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과학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공간을 묘사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이 시대 미술가들이 연구한 선 원근법은 인간이 내 앞에 펼쳐진 공간을 합리적으로 파악한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마사치오(Masaccio)가 그린<성 삼위일체>(도1) 벽화가 있습니다.
도1 마사치오 <성 삼위일체>
1425-28, 프레스코 벽화,667×317cm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도2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가 있는 벽면
 
 
 
교회의 평평한 벽에 그려진 벽화이지만 마치 우묵히 들어간 감실에 실제 인물들이 있는 것 같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양쪽의 마리아와 요한, 그 뒤에 하느님이 계시고 둘 사이엔 비둘기 모양의 성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봉헌한 주문자 부부는 마치 감실 밖에서 무릎꿇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그림이 실제 상황이라면 이 장면을 보는 시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천장무늬의 선들을 잇고 우리 눈 높이를 맞춰보면 우리의 시선은 바로 봉헌자가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의 가운데 부분에 있죠. 이렇게 하나의 소실점을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 원근법을 우리는 선 원근법이라고 부릅니다.
 
이 그림에서의 소실점은 바닥으로부터 153cm 높이에 위치 있는데 이는 키 162cm 정도의 사람이 그림 앞에 섰을 때 눈의 위치에 해당하죠. 마사치오가 벽화에 구현한 이 원근법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우리는 벽화의 감실 깊이까지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도3,도4).
도3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의 소실점
도4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 관람자 눈 위치와 감실 깊이 측정
 
르네상스 화가들은 이러한 원근법에 정말 매료되었습니다. 15세기 후반의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는 전쟁장면을 그리면서도 그의 실제 관심은 원근법이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창과 칼 마져도 바둑판 무늬로 배치해서 공간감을 나타내려 했습니다(도5). 그가 그린 한 사물의 구조도는 참으로 정확해서 현대의 컴퓨터가 측정한 사물 구조도와 거의 일치합니다(도6).
도5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전투>, 1450년대, 나무에 탬페라, 182×32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도5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전투>
1450년대, 나무에 탬페라, 182×32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15세기 후반엔 이러한 원근법이 더욱 연구되어서 그림의 세부에까지 적용되고, 따라서 이 공간에 배치된 인물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예수 책형>(도7) 그림을 봅시다. 건물밖에 있는 인물은 아주 크고 건물 안의 인물들은 작지요. 우리는 이것이 거리에 따른 차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정확한 원근법이 구사되었기 때문이죠. 바닥의 기하학적 무늬가 기울어진 각도는 바로 보는 이의 눈 높이에 있는 소실점에서 얻어진 수학적인 계산이었습니다(도8).
 
도7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예수책형>,
1455년경, 나무 패널에 유화와 탬페라
58.4×81.5cm, 우르비노, 마르케 국립미술관
 
 
 
이러한 배경에서 회화를 과학적인 이론으로 접근한 화가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최후의 만찬>을 봅시다(도9,10).
도9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프레스코 벽화
460×880cm,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찌아
 
 
도10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방의 모습
 
 
우리는 이 그림을 인쇄된 달력이나, 액자에 끼워놓은 인쇄물로 보기 때문에 실감하기 어렵지만 실제의 이 그림은 폭이 880cm에 달하는 아주 큰 벽화입니다. 수도원 식당의 작은 쪽 벽면을 꽉 채운 그림이죠. 만약 현장에서 이 벽화를 본다면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의도한 바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식당의 넓은 벽 위쪽을 가로지르는 실제 선은 그림 속의 창문 윗 선으로 이어집니다. 실제공간과 그림 속의 공간은 하나인 셈입니다. 식당에 있던 수도사들은 아마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선 원근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기 원근법을 구사하였습니다. 그의 그림 <성 안나와 마리아, 아기예수>(도11)를 보면 관람자와 가까이 있는 마리아의 팔이나 어깨부분은 붉은 색조의 선명한 명암을 보여주고 먼 산은 푸른 색조의 희미한 톤으로 그려졌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그의 저서 회화론에서 "가까이 있는 사물의 밝은 부분은 먼 곳의 밝은 부분보다 더 밝으며, 원경의 어두운 부분은 근경의 어두운 부분보다 덜 어둡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붉은 색조를 띄며 먼 곳에 있는 사물은 푸른 색조를 띤다. 이는 우리의 눈과 사물사이에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부드러운 톤에 감싸인 <성 안나와 마리아, 아기예수> 그림이 분명한 원근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공기 원근법을 적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도1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안나와 마리아, 아기 예수>
1510년, 나무패널에 유채,
168,5×130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지금까지 여러분은 르네상스의 원근법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한가지 여러분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원근법이 공간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작품의 비교라는 항목에 있는 '그 밖의 원근법'을 Click하시면 볼 수 있듯이 원근법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아래서 위로 보는 원근법', '왜곡된 원근법', 새가 바라보는 시각인 '조감도' 등의 방법들이지요. 또한 우리는 동양인이니까 동양에서의 공간묘사법도 알아야 하는데 '그들과 우리' 항목에 들어가면 자세히 볼 수 있듯이,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평원법, 고원법, 심원법등의 삼원법이나 걸어가면서 보는 파노라마식 관찰법도 사용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원근법이 이러한 많은 원근법과 다른 점은 바로 인간인 내가 정지한 상태에서 내 앞의 사물을 보았을 때의 공간을 과학적으로 묘사해 낸 점입니다. 르네상스 때 이 원근법이 고안된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르네상스는 神중심의 중세시대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인 세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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