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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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내가 하루키를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 하루키매니아들에게 돌맞을 소리지만) 이 책은 그동안 재즈들으며 맥주 홀짝거리면서 나른한 표정으로 '일본이 싫어싫어~' 하던 하루키의 이미지를 확 바꿔준 책이 되었네요. 감축!

  

언더그라운드 1,2권을 연달아 읽어제꼈습니다. 그냥 읽은 게 아니라 냉모밀을 후루룩 마시듯이 그렇게 흠뻑 빠져서 읽었다는 얘기죠.  실제 사건이라는 흥미있는 소재, 파격적인 형식, 개성으로 뭉친 하루키가 작가의 정체성을 최대한 뒤에 감추고 책을 썼으니 이런 3박자라면 무서운 왈츠도 아름답겠죠. 책의 소재는 1995년 3월 20일 일본 지하철역에 독가스를 살포하여 13여명이 죽고 6000여명이 피해를 입은 실제 옴진리교사건입니다. 피해자 증언집이 1편, 가해자(?) 아니아니,옴진리교에 몸담았던 신자들의 증언집이 2권으로 묶었으니 정말 사실은 허구보다 힘이 셉니다.

 

1권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의 증언이 마치 극적인 사건을 겪은 슬픈 단편소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세기말적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독가스를 맡아 몸이 안좋은데도 기어이 회사로 가는 조립부품같은 사람들과, 인도에 쓰러진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걸 보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타인들과 휴우증으로 고생하면서도 화낼 대상을 찾지 못한 슬픈 자화상이랄까요. 2권은 더합니다. 종교집단에 들어간 사람들의 공통점을 연결하다보면 이 사회시스템에서는 그들을 수용할만한 어떤 공간도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컬트종교는 유의미성을 가진다는 결론까지 도달하면 맥이 풀립니다.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요즘별별 사건이 다 일어나는 우리나라와 오버랩이 됩니다. 고도의 성장후 소외와 소통의 격차로 사회적 문제가 많았던 일본의 90년대의 모습에서 21세기의 우리나라를 보는 듯하달까요.  또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친 재앙에 노출된 보통 사람들의 상처와, 평온한 안식과 진리추구를 위해 속세의 모든 것을 털고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 모두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눌 수 없는 암수한몸의 원형이란 것을 깨닫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1Q84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이 책에서 제가 주목하는 점은 하루키의 소설형식입니다. 하루키가 직접 사건피해자들을 만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증언을 녹취한 후 최대한 텍스트로 간결하게 다듬고 작가의 어떤 메세지도 가공하지 않은 채 재구성한 한마디로 기록문학, 인터뷰집이 된거죠. 매스미디어에서 종교와 가해자에게만 집중된 사건을 일반사람, 피해자중심으로 옮겨와 사건을 재해석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놀라웠습니다. 르뽀문학이라면 최근 공지영의 <도가니>만큼은 못하겠지만요. 하루키는 증언해준 사람들 하나하나의 메세지를 텍스트화하면서 새로운 작가정신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모양입니다. 이 작품의 자기 문학세계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키워드는 '컬트 신흥종교'입니다. 하루키가 옴진리교신자였던 사람들 모두에게 "옴진리교에 입신한 것을 후회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들 거의 대부분은 입을 모아, "아니, 후회하지 않고 그 시간이 허송세월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왜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현세에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순수한 가치가 거기에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이상한 종교집단들은 왜 상식적으로 행동하지를 못할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사유적이고 조금 더 진리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안스럽고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요.  

 

사건후 16년만에 그러니까 작년 11월 결국 옴진리교 독가스사건의 주모자 13명은 살인이 확정되었습니다. 옴진리교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의 진실은 어떤 것일지 지금도 궁금하긴 하지만, 그들이 죽는다해도 이 종교는 사라지지않을 모양입니다. 2대 교주로 쇼코의 아들이 이미 영전해있는 상태라네요. 그리고 독가스사건을 기억못하는 일본  젊은이들은 세상과의 불협화음속에서 여전히 진리를 찾아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옴진리교에 가입을 많이 하고 있다더군요. 이 현상이 더 세기말적으로 느껴집니다.공포스럽지만 눈물나게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이죠.

