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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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주 토요일마다 외할머니를 보러 고향으로 내려가서 일요일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시골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는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 품에서 떨어져나와 언니들이랑 자취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던 그 품이, 언젠가 영영 못 안길지도 모를 품이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매주 고향으로 내려가는 거라고 했다.


외할머니를 씻겨드리고, 같이 밥을 먹고, 옆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같이 티비를 보는 것. 엄마랑 외할머니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 그런 보통의 일상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엄마는 어렸을 때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건 후회스러운데, 그래도 나이들어서 엄마랑 계속 같이 지냈던 건 진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엄만 정말 많이 힘들었을거야.” 라고 했다.






 






마스다 미리의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를 보고 주말마다 외할머니를 보러 갔던 엄마가 생각났다. 40세의 딸이 70대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보며 마냥 따스함과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만을 느낄 수 없었던 건 언젠가 닥칠 부모님의 부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특히 자신들의 장례식을 생각하는 사와무라 씨 부부의 모습과 이 책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는, 이제 하늘나라로 가버려 더 이상 같이 지내지 않는 강아지 치비에 대한 내용에서 이 딸이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될 공허함과 슬픔이 미리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 중에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살게 된 친구들을 많이 봤다. 그때마다 나는 이 친구들이 결혼 전까지 부모님 곁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부모님이 챙겨주시는 집밥을 앞으로 몇 끼니나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안타까워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이제는 직장까지 전주에서 다니게 되어 부모님 곁을 한번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어쩌면 행운아인지도. 여전히 집 밖으로 나가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딸이지만, 조금은 더 부모님 곁에서 부모님과 보통의 매일을 이어나가는 행복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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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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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어째서인지 여분의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죠.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이름이나 나이, 직업이 아니라 그 사람은 아침에 뭘 먹을까, 어떤 칫솔을 사용할까, 어렸을 때 과학과 사회 중에서 어떤 과목을 더 잘했을까, 찻집에서는 커피를 주문할까 홍차를 주문할까, 또는 어느 쪽을 더 많이 주문할까, 그런것들에 더 관심을 쏟습니다.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그런 것들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여분의 시간만큼 아름다운 시간은 없지요.
이 소설은 여분의 시간을 많이 함께한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과 두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여분의 이야기들.
-p, 356~357 (홀리가든 작가후기 中)

 

 

 

 

 

 

충동적인 연락이었다. 우린 매사에 충동적인 선택을 한다는 점이 꽤 많이 닮아있었다. 너와 나는 중학생 때도 그러했고, 고등학생 때도 그러했으니 지금도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여느 취준생들처럼 우린 자연스레 연락이 줄어들었고, 연락이 끊겼고, 그렇게 몇 년만에 닿은 연락이었다.

답장을 기다리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마치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긴장으로 가득찼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것처럼 너는 반갑게 인사했고, 안그래도 엊그제 친구한테 보고싶은 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런데 이렇게 연락이와서 신기하다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너는 당장 만나자고 했고, 나는 조금 두려워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만큼 우린 외적으로, 내적으로 많이 변했을테고 우리 사이에 길었던 공백을 어색함이 채울 것만 같았다. 여전히 당찬 성격의 너는 "지금 당장 만나서 서로 후회하고 다시 연락을 하지 않든, 아니면 나중으로 미루다가 평생 만나지 않든 똑같아." 라며 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그 말을 꺼냈고, 그렇게 우린 충동적으로 만났다.

우린 더 이상 중학생,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하루 세끼 무엇을 먹었는지, 지금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사소한 해프닝에 대해 '아!' 하면 '어!' 할 정도로 툭툭 가볍게, (하지만 엄청 재밌게!) 대화를 나누던 너와 나는 과거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날은 더웠고, 어디서부터 서로의 공백을 채워야할지 막막한 그 어색함 속에서 가게 안의 선풍기 소리만 요란했다. 시켜놓은 안주와 소주는 줄어들지 않았고, 겨우 비운 술잔만 앞에 두고 그 끔찍한 상황에서 난 결국 울어버렸다. 안에서 서럽고 무섭고 실망스러운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솟구쳤다.

 

에쿠니 가오리의 <홀리가든>을 읽으며 그때 그 장소, 그 분위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가호와 시즈에의 사이가 마치 우리 둘의 사이같아서, 읽는 내내 더 아무렇지 않은, 정말 별 일 없이 무난한 결론이 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 둘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 속에는 같이 공주님 놀이를 하고 고등학생 시절 서로의 땋은 머리의 굵기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 둘은 이제 쉬는날 어떻게 지내는지 하는 사소한 것들을 묻는 것마저 '금기'라고 여길 만큼의 사이가 되어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말을 빌리자면 더이상 '여분의 것'을 나누지 못하는 사이.

