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비틀즈의 노래, 카프카의 <성>, 체코의 프라하가 주는 이국적 분위기에 기대어 씌여진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절친 '진'과 함께 의사국가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 '노웨어맨'의 소개로 '레인캐슬'이라는 이름의 고시원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나'와 그녀는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고, 레지던트가 된 뒤 다시 만났을 때에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에서 헤어지고 만다.

후에 '나'는 병원을 때려치우고 프라하로 가서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헤메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진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진의 약혼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가끔 꿈 속에서 '나'는 헤어진 그녀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것은 꿈이었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런 작품들은 20년쯤 지난 뒤에 읽으면 걸작인지, 졸작인지 금방 드러난다. '시간을 견디는 힘'에서 '시간'은 세기 단위가 아니라 20년 정도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느 소설에서였던가, '20년이 지나지 않은 소설은 읽지 않는다'는 대사가 생각난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갖가지 이미지에 기대어 쓰인 소설이므로 당연히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걷게 되는데, 독자가 '사실적인 줄거리' 를 따라가고자 하는 욕구만 포기하면 얼음에 박 밀듯 술술 읽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90년대에는 상당히 많은 한국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문체, 구성, 소재선택, 분위기, 태도... 그런 것들을 하나, 또는 그 이상을 베끼거나, 무의식 중에라도 영향을 받아 나중에 표절이 아닌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그 누구도 자신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그의 작품을 읽는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작가들은 대부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깍아 내리기 바빴다. 안 읽어봤으면서 깍아내렸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 포인트이긴 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514266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룡팔부 세트 - 전10권 (특별한정 보급판)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는 북송시대. 철종이 천자가 되었으나 아직 어려 태황태후 고씨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단예, 교봉(소봉), 허죽 세 명이며, 이들은 후에 의형제를 맺게 된다. 


먼저 단예는 아버지가 진남왕 단정순이고 큰아버지가 대리국 황제 단정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풍류남아로 젊었을 적부터 그야말로 여기 저기 씨를 뿌리고 다녔는데, 감보보와의 사이에서 종영을, 진홍면과의 사이에서 목완청을, 원성죽과의 사이에서 아자와 아주를, 왕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왕어언을 낳았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개방의 마부방주 부인도 건드린 전력이 있다. 

어쨌든 단예는 유교경전과 불경을 읽어 마음이 어질고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했기에 무공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집을 뛰쳐나가 강호를 여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종영과 목완청을 이성으로 만나게 된다. 

단예가 무예를 익히게 된 것은 매우 우연히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거기서 발견한 동굴에서 옥미인상에게 절을 하다 무공비급을 얻게 되면서이다. 단예는 기초가 없어 무공비급의 요결을 전체적으로 익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능파미보'라는 경신술과 남의 내력을 흡수할 수 있는 북명신공을 익힌 덕에 절정 고수들의 내력을 흡수해 내공만은 그 누구보다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망고주합이라는 괴물을 삼켜서 만독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다.  

단예는 대리 단씨들이 구마지라는 토번국 호법국왕에 대항해서 맞서는 과정에서 무형의 검기를 내뿜는 육맥신검을 배우기도 하지만, 내공과 기초가 없는 탓에 발동이 되다 안 되다 하는 통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써먹지 못하기도 한다. 한편, 대리 단씨의 가전 무공인 일양지는 배우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모용복의 사촌 왕어언에게 반해 목숨을 걸고 그녀를 쫓아다닌다. 


다음으로 교봉은 '북교봉 남모용' 이라는 말과 같이 당금 최강의 사나이이다. 개방의 방주였기 때문에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에 능하고, 어렸을 적에 소림사 스승에게 무술을 배운 탓에 소림무술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관청이라는 배신자 때문에 신분이 드러나게 되어 개방을 떠나게 된다. 

