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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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강한 포스를 드러내었던 미실의 이야기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낸

소설<미실>의 작가, 김별아의 신작 <채홍>입니다. 연작 시리즈물이라는데, 전작과의

공통점을 따져보자면 둘 다 역사적인 인물을 차용하였고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고요.

 

사실 이 장편소설 <채홍>이 더 자극적이죠. 조선왕조실록 유일한 왕실 동성애 스캔들 주인공을

모셔왔거든요. 세종의 며느리인 순빈 봉씨는 역사책에서는 단 몇줄밖에 안나오는 그런 인물인데

김별아작가는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순빈 봉씨가 어찌하여 얼레리꼴레리 음탕녀로 찍혔다가

끝내는 친정으로 돌아가 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지까지 애절하게 그려냅니다.

우선 역사책속의 순빈을 찾아보죠.

 

“성질이 투기가 많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며, 또 궁궐 여종들에게 항상 남자를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또 세자가 종학으로 옮겨 가 거처할 때에 몰래 시녀의 변소에 가서 벽 틈으로 엿보아 외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세종실록 , 1436년 10월 26일자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 세종실록 , 1436년 10월 26일자

 

사실 세종의 아들은 중전들에게 정을 주지않아서 두명이나 폐위하게 만드는 장본인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완벽주의자이며 왕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한 세자의 입장을 여러 각도에서

친절하게 묘사하고 납득을 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세종의 입장과 여러 등장인물의 입장도

누구 하나 납득이 안되는 사람이 없지요. 하지만 이 소설의 첫장을 넘기는 저같은 응큼한

독자로서는 책의 중반부를 넘어갈때까지도 봉씨의 애인(?)이 등장하지않아 점점 맥이 빠지고

집중력이 흐려졌어요. 왜냐하면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부터 그 야한 스캔들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했고, 저또한 은근히 그 스캔들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나란 여자, 야한 뇨자? ㅎ)

 

 

두가지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채홍'이 된것은 채홍이 무지개란 뜻이며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죠. 엄밀히 보자면 이 책은

성에 대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성소수자들은 성욕이 강한데

아무도 안아주지않으면 결국 주변에 보이는 여자든 남자든 안가리고 욕망을 분출하는 거로구나.

그런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참 많아요. 여기에 한몫하는 것은 작가가 주인공인 순빈 봉씨를

묘사함에 있어 자기의 의견을 왕에게 주장할 정도로 강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어릴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서 궁에 들어와 겪는 외로움에 큰 자괴감에 빠지는 것으로 설정하지요.이런

고통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고 있는데 욕심이 과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궁이라는 감옥에 갇혀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린 여인들이 어디

봉씨 뿐겠습니까. 격식,절차,의례, 명분,도리앞에서 질식해 죽을 것 같은 여인의 삶과

숨통을 틔우고 혈기를 돌게 하는 탈출구의 해법이 '동성애'라면 정당화된다는 소리는 분명

아닐진대...이미 애인이 있던 여종을 권력으로 옆에 두고서 '사랑' 이라니요.

 

게다가 폐위당한 여동생을 칼로 죽이는 오빠는 이렇게 외치죠.

"가라! 부디 다음 세상에선....사내로 태어나라!"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과연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읽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재미와 교훈, 지식의 3요소로 정리가 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스펙타클하거나

반전이 있거나 긴장감으로 저에게 재미를 주지는 않았어요. 조선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역사적 지식과 억압의 사회에 내가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할까, 그런 교훈?

 

이 소설이 역사소설이라고 해서 나는 이 소재를 단지 과거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순간도 지나면 역사인 거고,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점의 오픈된 민주사회라고 보지도

않으니까요. 내가 이 시대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우려하는 분도 있겠지만 '시대와 불화'하는

나의 태도가 결국 독서를 지탱하는 힘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김별아작가의 맛깔스런 문장들은 내내 머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낯선 의태어와

의성어들을 읽고 있자니 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어떤 뜻인지 감이 오더군요. "내가 한국인이 맞긴

맞나보구나"하면서 미소지으며 이 책을 읽어내려갔거든요. 순우리말 표현이 많아서 좋았고,

리듬감있는 문장들을 보면서 많이 조사하고 퇴고했겠구나 하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고요.

