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너, 왜 그렇게 연기했어?

B  그냥요..

A  ???

 

A는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안되니까요.

B는 대답할 게 없습니다. '그냥'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이외의 답은 스스로도 알수 없으니까요. 스스로도 노력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자기도 잘 모릅니다.

그냥 몸이 시키는데로 했으니까, 뇌는 몸이 시키는데로 신경들에 전달했을 뿐입니다.

예전에 인기 드라마 '대장금'의 꼬마 장금이의 대답이 생각나네요^^

 

책을 만들면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책이 잘 나갈까? 무슨 내용이 공감이 될까? 그럴려면 어떻게 만들어야하지?

제목은? 장정은? 편집은? 마케팅은? 어느 독자층에 호소해야 하나?

책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담당자들은 그 모든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모든 질문에 명확하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고 봅니다.

대부분은 구체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대답을 내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죠. 거기까지가 한계인 겁니다.

사실 모든 학문이 답을 계량화하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사람이 숫자만 보면 알 수 있게.

현재로써는 불가능합니다. 미래의 어느 날은... 가능할 수도.

그런데 그 미래의 어느 날에도 질문들이 생겨날겁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어쨌든.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의 차이가 있든없든 한계가 존재하죠.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싶어하는 것은 그 한계 밖에 있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그것은 흔한 말로 '감'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것이 순수 우리말 '그냥'입니다.

 

왜 네시간의 책은 그러냐?(칭찬의 말로 ㅋㅋ) 물으시면,

저는 이렇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요"^^

무책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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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 - [건축학개론]에 담긴 나를 위한 공간의 재발견
구승회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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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책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건축학개론>이 책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런 부류의 책인줄 알았거든요.

'기억의 공간'에 방점을 찍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책으로 만든 책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자의 직업자체가 다르니까요.

영화 속 한가인(서연)의 집이 저자이신 구승회 님의 작품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죠, 이 책은.

그래서 특이하고.

전반적으로 영화를 건축개념에서 살짝 훑는 것은 그렇다치고,

중반이후부터는 건축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ex. 골목, 대분, 계단, 기둥 등등

영화이야기가 '주'도 아니고 '다'도 아니라는 점이 또한 특이했습니다.

특히 저는,

후반부의 인터뷰와 추천글이 재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건축가들의 일면을 살짝이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구요,

또 개인적으로 집이나 사무실을 짓고 싶은 사람으로써,

공간에 대한 이해를 역시 살짝이나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좋았습니다.(그럴려면 우리 책도 잘 나가야할 텐데...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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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딱히 싫어할 이유도 없지요^^)

그냥 제 생각에 출간되어지는 많은 책읽기 책들이

독후감이거나 요약본의 형태 느낌도 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인터넷 서점의 리뷰란도 일정 형식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어쨌든 전적으로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역시 저의 경우는 책읽기 책을 읽고 나면

안에 소개된 책을 찾아서 읽고 싶어지지 않거든요.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심한 경우는 그 책에 소개된 책은 목록에서 제외하기도 합니다.

책읽기 책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 책 <책읽기 좋은 날>은 약간 다릅니다.

소개되는 책의 내용이나 문장인용이 있긴 하지만

양이 다른 책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이죠.

나머지 분량만큼은 저자의 이야깁니다. 물론 소개된 책과 관련된 저자이야기죠.

매력적이지 않나요? ㅎㅎ 게다가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책 무척 좋아합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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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 영원불변한 '나'는 없다
브루스 후드 지음, 장호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또 한 살을 먹었네요.

배도 안 부른데...

그래서인가 요즘은 깜짝깜짝 놀랄일들이 많습니다.

예전같으면 그냥 무덤덤했을 텐데말이죠.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관계로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보면

반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냥 믿어라는 식의...)

우리 교회가 좋아서인지 목사님이 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키워드라든가, 단어를 분석하는 등의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전에 읽었던 책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제가 느꼈던 것과는 다르게

성경(말씀)을 철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또는 이미 굉장히 깊게 분석, 해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오히려 철학을 압도하는 수준같은..)

제 기준에서는 굉장히 놀라웠습니다.(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했거든요. 저는)

 

과학이 철학을 짓눌러버린 시대가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서양의 영웅 칸트가  과학을 '흡수'통합하는데 성공한 거 같습니다.(전 잘 모릅니다)

또다시 그런데, 이 책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은

철학에 반역을 꾀합니다.

철학에 가장핵심 키워드라고 생각되는 '자아'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거죠.

증명의 근거는 뇌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하는 발달심리학입니다.

자아는 없지만, 계속 있다고 착각하며 그냥 살아라가 결론입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이죠.

철학의 입장에서 자존심이 구겨지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의 시대는 끝났는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전 잘 모릅니다)

그냥 제 생각에는 종교철학이든, 인문철학이든, 과학이든,

서로 공생공존, 티격태격, 서로 밀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또한 삶의 '재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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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눈물 3>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넷북으로요^^;;

 

1. 어린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참...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생각납니다.

스웨덴의 학교폭력방지에 관한 CF.

무표정의 사람들이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그 눈들이 자꾸 생각나네요.

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부모가, 친구가, 선생님이, 학교가, 사회가 그렇게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인다는거.

자칫 사회의 구경꾼들의 시선과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눈은 아니었습니다. 보는 제가 뜨끔할 만큼의 강한 압박이 느껴지는 시선.

그런 시선은 '구경'이 아니고, '관심'이겠지요.

어린 딸과 우리의 아들딸들을 위해 어른들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곱씹어봐야겠습니다.

 

2. 두 가정이 제 기억속에 있습니다.

미국의 한 가정, 우리나라의 한 가정.

공통점은 자식을 잃었다는 것,

아이를 잃고 아버지와 엄마의 길이 나뉘었다는 것.

두 가정의 아버지는 사회를 등지는 삶을 선택하고 아직도 괴로워 합니다.

두 가정의 엄마는 사회속으로 더 들어갑니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다라는 굳은 의지의 산물이죠.

<교사, 가르고 치다>에서 나오는 '절망속에서 핀 희망의 꽃'이랄까요.

사회의 어머니들은 저리 훌륭한데 아버지들은 '왜 저리 나약할까'라는 물음은 의미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의지의 실현을 위해 '어머니들이 무엇을 선택했나'입니다.

학교폭력을 위해 두 분 모두 정말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냉철하게 판단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죠.

'열정'이라는 단어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은 상황인 거 같습니다.

오히려 '절박'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 분들의 '절박한 열정'에 진심으로 경의와 기도를 보내드립니다.

 

근데.. 저의 '절박한 열정'은 뭘까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이제서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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