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또는 사회적인 변화에 미술품을 적극 개입시키는 여건에서 피렌체(지도)의 미술가들은 할 일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구체적인 주문은 제약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기회이기도 하여서 미술가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창안함으로써 시대의 요구를 작품으로 구현시켰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전의 고딕식 건축과 완전히 다른 쾌적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내고, 마사치오는 명암법과 원근법을 구사함으로써 지오토의 관심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조각가 도나텔로는 현실감을 갖춘 고전적 균형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후반에 활동한 보티첼리는 그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신 플라톤적 이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이들 작가들을 중심으로 작품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1401년 세례당 북쪽문의 청동부조 공모에서 기베르티에게 패하였던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1418년 피렌체 대성당을 마무리하는 공모에 둥근 지붕(Dome, Cupola)의 설계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사관계자들은 시공의 단계에서 기베르티와 함께 공사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아프다고 핑계 대고 시공 설명회에 불참하고, 설명을 기베르티에게 떠 넘겼습니다. 예상대로 기베르티는 이 설계의 시공능력이 없음이 판명되었고, 브루넬레스키는 비로소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기베르티를 따 돌렸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피렌체 대성당의 둥근 지붕은 르네상스 건축의 시작을 예고합니다(도1). 고딕 성당의 뾰족한 지붕은 고대로마 방식의 둥근 지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고딕성당이 하늘을 찌르듯 솟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브루넬레스키의 도움은 마치 피렌체의 지붕처럼 도시를 감싸안고 있습니다. 도움의 공법 또한 벽돌을 2중으로 쌓아 지탱하게 하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도1 브루넬레스키 <페렌체 대성당의 도움>
1420-36년, 피렌체
 
 
도2 도1 도움의 구조
 
 
 
 
 

 

1421년에 시작한 산 로렌조성당은 외부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내부는 그가 지향한 고전적인 건축조형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고딕건축에서 본 교회내부는 아래부터 궁륭의 천장까지 벽기둥으로 이음으로써 긴장되고 압축된 공간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도3에서 보는 산 로렌조교회의 내부는 가는 원기둥을 아치로 연결하고 지붕을 평평하게 하는 바실리카 방식을 빌어 옴으로써 합리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도3 브루넬레스키 <산 로렌조>내부
1421-40년, 피렌체
 
 
 
 

그가 고대건축을 참고하여 이룩한 르네상스 방식은 단순하고 경쾌합니다. 인노첸티 병원 (Ospedale degli Innocent: 1419-24)의 회랑 방식을 무와삭 클로이스터의 로마네스크식 화랑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넓은 기둥사이와 높이, 그리고 2층의 흰 벽에 자리잡은 작은 창문의 비례를 보십시오. 아무 장식이 없는 듯 단순하지만 이들이 서로 어울려 이루는 비례의 조화는 참으로 경쾌합니다. 기둥과 기둥사이, 기둥과 벽 사이 그리고 바닥에서 주두 바로 아래까지의 길이를 일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정입방향체를 만들고, 이를 공간에서 반복시킴으로서 정돈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큰 아치 위에 작은 창문을 두어 율동감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도4,5).

 

도4 브루넬레스키 <인노첸티의 병원>회랑
1419-24년, 피렌체
 
 
도5 도4의 회랑내부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와 가까이 지내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도6)를 목조로 완성하고 브루넬레스키에게 보였는데, 이를 본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지 않고 농부를 매달았느냐고 하였답니다. 정확한 사실의 기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도나텔로가 보여주는 현실감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도6 도나텔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1412-13년, 나무, 높이168×173㎝
피렌체, 산타크로체
 
도7 도6의 얼굴부분
 
 
 

도나텔로는 <성 죠르지오>상에서 고전조각의 조형미를 구현하였습니다(도8,9). 그는 주제 2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콘트라 포스트 자세와 당당한 양감, 8등신의 비례 등 고전적인 이상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감실 배경의 무늬를 없애고, 상을 조금 작게 함으로써 조각상이 배경의 공간에서 여유있게 놓이도록 했습니다. 또한 조각상 아래의 부조(도9)에서는 오른쪽 건물과 왼쪽의 동굴을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관람자에게 가까운 부분은 높은 부조로, 관람자로부터 먼 부분은 아주 낮은 부조 수법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대리석의 두께는 5㎝정도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공간감을 자아내는 스키아챠토(Schiacciato)식을 창안해 내었습니다. 이러한 개발은 그가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치오와 함께 교류하면서 일구어낸 원근법에 대한 관심의 결과입니다.