 

내러티브나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스럽지만, 그 어휘력만은 별 다섯개를 주고싶네요.

조선시대 여성 삼부작이 나온다고 하니, 마지막 작품도 기대해보렵니다.

사실 김별아작가님은 도발적이고 야한 것도 부끄럽다 도망가지않고 씩씩하게 잘 쓰는 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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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사귀다
이지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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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사귀다.- 도시유목민이 마법에 걸리는 주문! 




올해는 마음이 소란스러워 많은 목표를 마음에 담았더니만 에세이란 장르는 저만치 내것이 아닌듯 했어요. 그래서인지 버선발로 뛰쳐나가버린 나는 정신나간 여자처럼, 숱한 책들중에서 헤매다가 1월끝자락에서야 나를 쉬게하는 책 <그곳과 사귀다>를 만났네요. 그래서 더욱 기대하고 조심스럽고 고마웠을지도^^

이제야 시인은 본명이 이지혜이신가보네요. 시집에는 이제야,로 쓰실 듯 한데 왜 이 에세이집에는 본명으로 냈을까 궁금했어요. 시인이 아닌 본연의 인간다운 실체로 이 책과 마주하고 있나보구나 하는 생각으로 귀결되더군요. 그래서 더욱 이 책<그곳과 사귀다>가 솔직담백하고 조용하고 나즈막하게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커피집, 놀이터, 결혼식장,동창회, 영화관, 소아병동,우체국, 산후조리원, 작명소, 옥상등등 저같은 도시유목민이 어디서나 만날수 있는 이런 공간을 이쁘게 찍고 하나의 챕터씩 묶어서, 게다가 그공간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의 짤막한 대화까지 곁들인 쉼표같은 책이었어요. 그동안 이런 곳을 바삐 지나치며 나는 일상의 기계적인 마주침이 피로이자 번잡함, 소란과 실존의 현장으로 느껴졌는데 이 황폐한 도시에서 난 아프지않다고, 외롭지 않다고, 쓰러지지않는다고 고독한 러너처럼 무심히 스쳐지나가던 내 모습이 상처받은 도시유목민처럼 비교되는 게 부끄럽기도 해고요. 마치 생존의 아우성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나에게 도시란 그저 모순과 욕망의 랜드마크일뿐. 그 단선적인 생각이 더욱 우리의 쓸쓸함을 무성하게 만들 뿐이라는 반성.

그래서 이 책을 들고 퇴근하는 길에는 하루를 다 소모한 그로기상태일지라도  내 주변의 간판들과 공간들을 아무 편견없는 미학의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어서 고마웠어요. 건물만으로 배경만으로 바라보던 피사체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일상과 풍경을 낯설게 보는 법을 살짝 배웠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챕터 한장한장을 넘길때마다 그곳에 얽힌 나만의 추억과 냄새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마음의 근육이 풀리면서 느슨해지더라고요. 어느덧 내 자신이 포르말린처럼 자유로워지는 상상은 묘한 마법이었죠. 항상 지나치던 꽃집과 환승주차장도 마치 동유럽으로 여행하던 그 날처럼 설레이게 느껴지더라고요.

신호등과 인파를 따라 어꺠를 움츠리며 흘러흘러가던 내가 어느덧 방향도 맘대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분은 길이 없어도 좋아라.내가 아는 사람의 방향은 내것일텐니! 뭐 그런 자신만마저 들더라고요. 오지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분실물센터도 슬처보이지않았어요. 이런게 바로 공간이, 풍경이 바로 진실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요.

신비하지 않나요? 떄로는 가장 익숙한 것이 또한 가장 낯설게 날을 세우며 다가올 수 있다니 말이죠. 
익숙한 것들의 전복은 공간을 배경이 아닌 풍경으로 만듭니다. 앞으로도 삶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해질때면
이 소중한 도시유목민의 공간들을 조근조근 잘근잘근 관찰해야겠어요. 이 책이 알려준 마법의 주문대로요.^^


서점 : 내 서점에서의 포즈와 비슷한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등짝도 저렇겠구나 하는 상상


팬터마임공연장 : 말하지 않아도 아는 곳.

