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북펀드에서 <아틀라스 오브 뷰티>라는 책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미 출간된 모양이었다. 루마니아의 한 사진가가 10년 넘게 세계각국을 누비며 만난 50개국 여성 500명의 사진을 담았다는데, 미리보기로 살펴본 내용만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흑과 백, 선과 악, 정상과 병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굳이 강조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듯한데, 이 책을 일별하다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비례와 균형 같은 미학적 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쉽게 말해 예쁜 것이 예쁜 것이고, 못난 것은 못난 것이다. 있을 데에 있는 것이 아름답고, 비뚤어지거나 빗나간 것은 추악하다. 세상만사가 후천적이고 인위적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과도하게 늘린 목과 입술 같은 예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인지하지 않나 싶다. 


<아틀라스 오브 뷰티>에 수록된 사진 속 여자들만 해도 하나같이 미인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그 이목구비의 자연스러움이다. 크기와 형태와 색깔과 배열은 제각각이지만 얼굴의 형태와 맞물려 섬세하고도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원천일 것이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예전에 나왔던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의 전설적인 표지 사진이다. 발행인 한창기는 옛 그림 속 여성의 얼굴을 싣고 싶었다지만, 편집부에서는 복고라 오해받는 것을 우려해 "이목구비의 비례가 좋은" 젊은 여성의 얼굴 사진을 찍어 매호 표지에 실었다는 것이 편집장 설호정의 회고다.



>>> 그러나 '유명하지 않으면서 사진이 잘 받고, 샘이깊은물의 독자층에 걸맞은 지성을 갖춘 여성'을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얼굴에 칼 댄'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여기저기서 노골화한 잡지였던 만큼 성형의 의혹이 제기되기만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조차 않았으니 더더욱 지난한 과업이었다. 털어놓건대, 발행인을 비롯해 기자,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스쳐지나는 여자조차 무심히 보지 않는 버릇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설호정,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특집 한창기>, 89쪽) <<< 



쉽게 말해 요즘 식으로 길거리 캐스팅까지 불사하면서 모델을 찾아냈다는 이야기인데, 일설에는 잡지가 나올 때마다 편집부에 해당 모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기업이며 개인의 연락이 빗발쳤다고 한다. 나중에 한 신문에서 조사해 보니 일부는 상업 광고에도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일반인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샘이 깊은 물>의 표지 사진을 보면, <아틀라스 오브 뷰티>와 유사하게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갖춘 여자들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수십 년 전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지금 와서도 딱히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세월조차 뛰어넘는 비례와 균형 같은 미적 가치 덕분일 것이다..


물론 어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했다는 말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고 싶은 뜻은 결코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왜 이상하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들었기에 해 보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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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메리와 메리>라는 것이 있기에 뭔가 싶어 살펴보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모녀의 공동 전기였다. 이미 따로따로 전기가 간행된 적도 있었고, 심지어 어머니의 중편 소설 두 편과 딸의 중편 소설 한 편을 엮어 만든 <메리/마리아/마틸다>라는 번역서도 나온 적 있었으므로, 공동 전기도 충분히 나올 만해 보인다.


일단 엄마 쪽 전기로는 <세상을 뒤바꾼 열정>이라고 제법 두꺼운 책이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지금 다시 알라딘에서 "울스턴크래프트"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살펴보니 부제인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에서 띄어쓰기를 잘못해서였다. 즉 알라딘에서는 "울스턴 크래프트"로 검색해야 나온다.


딸 쪽으로는 비록 본격적인 평전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프랑켄슈타인>의 배경과 집필에 관한 책으로 <괴물의 탄생>이란 것이 나와 있기에 사다 놓았는데 역시나 절판이다. 예전에 읽은 만화 <메리 고드윈>도 함께 다시 살펴보고 버리려고 나란히 놓아 두었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는 공동 전기까지 읽고 나야만 처분이 가능하겠다.


<메리와 메리>의 도입부를 보면 엄마가 딸을 낳다 사망함으로써, 이후 딸이 평생 엄마의 그늘 아래에서 그 존재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듯한 서술이 등장한다. 이 전기에서도 그렇지만 남편/아빠인 윌리엄 고드윈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지금은 일반화된 모양이기도 하다.(이 사람 저서인 <최초의 아나키스트>도 역시나 절판이다).


