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 광고 중에 "MEGA 제1-10권 출간 시작"이란 것이 있기에, 이건 또 MWONGA 싶어 눌러보니 "맑스/엥겔스 전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려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제1-10권"이라고 하니 설마 원서 "제1권부터 제10권까지"를 한 권으로 엮어냈다는 뜻은 아닐 것이고, 십중팔구 "1차분 전10권 중 제1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동아대 맑스엥겔스 연구소며 MEGA 독일어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확인해 보니, 알라딘 북펀드에 나온 "MEGA 제1-10권"은 결국 "MEGA 제I-10권"의 오기였다. 즉 맑스엥겔스 연구소의 공지사항에 썼듯 "제1부 제10권"을 말한 것인데, "제1부"를 로마 숫자(I) 대신 아라비아 숫자(1)로만 표시하다 보니 "제1권부터 제10권까지"로 착각한 거다.


이런 전집류의 권명 표기에서 별도의 규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귀님 기억에 보통은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섞어서 I-3, II-2, III-1라고 표기하거나, 아니면 하이픈(-) 대신 "스랏슈"(/)를 써서 1/3, 2/2, 3/1라고 표기하지 않나 싶다.(MEGA 독일어 홈페이지에서도 로마 숫자와 마호로... 아니, 스랏슈를 사용해 구분했으니, 이게 맞지 않을까).


현재 북펀드에 올라온 I/10권은 <독일 제국헌법투쟁,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 독일 농민전쟁 외>라고 수록작 중 대표적인 것 세 가지의 제목을 모조리 적어 놓았던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냥 <독일 제국헌법투쟁 (외)>나, <저작: 1849/7-1851/6> 정도로 간략하게 표기하는 쪽이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I/10권은 1300쪽임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 10만 원으로 상당히 비싸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톨킨 저작선이 이에 버금갈 만한데, "가운데땅 이야기들"은 1100쪽에 정가 11만 원, "호빗과 반지 연작"은 2400쪽에 정가 19만 원이고, 400쪽 도록이 정가 13만 원에 달한다. 어쩐지 맑스와 톨킨의 미친 가격 종말 전쟁 같다고 해야 하나.


결국 양쪽 모두 살 사람만 사라는 뜻인데, 하필 또 맑스의 저서이다 보니 "자본주의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공산주의는 그 순서만 거꾸로이다"라는 비아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셜 버먼은 냉전 시절 소련의 지원으로 간행된 맑스 저서를 헐값에 구입하면서 크게 감동했다고 회고했는데, 이제는 부처도 신도, 레닌도 스탈린도 없으니...


MEGA 번역본은 2021년에 간행된 II/3권에 이어서 이번의 I/10권이 겨우 두 번째이다. 총114권으로 예상되는 전집의 완역은 불가능하겠지만, 선역도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 그 사이에 톨킨의 유고를 편집한 "가운데땅의 역사" 시리즈가 번역된다면, 맑스와 톨킨의 미친 가격 종말 전쟁은 이후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


MEGA의 편찬에 관해서는 예전에 정문길 교수가 저서도 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헌 비평을 통해 후세가 왜곡한 맑스의 본래 모습을 찾겠다는 목표야말로 공산주의가 폄하해 마지않았던 기독교 성서 신학의 행보를 답습하는 셈이 아닐까 싶어 우습기도 했었다. 문득 "맑시즘은 가장 성공한 기독교 이단"이라는 평가가 새삼 떠오르기까지 했었고.


어떤 면에서 맑스의 이론은 소련의 흥망으로 이미 검증된 셈인데도, 스탈린의 폭주와 소련의 폭망에도 '맑스께선 옳았으나 스탈린이 틀렸도다'는 변명이 등장했으니, 이 역시 '차르께선 선하시며 간신들의 농간일 뿐'이라는 궤변의 연장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일부만 틀려도 다 틀린 것이지만, 공산주의는 나라가 망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까.


내가 가진 맑스/엥겔스의 저서는 대부분 80-90년대에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펴낸 것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헌책방에서도 먼지만 쌓여가기에 재미 삼아 하나둘씩 모은 것이다.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선 그저 추억의 빨간책일 뿐인데, 지금 와서 맑스를 다시 읽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맑스와 사회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는 "막스 베버"의 "사회학" 책도 운동권 서적으로 간주되어 압수당했다는 전설 같은 실화가 전해지는데, 이번 총선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심판"을 들고 나왔다가 폭망한 현재 여당이며 정부의 분위기로 봐서는 MEGA의 속간에 발맞춰 "메가커피"며 "메가스터디"에 대한 탄압이라도 벌이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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