그리고 또 한가지! 질투나게 낯선 사람에게 말도 잘거는 저자, 이지혜님을 떠올립니다. 
어느덧 머리가 굳어서 낯선 사람이 살짝 어깨쭉지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저에게 

이 책에서처럼 온화하게, 이쁘고 대견하게, 살짝 언 홍시처럼 말거는 비결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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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이것 -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60편의 짧은 이야기
존 그레고리 외 엮음, 홍승원 옮김 / 동네스케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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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라디오프로그램 This I believe라는 시청자 참여 방송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사연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나이, 유명세를 떠나 각계각층의 자기 인생의 지표가 되었던 경험과 철학, 신념, 변곡점의 순간을 600자이내로 사연을 받아 방송에서 낭독하는 거죠. 수천명의 사연중에 뽑은 60개의 사연은 정말 찡해요. 60편의 이 사연은 어느 것부터 읽어도 다 감동의 도가니탕입니다.


장애가 있던 형과 함께 중요한 야구게임을 같이 하는 것부터 서점에서 마주친 책도둑이야기. 교도소에 들어온 고양이, 팔을 퍼덕이는 자폐증아이, 지금 말하거나 영원히 침묵해야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정성껏 쓴 감사편지의 힘에 대한 사연, 개를 산책시키는 시간, 질문과 반대할 권리에 대한 글까지 뭉클합니다. 사실 저는 암진단을 받은 친구를 위해 그녀의 친구들이 서로 시간을 내어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같이 수다떨고 평범하게 지내준 이야기에서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까페에서 읽다가 민망해지기도 했죠. 옆에 커플이 있었는데 제가 실연당한 줄 알았을지도^^;; 그외에도 인상적인 구절을 아래에 필사해봅니다.


- 나는 적응을 믿는다. 적응이란 동일한 자극이 시간이 흐르면서 동일한 반응을 유도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코비는 같은 행동을 하지만, 우리의 반응은 달라졌다.코비(자폐증)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처음에는 자기 오빠를 부끄러워했던 엠마도 나중에는 고생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코비가 준 교훈은 환자들이 질병과 인생의 비극을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내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적응은 익숙해지거나 참아내는 것과는 다르다. 적응은 창조적인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 가족이 서로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이 서로 아주 깊고 의미있게 연결되어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 언제부터 우리가 잠을 믿지 않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우리가 잠을 '완벽한 시간 낭비'나 '죽었을 때나 하는 일'의 사이쯤에 있는 걸로 여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밤을 되찾을 시간이다. 우리는 잠을 자야한다.우리가 좀 덜 짜증내고, 덜 신경질부리고, 덜 피곤하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좋은 곳이 될 것이다. 나는 잠의 힘을 믿는다.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순전히 깊이, 편안히 자는 잠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단절시켜준다.


- 조사결과에 따르면 환자가 말하고 나서 평균 18초가 흐르면 의사들은 말을 끊고 끼어든다고 한다....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진단이나 검사보다 비용이 적게 들지만 치료와 진찰의 핵심이다. 나는 경청이 가장 강력한 약이라는 것을 믿는다.


- 업무에 필요한 단어나 법칙들의 세상을 떠나, 눈으로 보고 코로 감지할 수 있는 평범한 세상에 내 인생의 닻을 내리기 위해 나는 개를 기른다. 개를 산책시키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 머릿속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작은 기쁨들로 가득한 현실세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개는 내가 일,시계, 컴퓨터, 전화기라는 이름의 벽에서 벗어나 냄새와 색깔, 뜻밖의 발견이라는 세상으로 들어 갈 수 있게 해준다. 개는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주변의 소소한 기적에 눈 돌리게 해주는 개 산책을 믿는다. 나는 정처없이 거니는 것을 믿는다. 나쁜 지금이 개를 산책시킬 시간이라는 것을 믿는다.