그런데 고드윈이 바람직한 남편/아빠가 아니었다 해서 욕을 먹는다면,[*] 메리 모녀의 행적 역시 딱히 더 칭찬받을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양쪽 모두 유부남과 사귀고 사생아를 출산한 이력이 있으니, 제아무리 "사빠죄아"라 하더라도 이런 행적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사회 통념상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메리 셸리가 어렸을 때 고드윈을 찾아온 손님들은 저 유명한 메리의 딸 메리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는데, 그 묘사만 놓고 보면 마치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를 보고 감탄하던 사람들의 호들갑을 떠올리게 될 정도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딸도 엄마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셸리"라는 성은 훗날 딸 메리의 남편이 되는 유명한 시인에게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공동 전기에서 "셸리는..." 운운 하는 대목을 접할 때마다 살짝 생소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득 예전에 사다 놓은 트렐로니의 회고록 <셸리와 바이런과 저자에 관한 기록>을 꺼내 보니, 메리를 처음 봤을 때에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 윌리엄 고드윈의 아내인 (여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에 출산 도중 사망했는데, 이들 부부의 외동딸 메리는 시인 셸리와 결혼했다. 그리하여 내가 이야기하는 시기에 셸리 여사는 27세였다. 여류 작가로서 본인의 장점은 둘째 치고, 그토록 보기 드문 천재의 혈통만으로도 나로선 충분히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차분한 회색 눈이었다. 영국 여성의 평균 신장에는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매우 피부가 하얗고, 머리색이 옅었으며, 재치 있고, 사교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울적하기도 했다. 셸리와 마찬가지로 (비록 정도는 더 낮았지만) 그녀는 다양하고도 적절한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말들은 우리의 뛰어난 옛날 작가들의 저서에 정통한 데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어나 외국어는 쓰지 않았다. 우리말을 그렇게 구사하는 능력이 내게 더욱 놀라웠던 까닭은, 사교계의 귀부인들이 사용하는 빈약한 어휘들과 대조적인 까닭이었다. 귀부인들의 어휘라야 말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지거나 간주되는 온갖 표현에다가 어설프고도 진부한 관용구를 다수 곁들일 뿐이었으니까. <<<



영국의 군인인 에드워드 존 트렐로니는 셸리 부부며 바이런과 그리 오래 교류하진 않았지만, 익사한 셸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한 것은 물론이고 사망한 바이런의 시신을 확인한 등의 인연으로 두 시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을 남겨서 문학사에 덩달아 기록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메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증언이 제법 되는 듯하고...




[*]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편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닐까.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끝까지 감싸주는 모습만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그를 좋아해야 마땅할 것 같다. 심지어 장모의 비리에 대해서도 최대한 무마하려 노력했으니, 세상 모든 장모들은 물론이고 장인들(물론 의외로 일부일 수 있지만)이며 처가 식구들 역시 윤석열을 지지해야 옳을 것만 같은데, 왜 지지율은 항상 이렇게 낮은지...


[**] 엄마 메리의 저서는 <여권의 옹호>가 대표적이지만 <길 위의 편지>라는 여행기도 번역된 모양이다. 딸 메리의 소설은 <프랑켄슈타인> 외에도 <최후의 인간>이 번역되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의 효시로 여겨지는 작품이라는데 현재는 역시나 절판이다. 그 외에도 "수상쩍을 정도로 고딕에 진심인 출판사"인 고딕서가에서 나온 단편집에도 작품이 하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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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락의 에세이를 보니, 1970년대에 박정희가 외화 획득을 위해서 기생 관광을 활용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언급이 있다. 즉 화대를 1인당 60달러로 공식 책정하고, 관광 요정에 관대한 처우를 베풀었으며, 심지어 저축을 많이 한 기생들에게 퇴역식까지 열어주기도 하면서 성매매 산업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이때 최중락을 비롯한 경찰의 역할은 기생 관광의 질서 유지를 위해 여행사와 요정과 호텔 등의 관련자들이 화대 가운데 일부를 착취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의 관광 요정 11개소(교북동 풍림각, 종로 3가 대하와 청풍, 성북동 삼청각 등)에는 기생 수만 3000명에 달했다고 전한다.