 

만약 이 책을 읽고싶은 분이 있다면 지하철 출근길에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책에 쏘옥 빠져서 그 공포감이 더욱 증폭될 것입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라니깐요! 지하철역이 단순한 사건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의 '지하(언더그라운드)'와 현대사회의 '지하'를 목도할 좋은 기회니까요.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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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컬 라이팅 - 핵심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논리적 글쓰기
데루야 하나코 지음, 송숙희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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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엄청나게 보고서만들고 프리젠테이션하던 시절, 상사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이 있는데  <로지컬 씽킹>입니다. (아, 제목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서양의 여성이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아마 다른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10년이나 지난 지금, 인연이 닿아 펼쳐들게 된 책은 이름하야 <로지컬 라이팅>.

 

둘다 맥킨지식 문제해결의 방식인 MECE와 So what, Why so 개념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상호간에 중복없이  전체적으로는 누락없이 논리적 구조를 만드는 방법에서 출발하는 책이죠. 논리적 사고를 하는 것이나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이나 매한가지이지만 확실히 So what, Why so 는 MECE의 주요 프레임웍으로써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면서 설득력 글쓰기의 유용한 패턴을 보여주고 자기 원점으로 돌아가 반성하게 만듭니다.게다가 글을 쓰다보면 의욕만 높아서 나중에 메세지가 산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중짐을 놓치지않게 도와주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요즈음에 생태와 건강, 문학과 인문학사이에서 책읽기에 몰입하고 있으나 글쓰기와 사고력 배양에 관한 책을 간간히 다시 탐독하는 데에는 정말 basic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초적인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떤 비즈니스나 연애조차도 커뮤니케이션없이는 성립되지않잖아요^^알기 쉽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의견을 납득시키고 설득한다기 보다는 무엇보다도 오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하는 첫걸음은 역설적이게도 내 자신에게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얼치기 독심술사 증후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이러한 메시지의 정의로 돌아가 테마를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반응이 뭐였지? 물어보는 두 가지 확인 작업은 필수고요,엄밀히 말해서 MECE(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가 핵심개념이긴 하지만 MECE가 가치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어서 가치가 있는 MECE를 도출하는게 중요하니까요.

 

이 책은 MECE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도입부와 표현에 포커스를 둡니다. 읽어볼만해요. 그러나 꾸준히 연습하지않으면 도로나무아미타불이겠죠. 무엇보다 설득이란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져야 실행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소위 흔들리는 눈빛이나 진정성이 정답일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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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개정판 패러독스 5
조지 레너드 지음, 강유원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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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TV방송은 동물농장과 인간극장, 생활의 달인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논픽션이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야기속에서 주는 소소한 감동에 있죠. 특히 생활의 달인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이 스티브 잡스옹 못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생활의 달인이 되는 가이드북이죠. 보통의 책들이라면 성공학적 관점에서 펼쳐질텐데 이 책은 게슈탈트심리학,뇌과학,동서양철학을 융합하여 달인이 되는 법, 과정의 고통을 해석하는 점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바로 조지 레너드의 <달인>입니다.  이 책은 달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눈이 반짝거리시죠?  제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왠만하면 읽은 다 읽은후 다시 사는 법이 없는데 이 책은 다 읽고 한번 어루만져 준 다음에 온라인서점에서 바로 구매를 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예요. 아, 달인이 되는 법이 뭐냐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연습과 정체기를 사랑하라는 2가지로 축약된다고 볼수 있겠네요. 너무 싱겁다고요? 과연그럴까요? 이 책은 '배움'에 대한 책이고 굉장히 위로가 되는 좋은 책입니다.

 

제가 올해 나름 100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바, 그게 참 호락호락하지 않은터에 이 책을 접하고서 101%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레너드는 말합니다. 달인의 길은 반드시 정체기로 가득하다고 말이죠. 이런 그래프까지 보여준다니까요.

