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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불변의 법칙
알 리스 & 로라 리스 지음, 김현정 옮김 / 비즈니스맵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광고 중심의 마케팅이 PR 중심의 마케팅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PR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다. PR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면 광고가 적절하게 연출된 광고 캠페인을 동원해 그 이미지를 활용할 뿐이다.” 결론은 ‘지는 광고, 뜨는 PR의 시대’이다.

PR은 브랜드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광고는 브랜드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광고의 목적은 브랜드를 구축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구축한 브랜드를 방어하는 것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광고를 원하지만 정작 창의성이 필요한 것은 PR이다. 소비자는 광고를 신뢰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PR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다. 저자의 주된 주장은 “퍼블리시티가 먼저이고 광고는 그 다음”이다.

저자의 주장이 광고가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브랜드 구축을 위해는 광고보다는 PR을 하라는 것이다. 소비자가 신뢰하지 않는 광고보다는 퍼블리시티를 활용하여 브랜들 홍보해야 한다. 소비자는 광고를 신뢰하지 않지만 퍼블리시티의 내용도 순수하게 받아드리지 않는다. 광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광고보다는 효과가 있기에 퍼블리시티를 활용한 브랜드 구축이 광고보다 낫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광고는 보험이다. 자사 브랜드의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그러니 광고를 해야한다. 이를 저자는 “광고는 R&D보다는 유지보수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광고의 지출이 없으면 브랜의 가치가 하락한다. 즉 광고는 미래에 투자한 만큼 이익을 돌려받기 위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얼핏보면 광고는 죽었고 PR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절대 아니다. 브랜드 구축에는 광고를 하지말고 PR을 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브랜드가 구축되면 광고를 통해 브랜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광고없이는 브랜드는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아닐런지.

PR 과 광고 모두 돈이 필요하다. 이는 저자의 이전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책 제목과 깊은 연관이 있는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의 유명한 책 《마케팅의 불변의 법칙》의 마지막 법칙은 ‘재원의 법칙’이다. 결론은 “적절한 자금의 뒷받침이 없다면 아이디어가 살아 이륙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간단히 요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 케팅은 잠재 고객의 기억 속에서 싸우는 게임이다. 기억 속으로 파고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단 들어간 뒤, 계속 남아 있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독자적으로 가는 것보다는, 1백만 달러의 돈을 보탠 평범한 아이디어가 더 멀리 갈 수 있다. 마케팅의 도움이 아니라 돈을 구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이용해야 한다. 마케팅은 차후에 올 수 있다. 어떤 기업가는 홍보 활동을 잠재 고객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값싼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그것을 ‘무료 광고’쯤으로 여기고 있다. 홍보는 무료가 아니다. 돈이 함께하지 않는 아이디어는 무용지물임을 기억하라.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라. 아이디어를 갖고 그 다음에는 그것의 시장성을 개발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러 가라. 여기에 당신이 택할 수 있는 지금길이 있다. 재원을 마련했다면 충분히 써라. 돈이 마케팅 세계를 돌아가게 만든다.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그 마케팅의 바퀴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돈을 찾아내야만 한다.

《홍보 불변의 법칙》은 신작이 아니다. 10년전인 2002년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도 《마케팅 반란》으로 출간 되었다. 재출간된 이번 《홍보 불변의 법칙》도 《마케팅 불변의 법칙》의 인지도에 묻어가려는 제목이다. 그래서 ‘법칙’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PR’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게 아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할지는 저자보다 독자의 몫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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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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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털리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모털리티 -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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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통섭’이라는 말을 번역, 전파한 최재천은 “사람이 쉽게 쥘 수 있는 말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전략”이라 한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참 편한 ‘성공적인 전략’이다. 저자 캐서린 매이어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어모털리티Amortality’라 만들었다. ‘어모털리티’한 종속,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어모털족’이라 부른다.

책에서 말하는 ‘어모털족’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자. 개념을 파악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나이는 유동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운 것이 되었다.” 나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나이에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또한 “인생의 모든 선택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행동한다.” 이들이 바로 ‘어모털족’이다. 즉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소비하는” 사람이다.

