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초콜릿 (양장) -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
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부제는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입니다. 이 스펙타클한 제목과 초콜릿빛깔의 책디자인과 두꺼운 하드커버는 아주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오늘이 화이트데이인데 이런 날 리뷰를 쓰는 책이 <나쁜 초콜릿>이라니! 너무 다큐스럽다고 생각되시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아이러니와 동시성이 오히려 비극이 숨어있는 시트콤스럽다고 생각되실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얼마전에 본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중국 있는 세계최대의 OEM업체 팍스콘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뉴스였죠. 직원이 120만명이라죠. 충격적이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임금에 자살률도 높은 곳이죠. 게다가 직원들은 아이패드를 제대로 본 적도 별로 없고 말이예요. 완제품을 처음 만져보고 신기해하는 여성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패드 열풍때문인지 수백명씩 우르르 뽑은 신규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참 입맛이 씁니다.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이폰과 문명의 이기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낸 것이라니 말이죠. 설마 삼성의 구미공장도 저런 식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
위의 뉴스는 이 책 <나쁜 초콜릿>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습니다. 이 책은 150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온두라스에서 카카오를 처음 본 이래로 남미에서 카카오가 어떻게 아프리카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초콜릿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이후 초콜릿은 숭배와 중독의 대상이 되었죠. 그저 달기만해도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초콜릿 산업을 조명하고 있는데 다국적 초콜릿 제조기업과 아프리카 정부, 유럽과 아프리카 조폭단체가 어떤 시스템으로 엮여있는지를 보여주죠. 무엇보다도 그 달콤한 초콜릿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단맛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판 노예제도를 보는 듯 하더군요. 카카오산업의 아동노예제를 알리려던 기자는 암살당했고 오죽하면 2001년 미국의 엘리엇 엥겔 하원 의원은 모든 초콜릿 제품에 '슬레이브 프리(slave free)' 문구를 넣는 법안을 발의했을까요. 이곳에서 카카오에 독성있는 제초제와 곰팡이 살균제를 뿌리는 아이들은 말합니다. "카카오로 뭔가를 만드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요. 초콜릿요? 그게 뭐예요?" 그들은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을 찾자면 초기의 초콜릿기업인 '허시'입니다. 밀턴 허시는 초대박으로 거둬드린 돈으로 제과공장안에 '어떠한 빈곤도 폐단도, 악행도 없는' 온정적 자본주의 공동체를 세우려했죠. 허시는 공장안에 호수크기의 수영장과 놀이공원, 대리석 로비의 대극장과 야외음악당,골프장,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정원과 전차까지 운행했죠. 가로등은 키세스초콜릿모양이고 메디컬센타는 물론 직원을 위한 단독주택과 사립학교, 보험과 퇴직연금도 주고요. 하지만 허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합니다. 왜 그랬냐고요? 아주 간단합니다. 밀턴 허시는 노조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처럼 말이죠. 결국 밀턴 허시는 자비심많은 독재자였던 셈이죠.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결시킨 최초의 기업은 그렇게 쓰러져갑니다.
저자인 캐나다의 다큐 기자, 캐럴 오프는 코트디부아르와 말리등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뛰어따니면서 초콜릿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카카오를 따는 손과 초콜릿의 은박지를 벗기는 손사이의 거리는 참 멀더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나쁜 초콜릿>은 음식에 관한 미식가의 책이 아니라 인권과 정의에 대한 책이죠. '달콤하고 값싼 즐거움이 과연 정당한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초콜릿이 달콤하다고만 여길 수 없는 이유와 '공정무역'의 비공정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신의 음식이라 불리우는 초콜릿, 사드후작은 초콜릿중독자였다고 하죠. 그 당시에는 그나마 건강에 좋았겠지만 요즘 초콜릿에는 엄청난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씁니다. 독성 농약중에서도 최악으로 손꼽히는 몬산토가 만든 미국산 농략인 '라운드업'을 쓴다는 군요. 인종이나 세대,종교와 상관없이 보편적인 사치품,간식이 되어버린 이 농약음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화이트데이입니다. 무엇보다 아이패드 구경도 못해본 중국 애플 공장 근로자들에게도 '화이트데이'란게 있을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