서로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가호와 시즈에는 여분의 것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잘 지내?" 하며 전화를 걸어 "요즘 무슨 재밌는 일 없었어?" 묻고 그동안 본 영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친구와 긴 데이트를 끝낸 하루 끝엔 전화를 걸어 "오늘 밤에, 놀러 가도 괜찮아?" "자랑하러 오는 거야?" "그렇지 뭐." 하는 대화를 나누고 집에 찾아가서 데이트하며 있었던 일을 자랑한다. 자기도 모르게 서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닮아있기도 하다.

그래서 가호와 시즈에의, 너와 나의 결론은?

우린 그 답답한 공간을, 잔뜩 남은 안주를 뒤로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우리집으로 갔다. 전처럼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다시 어릴 때처럼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고, 그간의 일들을 서로에게 꽉꽉 채워주기 바빴다. 그렇게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우린 헤어졌다. 너를 보내고 나서 다시 전처럼 돌아가기 어려울거라는 걸 알았지만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후련했다. 어쨌든 서로 마음이 있다면 지금부터 다시 여분의 것을, 여분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출발점까지 돌아가긴 했으니까.

 

 

 

 

 

 

 

 

 

 

 

"이렇게 추운데 자전거 타고 왔어?"
가호는 안경 너머 커다란 눈으로 시즈에를 올려다보았다. 테이블에는 레몬 홍차가 놓여 있다.
"겨울만 되면 체육 시간에도 농땡이를 치던 시즈에가."
"사람은 변하잖아."
의자에 털썩 앉아 목도리와 장갑을 벗으면서 될 수 있는 한 별 감정 없이 말하려고 했는데, 화가 난 것처럼 강하고 부자연스럽게(더구나 어딘가 모르게 변명처럼)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시즈에는 약간 당황했다.
"물론, 그렇지."
가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 기분 나쁠 만큼 거리낌 없이 웃는 얼굴로 말한다.
"변했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야."
아, 또. 가호는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늘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높이로 얘기한다. 천천히, 그리고 모나지 않은 목소리로.
-p, 29~30


가호는 주말에도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후로 낮에는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 없는데, 그래도 꼭 낮에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 가호와 시즈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낮의 기억을 많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른이 되면 낮은 보통 일하는 시간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는 무수한 밤을 함께 보내며 친해진다.
-p, 32~33


"괜찮아 괜찮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금방 끝나니까."
-p, 93


시즈에는 세리자와와 나란히 미관지구라는 별칭이 있는 아름다운 동네를 걸으면서,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있어도 이 풍경을 추억으로 삼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기억은 장난감 블록과 비슷하다. 언뜻 보면 색깔도 알록달록 서로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편리하게 기획되어 있는 것이다. 가호처럼 기억의 블록을 무수히 쌓아 올려 그 안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사는 세리자와만을 사랑하고 지금의 세리자와하고만 살고 싶다.
-p, 104~105


"내가 왜 늘 손톱에 매니큐어 칠하는지 알아?"
"글쎄."
그렇게 대답하고 자신의 손을 보자 한낮의 신칸센이 되살아난다. 싸늘한 은색 창틀, 멀어져 가는 세리자와의 동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어른이란 걸 잊어버려서 그래."
-p, 122


과거가 현재를 야금야금 파먹어, 또 날을 새우리라. 그다지 불행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러고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러기 위한 에너지와 아픔을 생각하면, 가호는 겁이 난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자신을 현재에 붙잡아 주었으면 싶었다.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든, 그 옆 사람이든, 그 옆의 옆 사람이든.
-p, 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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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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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 387~388

 

 

 

 

 

 

해외를 누비며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자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교복만 벗고나면 바로 이루게 될 꿈인듯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잔잔한 삶'을 갈망하고 있다. 야망따위 없으니 원만하게, 잔잔한 삶을 살고싶다고. 이 잔잔한 삶에는 큰 성공도, 많은 돈도, 엄청난 명예도 없다. 그저 소소한 일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너와 내가 있다. 말이라도 해보자며 구체적으로 나눈 우리의 잔잔한 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작은 책방을 열고, 그 책방엔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내놓고.... 그런데 그럼 얼마정도 필요할까? 한 사람당 5천만원씩 모으면 되지 않을까? 그거면 충분할까? 일단 그거라도 모아놓고 다시 얘기할까? 잔잔한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진짜 힘든 일이네. 그렇지. 그거야말로 엄청난 야망이지...

