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하나의 사랑이 있다. 영석과 선희의 사랑. 나이 든 남자인 영석은 응석을 부리고 나이 어린 여자인 선희는 그의 응석을 받아준다. 그들이 사랑하는 풍경이다. 선희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가령 형배와의 관계에서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영석이 형배가 아니고 형배가 영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배가 영석처럼 응석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선희는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이 나의 방식을 정한다. 연인은 사랑하는 자이고, 동시에 연인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하는 자이다.
-p, 146~147

 

 

 


 

사랑의생애.JPG


 

 

 

 

가끔 지나가버린 나의 모습이, 나의 생각이 궁금해질때면 여러 노트들 사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노트인듯 무심하게 꽂혀있는, (나름 가족들 눈엔 잘 띄지 않도록 위장해놓은) 일기장을 꺼내 읽는다. 내가 옆에 있는 사람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나의 일기장을 잠시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마치 여러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처럼 그렇게, 만나는 연인에 따라 다른 성격, 다른 취향, 다른 말투의 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의 방식을 정한다. 연인은 사랑하는 자이고, 동시에 연인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하는 자이다. (p, 147)
      
그랬다. 어떤 연인에게 나는 어리광을 심하게 부리고 질투심이 많으며 소리를 꽥꽥 지르며 싸우는 일이 잦은 여자가 되었지만, 또 다른 연인에게는 무심하고,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는 여자가 되었고, 또 다른 연인에게는 마냥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고, 새벽에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좋아하며 뛰쳐나가는 (연인 사이에 갑과 을이 있다면 을인) 여자가 되었다.

이 모든게 '사랑'이라는 말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건지, 특히 연인과의 관계에서 '지금 이게 정말 사랑이 맞는걸까?'하는 위험한 의문이라도 생겨날때면 내가 알지 못하는, 혹시라도 존재하고 있다면 어떻게서든 알아내고 싶은  '사랑의 표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동안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마다 사랑을 다룬 수많은 영화를 보고, 수많은 책을 읽었듯 《사랑의 생애》라는 이 책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p, 9) 라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레드썬!' 신호와 함께 최면에 걸리듯 그렇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는 모든 사랑에 관련된 행위들의 주체가 '사람'보단 '사랑'이 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의 숙주라고 표현하다니, 이런 멋진 표현에 이전에 연애를 하는 내 모습이 사랑의 숙주가 된 모습으로 보이고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p, 167) 어쩌면 앞으로의 연애에서 그 기간이 길든 짧든 '이번에 내 몸으로 들어온 사랑의 생애는 이 정도구나.' 하고 생각해버릴 것만 같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p, 285)

앞으로도 수없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수없이 사랑에서 빠져나오기도 할 것이다. 사랑에 빠져있을 땐 기꺼이 사랑의 숙주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사랑에서 빠져나왔을 땐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사랑에 대해 한없이 궁금해하며 사랑에 대해 갈증을 느끼기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때마다 이 책에 표시해두었던 부분들에서 시원하진 않지만, 목이 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적으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꾸 떠올리다보니 문득, 내가 상대방에게 "인생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돼?" 하고 물었던게 생각이 났다. 나는 그의 대답에 만족했던가, 하지 못했던가. 그 대답에 비해 내 사랑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컸을까, 작았을까. 

오늘은 그 질문을 나한테 다시 던지며, 이 글을 읽고있는 분들에게도 묻고싶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  

 

 

 

 

 

 

무지가 사랑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연인은 내가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아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연인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이 '모름'은 의식적인 것이다. 연인은 의식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런 의식적인 무지의 과정이 매혹을 위해, 사랑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안다. 사랑의 상대가 지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거니와 꼭 그래서만도 아니다. 현재의 무지는 앞으로의 앎의 과정을 위한 동기로 작용한다. 누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고 시도하지는 않는다.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야한다.

