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나온 <최은희와 괴물들>이라는 만화 이야기도 해 보자. 제목 그대로 과거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던 영화감독 신상옥과 영화배우 최은희의 실화를 각색한 그래픽노블인데, 십중팔구 국내 보수 성향 언론사나 출판사가 제작한 '반공 만화'가 아닐까 했던 예상과는 딴판으로 무려 독일(!) 작가들이 쓰고 그린 만화였다.


유튜브의 '외국인이 만든 이상한 한국 음식'처럼 살짝 뜬금없다 싶다가도, 두 사람의 체험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상기해 보니, 과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단 국가였던 독일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충분히 일리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부부였던 감독과 배우를 납치해 영화 제작을 명령한 독재자라니, 이만한 부조리극이 어디 있겠나!


나귀님만 해도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납북 직후에만 해도 '사업 실패로 자진 월북했다'는 언론 보도가 빗발쳤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탈북 이후의 해명에 대해서도 살짝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영화 제작이며 언론 노출을 지켜보면서도 과거 반공 교육의 연장인가 싶어 슬쩍 의구심을 품었다.


두 사람은 <내레 김정일입네다>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공동 수기를 간행한 바 있었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외국에서는 수년 전에 아예 그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도 제작되는 등 뒤늦게나마 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던 모양이다. 우리야 지겨울 정도로 들어 무덤덤하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제3세계 독재자의 엽기 실화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최은희와 괴물들>은 특이하게도 신상옥이 북한에서 만든 괴수 영화 <불가사리>의 내용과 최은희의 실제 경험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술되는 모양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가리키는 '괴물'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괴물 불가사리일 수도 있으니, 그 자체로 중의성을 지녔다고 해야 될 듯하다.


쇠를 먹으면 몸집이 커지며 무슨 수로도 죽일 수 없는 괴물 불가살, 또는 불가사리는 한국 고유의 괴물이라 하던데, 처음에는 작고 소듕하지만 나중에는 너무 거대해져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을 불러온다는 내용만 보면 건드릴수록 커지는 도깨비 사과나, 또는 동유럽 유대인의 골렘 전설이나,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와도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수탈에 대한 민중의 원한이 드러나는 것도 이 소재 각색물의 한 가지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 당장 신상옥의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나귀님이 가장 인상 깊게 본 각색물인 백성민의 만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자에서는 악덕 관리에게 억울하게 죽은 대장장이의 눈 먼 아들이 악에 받쳐 토해낸 핏덩이에 충성스런 황소의 원혼이 깃들어 괴물이 된다.


백성민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부모의 원수를 갚지는 못하는 대신, 왜구 토벌 중에 치명상을 입은 원수를 발견하고 최후를 지켜보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기야 애국심 뿜뿜한 원수의 부탁을 받아들여 불가사리에게 적선을 파괴하도록 지시하지만,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물과 상극이라 바다에 빠져 자멸하고 주인공은 절에 들어가는 것으로 급마무리된다.


왜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나온 만화 중에 특이하게도 해적과 노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 마커스 레디커의 저서를 각색한 작품이 여럿 있기에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번역서로는 까치에서 나온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갈무리에서 저서를 무려 네 권이나 내놓았고, 내친 김에 만화 각색물까지 두 권 내놓았다.


마침 대니얼 디포의 수많은 저술 속 내용을 통해 18세기 영국 경제사를 재구성한 희한한 책인 <디포의 세계>를 뒤적이다가, 거기서 한 장에 걸쳐 묘사된 '해적의 민주주의'를 보고 새삼스레 관심이 생겨서 책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해적 관련서를 이것저것 도로 꺼내 놓았는데, 조만간 시간이 되면 살가리의 해적 소설들까지 포함해서 한 번 훑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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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북한에서 정체불명의 물건을 풍선에 매달아 남쪽으로 내려 보내는 바람에 긴급문자가 뜨는 소동이 벌어졌다던데, 날이 밝고 나서 확인해 보니 갖가지 오물을 집어넣은 비닐봉지가 여럿 발견된 모양이다. 휴전선 접경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이며 더 남쪽의 후방까지도 침투한 모양이니, 비록 피해가 크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상당히 신경이 쓰이게 생겼다.