 

도8 도나텔로 <성 죠르지오>
1416년경, 대리석, 높이214㎝
피렌체, 바르젤로 박물관
 
도9 도나텔로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하는 죠르지오> 부조, 도8의 부분, 높이39×120㎝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도나텔로는 로마에 오래 머물면서(1430-33) 이러한 고전적 이상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로마에서 돌아온 후 제작한 <성가대석 부조>(도10)에서 그는 로마 조각에서 모티브를 빌어 왔으나, 1410년대에 지향하던 고전적인 질서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분방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이 부조는 교회의 성가대석을 위한 것이지만 매우 이교적인 분위기 마저 띄고 있습니다.

 

도10 도나텔로 <성가대석>, 1439년, 대리석 348-570㎝
피렌체,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그의 나이 71세에 제작한 <막달라 마리아>(도11)는 <성 죠르지오>의 조형미와 정반대의 편에 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추하며, 흉찍하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빌어서 도나텔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처절한 기도와 나아가 인간의 참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농부와 같은 현실의 인물로 이해하던 도나텔로에게 조화로운 고전적 아름다움은 오히려 공허한 가상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도11 도나텔로 <막달라 마리아>
1457년경, 나무, 높이188㎝
피렌체,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마사치오

마사치오(Masaccio: 1401-27 또는 28년)는 15세기 전반에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가 이룬 업적을 회화에서 구현한 화가입니다. 당시엔 돌과 나무를 다루는 조각가나 건축가는 물감을 다루는 화가와 서로 다른 길드에 속했는데 화가인 마사치오는 화가들보다 오히려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와 더 친숙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로부터 기하학적인 원근법의 원리를 터득하고, 도나텔로로부터 단단한 양감의 가치를 공감한 것입니다.

 
 

 

1425년경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교회 벽면에 제작한 벽화 <성삼위일체>(도12)는 15세기 전반에 이룩한 원근법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다음 주의 원근법주제에서 상세하게 다룸) 십자가의 예수를 중심으로 하느님과 마리아와 요한, 그리고 주문자 부부를 삼각형으로 배치함으로서 삼위일체라는 주제와 화면 구도의 일치를 꾀하고 있습니다. 또한 2차원의 벽면에 3차원의 실제감을 나타내려 했던 그의 관심은 원근법뿐만 아니라 그리자이유기법과 연극적인 요소들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즉 화면 아래의 석관은 마치 실제 대리석같이 보이는데 이는 건축물과 조각 부분을 회색의 단색톤으로 처리함으로써 색채로 묘사된 인물과는 다른 건물의 실제 감을 주는 그리자이유기법 덕분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오른쪽, 화면의 왼쪽에 있는 마리아에게는 우리를 쳐다보면서 손은 예수를 가리키는 연극적인 제스춰를 적용함으로써 우리를 화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개자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도12 마사치오 <성 삼위일체>
1425-28년, 프레스코, 높이667×317㎝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마사치오는 27세 또는 28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르네상스 회화에서 빼놓지 못할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가 마솔리노(Masolino)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브랑카치 가족 예배실(Cappella Brancacci)의 벽화는 도13과 1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래 위 두 단으로 나누어 여러 장면으로 펼친 베드로 성인의 일생과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벽화는 마사치오와 마솔리노, 그리고 마사치오가 죽은 후 몇 년 지나서 재개된 필리피노 립피(Filippino Lippi)의 작업이 함께 있는데 여기서는 마사치오의 그림을 주로 보여주겠습니다.