사랑하는 자는 알아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는 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앞으로 알아갈,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잘 알던(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 숙주 안에 깃들어 생애를 시작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일이다.
-p, 31~32


말하자면 매력이란, 특히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이란 어떠어떠하다고 발설하는 순간 흐릿해져버리는 이상한 물질인 것이다. 입김을 불면 사라지는 유리창의 성에와 같다고 해야 할까. 매력을 끈 사람이 희고 갸름한 얼굴선, 삼나무처럼 쭉 뻗은 몸매, 그리고 깊고 강렬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이 매력의 주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인 매력은 일종의 마술, 정신을 빼놓는 홀림과 같은 것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홀린 사람은 자기를 홀린 것이 그 사람의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이지,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홀림당한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홀림은 속수무책인 현상, 그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홀린 사람이 아니다. 분석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p, 71~72


원하는 것이 (많지는 않아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얻고자 누구에게 요구한 경험은 없었다. 그럴 사람이 없었고, 그럴 사람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희를 만나면서 그가 정말로 원한 것은 사랑한다고 해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험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기를 겪는 일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듯 그는 또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요구를 받아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 자기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할 때, 그런 요구를 하는 자기를 보고 그런 요구를 하는 자기 목소리를 들을 때, 그는 흥분했다. 
-p, 142~143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 이는 마치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철학자에 의하면 존재는 모든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이다. 존재의 근거와 같은 뜻으로 존재의 깊이, 그리고 존재 자체라는 표현도 보인다. 존재물들은 이 근거이고 깊이이며 존재 자체인 존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는 모든 존재자들을 품고 있다. 모든 존재자들은 존재 안에 포섭되어 있다. 이 철학적 진술에 기대어 말하면,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근거이다. 사랑의 근거이고 사랑의 깊이이고 사랑 자체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근거이고 깊이이며 사랑 자체인 사랑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 안에 포섭되어 있다.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p, 166~167


그는 연인을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그녀가 언제든 자기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시적으로 시달린다. 그녀가 자기를 떠난다고 할 때 그는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녀가 언제든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는 초조하고 조마조마하다. 그의 사랑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그는 이 사랑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사랑은 순전히 그녀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그녀의 표정과 눈빛과 말투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된다. 사소한 것을 크게 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확대하고 과장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나 의도 없이 짓는 표정이 의식적인 것이 되고 의도한 것이 된다. 
-p, 230


이번에도 사랑의 이기심이 모든 것을 지휘했다. 사람의 덕은 사랑의 이기심을 이기지 못한다. 덕이 이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이 문장에 대한 바른 해석이 아니다. 바른 해석은, 사람이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이다. 
-p, 261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한가하고 부질없는 짓이기 쉽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겪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 그의 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즉 그가 곧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물을 이유가 없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신이고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p, 284~2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거숭이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들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하려나."
눈가에 미소를 띠고 웃는다. 입이 아니라 눈가에 미소를 띠는 모모의 웃는 방식이 사바사키는 좋다.
"이런 짓이라면, 데이트? 섹스? 이성 교제?"
토요일인 데다 거리도 가까워서 이후에는 아마도 모모네 집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묻자,
"그 전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이 잠기거나, 갑자기 쓸쓸해지거나, 불안해지거나"
하고 말을 잇는다. 사바사키가 거들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거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거나, 그런 생각이 든 것에 놀라거나, 행동하고 후회하거나?"
"그래, 맞아, 그거야."
모모는 웃었다. 쾌활하다고 하기에는 체념이 너무 섞인, 하지만 우습다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p, 324

 

 

 

 


 

16584960_1099764926816453_5970578791452377088_n.jpg


 

 

 

 

 

쉽게 헤어짐을 결정하지 못하는 날 볼 때마다 친구는 말했다.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혼자가 되기 무서운 건지도 몰라. 넌 네 옆에 다른 누군가, 지금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야만 헤어짐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

이 말을 듣고 나의 20대 중, 벌써 반 이상을 보냈음에도 오롯이 혼자였던 시간이 정말,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닫곤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서로 약간의 호감이 생기기가 무섭게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이어온 연애를 끝낸 후 '이제 혼자인 건가.' 싶을 때, 아직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새로 다가온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게 또 3년의 연애를 했다.     