오물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거야말로 진짜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핵탄두 대신 핵 폐기물이나 기타 오염 물질을 넣음으로써 목표 지역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종류의 폭탄을 바로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그 주체가 북한이라는 점에서 '가난한 자의 핵폭탄'이란 또 다른 별칭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듯 보인다.


교묘한 도발인지, 아니면 신경질적 화풀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신나게 헤집고 돌아다녀도 속수무책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선례를 떠올려 보면, 제아무리 유럽에 수출하는 최첨단 초강력 무기로 무장했다는 국군조차 정작 이런 재래식, 또는 원시적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어마어마한 덩치와 힘을 자랑하던 골리앗이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그만 뻗어 버린 것과 비슷한 형국인데, 실제로 세계 각지의 테러 집단에서는 강대국만큼의 무기며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갖가지 교묘한 방법을 고안한다고 알고 있다. 지난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서 명중률은 떨어지지만 저렴한 수제 미사일을 활용했던 사례도 그렇다.


이번 북한의 '더러운 폭탄' 공격은 정체불명의 오물이 들어 있었다는 점에서 세균전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중세에는 공성 과정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를 투석기에 넣어 성내로 날려보내는 섬뜩한 방법도 사용했다던데, 구체적인 출처를 찾아보려 지금 다시 구글링해 보니 이제 와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날조나 전설로 치부되는 모양이다. 


중세를 실감나게 (즉 야만스럽고 지저분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폴 버호벤의 영화 <살과 피>에도 바로 그런 장면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룻거 하우어가 연기한 도적단 두목은 나중에 <베르세르크>에서 주인공을 거두어 키워 준 용병 대장의 모습으로 오마주되었다고 알고 있다. 바로 주인공의 "등짝"을 팔아넘겼다가 결국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그 사람이다).


세균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을 둘러싼 소문이다. 당시 중국 정부에서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군이 자행한 세균전의 증거를 모아 놓았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바람에 잠시나마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객관적이고 유의미한 증거라고는 전무한 상태에서 중국과 북한이 일반적인 주장만 가지고 펼친 여론전이었다.


냉정히 따져 보면 모순과 억지만 가득했던 그런 주장에 사람들이 솔깃했던 까닭은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영국의 생화학자 조지프 니덤이 중국 측 조사 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열렬한 중국 애호가로서 머지않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과학사 저술로 명성을 얻게 되는 그는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중국 정부 주요 인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의 제안에 흔쾌하게 조사단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자신의 명성만 빌려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허술한 보고서가 발표되자 중국이나 북한 정부보다는 오히려 세계적 석학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은 저 생화학자를 향해 비난이 집중되었고, 그의 화려한 경력에서 뚜렷한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조지 스타이너의 회고에 따르면, 제법 세월이 지난 후 니덤을 만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세균전 보고서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상대방의 안색이 달라지더라는 일화도 있었다.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 주장을 믿는 사람이 많은 듯, 수년 전 문제의 허위 보고서를 "발굴"했다며 대서특필한 "진보" 언론사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번 오물 풍선조차도 "인민의 표현의 자유"이자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기꺼이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귀님 눈에는 핵 실험과 미사일과 방사포와 무인기를 뒤이은 '더러운 폭탄'이 졸지에 각자의 분변을 집어 상대방에게 던지며 반감을 표현하는 유인원 수준으로 떨어진 남북의 현 상황을 상징하는 듯해 씁쓸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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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에서 <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보고 흥미가 동했다. 저자는 영국 펭귄 출판사의 편집자 출신이라는데, 미로의 개념과 역사부터 시작해서 이 소재에 매료된 작가와 예술가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미로에 관한 책을 몇 권 사다 놓은 나귀님으로서는 흥미로운 자료가 또 하나 생기는 셈이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텍스트 말고 사진 속의 광고 문구를 살펴보니, "미로에 빠진 예술가, 문학가, 철학자"의 명단에 "카프카, 보르헤스, 피카소, 큐브릭, 델 토로, 캐럴"을 열거하고 나서 "미로의 왕 그렉 브라이트"를 덧붙여 놓았다. 그렉 브라이트? 혹시 예전에 사다 놓은 <미로의 책>의 저자가 아닌가 싶어 이전에 찍어 놓은 "책장 사진"을 뒤져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책장 사진이 뭔가 하면,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신국판 단행본 두 권 깊이로 책장을 만들다 보니, 앞에 있는 책들은 기억하기 쉬워도 뒤에 있는 책들은 기억하기 힘들어 가끔씩 앞뒤로 위치를 바꿔주어야 하는데, 맨 아랫칸 책들은 책장 앞에 쌓인 또 다른 책더미 때문에 꺼내기가 쉽지 않다 보니, 가끔 뭐 하나 꺼내 보는 김에 아예 사진으로 찍어 두고 참고하는 거다.








