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 해피? - 우리 이웃 50명이 오마이뉴스에 올린 행복 이야기
박상규 외 지음 / 한길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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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사는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기사 중 오십 편을 골라 책을 한 권 만들기로 했는데, 거기에 내 글도 한편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건 이유는 동의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50명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니 오히려 내쪽에서 영광이라고 하였다. 한길사는 지명도 있는 출판사인 만큼 책도 좀 팔리겠고(?), 50분의 1이라는 미미한 참여지만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렇게 <오마이뉴스>로 부터 전화를 받고 난 다음, 잊은 듯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엔 책이 언제쯤 나온다더니 왜 아직 안 나오지 하며 내심 궁금해 했다.

시간이 흘러 8월 하순경, 드디어 책이 나왔다는 소식과 함께 책을 부쳐주겠다고 하였고 책은 빠르게도 바로 다음날 도착하였다. 때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내 집에서 2박3일을 보내게 된 두 친구가 있어 그들에게 각각 한권씩 나눠주었다.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내 기사 '그때 정말 내 한테 삐삐 안쳤나?'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는 재미있다고 하였다.

관련기사
"그때 정말 내 인데 삐삐 안 쳤나?"
'디알북'이 뭐예요?


“정말?”
“그래.”
“뭐 그렇기까지야.”
“아니야, 정말 재미있어. 컴퓨터로 볼 때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네.”

그러면서 친구들은 앞장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읽어보니 처음 보는 내용들이 많아서 새 책을 산 느낌이었고 나름대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조각 천을 바느질해서 만드는 퀼트 제품이 아름답듯이 <아유해피> 또한 퀼트 못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

팥빙수를 매개로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맛있게 그려준 김은식 기자, 남의 양복지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다 기성복이 창궐하는 바람에 양복점을 접고, 양복 만들던 고운 손이 막일로 거칠어진 단벌신사 아버지에게 육순선물로 새 양복 한 벌 해드렸다는 효자 이봉렬 기자, 아빠가 가난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뱃속의 아기도 아는지 전진한 기자의 아내는 모처럼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입덧의 시기에 겨우 먹고 싶은 것이 호떡이었다나.

편완범 기자의 기사 '내 직업은 예식장 전속 주례사'는 주례사의 이면을 볼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그 짭짤한 수입에 군침이 흘렀다. 그리고, 사위될 사람에게 어려운 한자시험을 치르게 했던 김령희 기자의 아버지 얘기는 읽는 내내 김 기자의 아버지가 내 옆에 계시는 것처럼 떨렸다.

아무튼 50인이 함께 만든 이 '퀼트 제품'이 대박까지는 언감생심이고, 그저 조금은 회자되길 바랐다. 그렇게 그저 누군가 읽어주길 마음으로 바라기만 할 뿐 나는 아무런 노력 내지는 판촉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아유해피>를 출산해놓고 기자들 모두가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는지. 워낙 책이 안 읽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50명 중에는 이미 단행본을 낸 분들도 있던데, 혹여 자신들의 단행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대한 것은 아닌지, 혹은, 단지 50분의 1일 뿐이므로 모두들 자기 자식이 아니라 생각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나는 무엇보다 <아유해피>가 나름의 향기가 나는 책이라 생각하였기에 모두의 무관심이 안타까웠다. 내게 돌아올 몇 만 원 원고료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러한 것 때문에 아무에게도 얘기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권의 가격으로 50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명분을 발견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선 나부터 <아유해피>의 독자가 되기로 하였다. 가끔 책 선물을 주고받는 지인에게는 다른 책이 아닌 <아유해피>를 선물하였다.

그리고 "요즘은 뭔 책을 사야 할지 몰라"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의 연인>의 수혁 버전으로 <아유해피>를 이야기하였다.