친구의 말처럼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혼자가 되는 걸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그렇게, 어쩌다 보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드디어 내 마음의 민낯을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매일 습관처럼 주고받던 연락 속에서 스스로 속이고 있던 내 감정들에 솔직해질 수 있었고, 연인이라는 관계 때문에 고려해야 했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나만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반면, 혼자가 되니 때로는 가벼운 이야기를 가볍게, 특별한 이유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들었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상대의 흔적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이런 장단점을 골고루 경험하는 동안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글에 잠깐 기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부분일 뿐'이며 그래서 편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관계이지 싶다. 연애도 결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부분'이 전부인 양 기대어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다른 '부분'에 절망하여 등을 돌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한 것은 누구든 예외 없이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시점이 변할 수 있기에 그때그때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내 마음의 바닥을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이다. 나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의 건강한 소통을 위해.

 

p, 335_에쿠니 가오리, 《벌거숭이들》 옮긴이의 말 中

 

 

 

 

 

 

유일하게 예약판매 기간에 구매할 정도로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에쿠니 가오리가 좋은 이유에 대해선 막연히 그녀의 글이 갖고 있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그런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읽고 그녀의 글이 좋은 이유에 대한 확신이 섰다. 

비정상적인 관계들, 그 비정상적인 관계들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굳건한 주인공들 때문이었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꼭 비정상적인 관계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이런 주인공들이라면 어떤 어려운 관계 속에 내던져져도 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사람들의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뉘는 이유도 그녀의 글에서 다루는 관계들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는 불륜을 미화하기 때문에, 또 일반적으로 이름 붙여진 '바른' 관계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관계들 때문에.  


이번 《벌거숭이들》 의 주인공들 역시, 에쿠니 가오리의 글답게 비정상적인 관계들 속에 놓여있다. 다만 이런 관계에 대해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른 모든 치장을 다 떨쳐낸 마음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을 통해 어지러운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굳건하게 붙잡고 일상을 끝내주게, 멋지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큰(?)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우리 모두 그 인물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같이 들여다 봐줄 수 있다는 것.


그녀의 글을 읽고 나니 어쩌면 나도, 앞으로 어떤 관계 속에 놓이게 되더라도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을 굳건하게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긴다. 음, 아직은 혼자가 되어야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레벨에 머물러 있지만 곧 레벨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묘한 힘 때문에 내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마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손에 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인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고 되풀이해봤자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모든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하고 모모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걸까.
-p, 68


자신의 일은 마음에 든다. 그러나 가끔 ―예를 들면 지금― 그다지 유쾌하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집 안이라는, 일반적으론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봐버린다.

오후 한 시. 손에 들린 서류에 의하면 다음 현장은 맨션에서 맨션으로, 젊은 부부 플러스 갓난아이 플러스 고양이가 이사한다. 하야토는 다소 기분이 밝아진다. 적어도 가족 모두가 함께 옮겨가는 것이므로.
-p, 111


"그래서, 거긴 어때, 모두 무사하지?"
"물론 모두 무사해요."
유키는 끈기 있게 맞장구를 친다. 자신 이외의 '모두'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간신히 전화를 끊었을 때 아이구야, 하는 식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싶었는데 웬걸, 달콤한 감정이 촛불처럼 소박하게 그러나 생생하게 자신의 가슴에 켜져 있는 것을 유키는 깨닫는다.

취하긴 했어도 에이스케의 말에는 위로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마 책임감도―.
누군가 한 남자의 '돌아갈 장소'라는 것. 결국 그거면 된 거다.
-p, 116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모 말고는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전화가 있고 여자 친구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사람들은 다 어디에다 쏟으며 살까.
-p, 134


일방적으로 상대를 생각한다는 것을, 사바사키는 어릴 적 이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이란, 초·중학생 무렵이다. 어떤 경우는 상대를 그저 좋아했다. 사실상 상대의 기분 따위는 아무려나 좋았다고 이제 와서 깨닫는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무작정 좋아하는 것을 어느 때부터인가 못하게 되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져주는 것이 연애의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바사키는 생각하고 만다. 그런 전제라는 것에, 일을 쉽고 간단히 끌어간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p, 271


살아 있든 죽었든 사람이 타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결국 '부분'이지 싶다.
-p, 303


콩 샐러드를 뒤적이며 모모는 이시와를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 만날 사바사키도.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기보다, 어째서 인간은 꼭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p, 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ϻ"보르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릿마리는 어둠 속 의자에 앉아서 맨 처음 그 지도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된 빨간 점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그 점이 바로 그녀가 지도를 사랑하는 이유다. 헤져서 반만 남았고 빨간색은 빛이 바랬다. 그래도 하단의 좌측과 중앙의 중간쯤에 붙어 있고, 그 옆엔 이렇게 적혀 있다. '현재 위치.'