도13 마사치오 <브랑카치 예배실> 왼쪽부분
1426-82년, 프레스코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도14 마사치오 <브랑카치 예배실> 오른쪽부분
1426-82년, 프레스코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왼쪽 벽의 윗단에 그려진 <세금을 바치는 예수>장면을 봅시다. 이 주제는 성경이야기 중에서 거의 그려지지 않은 주제인데 여기서는 아마도 당시 거론되던 교회의 세금납부여부와 관련되어 택해진 것 같습니다(도15).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세리가 와서 예수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성전세를 바칠 의무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유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이렇게 하여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낚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보아라. 그 속에 한 스타테르짜리 은전이 들어있을 터이니 그것을 꺼내서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 내어라" (마태복음 17장 26-27절)라고 명하고 베드로는 그렇게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도15 마사치오 <세금을 바치는 예수>, 1426-27년, 프레스코, 높이255×598㎝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의 브랑카치 예배실
 
 
도16 도15의 부분
 
 
 
마사치오는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물고기 입에서 은전을 꺼내(왼쪽) 세리에게 주는 (오른쪽)장면을 곁들이면서 중앙에 제자들로 둘러싸인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화면은 오른쪽에 대각선으로 놓인 건물로부터 산을 지나 점점 작아지는 나무로 이어져 후경으로 사라지는 공간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화면중앙엔 제자들이 원통형을 이루며 예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도를 볼 때마다 세잔느의 <대 목욕도>가 생각납니다. 많은 사람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화가의 선택인데 마사치오는 그것을 예수를 중심으로 한 원통형으로 본 것이죠. 19세기말 세잔느도 원뿔의 구도를 이루기 위해 인물들을 안쪽으로 기울게 배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옷을 입은 인체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마사치오는 옷 무늬는 물론 옷 주름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팔을 원통의 입체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세잔느 또한 사물을 원통과 구, 원뿔로 보았죠. 이러한 공통점은 아마도 사물의 잔가지를 버리고 근본을 취하려는 지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는 또한 성경의 주제를 인간의 깊은 감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벽화의 왼쪽 위에 그려진 마사치오의 <낙원추방>(도13,17)과 벽화의 오른쪽 위에 마솔리노가 그린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 먹는 <유혹>(도14,18)을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입니다. 마솔리노는 단순히 누드로 서있는 남녀를 그려 원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마사치오는 창피해하고 후회하는 아담과 이브를 통렬한 모습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생생한 인간의 감정을 지니면서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도17 마사치오 <낙원추방>
1426-27년, 프레스코, 높이208×88㎝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브랑카치 예배실
도18 마솔리노 <유혹>
1426-27년, 프레스코, 높이208×88㎝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브랑카치 예배실
 
 

보티첼리

르네상스가 고대의 재부흥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품은 여전히 기독교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제2에서 본바와 같이 세속적인 목적의 주문이라 해도 사회조직 자체가 기독교라는 틀에 흡수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주제를 빌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 신화를 다룬 아름다운 그림들은 대부분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들도 물론 주문에 의한 제작이었지만 공공장소에 과시의 목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보다 개인별장에 걸기 위한 소수 엘리트층의 수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잘 알려진 보티첼리의 <봄>은 아마도 로렌조 디 메디치(Lorenzo di Medici)가 사촌 피에르 프란체스코 디 메디치(Pierfrancesco di Medici)의 결혼과 관계된 주문이라고 추측되며 피렌체 근교의 메디치 별장에 걸려있습니다.