-검사가 언제나 상기해야 할 것은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포드를 훔치든 캐딜락을 훔치든 같은벌을 받아야 한다.매춘부를 강간하는 것과 교외에 사는 주부를 강간하는 것은 같은 관심을 받아야한다. 마약 중개인을 살해하는 것 역시 촉망받는 유명인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내가 믿는 것이며 오늘날까지 나를 이끌어준 것이다 : 모두가 포함된다


이 책의 목차를 다시한번 보면서 책을 쓰다듬었습니다. 인류애(Humanity), 정의(Justice), 행동(Activity), 자신(Myself), 가족(Family), 신성함(Holiness), 영혼불멸(Immortality)등 일곱 개의 큰 프레임안에 꺠알같은 사연들이 촘촘히 박혀있었지요. 이 책속에 나오는 회장님부터 알바생까지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어쩌면 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냥 지나쳤던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사소히 넘기지않고 그 안에서 그들은 평생의 신념을 발견했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는지 그 의미를 진정성어리게 알려줬고요.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는 '신념' 이 지식인들의 특권인 양 고리타분하게 들렸는데 이 책 <내가 믿는 이것>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내 안의 신념을 깨워봐야겠어요. 여러분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요? 당신이 죽을때까지 지키고싶은 신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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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가쿠타 미츠요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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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련탱이처럼 흔하디 흔한 제목의 소설입니다. 동일한 제목의 소설이 몇개나 떠오르는 거만 봐도 '굿바이 마이 러브'란 제목은 사실상 너무 밋밋해서 잊혀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쿠타 미츠요라는 일본소설가의 이름과 차고 또 차이는 실연이란 화두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7연타 연작소설형식은 신선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아요. 사실 이별이야기란 게 참 흔하디 흔해서 온갖 노래와 영화와 익명게시판과 포차의 안주꺼리잖아요. 그렇지만 이책은 이별=관계의 단절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깨고 파국이나 뻔한 위안을 절제하고 있어서 매력이 있어요.

이 단편 모음집에서 연인을 뻥 차버린 남자는 다음 소설에선 어김없이 채이고, 그저 절절 매기만 하던 여자는 연인에게 소나기같은 이별선언을 합니다. 일본소설의 정서라고 해야할지 등장인물들이 격렬한 슬픔과 좌절보다는 쓸쓸하고 잔잔하게 이별을 대처하는 것도 담백해서 좋았고요. 등장인물에 따라 이별의 온도차이는 좀 있었지만요.

이 책에는 알바로 인생을 연명하는 프리터들과 안정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시소처럼 등장해요.'일과 사랑'중에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사람의 일하는 모습(?) 혹은 직업에서 사랑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기를 동일시 하기도 하며,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일을 더 안정되게 하려는 사람도 있고, 내 직업을 때려치는 사람도 있고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생각한게 이별이란게 이별을 말하는 순간에 이루어지지않는 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이별을 말하는 순간에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인연의 끝을 준비하겠다는 선언이며 이별을 깨닫는 순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바라보는 것. 고장나고 삐걱거렸던 순간을 다락방에 처박아두는 게 아니라 새로운 출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운 인연을 소중히 받아들일 마중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이별의 감염경로가 어떻든 말이죠.

가쿠타 미츠요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에쿠니 가오리보다는 훨씬 일상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균형감각이 있어서 어질어질할 줄도 아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녀의 많은 작품이 그렇게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죠. 상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하는데,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노동시간을 지키면서 수십편의 책을 써낸 프로가 30대가 되어도 알바로 연명하는 프리터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묘사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책<굿바이 마이 러브>는 그런 의미에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자책을 하면서 실연당했다고 악다구니를 치거나 헤롱거리는 친구가 있다면 슬쩍 건네주면 좋을만한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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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직이 결정되었어." 그런 말을 해봤자 유리에의 마음을 되돌일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해도 분명 마키토라는 녀석에게는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데구루루 난폭하게 몸을 뒤척이고 히데유키는 힘차게 방귀를 뿡 뀌었다.

