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집으로 가는 길에 나와 하워드가 거스와 버서에게 성서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몇 개 가르쳐주자 아주 근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노란 객차가 보인 것이다. 롤리에서 우리 옆집에 살았던 정신 나간 풀턴 배너 영감님 덕분에 그것도 소원을 빌 수 있는 조건 목록에 들어 있었다.


"노란 객차는 흔치 않지. 그게 보이거든 소원을 빌어라." 


그가 말했다. 순간 굳이 소원을 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시간 낭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누군가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빌어보라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멀어져가는 노란 객차를 돌아보며 소원을 빌었다.


-p, 254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간절히 소원을 비는 여자아이가 있다. 


시계에서 11시 11분을 봤을 때, 1센트짜리 동전을 발견했을 때, 샛별이 뜰 때, 심지어 디저트로 나온 블루베리 파이의 뾰족한 끝부분을 떼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을 때. 이것 말고도 이 아이가 알고있는 소원을 빌어야 하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아이는 좀처럼 자신의 소원을 말해주지 않는다. '소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며 소원을 말해주기를 꺼리지만, 나중에 알게된 이 아이의 소원은 (어쩌면 이 아이가 보기에) 다른 아이들은 쉽게,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당연한 것이었기에 입 밖에 내기가 부끄러워셔 말하지 않은게 아니었을까 하는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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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소원을 빌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어두운 환경에서 벗어나 밝은 환경 속에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 이웃들, 이모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변해가는 아이의 이야기.


이미 동화같지 않은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평소같으면 이런 순수하고 동화같은 이야기보다 치정멜로, 복잡한 심리, 복수극 정도는 되어줘야 읽을 맛이 난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이미 알고있는 그 사실보다 더욱 열악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들리는 소식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한숨을 푹푹 내쉬게 만들고 혀를 차게 만들어서. 자극적인 음식들로 탈이 난 속을 미음죽을 먹으며 달래듯, 이런 현실에서 탈이 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더욱 더 이런 동화같이 순수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바바라 오코너의 《위시》에서 이 아이가 보여주는 나쁜 행동들은 (가령 화를 참지 못해 옆에 있는 아이를 발로 찬다거나, 이모가 상처받을 말을 내뱉고 집에서 나온다거나 하는 등) 내가 살고있는 현실에서 어른들이 벌이는 일들에 비하면 아주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심지어 이 아이는 자신이 발로 찬 아이에게 사과하고,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상처받았을 이모를 걱정하며 집 밖을 서성이다가 집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아내며 사과와 함께 이모를 꼭 안아주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별이다! 샛별! 다 같이 소원을 빌자!"


나는 산 위에서 반짝이는 그 별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비는 대신 눈을 감고 소나무 향이 나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p, 280






밖으로 유난히 조용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 첫 주가 지나갔다. 크리스마스에는 내내 집에 있다가 저녁쯤 엄마랑 둘이 밤 산책을 하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조용하네."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그래." 하는 대화를 나눴다.


이 소설 속의 아이처럼 결국에는, 이루어진 소원 덕에 이제 소원을 비는 대신 눈을 감고 소나무 향이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순간을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본다. 


      



   


"너희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찰리. 하지만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단다."

길을 잃을 때가 있다고?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로 돌아올 수 있는지 기꺼이 지도를 그려줄 수 있었다.

-p, 115



가끔 시선이 닿는 끝까지 산들이 보이는 빈터를 지날 때도 있었다. 우듬지 위로 연기처럼 푸르스름한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콜비에 온 첫날, 거스가 그래서 블루리지 산이라고 불린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모르는 아이들과 스쿨버스를 타고 이 마을을 지나면서 길가의 빨래방과 이동식 주택 주차장과 허름하고 조그만 주택을 지날 때마다 내 평생 그렇게 한심한 풍경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던게 엊그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친구 하워드와 성서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고 내 반려견을 감싸 안으며 이제는 익숙해진 콜비의 풍경을 내다보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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