내 기억에 <미로의 책>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창작한 미로를 독자가 풀어보는 퍼즐북이었는데, 권말에는 저자가 직접 땅을 파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초대형 미로를 실제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까지 들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게임북인 줄로 알고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진성 미로 덕후인 사람이라니 감탄하다 못해 살짝은 징그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 지금은 뭘 하나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나오는 자료가 많지 않았다. 알고 보니 1970년대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미로업계(?)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홀연히 사라졌으며, 이후 종적이 밝혀지지 않아 지금은 사실상 전설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런 그를 수십 년 만에 찾아내 인터뷰한 사람이 바로 이번 책의 저자라는 거다.


즉 저자가 미로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그렉 브라이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도통 실마리를 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하루는 펭귄 출판사 책에 대해 문의하는 독자 편지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기에 뜯어보니, 세상에, 그걸 보낸 사람이 바로 '그' 그렉 브라이트 본인이었다는 거다. 이후 엘리엇은 브라이트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수행했다고 한다.


1951년생으로 인터뷰 당시 60대였던 그렉 브라이트는 여전히 미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건재했다던데, 갑자기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이유며 근황에 대해서는 엘리엇의 책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는 모양이다. 여하간 이쯤 되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책더미를 헤치고 책장 맨 아래칸 구석에 꽂혀 있던 <미로의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정확한 제목은 <그렉 브라이트의 미로의 책: 모두가 즐기는 퍼즐>(편집부 옮김, 우신사, 1983)이고, 원서의 제목은 GREG BRIGHT'S MAZE BOOK: PUZZLES FOR EVERYONE(1974)이며, 인명 표기의 오류로 미루어 일어중역본으로 보인다. 제목처럼 저자가 제작한 30여 종의 미로 퍼즐을 풀어볼 수 있는 책이며, 권말의 사진과 해설은 1971년에 제작한 "참호 미로"를 보여준다.


원래는 펜 대신 사용할 "대나무 바늘"이 가름끈에 달려 있었다던데, 나귀님이 중고로 산 책에는 바늘이 떨어져 나가고 가름끈만 남았다. 하지만 함께 첨부된 "투명지"(습자지) 두 장은 아직 들어 있다. 가급적 대나무 막대기로만 미로를 풀어 보게 하고, 굳이 펜을 사용하고 싶으면 미로를 덮은 습자지에다가 대신 그리라는 것이니, 역시나 미로 덕후다운 배려심이라 하겠다.


흥미롭게도 32번째 미로는 "미로 제작용 기본 패턴"이기 때문에, 이 페이지를 복사해 상하좌우로 덧붙이면 더 커다란 미로를 계속 만들 수 있다. 그의 독창적인 발상으로 간주되는 "구멍 뚫린 미로", 즉 곳곳에 난 구멍을 통해 앞뒷면을 오가며 푸는 양면 미로도 하나 수록되었는데, 어째서인지 일련번호는 매겨지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는 33종의 미로가 들어 있는 셈이다.


