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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의 외적인 모습 이면에 신의 질서나 우주의 화합과 같은 진실이 숨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연에 초월적인 정신성을 투영하는 범신론적인 풍경화는 독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제작됩니다. 18세기 이후 독일은 고전주의 미학을 선도하였고 괴테나 쉴러와 같은 걸출한 낭만주의 문학가들을 배출하였지만 미술에서는 이렇다할 국제적인 조류를 만들어내지 못하였습니다. 대신 당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독일의 민족주의 정서와 결합한 종교성이 짙은 미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도6,7,8). 오토 룽게(Philipp Otto Runge, 1777-1810)의 <아침>(도6)은 당시 독일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다소 수수께끼 같은 종교화입니다. 종교적 순수함을 강조한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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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6 오토 룽게 <아침>, 1808년 |
캔바스에 유채, 10985.4 cm |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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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7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자작나무 숲의 성당> |
1809-10년, 캔바스에 유채, 베를린, 슐로스 칼로트부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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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8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승>, 1809-10년 |
캔바스에 유채, 110×171 cm, 베를린, 국립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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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에 있어서 독일의 음울한 풍토를 인상깊게 반영한 화가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입니다. 폐허가 된 고딕성당을 찾는 순례자들을 그린 <자작나무 숲의 성당>(도7)은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넘어서 우주적인 고독까지 느끼게 하는 신비스런 그림입니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이 드러나는데 <바닷가의 수도승>(도8)은 그러한 독일 낭만주의 미학을 매우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탁트인 검은 바닷가의 수도승은 마치 점처럼 표현되어 있어 자연의 불가사의 한 힘과 인간의 유한함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한한 자연에 대한 경이감, 비극적인 슬픔, 고립감은 낭만주의 시대의 미학인 '숭고미'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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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17세기 과학의 혁명이후 어느 때보다도 광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는데 터너는 특히, 색채는 빛과 어둠이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발현된다고 주장한 괴테의 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두움과 밝음, 서로 다른 색조들이 서로 부딪히며 녹아드는 형태를 통해 터너는 자연의 광폭함을 유감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터너의 풍경화는 <비, 증기, 속도>(도17)에서 보듯이 점차 형태를 무시하고 보이는 것의 인상 그 자체만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아갑니다. 그 효과는 모네의 인상주의(도18)와 흡사합니다. 이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색채추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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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7 터너 <비, 증기, 속도>, 1844년 |
캔바스에 유채, 90.8×121.9 cm, 런던, 국립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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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8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
캔바스에 유채, 48×63 cm |
파리 마즈몽탕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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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의 영역이 확장되어가던 영국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자연은 영웅적인 이야기를 위한 무대여야 한다는 고전주의 전통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고전주의식의 도덕적 윤리나 정치적인 관심이 점차 후퇴하면서 자연주의적인 경향의 독립된 풍경화가 점차 독자적인 장르로 부상하게 됩니다.
파리 교회의 퐁텐블로 숲 근처에서는 루소나 코로와 같은 화가들이 모여 자연을 벗삼아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이들을 바르비종 화가들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자연의 모습은 그들 작품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1796-1875)는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을 받았지만 자연의 풍경 그 자체를 더 중시하였습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도중에 그린 도19와 같은 풍경화를 보면 그가 고대의 유적이나 거장을 묘사하기보다는 솔직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더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님프들의 춤>(도21)처럼 고대 전원시를 소재로 한 신화적인 풍경을 주로 그렸지만 도20에서 보듯, 말년에 그린 소박한 풍경화의 풍부한 대기의 느낌과 분방하고 가벼운 터치는 훗날 시슬리나 피사로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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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9 코로 <로마 파르네제 정원풍경>, 1826년 |
캔바스에 유채, 25.1×40.6 cm, 워싱턴 D.C, 필립콜렉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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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0 코로 <망트 대성당> |
1865-69, 캔바스에 유채 |
렝스, 생 드니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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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1. 코로 <아침. 님프들의 춤>, 1850년 |
캔바스에 유채, 97.1×130 cm,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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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비종 화가들이 보여준 이러한 자연에 대한 감수성의 발견은 19세기 중반의 사실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현실이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 속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세계가 당당하게 펼쳐진 밀레의 농촌풍경화는 현실적인 시각이 반영된 새로운 풍경화였습니다. 사실 밀레(Jean-Fransois Millet, 1814-1875)의 풍경화는 너무나 많은 복제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어서 그림의 진면목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밀레의 농민그림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 목가적인 전원풍경으로 보이는가 하면, 혁명적인 노동자상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작가 자신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 기인한 결과였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컨스터블의 농촌풍경이나 밀레의 풍경화가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번창한 도회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인들의 향수를 반영한 것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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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2 밀레 <만종>, 1857-59년 |
캔바스에 유채, 55.5×66 cm,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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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3 밀레 <이삭줍기>, 1855-57년, 캔바스에 유채 |
83.5×110 cm,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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