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p, 185~186 








 

NaverBlog_20161210_211908_11.jpg


 







ϻ스물 다섯,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예쁘고 화려하고 더할 나위 없는 하루하루로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스물 다섯을 마무리하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은 지금, 완벽할 줄로만 알았던 나의 스물 다섯은 '공시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채 스탠드 아래에서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보냈다. 


합격생들이 올린 합격수기를 보며 '난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하는걸까' 자책하다가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내 주변 사람들의 여러 소식들에 책상 앞에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그려왔던 모습과는 정 반대의 내 모습에 줄어드는 자존감을 느낄때마다 자존감을 잃는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처절하게 배운 1년이었다.


밝은 모습만 기록하고 싶었던 블로그에도 징징거리는 글들을 올리게되고,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도 곱게 들리지 않는 더러운 성격을 갖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 비교하는게 싫어서 점점 연락도 끊었다. 


정말 기쁜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던 친구의 취업 소식에 겉으론 축하해주며 속으로는 내 걱정이 더 컸던 날엔 나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NaverBlog_20161210_211909_12.jpg


    

 

 






그러다 올해의 마지막 시험을 보던 날, 시험 관련 책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엔 시험 끝나고 아무 생각없이 읽을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 허무하게 끝낸 50분이라는 시험 후에 바로 강남 교보문고로 이동해서 점심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작년까지만해도 아무렇지 않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노닥거리는 이 시간이 어째서 그 순간에는 무언가를 성취해 낸 것처럼 다가오던지, 한산하던 카페가 주말답게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게 미안하게 느껴질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않고 그 여유를 누렸다. 







 

NaverBlog_20161210_211909_14.jpg


  

 

 







책과 사람의 인연을 믿는다. 


그동안 서서히 잃은 자존감에 쉽게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스스로가 작아져있었던 그 때, 오랜만에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펼친 책의 첫 장에 쓰여진 이 글을 보며 책과 사람의 인연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NaverBlog_20161210_211911_19.jpg


 

 

 








한 동네에서 평생 벗어난 적 없이 남편과 이웃의 인정을 받기 위해 수동적으로만 살아오던 '브릿마리'. 


여러 고비들이 있었지만 그녀가 새로운 직장을 얻고,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능동적인 시도들을 하는 모습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어렵게 뗀 발걸음을 눈으로 따라가며 그녀 덕분에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 만큼이나 나도 기분 좋은 영향을 받았다. 작은 성취들이 쌓이고 쌓이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힘이 된다는 것, 당장이라도 아주 작은 성취라도 해내야 할 것만 같았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NaverBlog_20161210_211913_23.jpg


 

 

 






그렇게 바글바글해진 카페를 나와 친구집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며 브릿마리의 작은 성취들을 조용히 응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업소식을 알려왔을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던 친구의 집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리며 그때의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친구의 스물 다섯도, 나의 스물 다섯도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우리가 이루어낼 작은 성취들이 쌓이고 쌓여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게 될지 기대가 된다. 뭐, 기대처럼 멋진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될지라도 작은 성취들로 인해 그 순간 순간에 느끼게 될 행복은 계속될테니까 괜찮다. 다 괜찮다.


그거 아나? 난 지금도 '책에 대한 흔적을 남기자'라는 작은 성취를 이루어냈다. 행복하다!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둘 다 없는지도 모른다.

-p, 68~69



멀리 떠나서 색다른 경험을 할 날만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알지만, 브릿마리는 모든 게 늘 똑같은 집에 머물 날을 꿈꾼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침대를 정리하고 싶다. 

-p, 73



그녀가 의식하는 건 사실 켄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였다.