북펀드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 글에도 나와 있듯이, 미로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고 널리 퍼진 상징물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놀이로 여겨지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의외로 심오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저 보기에 예쁘고 신비로운 장식 미술의 일종인 것 같다가도, 누구나 경험하게 마련인 인생의 여정이나 심지어 영혼의 여정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의학자 융은 평소에 미로와 유사한 만다라를 그리는 취미가 있었고, 스위스 호반의 자택 볼링엔도 손수 지었다고 전한다. 미로를 종이에만 그리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땅을 파서 구현하기까지 했던 그렉 브라이트의 행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자아를 탐색/실현하는 과정의 일종은 아니었을까. 마치 나귀님이 아직도 종종 레트로 미로 게임 "로드러너"를 즐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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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드에 마오주의를 다룬 책이 있기에 저자가 누군가 궁금해 알아보니, 일찍이 만리장성에 대한 책을 썼던 줄리아 로벨이었다. 몇 년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한두 달 사이에 중국 장성에 관한 책을 연이어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저자의 그 저서도 구입하지 않았나 싶다. 


내친 김에 장벽이며 창문이며 철조망이며 고양이사다리(?)며 하는 건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룬 책들도 함께 엮어 읽어보려다가 차일피일하던 것이, 지금은 어느 쪽 책더미에 파묻혔는지 알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비트코인을 쓰레기장에 묻었다는 누군가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마오주의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지 않았나 싶은 곳은 의외로 이사벨 아옌데의 초기 소설 가운데 하나에서였다. 주인공인 칠레 소년이 혁명을 해 보겠답시고 가출해서 마오주의자 집단에 가담했다가, 뒤늦게야 아버지가 찾아오자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싱겁게 따라갔다는 내용이다.


나귀님은 <에바 루나>의 한 대목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사랑과 그림자>의 한 대목인 모양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서양 사람이 '마오주의자'를 자처하고 나선다는 대목이 가장 신기했는데, 마오쩌둥의 지지자라면 당연히 중국인뿐일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측면까지 감안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오주의 말고, 일반적인 의미의 마오주의는 전세계 반정부 단체니 게릴라 집단에서 차용하는 실천 방법이라고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로벨의 책에서도 지적했듯, 비록 영향력은 한정되었어도 숫자만큼은 의외로 많은 듯하다.


사실 마오쩌둥 지지자의 활동이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오주의보다 더 악명 높은 홍위병인데, 그렇잖아도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된 중국 작가의 SF 소설 <삼체>의 배경이 문화혁명 시기라고 해서 새삼스레 화제가 된 (아울러 중국에서는 논란이 된) 모양이다.


문화혁명이니 홍위병에 관한 책은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번역되어 왔다고 기억하는데, 가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는 <백 사람의 십 년>이 있다. 그 시기를 몸소 겪은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열거하는 구술사인데, 역사가의 서술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문화혁명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아마도 마오쩌둥 개인이나 공산당의 정책 같은 한두 가지를 원인으로 바라보는 단순 해석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가 원인이라는 그의 지적도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 맥락이라면 차라리 성악설 쪽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대략 한 세기 전에 대두한 나치즘도 결국 문명인인 독일 국민 가운데 상당수를 일시적이나마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바꾸어 놓았었으니까.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야 그때 이미 폐기된 줄 알았더니, 중국은 한 발짝 늦었던 걸까.


사실 홍위병의 활동은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와도 떼려야 뗄 수가 없다고 알고 있다. 기성 권위와 질서를 타파하겠다며 저지른 갖가지 만행이 최고 지도자를 향한 팬심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이었으니, 마오쩌둥이 유일무이한 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뇌관 노릇만큼은 충분히 했던 셈이다.


이른바 68혁명에서도 학생들의 시위에서는 홍위병 비슷한 요소가 드러났었다고 전하니, 어쩌면 그것 역시 마오주의의 영향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오쩌둥 역시 유교나 도교나 선불교 못지않게 전세계에 심오한 영향을 준 중국의 사상적 수출품이라니 새삼스레 놀랍다.