힘빠지는 웃음을 끝으로 우린 다시 그 '엄청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만의 야망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낸다.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언젠가'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모두가 '인생의 한방'을 기다리며 눈코뜰새 없이 살아가는 와중에 우리의 바람은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될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이런 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그야말로 내 뒤통수를 치는 한방이 되어주었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의 66년 동안의 긴 삶을 한 페이지 분량으로 짧게 요약한 글로 시작한다. 슬프게도, 그의 삶을 400페이지 가까이로 풀어낸 글을 다 읽고나서 다시 읽어보면 '요약 참 잘했다.' 싶게 요약한 글이 그의 삶의 전부라는 걸 알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실패한 삶' 이라는 짧은 말로 설명될 수 있을 정도로 불행한 삶. 그가 저술한 책에 내려진 평가처럼 '단조롭다'고 평가될 수 있는 삶. 

실패한 결혼,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한 지위, 지켜내지 못한 사랑, 동료와의 불화, 마지막엔 암에 걸려 순식간에 겪게 된 죽음, 사후에도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불행한 삶.  

이런 실패한 삶을 살아내는 그의 모습을 뭐가 좋다고 페이지를 자꾸만 넘기게 되는 건지, 뭐가 좋다고 그의 생각과 삶에 분통터지고 아파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되는 건지, 그 이유는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에 대해 내린 평가를 보고나면 알게 된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그랬다. 존 윌리엄스의 이 말을 읽고 스토너의 삶을 그린 이 책 《스토너》를 평생 지니고 있는 것을 통해서라도 '윌리엄 스토너'를 내 곁에 두고싶었다. 

'노는 물'이라는 말을 듣는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논다고, 성공한 사람 옆에 있어야 너도 성공한 사람이 된다고. 꿈이 없는 사람 옆에 머문다면 너도 그저 그 자리에 머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스토너가 노는 물에서 헤엄치고 싶다. 남들이 보기에 실패하고 불행한 삶일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의 곁에 머물고싶다. (아! 그는 영문학 교수였다. 그가 애정을 쏟아부었던 일이 '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던 "넌 무엇을 기대했나?" 라는 물음을 나한테 계속해서 던져본다.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는 삶을 기대한다. 스토너의 생처럼 한 페이지의 짧은 글로 요약될 생일지라도 좋아하는 일에 평생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큰 야망이고 어쩌면 그것만큼 단조로울 수도 없는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스토너'를 곁에 둔다.

 

 

 

그는 부모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자신의 결정을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결정을 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경솔하게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버린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부모가 잃어버린 것을 슬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p, 34


"잘 모르겠지만, 아까 예배 중에 나는 계속 데이브 매스터스를 생각했네. 프랑스에서 죽은 데이브와 자기 책상에 앉아 죽은 채 이틀을 보낸 슬론. 두 사람의 죽음이 같은 종류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슬론하고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마 좋은 사람이었겠지.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렇다고 했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교수를 물색하고, 새로운 학과장도 찾아봐야 해. 모든 게 그냥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도는 것만 같아. 도대체 이것이 다 뭔가하는 생각이 드네."

"맞아." 윌리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고든 핀치에게 커다란 호감을 느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고든의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또 다른 한 부분이 거의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p, 128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p, 132~133


그는 길고 긴 낮과 밤을 방에서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윌리엄 스토너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뜻밖의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로맥스가 일종의 변화를 거쳤음을 알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을 통해 알게 되는 직관적인 깨달음 같은 것.
-p, 139


그는 수업준비를 하거나 과제를 채점하거나 논문을 읽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 세월이 흐르면 자신도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명성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첫 번째 저서에 대해 그는 조심스럽고 소박한 기대를 품고 있었으며, 그것이 적절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그의 책에 대한 서평에서 어떤 사람은 "단조롭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충분한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것을 양손으로 들고 아무 장식이 없는 표지를 쓰다듬다가 책장을 펼쳤다. 섬세하고 활기 찬 아이 같았다. 그는 책으로 완성된 자신의 원고를 읽고 나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을 보는 일에 진력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으며, 자신이 그토록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일에 무모하게 나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p, 144~145


