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우리는 문화가 발달한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부흥한 예술을 높이 평가하면서 비롯된 것입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용어는, ‘다시re’, ‘태어나다naissance’라는 뜻입니다. 중세에 죽었던 문화가 15세기에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를 내포한 이 명칭에서 우리는 15세기 문화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의 원형은 그리스·로마의 고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학문을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이라 하였으니 고전을 통하여 신(神) 중심의 중세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지향하고자 함입니다. 이 시대는 또한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결과로 지리상의 발견이나 지동설을 밝힌 시대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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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피렌체의 공식적인 정치와 경제는 일종의 동업자 조합인 모직상 길드, 면직공업자 길드, 갑옷제조업자 길드, 건축가와 조각가 길드 등 길드의 대표자들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이 성인들은 바로 길드의 수호성인으로, 예를 들면 원래 세리였던 마태오는 은행가 길드의 수호성인이며, 낙타털을 입고 다녔던 세례요한은 모직상 길드의 수호성인이고, 용을 창으로 찔러 공주를 구한 죠르지오는 갑옷제조업자의 수호성인이었고, 이교의 상 제작을 거부하였던 기독교 초기의 순교자 4명은 건축가와 조각가의 수호성인이었습니다. 이들 성인은 종교적인 기능보다 피렌체 사회의 정치, 경제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길드는 거의 공공장소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놓고, 이의 제작비를 부담함으로써 자신들의 조합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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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5 난니 디 방코, <네 성인> |
돌과 나무를 다루는 건축가와 |
조각가 길드의 수호성인, 1411-13년경, |
대리석, 피렌체, 오르산미켈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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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6 도나텔로, <성 죠르지오> |
갑옷제조업자 길드의 수호성인 |
1415년경, 대리석 |
피렌체, 오르산미켈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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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7 도5의 아래 기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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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8 도6의 아래 기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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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원래 피렌체 대성당에 놓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어느 조각가도 감당하지 못하던 높이 410cm의 거대한 조각이 당시 스물 여섯 살의 미켈란젤로에게 맡겨지자 이의 완성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1504년 작품이 완성되자 이 작품의 위치를 다시 정할 위원회가 소집되었고 이 자리에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안토니오 다 상갈로(Antonio da Sangalo)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
"나는 코지모가 제안한 것처럼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볼 수 있는 대성당의 코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공공적인 상이고 대리석은 기후에 약하기 때문에 … 가장 좋은 자리는 시뇨리아 회랑 중앙이라고 생각한다. 중앙 아치 밑에 놓으면 그 주변을 둘러 볼 수도 있고 … 마치 작은 채플처럼 뒤가 어두운 감실처럼 되어서 좋다. 만약 외부에 내놓으면 쉽게 상할 것이니, 지붕이 있는 곳이 더 좋다." | |
조각가인 상갈로는 공공 장소이면서도 미술품으로 더 어울리는 곳, 더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한 것입니다(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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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9 <다비드>를 시뇨리아 회랑에 놓았을 경우의 가상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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