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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강한 포스를 드러내었던 미실의 이야기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낸
소설<미실>의 작가, 김별아의 신작 <채홍>입니다. 연작 시리즈물이라는데, 전작과의
공통점을 따져보자면 둘 다 역사적인 인물을 차용하였고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고요.
사실 이 장편소설 <채홍>이 더 자극적이죠. 조선왕조실록 유일한 왕실 동성애 스캔들 주인공을
모셔왔거든요. 세종의 며느리인 순빈 봉씨는 역사책에서는 단 몇줄밖에 안나오는 그런 인물인데
김별아작가는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순빈 봉씨가 어찌하여 얼레리꼴레리 음탕녀로 찍혔다가
끝내는 친정으로 돌아가 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지까지 애절하게 그려냅니다.
우선 역사책속의 순빈을 찾아보죠.
“성질이 투기가 많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며, 또 궁궐 여종들에게 항상 남자를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또 세자가 종학으로 옮겨 가 거처할 때에 몰래 시녀의 변소에 가서 벽 틈으로 엿보아 외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세종실록 , 1436년 10월 26일자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 세종실록 , 1436년 10월 26일자
사실 세종의 아들은 중전들에게 정을 주지않아서 두명이나 폐위하게 만드는 장본인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완벽주의자이며 왕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한 세자의 입장을 여러 각도에서
친절하게 묘사하고 납득을 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세종의 입장과 여러 등장인물의 입장도
누구 하나 납득이 안되는 사람이 없지요. 하지만 이 소설의 첫장을 넘기는 저같은 응큼한
독자로서는 책의 중반부를 넘어갈때까지도 봉씨의 애인(?)이 등장하지않아 점점 맥이 빠지고
집중력이 흐려졌어요. 왜냐하면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부터 그 야한 스캔들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했고, 저또한 은근히 그 스캔들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나란 여자, 야한 뇨자? ㅎ)
두가지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채홍'이 된것은 채홍이 무지개란 뜻이며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죠. 엄밀히 보자면 이 책은
성에 대한 소수자들의 인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성소수자들은 성욕이 강한데
아무도 안아주지않으면 결국 주변에 보이는 여자든 남자든 안가리고 욕망을 분출하는 거로구나.
그런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참 많아요. 여기에 한몫하는 것은 작가가 주인공인 순빈 봉씨를
묘사함에 있어 자기의 의견을 왕에게 주장할 정도로 강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어릴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서 궁에 들어와 겪는 외로움에 큰 자괴감에 빠지는 것으로 설정하지요.이런
고통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고 있는데 욕심이 과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궁이라는 감옥에 갇혀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린 여인들이 어디
봉씨 뿐겠습니까. 격식,절차,의례, 명분,도리앞에서 질식해 죽을 것 같은 여인의 삶과
숨통을 틔우고 혈기를 돌게 하는 탈출구의 해법이 '동성애'라면 정당화된다는 소리는 분명
아닐진대...이미 애인이 있던 여종을 권력으로 옆에 두고서 '사랑' 이라니요.
게다가 폐위당한 여동생을 칼로 죽이는 오빠는 이렇게 외치죠.
"가라! 부디 다음 세상에선....사내로 태어나라!"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과연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읽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재미와 교훈, 지식의 3요소로 정리가 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스펙타클하거나
반전이 있거나 긴장감으로 저에게 재미를 주지는 않았어요. 조선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역사적 지식과 억압의 사회에 내가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할까, 그런 교훈?
이 소설이 역사소설이라고 해서 나는 이 소재를 단지 과거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순간도 지나면 역사인 거고,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점의 오픈된 민주사회라고 보지도
않으니까요. 내가 이 시대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우려하는 분도 있겠지만 '시대와 불화'하는
나의 태도가 결국 독서를 지탱하는 힘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김별아작가의 맛깔스런 문장들은 내내 머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낯선 의태어와
의성어들을 읽고 있자니 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어떤 뜻인지 감이 오더군요. "내가 한국인이 맞긴
맞나보구나"하면서 미소지으며 이 책을 읽어내려갔거든요. 순우리말 표현이 많아서 좋았고,
리듬감있는 문장들을 보면서 많이 조사하고 퇴고했겠구나 하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고요.
내러티브나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스럽지만, 그 어휘력만은 별 다섯개를 주고싶네요.
조선시대 여성 삼부작이 나온다고 하니, 마지막 작품도 기대해보렵니다.
사실 김별아작가님은 도발적이고 야한 것도 부끄럽다 도망가지않고 씩씩하게 잘 쓰는 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