본래 교봉의 아버지는 소원상이라는 사람으로 거란 사람이었다. 소원상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안문관을 지날 때였다. 중원의 무림 고수들이 소원상 가족을 습격하는데 소원상의 무술이 출중해 중원고수들은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가 죽자 소원상은 상심하여 안문관 석벽에 글씨를 세긴 후 절벽으로 투신한다. 하지만 떨어지던 중 아이가 울음소리를 내자 죽지 않았음을 알고 아이만 절벽 위로 던진다. 살아남은 개방 방주 등이 아이를 거두어 교삼괴 부부에게 맡겨 키운다. 

사실 중원 무림 고수들은 거란인들이 소림사를 습격해 무공비급을 탈취하려 한다는 잘못된 소문에 따라 소원상을 습격한 것이었다. 후에 이를 알게 된 교봉은 이름을 소봉으로 고친다.

단예의 누이인 아자에게서 깊은 위안을 받게 되어 그녀와 부부의 연을 맺기로 언약한다. 하지만 아자가 자신이 단정순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교봉과 단정순의 원한 관계를 풀기 위해 스스로 교봉의 일장에 맞아 숨진다. 죽기 직전에 동생 아자를 부탁하는데, 아자의 비뚤어진 성격 때문에 고생한다. 

한편, 소봉은 중원을 떠나 여진족과 지내다 거란의 야율홍기와 만나 의형제를 맺게 되는데, 야율홍기는 소봉을 남원대왕으로 봉해 중책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허죽은 소림사의 승려로 얼굴이 못생겼으나 불심이 매우 깊다. 소요파 장문인이 낸 바둑 문제인 진롱을 우연히 푸는 바람에 장문인이 70년간 쌓은 공력을 물려 받게 되고, 천산동모를 도와준 덕택에 영취궁도 물려 받는다. 허죽의 부모는 사대 악인 중 2대 째인 섭이랑과 소림사 방장 현자인데 이 사실을 알게된 날 둘 다 사망하는 바람에 또 다시 천애고아가 된다.

허죽은 동모 때문에 반강제로 계율을 깨뜨리게 되는데 동모가 서하의 얼음창고에서 음계를 범하게 하려고 데려다 준 여자가 하필이면 서하 공주라서 나중에 부마가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중있는 인물로 연나라의 후손이자 왕어언의 사촌오빠인 모용복이 있다. 사실 '북교봉 남모용' 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릇이 작고 무공도 기대에 못 미친다. 단예와의 대결에서 육맥신검 때문에 패배해 자살하려던 적이 있고, 소봉에게 잡혀 내동댕이 쳐진 후 소인이라고 욕을 들어먹은 적도 있다. 소요파 성숙노괴 정춘추에게도 밀린 적이 있으며, 서하의 무사로 변장하고 왕어언을 뒤쫓는 찌질함도 보인다.


아자는 아주의 동생인데 성격이 잔인하고 포악하다. 형부인 소봉을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 그를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옆에 두고 싶어 하는 등 그녀 주변에 엽기적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다. 

일예로 소봉에 의해 살해당한 유씨의 아들 유탄지가 아자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아자는 그의 머리에 뜨거운 철구를 씌워 가지고 노는 잔혹함을 보인다. 유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고 나중에는 자신의 눈마저 뽑아서 바친다. 

사실 유탄지의 무공도 결코 낮지 않은데 빙잠을 흡수한데다 소림의 <역근경> 까지 익혀 극도로 음유한 내공으로 개방 제자들을 여럿 작살낸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서 소봉과의 싸움에서 두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


소설은 그야말로 우연과 막장의 대환장 파티로, 단정순이 중국 전역에 뿌려놓은 씨들 때문에 단예가 만난 여자들은 죄다 단예의 동생들이다. 그런데 사실 단예가 단정순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막장이다.

단예는 사실 단정순으로부터 왕위를 되찾으려는 악관만영 단연경의 아들이다. 단예의 어머니 도백봉은 파이족(지금의 태국) 출신으로 일부다처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단정순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단연경과 관계를 맺은 것. 

