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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세트 - 전10권 (특별한정 보급판)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는 북송시대. 철종이 천자가 되었으나 아직 어려 태황태후 고씨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단예, 교봉(소봉), 허죽 세 명이며, 이들은 후에 의형제를 맺게 된다.
먼저 단예는 아버지가 진남왕 단정순이고 큰아버지가 대리국 황제 단정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풍류남아로 젊었을 적부터 그야말로 여기 저기 씨를 뿌리고 다녔는데, 감보보와의 사이에서 종영을, 진홍면과의 사이에서 목완청을, 원성죽과의 사이에서 아자와 아주를, 왕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왕어언을 낳았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개방의 마부방주 부인도 건드린 전력이 있다.
어쨌든 단예는 유교경전과 불경을 읽어 마음이 어질고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했기에 무공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집을 뛰쳐나가 강호를 여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종영과 목완청을 이성으로 만나게 된다.
단예가 무예를 익히게 된 것은 매우 우연히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거기서 발견한 동굴에서 옥미인상에게 절을 하다 무공비급을 얻게 되면서이다. 단예는 기초가 없어 무공비급의 요결을 전체적으로 익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능파미보'라는 경신술과 남의 내력을 흡수할 수 있는 북명신공을 익힌 덕에 절정 고수들의 내력을 흡수해 내공만은 그 누구보다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망고주합이라는 괴물을 삼켜서 만독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다.
단예는 대리 단씨들이 구마지라는 토번국 호법국왕에 대항해서 맞서는 과정에서 무형의 검기를 내뿜는 육맥신검을 배우기도 하지만, 내공과 기초가 없는 탓에 발동이 되다 안 되다 하는 통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써먹지 못하기도 한다. 한편, 대리 단씨의 가전 무공인 일양지는 배우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모용복의 사촌 왕어언에게 반해 목숨을 걸고 그녀를 쫓아다닌다.
다음으로 교봉은 '북교봉 남모용' 이라는 말과 같이 당금 최강의 사나이이다. 개방의 방주였기 때문에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에 능하고, 어렸을 적에 소림사 스승에게 무술을 배운 탓에 소림무술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관청이라는 배신자 때문에 신분이 드러나게 되어 개방을 떠나게 된다.
본래 교봉의 아버지는 소원상이라는 사람으로 거란 사람이었다. 소원상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안문관을 지날 때였다. 중원의 무림 고수들이 소원상 가족을 습격하는데 소원상의 무술이 출중해 중원고수들은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가 죽자 소원상은 상심하여 안문관 석벽에 글씨를 세긴 후 절벽으로 투신한다. 하지만 떨어지던 중 아이가 울음소리를 내자 죽지 않았음을 알고 아이만 절벽 위로 던진다. 살아남은 개방 방주 등이 아이를 거두어 교삼괴 부부에게 맡겨 키운다.
사실 중원 무림 고수들은 거란인들이 소림사를 습격해 무공비급을 탈취하려 한다는 잘못된 소문에 따라 소원상을 습격한 것이었다. 후에 이를 알게 된 교봉은 이름을 소봉으로 고친다.
단예의 누이인 아자에게서 깊은 위안을 받게 되어 그녀와 부부의 연을 맺기로 언약한다. 하지만 아자가 자신이 단정순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교봉과 단정순의 원한 관계를 풀기 위해 스스로 교봉의 일장에 맞아 숨진다. 죽기 직전에 동생 아자를 부탁하는데, 아자의 비뚤어진 성격 때문에 고생한다.
한편, 소봉은 중원을 떠나 여진족과 지내다 거란의 야율홍기와 만나 의형제를 맺게 되는데, 야율홍기는 소봉을 남원대왕으로 봉해 중책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허죽은 소림사의 승려로 얼굴이 못생겼으나 불심이 매우 깊다. 소요파 장문인이 낸 바둑 문제인 진롱을 우연히 푸는 바람에 장문인이 70년간 쌓은 공력을 물려 받게 되고, 천산동모를 도와준 덕택에 영취궁도 물려 받는다. 허죽의 부모는 사대 악인 중 2대 째인 섭이랑과 소림사 방장 현자인데 이 사실을 알게된 날 둘 다 사망하는 바람에 또 다시 천애고아가 된다.
허죽은 동모 때문에 반강제로 계율을 깨뜨리게 되는데 동모가 서하의 얼음창고에서 음계를 범하게 하려고 데려다 준 여자가 하필이면 서하 공주라서 나중에 부마가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중있는 인물로 연나라의 후손이자 왕어언의 사촌오빠인 모용복이 있다. 사실 '북교봉 남모용' 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릇이 작고 무공도 기대에 못 미친다. 단예와의 대결에서 육맥신검 때문에 패배해 자살하려던 적이 있고, 소봉에게 잡혀 내동댕이 쳐진 후 소인이라고 욕을 들어먹은 적도 있다. 소요파 성숙노괴 정춘추에게도 밀린 적이 있으며, 서하의 무사로 변장하고 왕어언을 뒤쫓는 찌질함도 보인다.