- 성공이란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멋지다는 건 어떤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걸까, 지금까지 좋아한 사람들, 좋아해준 사람들, 좋아해주지 않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주지않았는가를 미숙한 말로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여태껏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옛사랑에게 차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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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13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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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면서 무언가 훔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음... 뭐라구요? 아, 네~ 흠흠, 당신은 너무도 반듯한 삼각자같아서 그런 비도덕한 일은 해본 적 없다고 절 흘겨보시는군요. 물론 달리는 트럭에서 미니쿠퍼 요트맨을 훔치거나 청와대 창고에 들어가 도청기를 훔쳐본 적은 없으시겠지요. 하지만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구멍가게에서 쫀디기나 아폴로 딸기맛을 훔쳐본 적 진짜...없나요? 엄마지갑에서 동전을 훔쳐본 적도 진짜진짜 없어요?  정 그러시다면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훔쳐본 적도 진.정. 없.답.디.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훔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잖아요.

 

이 책<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어느 날 아빠가 사라졌다. 우리집도 사라졌다. 엄마와 나, 내 동생에게 남은 것은 자동차 한 대와 1g의 용기뿐.' 이라며 비장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무언가를 훔치는 방법에 관해 능청스럽고 탁월하게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머릿속에선 모든 계획이 더없이 완벽했다.

 

개를 훔친다.

전단지를 발견한다.

개를 집으로 데려간다.

사례금을 받는다.

행복하게 끝.

 

똑똑한 여주인공,조지나의 노트에는 이런 전략이 적혀있습니다. 물론. 공범자 토비의 활약도 대단하죠.

 

"얘가 배고파지면 어떡해?" 토비가 계단 아래에서 소리쳤다. 배고파진다고? 이런, 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내가 놓친 것을 토비 녀석이 생각해내다니, 젠장, 젠장, 젠장.

 

사건이 복잡해질 때마다 보라색표지의 전략노트는 업그레이드됩니다. 조지나가 연필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개를 훔치는 완벽한' 전략노트를 수정하는 걸 훔쳐보는 재미는 정말 쏠쏠하죠. 아니, 오히려 고맙습니다. 저는 사실, 집이 없어서 맥도날드에서 세수를 하고 옷에서 냄새난다고 놀리는 친구들사이에서 입술 꾹 깨물고 버티는 조지나때문에 왈칵 눈물 쏟곤 했는데 이 보라색노트만 나오면 눈물이 그치더라고요. 예전에 저도 부서진 가족의 시절이 있었는데 그 화장실없는 집에서 살아야했던 기억때문에 더 절절했을지도 모르죠.

 

이 책의 저자,바바라 오코너는 알고보니 청소년문학의 베스트셀러작가라고 책뒤에 나와있더군요. 온갖 상을 수상한 이력이 찬란합니다. 그녀의 위력은 등장인물중에 미운사람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있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지나와 무키아저씨나 카멜라아줌마나 토비나 모두 밉지않아요. 심지어 토비엄마는 힘들면 소리도 지르고, 아이들에게 짜증도 부릴 줄 아는 무척이나 피곤한 엄마입니다. 대문으로 가난이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간다는데 토비엄마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게 느껴집니다.심지어 표적이 된 개, 윌리까지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있으면서도 엉뚱하고 발랄하니 말 다했죠.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 세손가락으로 무키아저씨는 무심히 말합니다. 이 책을 보신 분 만 아시겠죠?(스포일러 될까봐 더이상의 줄거리는 없습니다.^^) 나쁜 상황이 꼭 나쁜 마음만을 불러내는건 아니라고, 그 순간을 기다려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기다려주면 그 나쁜 상황은 때로는 성장의 시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좋은 가르침이 잘 물들어있어서 더욱 이쁜 책입니다.

 

나는 비혼자이지만 졸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싶은 로망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애가 엉뚱한 거짓말을 하거나 우리 조카가 가출해서 우리집에 오면 이 책을 꼬옥 읽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잠자기전 말고 낮에 읽어주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왜냐고요? 다음 장면이 자꾸만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릴수밖에 없는 책이거든요. 설교를 하거나 단정을 짓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결정하게 시간을 주는 것! 비단 이런 것이 어린이에게만 해당될까요? 사실 연인이나 직장상사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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