그가 언제부터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한때는 신경 썼다는 건 안다. 그가 그녀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눈을 떠보면 꽃이 만개해 있으니까. 시들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발코니 식물과 상당히 비슷하다. 가끔은 과탄산소다로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브릿마리는 그들의 결혼 생활이 언제부터 손쓸 도리가 없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그녀가 아무리 많은 받침 접시를 동원해도 닳고 흠집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때는 자는 동안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녀는 그의 꿈을 꾸었다. 브릿마리에게 꿈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의 꿈이 더 컸고, 꿈이 가장 큰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일찌감치 그 사실을 터득했다. 

(…)

켄트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브릿마리에게 자기가 두 사람의 몫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몇 년 더 집을 지키라고 했다. 몇 년이 십 수 년이 되었고 십 수 년이 평생이 되었다. 세월은 그런 습성이 있다. 브릿마리에게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없었던 게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대의 유통기한이 지났을 뿐이다.

-p, 74~75



"당신 아버지는 토트넘 팬이라고 했죠? 괜찮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줄래요?"

뱅크는 유리잔에 따른 맥주를 마신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개가 뱅크의 무릎에 고개를 묻는다.

"토트넘 팬이면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많게 되어 있어요." 뱅크가 말한다.


브릿마리는 멀쩡한 쪽 손으로 붕대를 감은 쪽 손을 감싼다.

축구 사랑엔 불필요하게 얽혀 있는 사항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보인다.


"그럼 그 팀은 나쁜 팀이라는 뜻이네요."

뱅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토트넘은 나쁜 팀 중에서도 제일 나쁜 팀이에요. 왜냐하면 거의 잘하는 팀에 가깝거든요. 토트넘은 늘 환상적인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해요. 그런 식으로 희망을 심어줘요. 그래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점점 더 기발한 방법으로 팬들을 실망시키죠."

브릿마리는 말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뱅크는 일어나서 애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딸은 그가 좋아했던 팀과 늘 똑같았죠."

-p, 276~277



1년이 몇 년이 되고 몇 년이 평생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은 세월보다 지난 세월이 더 많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취직할 수도 있었어. 내가 집에 있겠다고 선택한 거야. 나는 희생양이 아니야." 브릿마리는 짚고 넘어갔다.

취업의 문턱에 얼마나 가까웠었는지는 애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면접을 봤다. 몇 군데나 봤다. 켄트에게 얘기하면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 얼마냐고 얘기하면 웃으며 "내가 그만큼 줄 테니까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할 게 뻔했으니 그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는 농담 삼아 한 말이겠지만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너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켄트는 스트레스가 많거든." 그녀가 설명한다.

사실 그렇다.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시간이 많이 들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해." 브릿마리는 쥐에게 이렇게 얘기하는데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p, 292~293



"그리고 특히 세계 지리에 대해서라면 상식이 어마어마해!" 그녀는 짚고 넘어간다.

세계 지리는 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십자말 퀴즈를 풀 때 아주 유용한 기술이다.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사랑이 불꽃놀이일 필요는 없다. 다섯 글자짜리 수도를 찾는 문제거나 구두 굽을 갈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일 수도 있다.

-p, 294



"태어난 그날부터 리버풀을 응원할 필요는 없어요, 코치님. 어른이 된 다음에 그래도 돼요."

그날은 축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자 작별의 날이자 브릿마리가 차에 기름을 직접 넣은 날이다. 이제 그녀는 누가 그러자고 하면 산을 오르고 바다를 건널 수도 있을 것이다.

-p, 362



어느 나이쯤 되면 인간의 자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눈을 한참 동안 질끈 감고 있으면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상당히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다섯 살 때 맡았던 엄마의 살냄새,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느라 깔깔대며 현관으로 달려갔던 날. 그녀의 뺨에 닿았던 아버지의 서늘한 코끝. 절대 빨지 못하게 했던 봉제 인형의 까슬까슬한 발에서 느낄 수 있던 포근함. 바닷가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휴가 때 바위를 살금살금 덮치던 파도 소리. 극장에서 들은 박수갈채. 그 뒤로 함께 길을 걸을 때 산들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리던 언니의 머리칼.


