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부족미술이라 할 수 있는 원시미술로는 크게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 이전의 중남미 미술과 북미의 인디안 미술 등이 있습니다.
아프리카미술
현재 52개의 국가로 형성된 아프리카는 사실은 그 지형적 다양성 못지 않게 수 백 여 개의 다른 인종, 언어 문화적인 집단들로 이루어진 부족사회의 모습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족미술이 그렇듯이 아프리카 미술에는 고급미술과 응용, 혹은 공예와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시각미술을 지칭하는 'art' 즉 '미술'이라는 개념을 대부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미술은 사후세계에 대한 염원과 통치자에게 신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에서 기원한 문화적인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기 아프리카 조각(도16, 17)은 영원한 느낌을 주는 양식화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도16의 수염을 기른 남자의 두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조상(2주 두 번째 주제 참조)과 그 인상이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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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6 <턱수염이 있는 남자> |
기원전 500년경, 테라코타 |
20×14.5×8.5 cm, 튜니지아, 바르도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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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7 <여인상> 나이지리아, 노크문명 |
대략 기원전 500년-기원 400년, 테라코타 |
볼티모어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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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12세기, 나이지리아 서쪽지역인 이페(Ife)에서는 사실적인 표정과 모델링이 돋보이는 자연주의적인 양식이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도18, 19). 이페에서 출토의 통치자상(도18)은 얼굴이 신체보다 커 비례상의 어색함은 남아 있으나 인물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례상 머리가 커진 것은 솜씨의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머리를 지혜가 머무르는 곳으로 중시하는 토속신앙에 따라 통치자의 이상화시키는 한 방편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강렬한 눈빛까지도 포착한 도19의 청년의 두상은 그 다부진 표정에 있어서나 근육의 해부학적인 묘사에 있어서 뛰어난 자연주의 초상의 예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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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8 <왕의 초상> 나이지리아 이페 출토 |
, 11-12세기 |
아연합금, 높이 약 183 cm 이페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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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9 <왕의 초상> |
이페 출토, 황동, 13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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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0 제단, 나이지리아, 베닌 |
17-18세기, 청동, 높이 약 45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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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1 여왕의 두상, 상아 |
나이지니아 베닌, 16세기 중반 |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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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상아해안이라 알려진 서부의 해안을 따라 문명과 교류가 활발하였고, 13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이 곳에서는 베닌(Benin)이라는 도시국가가 번성하였습니다. 15세기 포르투칼과 무역을 하기도 하였던 이 도시국가는 신전에 앉은 통치자를 묘사한 개인용 제단(도20)이나 상아로 만든 인상적인 왕의 모후의 조각상(도21)에서 보듯 상당히 정교한 청동조각과 궁정미술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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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의 식민지가 된 이후의 아프리카의 미술
19세기까지 유럽과 관계가 활발하였던 서부해안 지역의 아프리카 많은 지역은 이슬람이나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면서 토착의 신앙과 문화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이교의 우상숭배의 증거로 혹은, 개인이나 상인들에 의해 민예품으로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 미술품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많은 컬렉션들이 생겨났습니다. 이것들은 현재 아프리카 미술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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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 이전의 아메리카 미술
1492년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중남미에서는 현재의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 등을 중심으로 기원전 2세기이후 부터 화려하고 강력한 문명이 꽃피었습니다.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하여 정교한 달력을 만들 줄 알았으며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였던 마야문명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도22, 23, 24). 도23과 같이 토템신앙을 바탕으로 장식적인 문양이 두드러진 거석들이 고원도시의 광장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굴로 알려지기 시작한 서부 멕시코 일대의 기원 7세기 경의 테오티후아칸 유적에서는 건축물을 뒤덮은 다양한 타일장식에서 보듯 도자기 공예에 있어서 뛰어난 솜씨가 발휘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도25, 26). 현재 페루에서 발견되는 사람의 얼굴모양을 한 부장용 용기(도27) 역시 사실성과 높은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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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2 피라미드 성전, 과테말라 |
마야문명, |
기원후 700년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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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3 <통치자상> |
온두라스, 코판 계곡 |
높이 약 357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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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4 온두라스 |
코판 계곡, 마야의 대성전 상상복원도 |
하버드 대학 피바디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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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의 상륙을 역사적인 기점으로 삼는 이유는 현재 신대륙의 문화를 이 지역의 토착문명과는 그 뿌리를 달리하는 유럽문명의 확장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중남미의 문명은 콜럼부스 이후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으며, 다만 그 미술이 토착민들에 의해 공예적인 방식으 로 전승되고 있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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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서 '원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변모과정 역시 서구의 식민지 확장의 역사와 같이 하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현대미술의 형성기에 고갱, 마티스, 블라맹크, 드렝, 피카소에 이르는 여러 미술가들과 개인 콜렉터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원시주의, 프리미티비즘은 부족의 실재 미술이기보다는 서구 모더니즘의 한 양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문명의 외곽에 있는 이러한 원시미술은 먼저 앞 시간에 보았던 선사시대의 미술이 그러하였던 것 같이, 사회 공동체 내에서의 시각이미지의 본래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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