 

이 곡선을 보면서 맞아맞아! 맞장구를 치게 되더군요. 지루하고 맥빠지는 정체기를 거치다가 어느순간 눈이 환해지면서 실력이 상승하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바로 쭈욱 실력이 하강하고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늘지않는 정체기에 빠집니다. 그리고 길고 지루한 그 기간이 지나 갑자기 한단계 도약을 하게 되죠. 이것은 고등학교때 영어공부를 할때도 느꼈고, 볼링에 한참 빠졌을 때에도 체험했었거든요. 이때 "내가 뭐, 프로 볼링선수가 될것도 아니고, 이정도면 충분하지,머"그러는 친구들은 그당시 거의 밍숭밍숭한 실력으로 볼링의 진짜 미묘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말죠. 이 곡선은 영원히 머리속에 담아두고 싶더군요.

 

또 성공이라는 것, 달인이 된다는 것은 특정 개인만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슬럼프에 빠졌을때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정말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줄곧 노력만 하면 즉각적인 성장과 상승을 맛볼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죠. 달인이 되는 것은 전진과 상승,그리고 쇠퇴와 정체의 반복을 잘 견뎌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연습과 정체기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한 거죠. 정체기를 사랑하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은 정말 따스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것은 거의 항상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며, 명예는 목마른 자에게 바닷물을 주는 일과 마찬가지다. 아무 대가없는 상태에서조차 기꺼이 일에 매달리고 그 일을 사랑하는 것, 이것만이 좋은 음식이자 음료수이다.

 

사실 지겨움의 본질은 강박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서 비롯된다. 만족이란 마음속에 새겨진 반복속에 존재하며, 익숙한 주제를 미묘하게 변조하면서 끝없는 풍부함을 발견하는 데 있다.

 

아무 목적도 없을 때조차도 정기적으로 연습을 한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번거롭다. 그러나 결국에는 연습이 우리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 되는 날이 온다. 시간에 신경쓰지 말고 세상의 격동따위는 잊은 채 편안한 의자에 앉듯이 연습에 몰두하라. 내일도 연습이 있을 것이다. 이를 그만 두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 죽을 때까지 배울 수 있고, 그 끈질긴 배움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구분해주는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인간은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다.인간은 무엇보다 배우는 동물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배운다는 그 한마디가 인간 종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달인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달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특징적인 측면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캐딜락을 타고 콘서트를 보러가던 텍사스 출신의 청년둘이 뉴욕의 저지 이스트사이드에서 길을 잃었다. 그들은 차를 멈추고 수염을 기른 노인에게 물었다."카네기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연습!"

 

가장 재능있는 학생이 가장 뛰어난 무술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떠오르는 기사꼭지가 있습니다. 김연아의 코치에게 물었다지요. "김연아의 단점이 몬가요?"코치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연아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연습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달인과 달인이 되는 길은 하나인 것이죠. 내 목표와 과정을 '명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동사'로 받아들이고 연습하는 것. 앞으로 나의 일과 느낌, 리듬을 더욱 사랑해야겠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펴보고싶은 책<달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정말 요즘은 행복한 일 투성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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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양장) -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
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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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입니다. 이 스펙타클한 제목과 초콜릿빛깔의 책디자인과 두꺼운 하드커버는 아주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오늘이 화이트데이인데 이런 날 리뷰를 쓰는 책이 <나쁜 초콜릿>이라니! 너무 다큐스럽다고 생각되시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아이러니와 동시성이 오히려 비극이 숨어있는 시트콤스럽다고 생각되실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얼마전에 본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중국  있는 세계최대의 OEM업체 팍스콘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뉴스였죠. 직원이 120만명이라죠. 충격적이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임금에 자살률도 높은 곳이죠. 게다가 직원들은 아이패드를 제대로 본 적도 별로 없고 말이예요. 완제품을 처음 만져보고 신기해하는 여성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패드 열풍때문인지 수백명씩 우르르 뽑은 신규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참 입맛이 씁니다.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이폰과 문명의 이기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낸 것이라니 말이죠. 설마 삼성의 구미공장도 저런 식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  

 