아자는 아주의 동생인데 성격이 잔인하고 포악하다. 형부인 소봉을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 그를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옆에 두고 싶어 하는 등 그녀 주변에 엽기적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다.
일예로 소봉에 의해 살해당한 유씨의 아들 유탄지가 아자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아자는 그의 머리에 뜨거운 철구를 씌워 가지고 노는 잔혹함을 보인다. 유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고 나중에는 자신의 눈마저 뽑아서 바친다.
사실 유탄지의 무공도 결코 낮지 않은데 빙잠을 흡수한데다 소림의 <역근경> 까지 익혀 극도로 음유한 내공으로 개방 제자들을 여럿 작살낸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서 소봉과의 싸움에서 두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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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야말로 우연과 막장의 대환장 파티로, 단정순이 중국 전역에 뿌려놓은 씨들 때문에 단예가 만난 여자들은 죄다 단예의 동생들이다. 그런데 사실 단예가 단정순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막장이다.
단예는 사실 단정순으로부터 왕위를 되찾으려는 악관만영 단연경의 아들이다. 단예의 어머니 도백봉은 파이족(지금의 태국) 출신으로 일부다처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단정순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단연경과 관계를 맺은 것.
결국 단예는 제위에 오른 뒤 목완청과 종영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왕어언과도 핏줄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맺어지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지만 작가는 어찌된 셈인지 그녀를 미쳐버린 모용복을 돌보는 것으로 결말 짓는다.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소봉과 아자, 그리고 유탄지이다. 소봉이 송나라와 거란의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하다 자살하자 아자는 유탄지에게 형부를 핍박한 자를 모두 죽여달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곧 형부 소봉이 '눈을 빼 준 유탄지에게 잘 대해주라'는 말을 상기하자, 즉시 자신의 눈동자를 파서 내던지며 '유탄지에게 이제 빚이 없으니 형부도 그대와 함께 있으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처연히 외친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자 유탄지도 그녀 뒤를 따른다.
情이란 것은 사람의 심장을 파먹으면서도 파먹히는 사람이 이를 달콤하게 느끼도록 하는 마약과 같다.
김용의 후기작으로 주인공이 흩어졌다 모이는 구조가 자칫 난삽하게 흐를 수도 있으나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무공 수준을 적절히 유지함으로써 현실감을 확보한 덕분에 그럭저럭 읽힌다. 그러나 가끔 전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점(신문 연재 중 제자가 대신 썼다고 하는 부분들이라는데...) 소요파 무공에 대한 신비주의가 걷히지 않고 얼버무려 지는 점 등은 단점이다.
초기작과 달리 한족 정통주의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거란, 서하, 여진, 대리, 토번, 파이 모두를 중화 속에 아우르려는 경향이 보인다. 세계주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이겠지만 최근 이러한 사상이 '동북공정'과 만나 개별 민족의 특수성 압살로 나아가기 때문에 마냥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10권 말미에는 김용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월녀검> 이 실려 있다.
원숭이로 부터 검법을 배운 아청이라는 아가씨가 범려에게 연심을 품게 되나, 무심한 범려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나중에 아청이 범려의 처소를 찾아와 그가 마음을 빼앗긴 서시에게 대나무를 겨눈다. 대나무 막대기는 그녀의 심장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무형의 기운이 그녀의 심장에 충격을 주었는지 후에 서시가 앞가슴을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 즉 서자봉심(西子捧心)의 모습이 여인의 미태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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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책의 제목인 천룡팔부(天龍八部)는 불교 경전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수행승에게 대중설법을 하실 때에 언제나 천룡팔부가 함께 참석하여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법화경(法華經)에는 "천룡팔부는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중생(衆生)"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천(天) = 천신(天神). 사람에 비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린다.
용(龍) = 용신(龍神). 물속의 생명체 중 가장 능력이 크다.
야차(夜叉)=귀신으로 야차팔대장, 십육대야차장으로 불림. 본래 놀라게 한다는 뜻. 임무는 중생계를 수호.
건달파(乾達婆)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를 취해 양분으로 삼는 귀신이며, 제석천을 보좌하는 악신(樂神).
아수라(阿修羅) 남성이 될 때는 지극히 추하고 여성이 될 때는 극도록 아름답다. 제석천과 싸움을 벌이는 데 이 전쟁터를 수라장이라 함.
가루라(迦褸羅) 커다란 새의 일종. 이 새는 용을 먹고 산다 함. 머리 위에 커다란 혹이 있는데 이 혹이 바로 여의주. 금시조.
긴나라(緊那羅) 산스크리트어로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 제석천의 악신(樂神).
마호라가(摩呼羅加) 큰 구렁이의 신으로 몸체는 사람, 머리는 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