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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ㅣ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평점 :
시인 송경동이 꾸는 꿈이 무엇일까.
p.204 민주주의의 한 시대가 저물고 더 극악한 생존경쟁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자본주의가 그 생명을 다하고, 더 평화롭고 평등하며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새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믿을 수 없는가. 투기 자본의 세계화가 아닌 평등. 평화의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그런 복된 세계화를 위해 우리 연대하자고 우리의 손을 맞잡으면 안 되는가.
어쩌다가 세상이 여기까지 왔을까. 이 당연한 꿈을 말하는 지은이의 목소리는 매끄럽지 못하다. 때로는 분노에 치를 떨고, 때로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미친듯이 고함을 질러대도, 그래도 그는 꿈을 노래하고 연대를 부르짖고 희망을 얘기한다. 핏발 서린 그의 시편들은 매우 자극적이고 선동적이고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는 차라리 피와 눈물로 쓰여진 저 꿈쩍않는 자본주의 세계를 향한 전사의 울부짖음이다.
자본주의를 추방하지 않고
산업재해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면 이렇게 간단한데 그것이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나와 우리가 진정으로 겪고 있는 가장 엄중한 산재는 이것이 아닐까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를 꿈꾸지 못하는
이 가난한 마음들, 병든 마음들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에서
가난하고 병든 마음들...내가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럽고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내마음이 가난하고 병들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꼭 읽어보리라고 생각해왔고 이번 알라딘 서평단 서평도서로 선정되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지만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기 보다는 괴롭고 부끄러웠다. 나는 한 번도 목청 높여 저 철옹성 같은 자본주의를 향해 소리질러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음악의 원로 격'인 이정선 씨나 강근식 끼 같은 분들이 콜트-콜텍의 자본의 놀음에서 놓여나길 바라며 다음과 같은 부탁의 말을 할 때, 얼마전에 만났던 어느 모텔 종업원이 떠올랐다.
이렇게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영호 사장 당신이 지금 할 일은 낙도 어린이 몇에게 기타 몇 대 보내주고 감질나게 언론 플레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다시 착취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다국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제공하는 것이오"(137쪽)
얼마전 홍콩에 갔다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묵고 있을때, 그곳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종업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하소연했던 일이 떠올랐다. 6년 동안 일을 했는데도 잠잘 공간조차 없다는 것, 휴일도 없이 하루종일 일을 하기에 유일한 휴식은 잠잘 때 뿐이여, 그렇게하고도 종종 주인한테 혼이 난다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근로조건'이었다.
어디 이곳뿐이랴. 나이가 들어 비정규직으로 떠도는 우리 오빠가 그렇고 무수한 오빠와 같은 사람들이 그럴 터이다.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p.100 ..보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재 아닌 것이 있는지. 모든 실업도 산재다. 모든 파탄 난 사랑의 많은 부분도 산재다. 가정불화의 대부분도 산재다. 독거노인도 거개가 산재다. 모든 교통사고의 주요인도 산재다. 모든 생태위기도 뿌리는 산재다. 이런 사회다 보니 가지지 못한 자들은 축복 어린 아이를 가지면서도 어떤 재난을 떠올린다. 삶 자체가 재난의 연속이다. 모두 무한정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의도된 결과다.
그렇다. 내 삶에도 그 근저에는 산재를 뿌리로 두고 있었다. 평생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언니나 요양원에 계신 엄마나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나 결국은 그 원인은 산재다. 누구라도 이 거대한 산재투성이의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리. 그러니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리. 생각해보면 참 험악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시인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어떤 큰 목소리 보다도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p.99...이렇게 산재를 겪다 보면 나뭇가지 하나도 함부로 부러뜨리고 싶지 않다. 그들에겐 인재가 산재일 터다. 식은땀을 흘리며 혼몽하던 밤들이 생각나 맑은 시냇물을 흩트려놓고는 미안해서 빨리 정화되기를 소망해본다. 못 하나를 박을 때도 정확히 가격해서 몇 번에 박아주고 싶다. 너무 많이 아프지 않게. 철근 하나도 한 곳만을 너무 많이 사용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못 하나 함부로 박지 못하고 나뭇가지 하나 함부로 부러뜨리지 못하는 이런 시인을 잡아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양심있는 자들은 이 책을, 이 시인의 호소를 끝까지 들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