“한길사에서 펴낸 <아유해피>란 책이 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다.”
“그게 무슨 말이고?”
“궁금하면 사봐, 줘. 그 속에 내가 있다고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그 속에 내가 있다고 해봐야 막상 사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나부터도 두세 번 <아유해피>를 보내니, 더 이상 부칠 데가 없었다. 그렇게 <아유해피>를 나도 잊고 남도 잊고 모두들 잊어가던 찰나, 서프라이즈'의 <도표로 보는 대한민국 사실은>(디알북)이 그 구성원들의 엄청난 관심과 노력으로 급속도로 퍼저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오마이뉴스가 자신들이 가진 인프라를 이용할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십이월의 끝자락에서 잊었던 <아유해피>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냥 이대로 소멸이 아닌, 부활을 꿈꿀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내가 너무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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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과 그의 아내 - 33쌍과의 인터뷰, 우리 시대의 남성.여성.가족
김현주 지음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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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이런 저런 맞선이 들어오면 올케언니가 첫째로 묻는 질문이 "그런데 그 사람 그 집에서 장남이에요?"였다. 자기도 장남에게 시집왔으면서 아니, 자신이 장남에게 시집을 왔기 때문에 장남은 안 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은 어땠나 하면. 멋모르던 시절에는 내가 막내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왕이면 장남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내가 본 장남들은 듬직했으며 이해심이 있었으며 차남처럼 이기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한두 살씩 더 먹어가다 보니 배우자의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위라든가 거기다 장남이라는 것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남이고 나이가 서너 살 위이기 때문에 너그럽고 믿음직하고 내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그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은근히 더 위압적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장남과 결혼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결혼을 하고 나니 듬직함과 너그러움은 오간 데 없고 일방적이고 권위적이고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라며 푸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장남도 많으리라. 그러나 한국사회에 부여된 장남에 대한 과잉기대와 의무는 장남의 어깨만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의 어깨도 무겁게 한다.

▲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 표지
ⓒ2004 명진출판
윤영무 기자의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명진출판)를 아픈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이 장남이지만 장남을 거부하고 룰루랄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 이상 장남 생활에 찌들지 말고 '내키는 대로 살자' 뭐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읽어보니 이 책은 그런 룰루랄라 장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어른들이 옛날에 생각했던 장남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하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장남의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행간에서 장남 아내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 자녀들의 눈물도 보았다.

장남 역할이 동생들이나 가족 친지들에게는 든든하기 그지없으나 그의 아내 입장에서는 오로지 수고만이 두 어깨를 짓누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자녀들로서는 자신들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장남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들을 성실히 수행한 얘기들로 채워져 있다.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자랑 같은 것은 별로 없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들 제 앞가림하게 도와주고 격려하고 또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시골 친척들을 구워삶는(?) 법 등 자신감 있고 상냥하고 듬직한 이 장남은 어딜 가나 팔방미인으로 환영받고 척척박사였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제수씨의 생일까지 챙기는 꼼꼼함은 물론 처가댁에도 잘한다. 사위가 미리 온다고 하면 이것저것 준비하시느라 부담스러울까봐 마침 지나는 길이라 들렀다면서 마실 것을 내놓으며 달콤한 말과 함께 용돈을 살짝 놓고 가는 애교에 어느 장모인들 넘어가지 않으랴.

처가에 하나를 잘하면 아내가 시가에서 열을 잘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실천했다. 그가 지금의 아내를 택한 이유도 심성이 곱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잘 모셔줄 것 같아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윤 기자 세대의 장남들은 배우자를 고르는 제일 조건이 둘 사이의 사랑보다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어줄 여자를 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친척 아저씨 중 한 분, 그도 여섯 형제의 장남이었다. 예전엔 결혼이 본인의 선택보다 그 부모의 선택이었는데 친척아저씨 역시 그의 아버지가 점찍어준 여자와 결혼하였다.

나이 드신 분들은 부모님 말씀이라면 대개 만족하며 따르는 것으로 보여 그 아저씨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랬는데 70을 바라보는 그 아저씨의 넋두리는 인생을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한스러웠다.

'지금의 마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삼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아버지에게 사정했는데 아버지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가.'

▲ <장남과 그의 아내> 표지
ⓒ2004 새물결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를 읽은 사람들은 몇 해 전 나온 <장남과 그의 아내>(새물결)를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가 장남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장남의 입장만 있다면 <장남과 그의 아내>에는 장남의 입장과 그 아내의 입장 둘 다 있다.

<장남과 그의 아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장남부부 33쌍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장남은 그의 아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장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장남과 그의 아내>는 장남과 그의 아내만이 아닌, 결혼을 했거나 또 앞으로 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이다.