위의 뉴스는 이 책 <나쁜 초콜릿>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습니다. 이 책은 150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온두라스에서 카카오를 처음 본 이래로 남미에서 카카오가 어떻게 아프리카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초콜릿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이후 초콜릿은 숭배와 중독의 대상이 되었죠. 그저 달기만해도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초콜릿 산업을 조명하고 있는데 다국적 초콜릿 제조기업과 아프리카 정부, 유럽과 아프리카 조폭단체가 어떤 시스템으로 엮여있는지를 보여주죠. 무엇보다도 그 달콤한 초콜릿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단맛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판 노예제도를 보는 듯 하더군요.  카카오산업의 아동노예제를 알리려던 기자는 암살당했고 오죽하면 2001년 미국의 엘리엇 엥겔 하원 의원은 모든 초콜릿 제품에 '슬레이브 프리(slave free)' 문구를 넣는 법안을 발의했을까요. 이곳에서 카카오에 독성있는 제초제와 곰팡이 살균제를 뿌리는 아이들은 말합니다. "카카오로 뭔가를 만드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요. 초콜릿요? 그게 뭐예요?" 그들은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을 찾자면 초기의 초콜릿기업인 '허시'입니다. 밀턴 허시는 초대박으로 거둬드린 돈으로 제과공장안에 '어떠한 빈곤도 폐단도, 악행도 없는' 온정적 자본주의 공동체를 세우려했죠. 허시는 공장안에 호수크기의 수영장과 놀이공원, 대리석 로비의 대극장과 야외음악당,골프장,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정원과 전차까지 운행했죠. 가로등은 키세스초콜릿모양이고 메디컬센타는 물론 직원을 위한 단독주택과 사립학교, 보험과 퇴직연금도 주고요. 하지만  허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합니다. 왜 그랬냐고요? 아주 간단합니다. 밀턴 허시는 노조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처럼 말이죠. 결국 밀턴 허시는 자비심많은 독재자였던 셈이죠.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결시킨 최초의 기업은 그렇게 쓰러져갑니다.

 

저자인 캐나다의 다큐 기자, 캐럴 오프는 코트디부아르와 말리등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뛰어따니면서 초콜릿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카카오를 따는 손과 초콜릿의 은박지를 벗기는 손사이의 거리는 참 멀더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나쁜 초콜릿>은 음식에 관한 미식가의 책이 아니라 인권과 정의에 대한 책이죠. '달콤하고 값싼 즐거움이 과연 정당한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초콜릿이 달콤하다고만 여길 수 없는 이유와 '공정무역'의 비공정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신의 음식이라 불리우는 초콜릿, 사드후작은 초콜릿중독자였다고 하죠. 그 당시에는 그나마 건강에 좋았겠지만 요즘 초콜릿에는 엄청난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씁니다. 독성 농약중에서도 최악으로 손꼽히는 몬산토가 만든 미국산 농략인 '라운드업'을 쓴다는 군요. 인종이나 세대,종교와 상관없이 보편적인 사치품,간식이 되어버린 이 농약음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화이트데이입니다. 무엇보다 아이패드 구경도 못해본 중국 애플 공장 근로자들에게도 '화이트데이'란게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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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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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환자중심의 의료에서 환경중심의 의료로..

 

 

이반 일리치는 학교가 학생을 망친다는 그의 책<학교없는 사회>를 우연히 접하고서 알게 되었는데 그의 전복적인 사고를 지지하고 동의하는 바가 커서 이 참에 그가 생각하는 의료와 교통에 대해서도 알아보자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죠. 반드시 리뷰를 쓰지 않아도 되고, 독서토론모임에서 꼭 읽어야하는 책이 아닌 내가 선택한 책이라 더 뿌듯하고 반갑게 책을 읽었네요.

 

이반 일리치(이반 일리히,라고 저자명이 되어있으나 그는 '이반 일리치'라고 불러달라는 얘길 들어서 저도 일리'치'라고 씁니다)는 노년에 10년간 종양을 목에 달고 살았습니다. 수술을 통해 제거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살았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래서 그가 말하는 현대 의료라는 유행병과 죽음, 건강의 정치학에 대해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의사와 병원, 그리고 의료제도의 역생산성을 지적하면서 의료기술이 도구로써의 역할을 뛰어넘어 인간을 소외시키고 지배하는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참고문헌이 매 페이지마다 소개되어 있어서  이반 일리치가 정말 20세기 최고의 지성이고, 학자이고 실천가로구나,하는 감탄이 알알이 배여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역시나 아나키스트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미국에서는 매년 5만명이 병원에서 감염되어 사망을 한다죠. 감기환자 10명중에서 6명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과다처방과 오남용에 대해서도 이미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것이 단 외국의 문제일까요? 얼마전 뉴스에서 우리나라가 OECD 30개국중에서 항생제 처방율이 1위라고 나왔습니다. 항생제를 하도 처방하니 내성이 생겨 슈퍼박테리아균이나 폐렴구균 출현빈도가 미국의 2배이고요. 항생제는 사실 감기약이 아닙니다. 사실 감기에는 일반적으로 2주이내에 자연적으로 낫기 때문에 오히려 항생제를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고 부작용의 우려도 있죠. 항생제란 38도이상 열이 심하거나 세균성 폐렴등 2차 세균 감염이 생겼을때나 쓰는 것인데 오히려 이런 처방으로 미국에서는 에이즈사망자보다도 더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도 15개 대형병원의 퇴원 환자중에 4%가 각종 세균에 감연되어 고치려는 병이외에 다른 병을 얻는다네요. 그렇다면 시설이 부족한 작은 병원은...?