‘어모털리티’는 이미 확실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일부만이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보통 나이를 더 의식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이에 대한 분별이 사라짐으로써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어모털리티’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임계점에 다다랐고, 모든 세대에 걸쳐서 빠르게 확산해 있다. 하나의 신드롬이자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어모털리티라는 유행병은 그 영향을 살펴보면 대체로 양성이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특정한 경우에는 악성이 되기도 한다.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또한 ‘어머탈리티’는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저자는 “나이를 잊고자 하는 상태로서,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춘기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라는 ‘어모털리티’의 정의에 대해 가장 중요한 특징을 빠졌다고 말한다. 바로 어모털족은 “무덤이 바로 뒤에까지 와서 하품하기 전까지는 죽음이란 존재를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에 어울리는 행실에 대한 규범이나 제한은 더는 (적어도 어모털족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쉽게 전복되곤 한다.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와 같은 인생의 각 단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나이와 노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10대란 개념은 1944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1944년에 미국의 마케팅 종사자가 14세에서 18세까지의 연령층을 가리키는 이름을 상품에 갖다 붙이면서 돈을 챙겼다. 또 성인기라는 말은 1870년에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포함되었다. 인간의 생을 구분하여 명명한 시기가 별 의미없으며, 필요에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다.

지금 황혼, 또는 은퇴 이후를 구분하여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게 온당한가. 저자도 말하지만 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을 때는 오십이 넘은 사람은 정말로 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모털족에게 은퇴는 결코 매력있는 제안이 아니다. 2050년까지 인류 가운데 ⅕ 은 60세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생 단계를 그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어모털족은 지금의 사고에서 바라본다면 이상한 족속이지만 인간의 편의상 구분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고 그 과정 중이기에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모털족이 존재 여부를 말하기보다는 노령화하는 현상을 당연시해야 한다. 먼저 ‘노령화’라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 늙었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무엇보다 늙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마치 정당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의 ‘어모털족’, ‘어모털리티’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이고 세계가 노령화 사회로 변하는 게 아니라 전보다 좀 더 오래 살 뿐이다.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많이 남은 삶 또는 생을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은 지금까지 연령대에 맞춘 마케팅은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각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서 기업 활동이나 마케팅에 적용했던 각종 이론과 데이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라 말한다. “소비자는 더는 나이로 분류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나이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어모털족’의 존재를 인정하든 아니든 지금 사는 인류는 백 년 전의 인류보다 오래 살고 있으며, 백 년 후 인류는 지금의 인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잣대는 항상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어제의 잣대로 오늘을 평가하지 말며, 오늘의 잣대로 내일을 비유하지 마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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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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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 성장이 멈춘 세계, 나와 내 아이는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요르겐 랜더스 지음, 김태훈 옮김 / 생각연구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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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앞으로 40년 후를 예측(?)한다.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가 지금까지 인류가 진화한 세월보다 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될 미래를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답은 누구도 주지 못한다. 예측한 미래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지금부터 2052년까지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과학적 의미에서, 이를테면 세부적인 영역에서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 이 책에는 내 근거 있는 짐작이 담겨 있다. 물론 내 짐작은 ‘과학적 진실’은 아니다. 미래의 영역에 그런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짐작은 정제된 판단, 정통한 판단이다. 비록 증명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 2052년이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내가 틀렸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과학적 진실’이 아니며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짐작’에 불과(?)한 내용을 읽고 그 내용에 맞추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저자는 “앞으로 40년에 대한 내 예측은 시나리오 분석이 아니다. 일어나야 할 일을 기술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가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것에 대한 근거 있는 짐작”이라 말한다. 단지 ‘짐작’이다. 저자의 겸손한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예측하지 않는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많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물론 받아드리는 사람의 몫이지만 혼란스럽기는 나뿐이 아니다. 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방향으로 확실히 믿을 이유가 있다면 그에 따른 결정이 이뤄질 거라고 예측하는 것은 타당하다.”

나의 불손한(?) 의구심에 저자는 “예측은 가능한가?”라며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짐작보다는 ‘예측’이 더 신뢰성이 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때 근거 없는 짐작보다 근거 있는 예측을 선호한다. 짐작은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짐작’이나 ‘예측’할 수 없다면 그저 읽을 수밖에. “내가 2052년까지 일어날 것으로 짐작하는 세계적 변화의 기대하고 근거 있는 윤곽을 따르고 있다. 나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치를 활용하고 있지만 가장 신뢰성 높은 측면은 일반적인 추세 혹은 경향이다.”

저자는 이런 한계(?)에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썼을까?” 미래의 일을 기술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는 이 책을 인류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썼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짐작’이든 ‘예측’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예측”으로 설명한다. “내 예측은 조율한 정치적 행동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촉발할 정도로 지구적 환경 재난을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구적 환경 재난은 절대 갑작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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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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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 지음, 이진원 옮김, 이호욱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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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을 ‘평가’한다는 말은 그 내용을 차치하고 먼저 거부감을 느낀다. 영업 실적을 평가하듯이 인생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하는가? 저자는 튼튼한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 경영이론으로 인생을 ‘평가’하려 한다. 거부감을 안고 시작한 책은 점점 호감으로 바뀌었다.