'아, 우리의 갈등이 사실은 이런 카테고리 속에서 일어났던 것이었구나' 혹은, '결혼 속에는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런 갈등도 있구나' 등등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를 읽고 나서 나는 윤영무 기자보다 윤영무 기자의 아내에게 짠한 마음과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나는 여자이므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아내들은 그녀의 마음을 알 것이다. 윤 기자가 차기작으로 '장남의 아내도 행복했다'라는 행복한 책을 쓸 수 있게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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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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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도 한때는 헌책방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스무 살 언저리, 아주 깨끗한 <현대문학>이 단지 날짜가 며칠 더 지나서 지난호로 밀려났다는 이유로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당장 샀다.

그 뿐인가, 새로운 호가 나오면 그 달 사지 않고 그 달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헌책방에서 보이면 냅다 사곤 하였다. 그런 얌체 짓을 조금은 찔려하기도 하였으나 내 돈이 굳고(?) 같은 돈으로 책을 배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눈이 멀어 작가들의 창작의욕이고 뭐고는 안면 몰수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던 것 같다. 헌책방이 좋긴 하지만 헌책방이 보여주는 무질서한 진열과 중구난방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들의 혼잡함이 지겨워졌다. 게다가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나인지라 무엇보다 손끝에 묻어나는 먼지가 싫었다.

사람의 습관은 묘해서 헌책방에 발길을 한번 끊으니 좀처럼 다시 가지지 않았다. 새 책을 파는 대형서점에서 매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따끈따끈한 신간을 구경하는 재미에 헌책방은 한번 잊으니 오래도록 잊혀졌다.

내가 다시 헌책방의 존재를 상기하게 된 것은 최종규 기자의 헌책방 순례기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 얼마간은 재미있게 봤어도 점점 클릭할 재미를 못 느꼈다. 최종규 기자도 얘기했듯이 헌책방이 자꾸 사라진다고 하니 내 관심도 시들시들해졌다.

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하나둘 책을 내는 것을 보고 ‘이 인간(?) 이쯤에서 책 한 권 낼 법한데…’ 하면서 검색해본 결과 책은 이미 지난 5월에 나온 것이 아닌가.

 
▲ <모든 책은 헌책이다> 표지
ⓒ2005 그물코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그동안 최 기자의 헌책방 시리즈 읽기를 게을리한 것이 오히려 그의 단행본을 읽는 데는 신선한 도움이 되었다. 택배로 보내져 온 책은 보통 책보다 약간 두툼하였고 속지는 재생지로 되어있었다.

그의 헌책 사랑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가졌던 헌책에 대한 세 가지 선입견을 수정해야 했다.

첫째, 헌책방의 헌책이란 별 볼일 없는 책이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헌책방 아저씨는 ‘맞돈(현금)’을 주고 헌책을 사오기에 누군가 사가지 않으면 그대로 손해이므로 그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싶은 책을 선별해서 사온다고 하였다.

둘째, 헌책만큼 헌책방 아저씨도 후지다? 천만의 말씀. 헌책방 아저씨로 자리 잡으려면 한 몇 년은 수련(?)해야 나름의 안목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즉, 좋은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헌책방 아저씨들은 좋은 책만큼 눈이 높은 분들이었다.

셋째, 헌책방엔 삼류소설이나 만화가 주류다? 땡! 귀중한 자료가 될만한 소중한 책들이 헌책방에 즐비하고, 서점 주인들은 좋은 책이 나오면 가끔은 숨겨두었다가 그 책이 꼭 필요할 법한 단골에게 먼저 선보인다고 하였다. 밀실 뒷거래(?)가 나쁘지만 헌책방의 그것은 오히려 그 정반대인 듯했다.

헌책과 헌책방 사정이 이러하거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헌책방이란 별 볼 일 없는 구닥다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물간 서점, 조만간 사라질 시대에 맞지 않는 공간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무지의 소치였고, 최종규 기자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헌책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갈 뻔했다.

조만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헌책방을 수소문해보고 나도, '안 보고 지나쳤으면 크게 후회할' 책을 바야흐로 사기 시작해야겠다.
 
