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원래 회화는 역사적 사건의 기록에 의의가 있었던 듯합니다.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회화는(도1) 남자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여러 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헬멧과 방패를 든 사람이 토가를 입고 창을 든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 등으로 보아 실제 있었던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회화는 매우 드물며 로마 회화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환영적 기법의 회화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도1 <역사주제의 그림>
기뭔전 3세기 또는 2세기 후반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의 무덤 출토, 높이 87 cm
로마 팔레초 데이 콘세르바토리
 
 

고전기와 헬레니즘 시기에 발달하였던 그리스 회화의 원작은 거의 소실되는데 반해, 로마에서 수용한 회화의 현상은 남아있는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원 후 화산 폭발로 도시 대부분이 화산재로 뒤덮였던 폼페이는 건축과 회화의 생생한 현장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폼페이의 회화 양식은 4단계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제 1 양식

우선 도의 그림부터 봅시다. 그림이 어디 있는지 찾게 되죠? 돌을 쌓은 듯한 벽이 바로 그림입니다. 그림이 벗겨진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벽을 쌓은 후 회벽을 칠하여서 마치 대리석 벽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실내장식의 벽화입니다. 도을 자세히 보면 아랫단과 윗단 사이는 석고를 도톰히 하여 더 튀어나와 보이게 하는 스투코(stucco)방식도 그림과 함께 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리석 같이 보이게 하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마치 속임을 당한 듯 실망스럽겠지만 이러한 방식은 지금의 우리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니어판에 얇은 원목이나, 원목 무늬의 비닐을 붙이는 것과 같은 수법 이지요. '석재 양식'(mason style)이라고 부르는 이런 그림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지중해 전역에 사용되었던 방식으로 폼페이의 제 1양식은 이의 이탈리아식 버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2 <살루트의 집> 폼페이 Ⅵ 2,4
기원전 2세기 말 또는 1세기 초
 
 
도3 폼페이 Ⅵ 2,4
기원전 2세기 또는 1세기 초
 
 
 
 

제 2 양식

기원전 1세기초에서 말 사이에 유행하였던 제 2 양식은 한층 더 발달된 눈속임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그 초기 형태는 로마의 파라티네 언덕에서 발굴된 일명 <그리핀의 집>(도4.5) 벽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다양한 색의 돌을 맞추어 벽면 무늬를 만들고 그 양쪽엔 산호무늬 대리석을 붙인 것 같죠? 도5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 그려져서 발코니와 기둥, 그리고 천장 가까이의 석가래까지, 즉 건축적 요소들까지 프레스코로 그림으로써 벽면이 입체감 있게 느껴지지게 됩니다. 제1 양식과는 달리 제2 양식에서는 스투코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회화 기법만을 사용해서 깊이감과 양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도4 <그라핀의 집, 네 번째 방>
기원전 1세기 1/4분기
로마, 팔라티네 안티쿼리움
 
도5 도4의 부분
 
 
 
 

제 2 양식의 가장 발달된 모습은 나폴리 근처 보스코레알레(Boscoreale)지역의 한 별장, 침실 벽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천연색 도판이 없어서 아쉽지만 도6과 도7을 이어 보면서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도6 < P.파니우스 시니스터의 별장, 침실M의 벽화>
기원전 50-40년경, 1930년 발굴당시 모습
 
 
 
도7 도6의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진열된 현재 모습
 
 
 
 

작은 침실이지만 마치 창밖으로 정원과 이웃집들이 보이는 열린 공간으로 느껴지죠? 기둥과 감실 등으로 건축적인 틀을 설정하고 그 안의 면적을 마치 창문 너머의 광경이 보이는 것처럼 효과를 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서양문화에서의 그림의 역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즉 그림은 실제는 아니지만 마치 무엇처럼 보이게 하는 환영(illusion)의 효과를 나타내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도8 도6,7의 부분
 
 
 
 
 

제 3 양식

이렇게 실내를 꾸미는 벽화는 그 장식적인 기능에 걸 맞는 양식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폼페이의 일명 '베티의 집' 벽화(도9)를 보면 기둥사이에 펼쳐진 창 너머의 그림이라는 요소를 이어 받고 있지만 기둥이 너무 가늘어서 실제 건물같이 느껴지지 않으며 기둥 사이의 그림도 창 밖의 풍경이기보다는 그림이 걸려있는 듯한 구성입니다.

 

도9 <베티의 집> 폼페이 Ⅵ15,Ⅰ
기원 후 62년경
 
 
 
도10 <뱀을 죽이는 어린 헤라클레스> (도9)의 가운데 부분
 
 
 
 

도11,12,13,14는 폼페이의 일명 M. 루크레티우스 프론토의 집 벽화와 부분들입니다. 선명한 붉은 색이나 까만 바탕에 잔무늬의 장식을 두르고 그 가운데 그리스 신화 이야기 그림을 걸어 놓은 듯한 장식벽화가 집안 전체에 그려져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로마 귀족들의 화려한 삶과 이 많은 벽화의 수요에 동분서주했을 화가들의 삶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도11 폼페이의 M.루크레티우스 프론토의 집 벽화
기원후 40-50년
 
 
 
도12 도11의 남쪽 벽 부분
 
 
 
도.13 <비너스에게 구애하는 마르스>
도11의 안쪽 벽 가운데 부분
 
 
도14 <별장 풍경> 도11의 안쪽 벽 왼쪽 부분
 
 
 
 
 
 

제 4양식

4양식은 1, 2, 3양식과 같이 그렇게 분명히 구분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2, 3양식이 절충되고, 이와는 매우 다른 장식적인 양식들이 함께 사용되기 때문입니다(도15). 이들이 천장과 벽을 이어가며 만들어 내는 기하학적인 연결은 마치 '벽지패턴'같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도16).

 

도15 <베티의 집 중 익시온의 방>
기원후 62년
 
 
도16 <베티의 집 중, 동쪽벽>
기원후 62년 이후
 
 
 
 

이외에도 로마벽화에서는 일루젼 기능을 하면서도 그리스 방식과는 다른 회화방식도 형성되었습니다. 그림이 신비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폼페이의 <신비의 집>벽화에서는 한방의 네 벽면에 거의 등신대의 인물들이 마치 연극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도17, 18, 19, 20). 우리가 도10이나 13에서 본 인물들은 근경, 중경, 원경으로 공간감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신비의 집>인물들은 평면적인 배경에 거의 근경의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야기 서술을 강조하는 로마적인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인물 중에 실레누스형의 남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바카스 신화와 관계된 이야기라고 짐작되지만 분명하지는 않으며 특정한 의식을 행하는 장면인 듯 합니다.

 

도17 폼페이의 <신비의 집> 북, 동쪽 벽화,
인물 그림 높이 162cm, 기원전 60-50년경
 
 
 
도18 도17의 부분
 
 
 
도19 도17의 부분
 
 
 
도20 도19의 부분
 
 
 
 
 

환영기법은 그리스에서 비롯되었지만 로마에서는 이를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인(?)인 리비아의 별장 지하에는 정원만을 그린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정원의 담장이나 일루젼적인 방법은 앞서 살핀 제2 양식과 연관지을 수 있으나 건축적 기능의 기둥은 모퉁이에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미풍에 흩날리는 나무들은 향기 마저 느껴질 듯 감미롭습니다. 아마도 여름철을 위한 시원한 지하 식당인 듯 한데 아마 이 곳에 앉아 있으면 지하이면서도 사방이 정원으로 둘러싸여서 시야가 탁 트인 듯 느껴질 것입니다.

 

도21 <리비아의 별장 정원그림>
높이 2m, 기원전 20년경
로마, 테르메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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