 

이반 일리치의 의료제도 비판 핵심내용을 살펴봅니다. 그는 의료기술의 진보가 사실 질병을 치유한 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14세기의 페스트균은 19세기에도 여전히 남아있고 결핵,콜레라,이질,장티푸스도 질병을 잡아낸게 병원이 아니라 마시는 물의 수질이나 쓰레기분리등 주변환경의 개선에 있으며 이런 질병의 특수한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미생물 유기체의 독성이 대부분 상실한 것이라는 다양한 논문을 들이대지요. 사람의 수명이 높아진 것도 의학의 진보가 아니라 식생활의 영양이 좋아져서 인간의 저항력과 면역력이 좋아진 것뿐이라고요. 그외에도 인간의 자유치유능력을 무시한 수술과 투약의 현대판 미신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그외에도 물가보다 의료경비는 330%나 증가했으며 의료제도의 독점으로 인해 의사나 병원의 의료체계가 우리 몸에 대한 내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고 있죠.

 

또 세 종류의 병원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임상적 병원병, 사회적 병원병, 문화적 병원병이라고 명명되어있는데 쉽게 말해서 임상적 병원병은 의사들이 치료 과정 중에 더해진 병이고, 사회적 병원병은 질병을 치료한다는 약제나 치료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인데 알고보면 각종 약제들이라는 것이 별 의미없는 치료더라는 거고요.뭐, 한때는 정신병이 있다고 뇌의 전두엽을 그냥 가위로 도려내는 수술도 하고 매독환자에게 수은치료를 해서 중독으로 죽이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또 문화적 병원병은 인간이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단편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시각을 갖게되어 인간성이 말살되고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심하게 손상시킨다는 논제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3장. 고통의 말살부분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가 가진 치료법은 물론이고,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문화적 의미와 실존적인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의견입니다. 정말 이 부분은 많이 공감이 가더군요.그리고 의사가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주장도 충격적입니다. 진료시 의사는 첫 진단에 의해 이론적으로 그의 환자가 어떤 질병에 걸려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안전장치(fail-safe)의 원칙에 의해 의사는 환자에게 질병이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언제나 어떤 질병이 잠재되어있다고 말하는 쪽으로 행동해야한다는 거죠. 의학적 결정의 규칙이 의사를 압박하여 건강하다기보다는 질병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으로 안전함을 추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이러한 자기 방어적 진료양태가 존재하지 않는 병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일리치는 고발합니다. 따라서 일리치는 질병으로부터 사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정치의 임무이지, 의사인 전문가의 임무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이반 일리치는 의사의 수가 늘고, 의료 기계가 현대화되고, 병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건강치료를 받고 있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에 의해 건강관리에 대한 의료제도의 독점은 큰 문제라고 말이죠. 결국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병원이 병을 만드는 '병원병'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리치의 주장은 현대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병원병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가능한 한 광범위한 시야와 유효한 힘을 지녀야 한다고요. 그리고 의료산업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중독자인 일반인들을 보호하고, 빈부의 차이에 따른 의료행위를 평등화하는 작업과 의료전문가에 대한 공적인 통제, 의학연구도 더욱 과학적이고 사회적으로 기준과 조직을 만들 것, 환자중심의 의료에서 환경중심의 의료로 전환할 것등 이반 일리치의 대안은 FTA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더욱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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