급기야 기생의 친절 서비스와 위생 관리(성병 예방)를 위해서 현직 의사는 물론이고 <수사반장>의 주인공 최불암까지 동반해서 강연을 다닌 끝에, 책임자였던 최중락은 "관광 산업" 진흥 공로로 표창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광부와 간호사까지 수출할 만큼 가난했던 나라 시절의 서글픈 일화라고나 할까.


일본인의 한국 기생 관광은 실제로 과거에만 해도 종종 사회 문제로 지적된 바 있었다. 88년 올림픽 이전까지는 굳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자체가 드물었으니, 정부에서도 실상을 알면서도 묵인했을 법하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거사다.


그러다가 경제 상황이 나아지며 해외 여행이 쉬워지자, 이제는 한국인도 동남아시아 등지로 성매매 목적의 관광을 다녀오는 모양이니, 역사란 결국 반복되고 악행은 다시 모방되나 싶은 느낌도 없지 않다. 따지고 보면 가라유키상의 해외 원정 성매매로 외화를 벌어들였던 일본이야말로 기생 관광의 원조니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어느 후보의 과거 발언 중에 육이오 당시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이 제자들을 성 상납에 동원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아마도 모윤숙 등이 조직한 낙랑 클럽이라는 것을 가리켜 한 말인 듯한데, 관련자들은 어디까지나 품위 있는 사교 클럽이었다고 주장하여 증언이 엇갈린다.


다만 교양 있는 여대생을 모아서 건전한 의미의 접대에 집중했다 하더라도, 피차 청춘 남녀들인데다가 전쟁 중이라서 생활이 궁핍했음을 감안하면, 단순한 사교적 만남 이상의 깊은 관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빨간 마후라>와 <마부>에 나온 영화배우 윤인자의 사례가 딱 그러했다.


말년의 회고록 <나는 대한의 꽃이었다>에서 밝혔듯이, 윤인자는 피난지 부산에서 해군 제독 손원일의 소개로 미 해군 장교 마이클 J. 루시(Micheal J. Luosey, 1912-1998)를 만났다. 이후 그녀는 손 제독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루시와 계속 교제하면서 한국군에 유리하게끔 일종의 로비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손원일의 부인 홍은혜가 모윤숙과 함께 낙랑 클럽의 핵심이고, 윤-루시 커플이 손-홍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음으로 미루어, 윤인자의 활동 역시 넓게 보면 낙랑 클럽과 연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접대에 동원된 사람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은 미군의 애인, 또는 현지처 노릇을 했던 셈이다.


물론 윤인자의 사례 하나만 가지고 낙랑 클럽 전체를 위안부나 양공주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단순히 "사교"나 "외교"나 "로비"라는 단어만으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더 깊은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아울러 국가 차원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음을 아주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전시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자면, 지금 와서 그들의 활동을 "성 상납"이나 "몸 로비"라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러워진다. 훗날 박정희의 기생 관광 묵인 및 활용이 부도덕하나 부득이했던 외화 벌이 수단이었던 것처럼, 낙랑 클럽의 활동 역시 당시의 맥락에서 상황을 참작할 여지가 있지는 않을까?


윤인자의 "로비" 상대였던 루시 대령은 훗날 "한국 해군의 은인"으로 추앙되어 2017년에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놓였다. 반면 한때 이승만으로부터 "당신의 대한의 꽃"이라는 찬사를 얻었던 윤인자에 대해서는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루시가 은인이라고 치면, 윤인자는 뭐였다고 평가해야 맞을까?


이 대목에서 문득 (모파상의 "비곗덩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랍인 조르바>의 여관 주인 오르탕스가 생각난다. 프랑스인인 그녀는 젊은 시절 크레타를 위협하던 4개국 전함의 함장들과 번갈아 잠자리를 같이 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에게 피해가 없도록 나름의 로비 활동을 벌였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에게 말했어요. 그가 제일 용기가 있었거든요. 그의 수염을 만지면서 말했죠. '카나바로.' 그게 그의 이름이었죠. '나의 사랑하는 카나바로, 쾅! 쾅! 하지 말아요. 제발 쾅쾅! 하지 마세요.' 