결국 단예는 제위에 오른 뒤 목완청과 종영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왕어언과도 핏줄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맺어지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지만 작가는 어찌된 셈인지 그녀를 미쳐버린 모용복을 돌보는 것으로 결말 짓는다.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소봉과 아자, 그리고 유탄지이다. 소봉이 송나라와 거란의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하다 자살하자 아자는 유탄지에게 형부를 핍박한 자를 모두 죽여달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곧 형부 소봉이 '눈을 빼 준 유탄지에게 잘 대해주라'는 말을 상기하자, 즉시 자신의 눈동자를 파서 내던지며 '유탄지에게 이제 빚이 없으니 형부도 그대와 함께 있으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처연히 외친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자 유탄지도 그녀 뒤를 따른다. 

情이란 것은 사람의 심장을 파먹으면서도 파먹히는 사람이 이를 달콤하게 느끼도록 하는 마약과 같다.


김용의 후기작으로 주인공이 흩어졌다 모이는 구조가 자칫 난삽하게 흐를 수도 있으나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무공 수준을 적절히 유지함으로써 현실감을 확보한 덕분에 그럭저럭 읽힌다. 그러나 가끔 전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점(신문 연재 중 제자가 대신 썼다고 하는 부분들이라는데...) 소요파 무공에 대한 신비주의가 걷히지 않고 얼버무려 지는 점 등은 단점이다. 

초기작과 달리 한족 정통주의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거란, 서하, 여진, 대리, 토번, 파이 모두를 중화 속에 아우르려는 경향이 보인다. 세계주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이겠지만 최근 이러한 사상이 '동북공정'과 만나 개별 민족의 특수성 압살로 나아가기 때문에 마냥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10권 말미에는 김용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월녀검> 이 실려 있다.


원숭이로 부터 검법을 배운 아청이라는 아가씨가 범려에게 연심을 품게 되나, 무심한 범려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나중에 아청이 범려의 처소를 찾아와 그가 마음을 빼앗긴 서시에게 대나무를 겨눈다. 대나무 막대기는 그녀의 심장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무형의 기운이 그녀의 심장에 충격을 주었는지 후에 서시가 앞가슴을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 즉 서자봉심(西子捧心)의 모습이 여인의 미태로 전해진다.


----


한편, 책의 제목인 천룡팔부(天龍八部)는 불교 경전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수행승에게 대중설법을 하실 때에 언제나 천룡팔부가 함께 참석하여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법화경(法華經)에는 "천룡팔부는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중생(衆生)"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천(天) = 천신(天神). 사람에 비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린다.

용(龍) = 용신(龍神). 물속의 생명체 중 가장 능력이 크다. 

야차(夜叉)=귀신으로 야차팔대장, 십육대야차장으로 불림. 본래 놀라게 한다는 뜻. 임무는 중생계를 수호.

건달파(乾達婆)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를 취해 양분으로 삼는 귀신이며, 제석천을 보좌하는 악신(樂神).

아수라(阿修羅) 남성이 될 때는 지극히 추하고 여성이 될 때는 극도록 아름답다. 제석천과 싸움을 벌이는 데 이 전쟁터를 수라장이라 함.

가루라(迦褸羅) 커다란 새의 일종. 이 새는 용을 먹고 산다 함. 머리 위에 커다란 혹이 있는데 이 혹이 바로 여의주. 금시조.

긴나라(緊那羅) 산스크리트어로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 제석천의 악신(樂神).

마호라가(摩呼羅加) 큰 구렁이의 신으로 몸체는 사람, 머리는 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리 - 15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누마타 신스케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이와테로 전근을 간 후 물류부서에서 일하는 '히아사'와 친해지게 된다. 마음을 터놓고 낚시를 다니고 내키는 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즈넉한 기분을 맛보는 생활은 나름대로 충족감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어느 날, 히아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퇴사를 하게 된다. 퇴사 이유야 대충 짐작이 갔지만, 히아사가 빠진 자리는 왠지 허전했다.