그 뒤로 이디스는 그보다 간접적이고,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전략을 사용했다. 사랑과 염려라는 가면을 쓴 전략이었으므로, 그는 그 앞에서 무기력했다.
-p, 172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참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p, 251~252


그때까지 그는 다른 사람들, 세상 사람들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다. 이디스가 방금 말한 내용도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흡연실에서 언뜻언뜻 화제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 싸구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내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젊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아가씨와 사귀면서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그 젊음을 향해 원숭이처럼 서투르게 손을 뻗는 비루한 중년남자.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은 어리석은 광대 같은 그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불편함, 연민, 경멸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릴 터였다. 그는 이 남자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살펴보면 볼수록 그 남자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문득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캐서린을 향해,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방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지어 캐서린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p, 283~284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떠난 뒤 조급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들이 가끔 있었다. 별로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떠나는 순간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모든 여행자가 그렇듯이, 그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아주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p,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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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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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집에서 책을 읽는 편이지만, 가끔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이를테면 카페나 도서관, 한적한 공원, 기차 안 등― 읽고싶어지는 책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다 미리의 《차의 시간》은 제목이나 표지, 띠지까지 카페에서 읽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책이었으나(!) 안그래도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집순이의 본능에,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와 습한 날씨까지 더해져 집에서 읽는 과오를 범했다.


장소가 만족스럽지 않다고해서 실망을 줄 마스다 미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하는 카페에서 예쁜 케이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읽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스다 미리는 이 책에서 다양한 '카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작가이다보니 주로 편집자들과의 미팅을 위한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맛있는 케이크, 음료를 선택하는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내용조차 보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에피소드가 되다니 그녀의 이런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고 만다.


또, 혼자 앉아 주변 테이블의 대화를 가만히 듣는 모습을 보다보면 혼자 카페에 가는 걸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마스다 미리처럼 혼자 앉아 주변 대화를 가만히 듣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질 정도이다. 왠지 마스다 미리처럼 행동하면 모든 일상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 특히 엄마와 차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비록 방금 전에도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지만 달콤한 디저트에 맛있는 음료,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라는 공간 하나면 요즘 자꾸 부딪히는 엄마와도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친구와 서로 책을 바꿔읽기로 했다. 이 책을 주면서 "꼭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읽어!" 하는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럼 힘든 일과에 지친 기분으로 들어섰던 카페 문을 행복한 기분으로 나올 수 있을테니까.



중요한 것은 케이크란 말에서 환기되는 달콤하고 조촐한 행복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것은 실물로서의 케이크 하나와는 오히려 무관하다.

"뭘 좋아하나요?"

하고 물으면 주저없이,

"케이크"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함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p, 67



마스다 미리의 책을 덮고나서 펼친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차의 시간》과 딱 어울리는 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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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언제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부러움은 중학생 때 세 명의 언니가 있는 친구와 친해진 후 정점을 찍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간 날, 그 공간엔 중학생인 내가 집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언니들의 흔적'이 있었다. 화장품, 향수, 잡지, 어른스러운 옷, 예쁜 구두…. 언니들 덕분인지 친구는 내가 모르는 '성숙한 여자'의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척척 해결해주는 언니들이 있다는게 샘이 났다. 친구는 당시 막내로 살아가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토로하면서 "너처럼 남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그럼 내 남동생이랑 너희 언니랑 바꿀래?" 하고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할 정도로 언니가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언니들에 대한 환상을 잔뜩 가지고 집에 돌아가면 내 눈에 보이는 건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까지 내 옆에서 같이 놀고싶어했던 남동생, 뭐든 나한테 해달라고 하는 남동생, 그땐 남동생이 나한테 달려있는 혹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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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철없는 애로만 보이던 남동생이 이젠, 위 표지 사진처럼 술잔을 앞에 두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 우리가 같이 어른이 되고나니, 떼어내고 싶은 혹 같았던 남동생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시리즈를 읽는 내내 군대에 간 동생이 얼른 휴가를 나와서 준페이처럼 때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때로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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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과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재밌는 건 무엇보다도 이성 이야기이다. 우리는 종종 서로 연애팁을 공유하곤 하는데, 서로 데이트 장소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이성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는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 특히 애인과 사이가 안좋을 때면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같이 뒷담화를 나누기도 하니 남동생과 누나라기 보다는 제일 친한 남사친, 여사친과도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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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싸울 땐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뭉개버리지만, 밖에서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집으로 들어왔을 땐 다른 의미로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치켜세워준다. 특히 요즘처럼 자존심이 낮아져있을 때 군대에 가있는 동생의 전화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얼마 전, 동생이 "누나는 잘하니까, 뭐든 잘할거야. 나 제대하면 누나 직장인 되어있을거니까 나한테 용돈도 많이 주겠지?" 하고 뭐든 잘 해낼거라는 전제를 깔고 건네는 장난스러운 말에 울컥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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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시리즈가 남동생이 바라보는 누나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 동생이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틱틱 거리면서도 누나를 끔찍이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전해진다. 준페이가 바라보는 누나는 가끔은 철부지 같지만, 준페이에게 조금 더 살아낸 자의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특히 이성 문제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준페이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있는 존재이다. 물론 준페이도 누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언니, 오빠를 가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나와 같이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같이 나이들어갈 내 남동생이 동생, 친구, 언니, 오빠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까. 남동생은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 할 때가 많긴 하지만.... (왜 형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누나는 내 옷을 입는데 나는 누나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나만 만족하면 되...된거다..