[*] 애초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마오주의> 북펀드 광고 페이지에 저자 이름이 '줄리아 로벨'과 '줄리아 노벨'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쓰다 보니 그 이야기는 쏙 빼놓게 되어서 사족으로나마 붙여 본다. 지금도 그런가 싶어서 살펴보았더니, 여전히 그대로다. 일해라,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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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다 보니 산 책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플렉스너 보고서>인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헌이기는 해도 당장 내 일이나 전공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한 것이므로 아주 긴요한 자료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학술진흥재단 고전번역총서 시리즈를 모으다 보니 덩달아 구입했을 뿐이다.(마침 헌책방마다 남아도는 악성 재고라 저렴하기도 했고).


이번 의료 대란을 지켜보면서 의료 사회사에 관한 책을 몇 가지 꺼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갖고 있던 폴 스타의 <미국 의료의 사회적 변모>라든지, 이반 일리치 전집 가운데 하나인 <전문가들의 사회>가 그러했다, 김현아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유튜브에 올라온 저자의 강연/해설로 접했는데, 근본적 인식 변화를 요구하다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폴 스타의 책은 실력자와 돌팔이가 혼재되었던 미국 의료계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면서 전문가로서의 의사가 육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리치와 여러 저자가 공동 저술한 책에서는 바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과장되었으며, 의료 역시 서비스라는 점에서 대중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직 의사 김현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원에 덜 가자고 한다.


<플렉스너 보고서> 번역본을 뒤늦게나마 꺼내 읽어본 까닭은 폴 스타의 책에서 그 전후 맥락이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의료 교육도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저 유명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선례를 보여주고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라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의료 교육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여러 의과대학은 설비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함량 미달의 의사가 양산되었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도모하던 미국의사협회에서 객관성 보장을 위해 외부 기관인 카네기 재단에 의뢰하여 의과대학의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를 총괄하고 훗날 간행된 보고서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가 의사 아닌 교육가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플렉스너는 미국의 의과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의 공언과는 달리 제대로 된 설비와 교과 과정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그 결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과대학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1904년에 160개에서 1920년에 85개를 거쳐 1935년에 66개로 한 세대 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의사의 수준과 의료의 수준 모두 향상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내용만 놓고 보면 <플렉스너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 논란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의료의 수준을 높이려면 의대/의사 숫자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의 목표는 돌팔이를 걸러내고 실력자만 의사로 만들자는 선별의 문제였으므로, 오히려 분포 불균형의 문제인 현재의 논란과는 다르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폴 스타의 지적처럼 의사 집단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나서부터는 공공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플렉스너의 시대에도 의과대학 개편을 통한 전문성 향상이라는 의료 교육의 새로운 목표에 반대하고 현상 유지를 원한 의사가 많았는데, 그들 역시 손쉬운 돈벌이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의료 개혁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소아과 등 일부 과목 기피 현상으로 인한 불균형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무조건 아파트만 짓는다고 집값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소아과가 생겨날 리 없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도 싫지만 현 정부의 헛발질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플렉스너 보고서> 직후 의료 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된 미국에서도 이후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의사 숫자를 놓고 비슷한 논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의대 정원은 정책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지만, 그 적정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재의 미국에서도 의료의 비용 상승과 분포 불균형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해법이 무엇인지는 나귀님도 모르겠다. 다만 의료 수가 조정을 통해 소아과나 응급 의료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과잉 진료와 부정 행위를 규제하는 등의 조치가 그나마 일리 있지 않나 싶을 뿐이다. 아울러 김현아 교수의 책에 나왔듯이 궁극적으로는 의료와 병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를 각자 체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이 3개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의료 붕괴라고 부를 만한 대참사까지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턴 대신 교수를 갈아넣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이 병원을 삼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그간의 의료 현장에 일부 거품이 있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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