 
'헌책’이라는 이름이 좀 아쉽네요. 헌책 말고 좀 더 친숙하고 헌책을 빛나게 하는 말은 없을까요. ‘다시 보고 싶은 책’, ‘어제의 책’, ‘숨어있는 책’, ‘옛 책’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어떤 낱말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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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2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 푸른나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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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터넷에서 '펌글'의 형태로 떠돌던 유시민의 '서른 살 사내의 자화상'을 책으로 다시 읽었다. 인터넷으로 읽고 난 다음 한 번의 클릭으로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쉬워 이런 저런 검색 끝에 그 원본이 실렸던 책을 발견한 것.

다름 아닌,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도서출판 푸른 나무)였다. 초판은 88년이었고 내가 사게 된 것은 2003년 개정판이었다. 활자화 된 것을 읽으니 인터넷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삼십. 흔히 하는 말로 '꺾어진 육십', 내 나이다. 세상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적학생', 이것은 사실 그 자체다. 나는 대학에 두 번 입학해서 두 번 다 제적당했다.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5만 원짜리 자취방이 내 보금자리이고 저금통장이나 처자식은 아직 없다. 나는 가난한 노총각이다. 혼자된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 드리지도 못하는 있으나 마나 한 아들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 동안에는 돈벌이를 안 한다. 그러나 건달은 아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미래가 하루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그가 바라는 미래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미래란 별 것이 아니다. 열심히 노동하는 삶들이 천대 받지 아니하고 사람답게 사는 사회, 셋방살이 한맺힌 가난한 이들이 작지만 자기 집을 갖는 사회, 자기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사회, 평생을 눈물과 비탄 속에 살아가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그리운 혈육을 만날 수 있는 나라, 강대국에 매이지 않고 우리 운명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는 나라, 이런 사회, 이런 나라가 바로 내가 간절히 바라는 미래인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그가 원하는 그 소박한 미래를 얻지 못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유시민처럼 어울리지 않는 국회의원도 없을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 책에는 유시민 외에도 아픔을 먹고 자란, 지금은 다들 한 이름 걸고 사는 '젊은 활동가들의 성장 체험'이 뼈저리게 녹아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감동적인 시인과 소설가가 되는 길이 쉽지 않음을 알고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들은 정말이지 가난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멱을 감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늘 배가 고팠고, 그 고픈 와중에도 공부가 하고 싶어 눈에 불을 켰고, 늘 월사금이 밀려서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어린 시절을 보낸 최인석은 밥은 굶지 않았어도 늘 자신의 마음과 불일치하는 부모님과의 의견 차이로 고통스런 성장기를 보냈다. 방학숙제를 계기로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책읽기를 좋아하게 된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전망 밝은 전자공학과를 추천하였다. 제2외국어로 불어를 공부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의 부모는 독일어를 배우라고 하였으며 문과가 적성이 맞는 그에게 이과반을 강요했다.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시절이라 초등시절부터 늘 과외공부와 산더미 같은 숙제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지금 학생들의 상황도 그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세상은 변하지 않고 시간만 흐른 듯하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청춘을 보내면서 누구나 다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나 또한 무언가 의식이 깨어나던 스물부터 서른까지가 가장 괴로웠다. 그러나 아픔이 없으면 성숙도 꿈꿀 수 없기에 지금은 머리가 어지럽던 그 시절의 아파했던 기억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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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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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해 이맘때 당시 서울시의 유인종 교육감은 신문에다 광고를 내었다. ‘우리 아이들을 선행학습 과외로부터 해방시켜 학교교육을 정상화 합시다’라고. 굵고 진한 글씨로 강조한 그 제목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우리 아이들을 반짝1등, 평생꼴찌로 만들지 맙시다’라며 재차 당부하였다.

그러고서 시작되는, 선행학습이 왜 나쁜지에 대한 차근차근한 설명은 우리교육의 ‘고질병’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유 교육감의 글에 매우 공감한 나머지 그 광고를 가위로 오려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교육이 정상화 될 수 있을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유교육감은 이렇게 답했다.

“답이 없어요. 다만 학부모님들이 욕심을 버리면 되겠지요. 그 욕심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기에 시간이 걸리겠지요. 학부모님들이 일류병에서 벗어나면 교육은 자동으로 제자리를 찾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어놓아도 학부모님들의 일그러진 욕심 앞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요.”

