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중에 <메리와 메리>라는 것이 있기에 뭔가 싶어 살펴보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모녀의 공동 전기였다. 이미 따로따로 전기가 간행된 적도 있었고, 심지어 어머니의 중편 소설 두 편과 딸의 중편 소설 한 편을 엮어 만든 <메리/마리아/마틸다>라는 번역서도 나온 적 있었으므로, 공동 전기도 충분히 나올 만해 보인다.
일단 엄마 쪽 전기로는 <세상을 뒤바꾼 열정>이라고 제법 두꺼운 책이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지금 다시 알라딘에서 "울스턴크래프트"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살펴보니 부제인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에서 띄어쓰기를 잘못해서였다. 즉 알라딘에서는 "울스턴 크래프트"로 검색해야 나온다.
딸 쪽으로는 비록 본격적인 평전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프랑켄슈타인>의 배경과 집필에 관한 책으로 <괴물의 탄생>이란 것이 나와 있기에 사다 놓았는데 역시나 절판이다. 예전에 읽은 만화 <메리 고드윈>도 함께 다시 살펴보고 버리려고 나란히 놓아 두었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는 공동 전기까지 읽고 나야만 처분이 가능하겠다.
<메리와 메리>의 도입부를 보면 엄마가 딸을 낳다 사망함으로써, 이후 딸이 평생 엄마의 그늘 아래에서 그 존재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듯한 서술이 등장한다. 이 전기에서도 그렇지만 남편/아빠인 윌리엄 고드윈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지금은 일반화된 모양이기도 하다.(이 사람 저서인 <최초의 아나키스트>도 역시나 절판이다).
그런데 고드윈이 바람직한 남편/아빠가 아니었다 해서 욕을 먹는다면,[*] 메리 모녀의 행적 역시 딱히 더 칭찬받을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양쪽 모두 유부남과 사귀고 사생아를 출산한 이력이 있으니, 제아무리 "사빠죄아"라 하더라도 이런 행적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사회 통념상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일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메리 셸리가 어렸을 때 고드윈을 찾아온 손님들은 저 유명한 메리의 딸 메리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는데, 그 묘사만 놓고 보면 마치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를 보고 감탄하던 사람들의 호들갑을 떠올리게 될 정도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딸도 엄마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셸리"라는 성은 훗날 딸 메리의 남편이 되는 유명한 시인에게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공동 전기에서 "셸리는..." 운운 하는 대목을 접할 때마다 살짝 생소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득 예전에 사다 놓은 트렐로니의 회고록 <셸리와 바이런과 저자에 관한 기록>을 꺼내 보니, 메리를 처음 봤을 때에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 윌리엄 고드윈의 아내인 (여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에 출산 도중 사망했는데, 이들 부부의 외동딸 메리는 시인 셸리와 결혼했다. 그리하여 내가 이야기하는 시기에 셸리 여사는 27세였다. 여류 작가로서 본인의 장점은 둘째 치고, 그토록 보기 드문 천재의 혈통만으로도 나로선 충분히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차분한 회색 눈이었다. 영국 여성의 평균 신장에는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매우 피부가 하얗고, 머리색이 옅었으며, 재치 있고, 사교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울적하기도 했다. 셸리와 마찬가지로 (비록 정도는 더 낮았지만) 그녀는 다양하고도 적절한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말들은 우리의 뛰어난 옛날 작가들의 저서에 정통한 데에서 나온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고어나 외국어는 쓰지 않았다. 우리말을 그렇게 구사하는 능력이 내게 더욱 놀라웠던 까닭은, 사교계의 귀부인들이 사용하는 빈약한 어휘들과 대조적인 까닭이었다. 귀부인들의 어휘라야 말하기에 적절하다고 느껴지거나 간주되는 온갖 표현에다가 어설프고도 진부한 관용구를 다수 곁들일 뿐이었으니까. <<<
영국의 군인인 에드워드 존 트렐로니는 셸리 부부며 바이런과 그리 오래 교류하진 않았지만, 익사한 셸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한 것은 물론이고 사망한 바이런의 시신을 확인한 등의 인연으로 두 시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을 남겨서 문학사에 덩달아 기록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메리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증언이 제법 되는 듯하고...
[*]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편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닐까.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끝까지 감싸주는 모습만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그를 좋아해야 마땅할 것 같다. 심지어 장모의 비리에 대해서도 최대한 무마하려 노력했으니, 세상 모든 장모들은 물론이고 장인들(물론 의외로 일부일 수 있지만)이며 처가 식구들 역시 윤석열을 지지해야 옳을 것만 같은데, 왜 지지율은 항상 이렇게 낮은지...
[**] 엄마 메리의 저서는 <여권의 옹호>가 대표적이지만 <길 위의 편지>라는 여행기도 번역된 모양이다. 딸 메리의 소설은 <프랑켄슈타인> 외에도 <최후의 인간>이 번역되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의 효시로 여겨지는 작품이라는데 현재는 역시나 절판이다. 그 외에도 "수상쩍을 정도로 고딕에 진심인 출판사"인 고딕서가에서 나온 단편집에도 작품이 하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