글을 적다보니 《내 누나》를 《내 남동생》 이라고 바꿔야하나 싶을 정도로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 같지만, 누나의 입장에서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시리즈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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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과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재밌는 건 무엇보다도 이성 이야기이다. 우리는 종종 서로 연애팁을 공유하곤 하는데, 서로 데이트 장소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이성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는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 특히 애인과 사이가 안좋을 때면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같이 뒷담화를 나누기도 하니 남동생과 누나라기 보다는 제일 친한 남사친, 여사친과도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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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싸울 땐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뭉개버리지만, 밖에서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집으로 들어왔을 땐 다른 의미로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치켜세워준다. 특히 요즘처럼 자존심이 낮아져있을 때 군대에 가있는 동생의 전화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얼마 전, 동생이 "누나는 잘하니까, 뭐든 잘할거야. 나 제대하면 누나 직장인 되어있을거니까 나한테 용돈도 많이 주겠지?" 하고 뭐든 잘 해낼거라는 전제를 깔고 건네는 장난스러운 말에 울컥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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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시리즈가 남동생이 바라보는 누나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 동생이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틱틱 거리면서도 누나를 끔찍이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전해진다. 준페이가 바라보는 누나는 가끔은 철부지 같지만, 준페이에게 조금 더 살아낸 자의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특히 이성 문제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준페이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있는 존재이다. 물론 준페이도 누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언니, 오빠를 가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나와 같이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같이 나이들어갈 내 남동생이 동생, 친구, 언니, 오빠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까. 남동생은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 할 때가 많긴 하지만.... (왜 형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누나는 내 옷을 입는데 나는 누나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나만 만족하면 되...된거다..

글을 적다보니 《내 누나》를 《내 남동생》 이라고 바꿔야하나 싶을 정도로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 같지만, 누나의 입장에서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시리즈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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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과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재밌는 건 무엇보다도 이성 이야기이다. 우리는 종종 서로 연애팁을 공유하곤 하는데, 서로 데이트 장소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이성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는 더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 특히 애인과 사이가 안좋을 때면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같이 뒷담화를 나누기도 하니 남동생과 누나라기 보다는 제일 친한 남사친, 여사친과도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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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싸울 땐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뭉개버리지만, 밖에서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집으로 들어왔을 땐 다른 의미로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을 치켜세워준다. 특히 요즘처럼 자존심이 낮아져있을 때 군대에 가있는 동생의 전화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얼마 전, 동생이 "누나는 잘하니까, 뭐든 잘할거야. 나 제대하면 누나 직장인 되어있을거니까 나한테 용돈도 많이 주겠지?" 하고 뭐든 잘 해낼거라는 전제를 깔고 건네는 장난스러운 말에 울컥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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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시리즈가 남동생이 바라보는 누나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 동생이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틱틱 거리면서도 누나를 끔찍이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전해진다. 준페이가 바라보는 누나는 가끔은 철부지 같지만, 준페이에게 조금 더 살아낸 자의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특히 이성 문제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준페이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있는 존재이다. 물론 준페이도 누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언니, 오빠를 가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나와 같이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같이 나이들어갈 내 남동생이 동생, 친구, 언니, 오빠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으니까. 남동생은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 할 때가 많긴 하지만.... (왜 형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누나는 내 옷을 입는데 나는 누나 옷을 입을 수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나만 만족하면 되...된거다..

글을 적다보니 《내 누나》를 《내 남동생》 이라고 바꿔야하나 싶을 정도로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 같지만, 누나의 입장에서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시리즈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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