나도 내년이면 학교 갈 아이를 둔 예비 학부모인지라 결국은‘학부모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에 백번 공감하였다. TV, 라디오에서 아무리 교육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하고 호소해도 근본적으로 학부모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이다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터라 유 교육감의 말은 내 마음을 한 번 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출판사)를 읽었다. 주변에서 좋은 책이라 하여 사긴 샀는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서, 베스트셀러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던 나였기에 우선 순위에서 밀어내다보니 몇 달 묵혔던 책이었다. 지인이 놀러 와서 ‘어머 이 책 있네’ 라며 환기시켜주지 않았으면 앞으로 몇 달을 더 묵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창가의 토토>. 지은이가 구로야나기 테츠코였다. 흠,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인데. 표지 속을 보니‘아사히TV 일일 대담프로인 테츠코 룸의 진행자' 라는 것이었다. 테츠코의 룸은 나도 본 적이 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무관심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아니, 그 잘난 배우가, 사회자가, 인물만 한 인물하는 것이 아니라, 말발만 센 게 아니라 책까지 냈단 말인가?

<창가의 토토>는 지은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어린 테츠코는 일반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아니, 테츠코가 적응을 못한 게 아니라 데츠코의 선생님들이 테츠코에게 적응을 못하여 토토(테츠코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자기이름, 이하 토토)를 쫓아내었다.

1학년 어린 나이에 퇴학을 당한 토토를 그의 어머니는 일반 학교와는 교육과정이 다른 일종의 ‘대안 학교’에 보냈다.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인 ‘고바야시 소사쿠’선생님은 ‘아이들이 제각기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소질을 주위 어른들이 손상시키지 않고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는 선생님이었다.

‘문자와 말에 너무 치중하는 현대의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이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신의 속삭임을 듣고 또 영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성과 직관을 쇠퇴시키지는 않았을까? 해묵은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그 연못 속에 개구리가 뛰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 비단 시인 바쇼만이 아니건만.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본 사람이 동서고금을 두고 와트 한사람, 뉴턴 한사람뿐이 아니건만.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도 못하며 더구나 가슴속의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참된 열정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아이들에게 선사하고자 하였다.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가 그러했으므로 장애를 지닌 '야스아키’는 자신의 신체를 전혀 콤플렉스로 느끼지 않았고 토토 또한 자연스럽게 그와 첫 친구가 되었다.

또, 다카하시라는 키 작은 아이를 위해 교장 선생님은 운동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다카하시에게 유리하게 해 주었다. 그 결과 다카하시는 전 종목을 휩쓸어 운동회의 영웅이 됨과 동시에 그만큼 자신감을 얻었다. 뿐만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다카하시를 이겨야 된다는 승부욕에 불탔다.

몸이 불편하거나 발달지체의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려 할 때 학부모들의 저항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직도 비일비재한 우리네 현실은 그에 비추면 부끄럽고도 부끄럽다.

매일매일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재미있는 수업과 산책 등으로 ‘도모에’학교의 아이들은 매일 소풍가는 기분으로 학교를 갔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학교에도 학부모 일일 수업이라 하여 색다른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1940년대에 이런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교 가까운 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농부 아저씨를 일일 선생님으로 초빙하여 아이들에게 괭이로 땅을 일구는 법, 밭이랑을 만드는 법, 씨를 부리는 법, 비료를 주는 법 등을 실연해 보이면서 아이들에게 설명하게 하였다.

아이들은 농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서 ‘제 손으로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우며 그리고 기쁜 일’인지를 직접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고 그냥 농사꾼’ 이라는 농부 아저씨의 겸손에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농사에 있어서는 농부 아저씨가 선생님이고 빵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빵집 아저씨가 선생님’이라며 아이들 앞에서 바로 정정하여 주었다.

책의 말미에 지은이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의 ‘도모에’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근황을 소개해 주었는데 모두 그 옛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바야시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던 그 시절처럼 모두 행복한 삶을 살며 '가방끈’의 길고 짧음과는 상관없이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었다.

추억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이들이고, 그 ‘추억’이라는 것을 많이 먹고 자랄수록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비록 책을 통해서였지만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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