얼마 후 히아사가 찾아와 낚시를 가게된다. 히아사는 얼마 뒤 다시 찾아와 상조에 가입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지난 번 히아사의 방문 때 눈치 채지 못한 무신경을 반성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나고, '나'는 우연히 히아사와 같이 근무했던 아줌마로부터 히아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히아사가 뻔뻔스러울 만큼 자신에게 실적을 졸라댔고 돈까지 빌린 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히아사의 행방을 수소문해 그의 아버지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의 얘기들을 듣는다. 히아사는 대학을 합격한 뒤로 4년 간 집으로부터 등록금과 생활비를 받아갔지만 학교에는 입학 조차 한 적이 없고, 졸업장을 위조해 자신을 속였기에 의절했다는 것. 히아사의 아버지는 히아사를 찾을 생각도 없었지만, 죽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이데 강으로 가서 낚시를 하다가 그 강에서는 좀처럼 낚기 힘든 무지개송어를 낚는다. 누군가 방류를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상류에 양어시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상류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제목 영리(影裏)는 '그림자의 뒤편'이라는 뜻으로 본래 電光影裏斬春風(전광영리참춘풍) 이라는 불교 선종 용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번역하자면 '번갯불이 봄바람을 벤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속뜻은 '인생은 찰나지만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작가는 자신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 중 하나로 지진으로 집이 파괴되고 생활 기반을 잃는 모습을 본 경험을 꼽는다. <영리>에서도 이면을 들여다 보게 된 계기는 동일본대지진이다. 그저 태평한 사람으로 보였던 히아사가 왜 아버지를 속이고, 과거 동료에게 돈을 빌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주인공 '나'가 동성애자인 것을 히아사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림자의 이면에 또 다른 삶이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때로 그런 비밀들이 '지진'이나, '사망' 같은 이벤트 때문에 드러나기도 한다. 마치 번갯불이 어둠을 조금 내몰아 색(色)을 보여주듯이.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에서도 이츠키가 죽게 되면서 또 다른 이츠키가 드러나지 않는가. 


간결하고 품격 있는 문체와 과감한 생략을 도전적으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일본 문예지 <분가쿠카이> 신인상과 제158회 아쿠타가와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450530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알랭 드 보통은 영국에서 성장했고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십대 초반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는 소설과 수필에 철학, 역사, 종교, 미술, 예술사 등 다양한 관심 분야를 알기 쉽게 녹여내는 재능있는 작가이다. 이 책 <동물원에 가기>는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 중 70번째 작품이다. 


9편의 단상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알렝 드 보통은 사랑의 역설에 관해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글귀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에서는 슬픔과 쓸쓸함이 주는 위안, 따분한 장소가 주는 매력, 일상의 소중함, 공항과 동물원에 대한 단상 들이 담겨 있다. 인용된 그림들은 걸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딘지 위안을 주는 면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점에 착안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어딘가 황량하고 쓸쓸한 것들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찬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이에 부대끼는 황량한 겨울이 오면, 우리도 조금 더 위안을 얻게될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394862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때로 총과 칼이 나오지 않아도 폭력이 난무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데미언 샤젤 감독의 <위플래쉬> 같은 작품. 그런데 그런 작품들에는 공통된 룰이 있다. 절대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것. 

이 룰을 적용시키면 심리게임은 선혈이 난무하는 잔혹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자신의 '본심'을 감추면서도 상대편의 '욕망'은 백일하에 드러내야 하는 이 게임의 참가자는 '경쟁심과 질투심'이라는 연료를 무제한으로 태우며 결승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결승점에 도달하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경쟁자'와 '질투심' 뿐. 소금물을 마시며 갈증을 견디는 이 게임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사이 료의 <누구> 역시 이런 심리 느와르 작품에 속한다. 


<기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로 스바루 신인상을 타며 화려하게 문단 신고식을 마친 아사이 료는 1989년생으로 <누구>로 2012년 하반기 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누구>는 다쿠토, 고타로, 미즈키, 리카, 다카요시 다섯 명의 취업활동 분투기를 SNS와 현실을 직조하며 보여준다. 

'다른 이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 '더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에 곁을 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허세'만 남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내'가 싫어 결딜 수 없게 되면 '자아'가 분열하여 '제2의 나'를 창조하게 된다. <지킬과 하이드>이다. 


SNS 계정을 파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해 다른 이를 공격하고 깍아 내리는 '나'.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타자'는 공포스럽지만 낯설지는 않다. 그 역시 '자신의 냄새'를 '나'에게서 맡았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므로.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324454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