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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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내가 하루키를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 하루키매니아들에게 돌맞을 소리지만) 이 책은 그동안 재즈들으며 맥주 홀짝거리면서 나른한 표정으로 '일본이 싫어싫어~' 하던 하루키의 이미지를 확 바꿔준 책이 되었네요. 감축!

  

언더그라운드 1,2권을 연달아 읽어제꼈습니다. 그냥 읽은 게 아니라 냉모밀을 후루룩 마시듯이 그렇게 흠뻑 빠져서 읽었다는 얘기죠.  실제 사건이라는 흥미있는 소재, 파격적인 형식, 개성으로 뭉친 하루키가 작가의 정체성을 최대한 뒤에 감추고 책을 썼으니 이런 3박자라면 무서운 왈츠도 아름답겠죠. 책의 소재는 1995년 3월 20일 일본 지하철역에 독가스를 살포하여 13여명이 죽고 6000여명이 피해를 입은 실제 옴진리교사건입니다. 피해자 증언집이 1편, 가해자(?) 아니아니,옴진리교에 몸담았던 신자들의 증언집이 2권으로 묶었으니 정말 사실은 허구보다 힘이 셉니다.

 

1권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의 증언이 마치 극적인 사건을 겪은 슬픈 단편소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세기말적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독가스를 맡아 몸이 안좋은데도 기어이 회사로 가는 조립부품같은 사람들과, 인도에 쓰러진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걸 보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타인들과 휴우증으로 고생하면서도 화낼 대상을 찾지 못한 슬픈 자화상이랄까요. 2권은 더합니다. 종교집단에 들어간 사람들의 공통점을 연결하다보면 이 사회시스템에서는 그들을 수용할만한 어떤 공간도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컬트종교는 유의미성을 가진다는 결론까지 도달하면 맥이 풀립니다.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요즘별별 사건이 다 일어나는 우리나라와 오버랩이 됩니다. 고도의 성장후 소외와 소통의 격차로 사회적 문제가 많았던 일본의 90년대의 모습에서 21세기의 우리나라를 보는 듯하달까요.  또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친 재앙에 노출된 보통 사람들의 상처와, 평온한 안식과 진리추구를 위해 속세의 모든 것을 털고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 모두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눌 수 없는 암수한몸의 원형이란 것을 깨닫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1Q84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이 책에서 제가 주목하는 점은 하루키의 소설형식입니다. 하루키가 직접 사건피해자들을 만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증언을 녹취한 후 최대한 텍스트로 간결하게 다듬고 작가의 어떤 메세지도 가공하지 않은 채 재구성한 한마디로 기록문학, 인터뷰집이 된거죠. 매스미디어에서 종교와 가해자에게만 집중된 사건을 일반사람, 피해자중심으로 옮겨와 사건을 재해석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놀라웠습니다. 르뽀문학이라면 최근 공지영의 <도가니>만큼은 못하겠지만요. 하루키는 증언해준 사람들 하나하나의 메세지를 텍스트화하면서 새로운 작가정신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모양입니다. 이 작품의 자기 문학세계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키워드는 '컬트 신흥종교'입니다. 하루키가 옴진리교신자였던 사람들 모두에게 "옴진리교에 입신한 것을 후회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들 거의 대부분은 입을 모아, "아니, 후회하지 않고 그 시간이 허송세월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왜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현세에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순수한 가치가 거기에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이상한 종교집단들은 왜 상식적으로 행동하지를 못할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사유적이고 조금 더 진리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안스럽고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요.  

 

사건후 16년만에 그러니까 작년 11월 결국 옴진리교 독가스사건의 주모자 13명은 살인이 확정되었습니다. 옴진리교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의 진실은 어떤 것일지 지금도 궁금하긴 하지만, 그들이 죽는다해도 이 종교는 사라지지않을 모양입니다. 2대 교주로 쇼코의 아들이 이미 영전해있는 상태라네요. 그리고 독가스사건을 기억못하는 일본  젊은이들은 세상과의 불협화음속에서 여전히 진리를 찾아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옴진리교에 가입을 많이 하고 있다더군요. 이 현상이 더 세기말적으로 느껴집니다.공포스럽지만 눈물나게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이죠.

 

만약 이 책을 읽고싶은 분이 있다면 지하철 출근길에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책에 쏘옥 빠져서 그 공포감이 더욱 증폭될 것입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라니깐요! 지하철역이 단순한 사건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의 '지하(언더그라운드)'와 현대사회의 '지하'를 목도할 좋은 기회니까요.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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