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북펀드에서 <아틀라스 오브 뷰티>라는 책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미 출간된 모양이었다. 루마니아의 한 사진가가 10년 넘게 세계각국을 누비며 만난 50개국 여성 500명의 사진을 담았다는데, 미리보기로 살펴본 내용만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흑과 백, 선과 악, 정상과 병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굳이 강조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듯한데, 이 책을 일별하다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비례와 균형 같은 미학적 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쉽게 말해 예쁜 것이 예쁜 것이고, 못난 것은 못난 것이다. 있을 데에 있는 것이 아름답고, 비뚤어지거나 빗나간 것은 추악하다. 세상만사가 후천적이고 인위적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과도하게 늘린 목과 입술 같은 예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인지하지 않나 싶다. 


<아틀라스 오브 뷰티>에 수록된 사진 속 여자들만 해도 하나같이 미인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그 이목구비의 자연스러움이다. 크기와 형태와 색깔과 배열은 제각각이지만 얼굴의 형태와 맞물려 섬세하고도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원천일 것이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예전에 나왔던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의 전설적인 표지 사진이다. 발행인 한창기는 옛 그림 속 여성의 얼굴을 싣고 싶었다지만, 편집부에서는 복고라 오해받는 것을 우려해 "이목구비의 비례가 좋은" 젊은 여성의 얼굴 사진을 찍어 매호 표지에 실었다는 것이 편집장 설호정의 회고다.



>>> 그러나 '유명하지 않으면서 사진이 잘 받고, 샘이깊은물의 독자층에 걸맞은 지성을 갖춘 여성'을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얼굴에 칼 댄'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여기저기서 노골화한 잡지였던 만큼 성형의 의혹이 제기되기만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조차 않았으니 더더욱 지난한 과업이었다. 털어놓건대, 발행인을 비롯해 기자,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스쳐지나는 여자조차 무심히 보지 않는 버릇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설호정,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특집 한창기>, 89쪽) <<< 



쉽게 말해 요즘 식으로 길거리 캐스팅까지 불사하면서 모델을 찾아냈다는 이야기인데, 일설에는 잡지가 나올 때마다 편집부에 해당 모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기업이며 개인의 연락이 빗발쳤다고 한다. 나중에 한 신문에서 조사해 보니 일부는 상업 광고에도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일반인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샘이 깊은 물>의 표지 사진을 보면, <아틀라스 오브 뷰티>와 유사하게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갖춘 여자들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수십 년 전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지금 와서도 딱히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세월조차 뛰어넘는 비례와 균형 같은 미적 가치 덕분일 것이다..


물론 어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했다는 말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고 싶은 뜻은 결코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왜 이상하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들었기에 해 보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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