그것 말고는? 또 언제 그녀가 행복했을까? 몇몇 순간들이 더 있다. 문 앞에서 짤랑거리던 열쇠 소리. 잠든 동안 그녀의 손바닥을 두드리던 켄트의 심장. 아이들의 웃음소리. 발코니에서 느껴지던 바람. 향긋한 튤립. 진정한 사랑.

첫 키스.

몇 개의 순간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놓아버리고 그 속으로 빠져들어 그 순간에 머물 찰나의 기회를 몇 번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격렬하게 사랑할 기회를, 열정으로 폭발할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어쩌면 허락된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몇 번 그런 기회를 누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의 한계 너머에서 몇 번이나 숨을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순수한 감정으로 거리낌없이 우렁차게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까? 얼마나 여러 번 기억상실이라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


모든 열정은 어린애 같다. 진부하고 순수하다.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기에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를 뒤집어놓는다. 우리를 휩쓸고 간다. 다른 모든 감정은 이 땅의 소산이지만 열정은 우주에 거한다.


열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잘난 척 고개를 젓는 그들의 반응.

-p, 381~383 



어쩌면 그녀는 멈출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문을 한 번 더 두드릴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달릴지 모른다.

알다시피 브릿마리에게는 연료가 넉넉하지 않은가.

-p, 4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집으로 가는 길에 나와 하워드가 거스와 버서에게 성서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몇 개 가르쳐주자 아주 근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노란 객차가 보인 것이다. 롤리에서 우리 옆집에 살았던 정신 나간 풀턴 배너 영감님 덕분에 그것도 소원을 빌 수 있는 조건 목록에 들어 있었다.


"노란 객차는 흔치 않지. 그게 보이거든 소원을 빌어라." 


그가 말했다. 순간 굳이 소원을 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시간 낭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누군가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빌어보라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멀어져가는 노란 객차를 돌아보며 소원을 빌었다.


-p, 254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간절히 소원을 비는 여자아이가 있다. 


시계에서 11시 11분을 봤을 때, 1센트짜리 동전을 발견했을 때, 샛별이 뜰 때, 심지어 디저트로 나온 블루베리 파이의 뾰족한 끝부분을 떼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을 때. 이것 말고도 이 아이가 알고있는 소원을 빌어야 하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아이는 좀처럼 자신의 소원을 말해주지 않는다. '소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며 소원을 말해주기를 꺼리지만, 나중에 알게된 이 아이의 소원은 (어쩌면 이 아이가 보기에) 다른 아이들은 쉽게,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당연한 것이었기에 입 밖에 내기가 부끄러워셔 말하지 않은게 아니었을까 하는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15876445_1500378893335790_8701051443261472768_n.jpg


 

 

 








계속해서 소원을 빌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어두운 환경에서 벗어나 밝은 환경 속에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 이웃들, 이모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변해가는 아이의 이야기.


이미 동화같지 않은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평소같으면 이런 순수하고 동화같은 이야기보다 치정멜로, 복잡한 심리, 복수극 정도는 되어줘야 읽을 맛이 난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이미 알고있는 그 사실보다 더욱 열악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들리는 소식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한숨을 푹푹 내쉬게 만들고 혀를 차게 만들어서. 자극적인 음식들로 탈이 난 속을 미음죽을 먹으며 달래듯, 이런 현실에서 탈이 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더욱 더 이런 동화같이 순수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바바라 오코너의 《위시》에서 이 아이가 보여주는 나쁜 행동들은 (가령 화를 참지 못해 옆에 있는 아이를 발로 찬다거나, 이모가 상처받을 말을 내뱉고 집에서 나온다거나 하는 등) 내가 살고있는 현실에서 어른들이 벌이는 일들에 비하면 아주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심지어 이 아이는 자신이 발로 찬 아이에게 사과하고,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상처받았을 이모를 걱정하며 집 밖을 서성이다가 집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아내며 사과와 함께 이모를 꼭 안아주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별이다! 샛별! 다 같이 소원을 빌자!"