내가 몇 번이나 크레타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줬는지 아세요? 얼마나 많은 대포들이 준비되었고, 그때마다 내가 '째독' 수염을 붙잡고 쾅쾅 하지 못하게 한 줄이나 아세요? 하지만 누가 내게 고마워나 하나요? 당신들은 훈장을 본 적이 있겠지만, 나는 본 적도..."


마담 오르탕스는 사람들의 배은망덕에 화가 나서 부드럽고 주름이 많은 조그만 주먹으로 식탁을 때렸다. 


(유재원 번역본, 78-79쪽)




크레타 출신도 아닌 외국인이 이웃들을 생각해 호의를 베푼 것은 갸륵한 일이었지만, 소설에서는 외국 전함이 떠난 뒤에 섬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가벼운 여자 취급을 받고 멸시당하며 살아갔다고 묘사된다. 어쩐지 그녀의 삶이야말로 앞에서 말한 여러 "그녀들"의 삶의 축소판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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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전집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이번에는 문득 레닌 전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아고라 출판사에서 2017년부터 간행하기 시작해서 총120권으로 간행할 예정이라고 선전하기에, 과연 그게 가능할까, 차라리 전기가오리의 스탠퍼드 철학 백과 완간이 더 빠르지 않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는데, 8년째인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니 2020년에 아홉 권까지 간행되고 사실상 중단된 것은 아닐까 싶다.


아고라의 레닌 전집이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특유의 작은 판형과 알록달록한 표지 디자인이다. 말이 좋아 전집이지 통일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 외양을 보면서, 이건 120권이 완간되어서 한데 꽂아 놓아도 진짜 정신 없어 보이겠다 싶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디자인 쪽으로는 뭔가 좀 오판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죽하면 나귀님조차 헌책방에서 한 번 사고는 더 사고 싶지 않았을 정도니까.


마르크스 전집도 그렇지만, 레닌 전집도 지금 와서 꼭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꼭 필요하다면 선집 정도가 어땠을까 싶은데 굳이 전집을 시도하다 중단되었으니 안타깝다. 예전에 나온 <레닌 저작선>은 역시나 소련 붕괴 이후 헌책방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기에 불량 식품 사먹는 심정으로 몇 권 사다 놓았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지금 생각난 김에 검색해 보니 의외로 중고가가 많이 오른 듯하다.


스탈린 선집이며 모택동 선집도 나오다가 중단된 줄 알았더니,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전자는 2권까지 나오고 후자는 4권까지 나왔다. 전기에 곁들여 읽으려고 구입한 것인데 막상 책을 사고 나니 관심이 시들어 버려서 그냥 차일피일하던 것이 십수 년째이다. 그러고 보니 트로츠키며 등소평이며 심지어 체게바라의 선집도 반짝 하고 나왔다가 사라졌던 모양인데, 또다시 십수 년이 흐르면 유행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에 요즘 다시 책을 모으고 있는 소련 작가는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듯한 막심 고리키이다. 원래는 체홉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읽던 단첸코의 회고록에서 (번역은 정말 엉망, 엉망, 엉망이었지만!) 유난히 고리키가 흥미로운 인물처럼 묘사되기에 그의 희곡부터 시작해서 에세이를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 시기상으로 레닌이며 스탈린과도 겹치는 인물이니 이래저래 또다시 빨긋빨긋한 책들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사실 마르크스며 레닌이며 기타 온갖 빨갱이들의 책에 대해서 나귀님이 가진 관심이라곤 선집이나 전집 같은 세트 자체에 대한 흥미 이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세트에 포함되기 때문에 억지로 구입한 책 중에서도 의외로 결국 읽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가장 최근의 경우에는 이번 의사 파업을 계기로 읽은 <플렉스너 보고서>가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충동 구매의 희박한 장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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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광고 중에 "MEGA 제1-10권 출간 시작"이란 것이 있기에, 이건 또 MWONGA 싶어 눌러보니 "맑스/엥겔스 전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려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제1-10권"이라고 하니 설마 원서 "제1권부터 제10권까지"를 한 권으로 엮어냈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십중팔구 "1차분 전10권 중 제1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동아대 맑스엥겔스 연구소며 MEGA 독일어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확인해 보니, 알라딘 북펀드에 나온 "MEGA 제1-10권"은 결국 "MEGA 제I-10권"의 오기였다. 즉 맑스엥겔스 연구소의 공지사항에 썼듯 "제1부 제10권"을 말한 것인데, "제1부"를 로마 숫자(I) 대신 아라비아 숫자(1)로만 표시하다 보니 "제1권부터 제10권까지"로 착각한 거다.


