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나온 <최은희와 괴물들>이라는 만화 이야기도 해 보자. 제목 그대로 과거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던 영화감독 신상옥과 영화배우 최은희의 실화를 각색한 그래픽노블인데, 십중팔구 국내 보수 성향 언론사나 출판사가 제작한 '반공 만화'가 아닐까 했던 예상과는 딴판으로 무려 독일(!) 작가들이 쓰고 그린 만화였다.


유튜브의 '외국인이 만든 이상한 한국 음식'처럼 살짝 뜬금없다 싶다가도, 두 사람의 체험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상기해 보니, 과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단 국가였던 독일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충분히 일리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부부였던 감독과 배우를 납치해 영화 제작을 명령한 독재자라니, 이만한 부조리극이 어디 있겠나!


나귀님만 해도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납북 직후에만 해도 '사업 실패로 자진 월북했다'는 언론 보도가 빗발쳤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탈북 이후의 해명에 대해서도 살짝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영화 제작이며 언론 노출을 지켜보면서도 과거 반공 교육의 연장인가 싶어 슬쩍 의구심을 품었다.


두 사람은 <내레 김정일입네다>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공동 수기를 간행한 바 있었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외국에서는 수년 전에 아예 그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도 제작되는 등 뒤늦게나마 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던 모양이다. 우리야 지겨울 정도로 들어 무덤덤하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제3세계 독재자의 엽기 실화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최은희와 괴물들>은 특이하게도 신상옥이 북한에서 만든 괴수 영화 <불가사리>의 내용과 최은희의 실제 경험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술되는 모양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가리키는 '괴물'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괴물 불가사리일 수도 있으니, 그 자체로 중의성을 지녔다고 해야 될 듯하다.


쇠를 먹으면 몸집이 커지며 무슨 수로도 죽일 수 없는 괴물 불가살, 또는 불가사리는 한국 고유의 괴물이라 하던데, 처음에는 작고 소듕하지만 나중에는 너무 거대해져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을 불러온다는 내용만 보면 건드릴수록 커지는 도깨비 사과나, 또는 동유럽 유대인의 골렘 전설이나,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와도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수탈에 대한 민중의 원한이 드러나는 것도 이 소재 각색물의 한 가지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 당장 신상옥의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나귀님이 가장 인상 깊게 본 각색물인 백성민의 만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자에서는 악덕 관리에게 억울하게 죽은 대장장이의 눈 먼 아들이 악에 받쳐 토해낸 핏덩이에 충성스런 황소의 원혼이 깃들어 괴물이 된다.


백성민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부모의 원수를 갚지는 못하는 대신, 왜구 토벌 중에 치명상을 입은 원수를 발견하고 최후를 지켜보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기야 애국심 뿜뿜한 원수의 부탁을 받아들여 불가사리에게 적선을 파괴하도록 지시하지만,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물과 상극이라 바다에 빠져 자멸하고 주인공은 절에 들어가는 것으로 급마무리된다.


왜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나온 만화 중에 특이하게도 해적과 노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 마커스 레디커의 저서를 각색한 작품이 여럿 있기에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번역서로는 까치에서 나온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갈무리에서 저서를 무려 네 권이나 내놓았고, 내친 김에 만화 각색물까지 두 권 내놓았다.


마침 대니얼 디포의 수많은 저술 속 내용을 통해 18세기 영국 경제사를 재구성한 희한한 책인 <디포의 세계>를 뒤적이다가, 거기서 한 장에 걸쳐 묘사된 '해적의 민주주의'를 보고 새삼스레 관심이 생겨서 책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해적 관련서를 이것저것 도로 꺼내 놓았는데, 조만간 시간이 되면 살가리의 해적 소설들까지 포함해서 한 번 훑어보아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