리 지어 핀 강아지 풀들이 뛰노는 아이들 따라,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잘 잡아낸 동시이다. 그림을 보면 담 위로는 호박넝쿨이 이리저리 뻗어 있는데 뒤편에 <호박꽃>이라는 시로 철 늦게 핀 호박꽃을 시로 담아내고 있다. 

 그 외에 엄마한테 혼나고 눈물을 흘리다 집에 돌아가려는 아이가 말을 건네는 <꽃다지야>나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본 낯설지 않은 꽃을 노래한 <개망초꽃> 등을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식물을 시 속에 담고 있다. 예전에는 흙 땅이 많아 길가에 풀꽃들이 흔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대부분의 길이 시멘트와 콜타르로 뒤덮여 참 삭막해지고 말았다. 화살촉 마냥 생겨 운동화며 양말, 옷 등에 달라붙는 <도깨비 바늘>을 우리 아이들이 시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니 아, 얼마나 아쉬운지...

  본문 뒤에는 "더 알고 싶어요"란 코너를 두어 동시에 나온 식물들의 특징이나 생태를 조금 더 자세하게 실어두었다. 「'똥'자 들어간 벌레들아」 혼자 꽂혀 있을 때는 책 사이에서 외톨이 같은 느낌이 들더니 이 동시집을 함께 꽂아두니 짝을 만나게 해준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진다. 두 시집이 한 쌍처럼 참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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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나온 오소리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4
한스 팔라다 지음, 카탸 베너 그림, 김라합 옮김 / 마루벌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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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 오소리가 겪는 일을 통해 진실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을 풍자한 우화 형식의 그림책이다. 여우에게 살던 곳을 빼앗긴 오소리는 무척 속상하다. 집을 빼앗긴 것도 그렇지만 여우의 외모가 부러워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느님이 여우의 빠른 걸음과 빨간 꼬리, 초록 눈을 오소리에 주었다면 오소리는 바로 자신이 싫어하는 여우의 모습이 되고 마는데 그걸 생각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소리는 자신이 착하고 조용하게 살아왔다고 여기지만 사실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착하게 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 자신이 잡아 먹은 벌레며 어린 새, 꿀 등 그 자신도 살기 위해 다른 이를 괴롭히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물론 이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므로 탓할 바가 아니나 마찬가지 이유로 여우를 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소리의 이런 모습은 인간들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명분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을로 내려 온 오소리는 농장의 채소밭도 들리고, 웅덩이에서 진흙 목욕도 하면서 쉴 곳을 찾지만 여의치가 않다. 거기다 힘든 하루를 보낸 터라 잠을 자기 위해 굴을 파고 누웠는데 불행히도 자리를 잘못 잡았지 뭔가. 목초지에 나온 대장 젖소가 그 굴을 밟으면서 오소리는 오소리대로, 젖소는 젖소대로 놀라고 서로를 오해하고 만다. 젖소가 냄새를 맡으려고 얼굴을 들이밀자 오소리가 코를 물어버리는 바람에 이를 쫓아가는 사람과 젖소의 행렬에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리는 등 마을에 난리가 난다.

 그러나 정작 오소리를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어린 소년 하나를 빼고는 아무도 없다. 누구는 "늑대처럼 생겼다" , 또 다른 사람은 "담비처럼 생겼다" 고 자신의 추측을 말하면서 동물의 생김새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어린 페터의 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만 매여있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 것 같은 아이(페터의 누나)와 누나 같이 착한 아이가 되고 싶지는 않은 페터의 실랑이가 작품에 재미를 더해준다. 다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오소리의 소동은 끝나버리는지라 조금 허무한 감이 들기도 한다. 쪽 당 글 분량이 조금 많은 편으로 저학년도 볼 수 있는 그림책.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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