나는 산 위에서 반짝이는 그 별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비는 대신 눈을 감고 소나무 향이 나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p, 280






밖으로 유난히 조용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 첫 주가 지나갔다. 크리스마스에는 내내 집에 있다가 저녁쯤 엄마랑 둘이 밤 산책을 하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조용하네."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그래." 하는 대화를 나눴다.


이 소설 속의 아이처럼 결국에는, 이루어진 소원 덕에 이제 소원을 비는 대신 눈을 감고 소나무 향이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순간을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본다. 


      



   


"너희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찰리. 하지만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단다."

길을 잃을 때가 있다고?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로 돌아올 수 있는지 기꺼이 지도를 그려줄 수 있었다.

-p, 115



가끔 시선이 닿는 끝까지 산들이 보이는 빈터를 지날 때도 있었다. 우듬지 위로 연기처럼 푸르스름한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콜비에 온 첫날, 거스가 그래서 블루리지 산이라고 불린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모르는 아이들과 스쿨버스를 타고 이 마을을 지나면서 길가의 빨래방과 이동식 주택 주차장과 허름하고 조그만 주택을 지날 때마다 내 평생 그렇게 한심한 풍경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던게 엊그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친구 하워드와 성서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고 내 반려견을 감싸 안으며 이제는 익숙해진 콜비의 풍경을 내다보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p, 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2일간의 엄마
시미즈 켄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셀프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셔터가 내려간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도려냈다. 사진 속에 '순간'을 가뒀다.

-p, 120














15099389_288979168170372_6089378347068948480_n.jpg








마음이 지쳐버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날의 밤, 머리맡에 두고 나중으로 미뤄두기만 했던 이 책을 이불 위에 엎드려 천천히 읽었다. 마음을 달랠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금, 조그만 읽다가 자야지 하며 펼쳤던 책이었다. 조금만 읽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덮을 수 있었고 그 후에 다시 마주하게 된 책 표지, 표지의 사진 속 환한 미소가 실은 참아내기 힘든 고통을 감춘 미소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내 마음이 지쳐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만큼 (여러 의미로) 마음이 아팠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인 '질투의 화신'에서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낯선 소재였던 유방암에 대해 다루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유방암이 주인공들의 사랑의 매개체, 극복의 대상이었고, 그 외의 다른 코믹스러운 상황들 때문에 심각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던 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유방암은 한 여자의 삶을 무너뜨린, 고작 100일의 시간을 살아낸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간, 한 남자에게선 사랑하는 여자를, 가족에겐 사랑하는 딸을 빼앗아간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14561779_927190690749930_6266526476510691328_n.jpg







무엇보다 이 책은 유방암에 걸린 당사자가 아닌, 유방암에 걸린 사랑하는 여자를 옆에서 내내 지켜봐야했던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라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입장, 그런 상황에서 가혹하게도 그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의 선택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대신 살릴 수 있는 희망을 놓아버리느냐, 살릴 수 있는 희망을 놓지 않는 대신 고통을 감수하게 하느냐의 가혹한 두 가지의 선택지가 그 앞에 주어질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내렸다.






 
14596726_230309380731478_5145527818842537984_n.jpg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가장 무서웠을 당사자인 나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이렇게 책을 통해서 그녀를 마주한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멋진 여자였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정해놓은 확고한 기준으로 침착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비해 내 삶의 기준이 흐릿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런 그녀의 뚝심은 유방암이라는 큰 장애물이 삶을 떡하니 막고있는 가혹한 상황에서도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큰 흔들림 없이 견뎌낼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의 저자인 시미즈 켄과 그의 아내 나오의 상황처럼 곁에 있는 사람이 아플 때, 대신 아파주고 싶을만큼 사랑하지만 어찌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힘든 상황에 놓인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건강하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내 마음을 굳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나는 셀프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셔터가 내려간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도려냈다. 사진 속에 '순간'을 가뒀다.
-p, 120


완화 치료로 전환―그 '스위치'를 누구도 아닌 내가 누른 것이다. 그 스위치를 눌렀다는 건 나오가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의미였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동안 내 안에선 무언가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오가 오래도록 살아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 나오의 마지막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나오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나오의 생을 끝내기 위한 준비다.
-p, 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