왜 인생을 평가해야 하는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인생 중간 점검은 위기 닥쳐서가 아니라 살면서 때때로 해야 한다. “그늘이 필요할 때 나무를 심을” 수는 없지 않은가. ‘평가’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 말고 내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온 문제보다도 앞으로 닥칠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이 불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일의 행복에 현재 내 가족이 불행을 느낀다면 안 된다. 저자는 이를 좀 더 간명하게 전한다. “인생이란 나처럼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걸렸을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일’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서도 직장 또는 일에 관련된 선택을 많이 한다. 이 회사 좋을까, 저 회사가 좋을까? 많은 고민을 하든 단순하게 선택하든 후회는 남는다. 이때 저자의 “당신이 고용된 이유는 어떤 일 때문인가”라는 조언을 기억한다면 선택을 좀 더 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택 후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저자는 강력한 이론으로 무장하기를 권한다.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이론 중에서 꼭 필요한 이론이 있다. 이안 맥밀런과 리타 맥그래스의 “발견지향기획(Discovery-Driven Planning)”이다. 이것은 경영이론이지만 인생에 접목해도 손색없다. (물론 저자도 그러하기에 이것을 책에서 예로 들었겠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모든 기회에 도전할 수 없다. 어떤 기회가 정말 ‘기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발견지향기획”을 활용할 수 있다. 단순히 “전략이 효과를 보게 하려면 무엇이 사실로 판명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보면 된다. 같은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 예측이 맞으려면 사실로 입증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정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가정이 맞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 일반적으로 대답을 얻는다.

‘자기계발서’에 거부감을 가져 이 책 읽기를 주저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유명한 경영학자의 책이라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다. 단지 ‘참아라’, ‘간절히 소망하라’,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아라.’라는 식의 책은 아니라는 게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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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적의 비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경제기적의 비밀 -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 왕국이 됐을까?
이영선 지음 / 경향BP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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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46년 7월 팔레스타인 지역 영국군 최고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이 테러범에 의해 폭파당했다. 이 폭파로 80명의 영국군 고위 당국자와 민정관이 죽었다. 부상자만 100여 명에 이른다. 이 테러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지하무장 단체인 ‘이르건’이 대 영국 투쟁의 시작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유럽국가 간의 패권 싸움으로 분열되면서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끝났다. 이스라엘의 처지에서는 유럽국가 자신은 실컷 식민지를 개척했으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통제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유럽이 식민지를 개척할 때는 국제적인 추세였으니 괜찮고 2차 세계대전 이후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식민지 또는 점령정책이 안 된다는 논리는 이스라엘이 볼 때는 다분히 유럽 중심적인 생각이다.” 이는 저자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서의 독립국 성립에 관해 말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의 처지에서 볼 게 아니라 현지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는 게 더 우선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이루고 산 것은 2,000여 년 전 그것도 길지 않은 기간이다. 그것을 근거로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식민지화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는 ‘2국가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서 한 국가에서 유대인과 같이 살면서 동등한 투표권이 있는 ‘1국가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많아질 것이 분명하기에 이스라엘은 이를 반대한다. “이스라엘은 2국가 해결책과 1국가 해결책 전부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몰아넣어 살게 하여 궁극적으로 고사시키려고 한다.”

《경제 기적의 비밀》이라는 제목과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쳐왕국이 됐을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어떠한 점을 배워야 할지 이 책을 읽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곳곳에 드러나는 저자의 우호적인 구절이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한국 사람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성공한 이스라엘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측은하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큰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의 인식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미국을 절대적인 우방으로 여기는 영향이 크다.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가장 뛰어난 점은 ‘유일신’ 종교를 만든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사상이었다. 그 사상을 기반으로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 종교의 뿌리가 되었다. 가톨릭,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종교가 반목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종교의 뿌리인 유대교가 원죄를 가진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디아스포라(diaspora)’는 오늘날 유대인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흩어진다’, ‘산재한다’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비롯했다. 삶의 고장을 잃은 유대인이 이산과 방랑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강제이주의 슬픈 역사이다. 이 디아스포라를 통해 한층 더 다져져 오늘날 유대인의 혈맥 속에 살아있다. 이런 이주 생활을 거쳐 유대인은 ‘세계인’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쌓아 왔다. 최근에는 국외 각국에서 살면서 집단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인 교류를 한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우리가 유대인과 다른 점은 전 세계 각지에 한민족이 없어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이다. 이를 극복해야만 한다.


“폭력은 원래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 유대인에 관한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글귀이다. “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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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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