 

도19 보티첼리 <봄>, 1477-78년, 패널, 315×20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오른쪽엔 제피르(Zephyr)가 클로리(Clori)님프를 쫓아오고 있지만 그녀는 벌써 다산과 꽃의 여신인 플로라로 변해 있습니다. 제일 외쪽엔 신(神)들의 안내인인 머큐리(mercury)가 그의 지팡이로 구름을 가리키고 있고, 그 옆의 세 여신에겐 큐피드가 사랑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사랑의 신(神) 비너스가 마치 그들을 관장하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을 마사치오 그림과 비교해 보아도 흥미롭습니다. 보티첼리는 이미 원근법과 명암법을 마스터한 대가였지만 그는 이 그림에 그 방법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배경의 검은 숲은 평평하고, 밝은 인물상들은 환영처럼 떠오릅니다. 인물의 묘사에서도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실제감이 없으며 섬세한 선들과 작은 장식들, 바닥에 뿌려진 작은 꽃들은 그림을 아름다움 자체로만 느끼게 합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아마도 서양미술사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일 것입니다(도20). 조개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바람의 신이 보내주는 장미꽃의 미풍을 받으며 해안에 이르고, 님프는 망토를 준비하여 그녀에게 입히려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흰 녹색과 하늘의 연한 푸른색, 그리고 비너스의 살색과 자주빛 망토가 이루어 내는 색조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아름다움의 전형이라고 여겨지는 비너스의 인체는 아주 비현실적입니다. 인체는 거의 9등신이며, 너무 긴 목과 늘어진 어깨, 그리고 창백한 살색과 표정은 슬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가 그려낸 아름다움은 신비합니다.

 

도20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년경, 패널에 템페라,
172.5×278.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보티첼리가 신화의 주제를 그릴 때는 물론 이야기를 화가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이 주제의 아이디어는 그림의 주문자인 메디치家와 그들이 후원하던 인문학자들에게서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그들 그룹에서는 플라토니즘(Platonism)의 기독교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신플라토니즘(Neo-Platonism)이 유행하였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마리아의 신화적 해석이라고도 보여집니다. 보티첼리가 보여주는 현실감이 없는 듯한 아름다움은 메디치家를 중심으로 부흥하였던 엘리트층의 이상주의가 맞이하게 될 앞날을 예고하는 듯 합니다.

 
 

 

1492년 로렌조 디 메디치가 죽자 94년엔 프랑스가 피렌체를 침공하고, 이듬해 메디치家는 추방됩니다. 메디치家의 전횡과 사치를 비방하던 다소 광신적인 수도사인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는 사회개혁을 부르짖고, 비록 내부적인 문제는 많더라도 겉으로는 평온했던 피렌체는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사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지고 맙니다. 사보나롤라를 추종하였던 보티첼리는 직접적인 정치주제를 그림으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기 작품들에서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절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501년에 그려진 <신비한 탄생>(도21)은 그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주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이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추측됩니다. 그림을 보면 여러분들도 이것이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일까 의아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르네상스 방식과는 너무나 다르니까요. 아래의 천사는 작고, 하늘의 천사는 커서 그림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쏟아질 것 같습니다. 인물들의 크기 또한 화면 중앙에 무릎꿇은 마리아는 너무 커서 처마에 닿으며, 아기 예수와 요셉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모두 작습니다. 중요인물을 크게 그리는 중세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껴안고 있는 천사들은 마치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도21 보티첼리 <신비한 탄생>
1500-01년, 캔버스에 템페라
108.5×7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천사들은 올리브 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목동과 동방박사들은 모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천사들은 그들이 들고있는 띠에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온정"(누가복음 2:14)을 외치며, 하늘의 천사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신부, 세상의 여왕" 마리아라고 강조합니다. 이 그림은 분명 종전에 그려지던 단순한 아기 탄생이 아닙니다. 마치 종말을 알리는 요한 계시록의 환상 같습니다. 그림의 맨 위 부분에 그리스어로 쓰인 알기 어려운 글은 이 그림이 그려진 1500년을 세상의 종말이라고 말하려는 듯 합니다.

피렌체의 많은 미술가들이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사물을 그리고 있을 때 보티첼리는 선과 색채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말 혼란의 시대엔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려는 듯 중세적인 방법으로 신비함을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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