이런 전집류의 권명 표기에서 별도의 규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귀님 기억에 보통은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섞어서 I-3, II-2, III-1라고 표기하거나, 아니면 하이픈(-) 대신 "스랏슈"(/)를 써서 1/3, 2/2, 3/1라고 표기하지 않나 싶다.(MEGA 독일어 홈페이지에서도 로마 숫자와 마호로... 아니, 스랏슈를 사용해 구분했으니, 이게 맞지 않을까).


현재 북펀드에 올라온 I/10권은 <독일 제국헌법투쟁,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 독일 농민전쟁 외>라고 수록작 중 대표적인 것 세 가지의 제목을 모조리 적어 놓았던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냥 <독일 제국헌법투쟁 (외)>나, <저작: 1849/7-1851/6> 정도로 간략하게 표기하는 쪽이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I/10권은 1300쪽임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 10만 원으로 상당히 비싸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톨킨 저작선이 이에 버금갈 만한데, "가운데땅 이야기들"은 1100쪽에 정가 11만 원, "호빗과 반지 연작"은 2400쪽에 정가 19만 원이고, 400쪽 도록이 정가 13만 원에 달한다. 어쩐지 맑스와 톨킨의 미친 가격 종말 전쟁 같다고 해야 하나.


결국 양쪽 모두 살 사람만 사라는 뜻인데, 하필 또 맑스의 저서이다 보니 "자본주의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공산주의는 그 순서만 거꾸로이다"라는 비아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셜 버먼은 냉전 시절 소련의 지원으로 간행된 맑스 저서를 헐값에 구입하면서 크게 감동했다고 회고했는데, 이제는 부처도 신도, 레닌도 스탈린도 없으니...


MEGA 번역본은 2021년에 간행된 II/3권에 이어서 이번의 I/10권이 겨우 두 번째이다. 총114권으로 예상되는 전집의 완역은 불가능하겠지만, 선역도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 그 사이에 톨킨의 유고를 편집한 "가운데땅의 역사" 시리즈가 번역된다면, 맑스와 톨킨의 미친 가격 종말 전쟁은 이후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


MEGA의 편찬에 관해서는 예전에 정문길 교수가 저서도 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헌 비평을 통해 후세가 왜곡한 맑스의 본래 모습을 찾겠다는 목표야말로 공산주의가 폄하해 마지않았던 기독교 성서 신학의 행보를 답습하는 셈이 아닐까 싶어 우습기도 했었다. 문득 "맑시즘은 가장 성공한 기독교 이단"이라는 평가가 새삼 떠오르기까지 했었고.


어떤 면에서 맑스의 이론은 소련의 흥망으로 이미 검증된 셈인데도, 스탈린의 폭주와 소련의 폭망에도 '맑스께선 옳았으나 스탈린이 틀렸도다'는 변명이 등장했으니, 이 역시 '차르께선 선하시며 간신들의 농간일 뿐'이라는 궤변의 연장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일부만 틀려도 다 틀린 것이지만, 공산주의는 나라가 망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까.


내가 가진 맑스/엥겔스의 저서는 대부분 80-90년대에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펴낸 것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헌책방에서도 먼지만 쌓여가기에 재미 삼아 하나둘씩 모은 것이다.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선 그저 추억의 빨간책일 뿐인데, 지금 와서 맑스를 다시 읽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맑스와 사회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는 "막스 베버"의 "사회학" 책도 운동권 서적으로 간주되어 압수당했다는 전설 같은 실화가 전해지는데, 이번 총선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심판"을 들고 나왔다가 폭망한 현재 여당이며 정부의 분위기로 봐서는 MEGA의 속간에 발맞춰 "메가커피"며 "메가스터디"에 대한 탄압이라도 벌이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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