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는 1520년경부터 1600년경까지, 즉 16세기 중·후반의 미술을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용어로 부릅니다. 이는 이탈리아어 Maniera 즉 '방식'이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특정한 '방식', '형식'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개인 화가가 자기의 '방식'에 빠져 창의성 없이 그 형식을 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하는데 이탈리아 16세기 중엽의 미술에 대해서도 그러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매너리즘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 등 소위 거장들의 미술이 절정에 달하자, 이후 미술가들은 그들의 '좋은 방식'(buon maniera)을 본 받아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방식이 오랫동안 유행하고, 라파엘로 그림을 모방한 판화들은 화가들의 화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화가들은 곧 자기 방식들을 만들어갔으며, 이전의 고전주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일탈과 변형의 미술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작품들을 봅시다.
암마나티(Bantolomeo Ammanati: 1511-1592)의 조각(도1)은 레다가 백조로 변한 제우스와 입을 맞추는 모습입니다. 주제는 다르지만 형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도2)과 똑같죠? 방식 즉 maniera를 따라한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미술은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아름다운 형식 자체가 미술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
 |
|
 |
 |
도1 바르톨로메오 암마니티<레다>, 대리석 |
|
|
|
| |
|
 |
 |
도2 미켈란젤로 <줄리아노의 무덤>부분 |
1526-33년, 대리석 |
피렌체, 산 로렌조, 사크레스티아 누오바 |
|
| | |
 |
|
 |
 | |
|
|
|
|
 |
 |
이 시대의 초상화를 한 점 봅시다. 브론지노(Agnolo Bronzino: 1503-72)가 그린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의 아들>(도9)을 이전의<모나리자>(9주 주제2 도11)나 티치아노가 그린 <벨라>(10주 주제1 도10) 등과 비교하면서 이 그림의 특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물의 얼굴은 마네킹 같이 차갑고, 부인이 입은 옷은 마치 의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듯이 옷의 특징 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마치 박제된 듯 고정되어서 주인공의 성격이나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우며 인물이 그림으로부터 소외된 듯이 느껴집니다.
|
 |
|
 |
 |
도9 아뇰로 브론지노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의 아들> |
1550년, 나무패널에 유채, 115×96cm |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
|
| |
|
 |
 |
도10 죠르지오 바자리 <코지모 1세의 신격화> |
1555-65년, 프레스코화, 피렌체, 베키오궁 천장화 |
|
|
| | |
 |
엘레오노라는 메디치가의 피렌체 공작 코지모 1세의 부인입니다. 16세기 중엽 피렌체 정치는 여러 면에서 이전 르네상스시대와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작은 곧 이 지방의 주인이었으며 정치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모든 것을 지배하여서 도10에서 보듯이 자신을 신격화 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에서의 피렌체는 오히려 약세였으니 이러한 신격화는 과시에 불과했습니다. <코지모 1세의 신격화>(도10)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주문한 미술들은 대부분 정치 선전의 도구였습니다. 사회는 경직되고, 이에 따라 미술은 겉과 속이 다른 괴리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매너리즘을 연구한 아놀드 하우저는 이 시대의 미술을 사회적인 정신분열의 증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
|
 |
 | |
|
 |
 |
매너리즘 현상은 이 시대의 베네치아와 스페인 미술에서도 두드러집니다. 틴토레토(Tintoretto(일명, Jacopo Robusti:본명): 1518-94)가 그린 <최후의 만찬>(도15)은 베네치아의 산 조르지오 마조레(San Giogio Maggiore) 교회에 걸려있는 거대한 캔버스화 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9주 주제2 도9)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틴토레토의 작품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식탁은 대각선으로 놓여있고, 예수와 사도들 보다 이들의 식사를 시중들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번잡스러움이 화면을 지배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임을 알아보게 하는 요소는 번쩍이는 두광의 빛입니다. 예수의 두광은 마치 자체가 빛을 발하는 힘이 있는 듯 하며, 제자들의 두광은 화면 왼쪽 위의 등불에서 발하는 빛의 역광인 듯 처리하였습니다. 빛의 원천이 뒤에 있기 때문에 인물들은 모두 어둡고, 따라서 표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인물의 역할보다는 빛이 화면의 효과를 좌우합니다. 어두운 부분은 거의 색채가 없는 듯 검은 색이며 밝은 부분은 섬광이 빛나듯 즉흥성이 번뜩이고, 등불의 빛이 번져 나가면서 형성하는 천사들의 환영은 초자연적인 신비감마저 조성합니다.
|
 |
|
 |
 |
도15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년, 캔버스에 유채, 363×568cm |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마죠레 |
|
|
| | |
 |
틴토레토는 잠시 티치아노의 제자였지만 일찍 헤어졌으며, 그들의 불화는 오래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면 티치아노의 전통이 역력하며, 자신 또한 티치아노의 색과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을 결합하겠다고 공언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16세기 화가들은 인체묘사력을 중요시한 피렌체 회화의 장점과 색채와 빛을 중요시한 베네치아 회화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융화시키고, 또 변형시킨 것입니다.
|
|
 |
 | |
 |
 |
스페인의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또한 당시 화가들의 이러한 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생으로 베네치아(1566-70 체류)와 로마(1570-76 체류)에서의 체류는 그의 화업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576년 로마에서 아마도 그림 주문을 계기로 스페인의 톨레도(Toledo)에 간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제작하면서 실로 획기적인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게쎄마니에서의 기도>(도16)와 <톨레도 풍경>(도17)을 보겠습니다. <게쎄마니에서의 기도>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예수가 공포와 번민에 싸여있는 순간의 기도입니다. 데리고 간 세 제자는 잠에 빠져 예수와 함께 깨어있지 못하였으며 이때 이미 유다는 로마인들에게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준 순간이었습니다. 엘 그레코는 기도하는 예수에게 붉은 옷을 입혀 크게 중앙에 놓고, 왼쪽엔 잠에 빠진 제자들, 오른쪽엔 로마 군인들을 희미하게 암시하였습니다. 길게 늘어트린 인물의 비례와 명암의 강한 대비, 마치 초점이 없는 듯 흐릿하고 어긋난 윤곽선들, 빠른 필체 등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매너리스트들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엘 그레코는 더욱 혁신적입니다. 그는 사물을 배치하는데 있어서 현실의 고정관념을 거의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천사의 관계는 공간적으로 매우 애매하며, 잠든 세 제자가 있는 곳은 마치 동굴 속 같기도 하고 공기의 막에 싸여있는 듯 비현실적입니다. 그리고 푸른 달무리와 밤하늘의 구름은 환상적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
 |
|
 |
 |
도16 엘 그레코 <게쎄마니에서의 기도>, 1588년경 |
캔버스에 유채, 104×117㎝, 오하이오, 톨레도, 톨레도 박물관 |
|
|
| | |
 |
|
 |
 | |
|
|
 |
 |
지금까지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매너리즘 미술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400-500년 전의 그림들이 이렇게 혁신적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 시대 미술들이 지닌 변형, 왜곡, 일탈의 특성들은 20세기 말 현대 미술의 특성이기도 하여서 이들을 낳은 현대 사회와 16세기 사회의 공통성을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매너리즘의 근본 원인은 16세기 사회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1000년이 넘게 확고한 틀을 유지해 온 카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정통성을 도전 받았으며, 지리상의 발견과 지동설의 학설은 유럽인들이 믿고 있었던 정신적 기반을 뿌리 채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이 믿던 중심은 해체되고, 이제 이 시대의 새로운 언어를 찾게 된 것입니다. 매너리즘은 그 소산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원동력으로 17세기 바로크미술이 시작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