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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진짜 위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무엇보다 과거를 되짚어 살펴보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이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저지르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은 더이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법은 사람들을 돈과 권력에 완전히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역사에서는 친일과 독재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흔적을 스스로 세상에서 지우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못마땅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을 아무개 탓으로 돌리고 욕설과 조롱을 퍼붓거나, 돈 없고 빽 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일 외에는.

그런데 이렇게 비난이나 신세한탄만 하면서 살아도 괜찮은 걸까. 밥벌이 걱정도 중요하지만 잠깐이라도 멈춰서서 세상과 나를 되돌아보는 반성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현실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단한 일을 할만한 능력은 없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그보다 먼저 지금 한국사회가 사람보다 돈과 권력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시대로 완전히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인지 알고 싶다.

생각해보면 위기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 어떤 위기는 극복되었고 또 어떤 위기는 그 위기를 몰고 온 문명과 사회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시대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사태의 본질과 근원을 파악하여 근본범주를 새롭게 설정하고자 했던 이들은 철학자들이다. 그들이 내놓은 철학이 언제나 세상을 구원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철학적 결과물들의 축적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위기 속에서도 진보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이러한 철학적 결과물들의 축적의 역사가 철학사일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철학사에서 각 시대의 철학자들이 직면했던 시대적 요구와 그에 대한 대답들을 슬쩍이라도 살펴본다면 적어도 반성을 모르는 몰정신적 삶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철학사를 통한 추체험이 있다면 이 시대가 구조적 위기에 처한 시대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호들갑을 떨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몇몇 바람이 없지는 않으나 이런저런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냥’ 철학사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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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철학이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철학은 여러 종류의 철학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안에는 다양한 사유모형이 씨앗의 형태로 들어 있을 따름이다. 자연학, 형이상학, 실천철학으로 구분되는 그리스의 사유모형은 세계를 파악하는 기초범주를 새롭게 창안하여 제시하였다.

자연학에 해당하는 탈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등은 영원불변의 것은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고 자연 만물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물질적인 것을 기초범주로 삼고 자연에 대해 탐구하였다. 최초의 형이상학자라 할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본성과 작동원리, 인간의 삶과 영혼의 구원에 대해 논의하였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 이르면 기초범주는 눈앞에 보이는 인간과 사회로 더욱 집중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철학적 물음을 제기하게 되었다.

'똑바로 살아야 한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올바름에 대한 관심을 이어받은 플라톤은 거기에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더하고, 우주론을 덧붙였다. 그의 철학은 실천적 요구와 형이상학적 요구, 우주론적 요구를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철학의 직접적인 목표는 교육을 통한 폴리스의 정화에 있었다. 이는 플라톤이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살육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았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 치세에서 왕의 스승으로 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앞에는 절박한 현실적 요구가 아닌 선대의 사상가들이 내놓은 풍부한 결과물들이 놓여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선대 사상가들의 논의를 정리하여 체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수행하여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이라는 학문분류를 만들어냈다. 선대의 논의를 정리하고 그 한계를 밝히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방식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논문 스타일의 정형이 되고 있다.

그리스 철학은 후대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일컫는 다종다양한 사유모형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사유모형은 자연학과 형이상학, 실천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플라톤 이전 철학자들이 이들 중 각각 하나의 영역에 집중하였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를 집약하였는데, 플라톤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체계를 중심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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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신화, 종교, 과학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철학 안에는 신화적인 부분이 들어있고 종교 안에는 철학적인 부분이 들어있다. 이처럼 중첩된 각각의 경계를 억지로 구분짓는 것 보다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신화는 “사변적인 시와 배후에 있는 신들의 작용"을 찬양하며 우주의 기원과 본성을 의인화하여 설명한다. 반면에 철학은 "물질적 원인을 강조하고 냉정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자연주의적이며 물질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철학은 "세계에 대한 물질론적인 설명을 단호히 거부"하고 대신 관념론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철학은 신화와 달리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이 여러 종류이며, 이들 철학적 설명이 처음부터 신화를 완전히 배척하고 독자적인 원칙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종교와 철학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종교도 철학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고유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 종교와 철학이 내놓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은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둘 중 어느 것이 위에 있고 어느 것이 아래에 있는 것인지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종교에 있어서 최종 목표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만 철학은 구원과는 무관하게 세계와 인간 그 자체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한다. 종교와 철학은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있어서 호소하는 측면이 서로 다른 것이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는 18세기 이전에는 모호했으나 그 이후로 뚜렷해졌다. 철학과 비교할 때 과학은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특징이 있다. 과학에서 과거의 이론은 새로운 이론에 의해 폐기되고 대체된다. 오늘날 뉴튼의 이론은 더이상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이제는 현대 물리학의 최신 이론들이 뉴튼의 이론을 대신하여 세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철학은 과거의 설명들이 오늘날에도 폐기되지 않고 후대의 설명들과 공존한다. 철학에 있어서는 세계와 인간이라는 근본 범주에 변함이 없는 한 과거의 관점과 설명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과 신화, 종교, 과학의 구분은 "지나치게 남용"되어 왔다. 철학은 신화적 요소, 종교적 요소, 과학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신화, 종교, 과학과 계속 영향을 주고 받는다. 따라서 이들을 구분하고자 할 때에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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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유한 에토스 세트(ethos set)에 따라 살아간다. 에토스 세트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계이해라는 이론적 측면이다. 두 번째 측면은 앞서의 세계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행위원칙과 그 원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체적 행위라는 실천적 측면이다.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에 의해 도출되는 세계이해가 바뀌면, 행위원칙과 그에 의해 도출되는 구체적 행위도 바뀐다. 이러한 변화가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다.

기원전 6세기와 4세기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 일어났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이 시기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에토스 세트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더이상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신화적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본질과 현상을 구별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1차적 질문으로부터 "무엇이 인간의 올바른 삶인가?"라는 2차적 질문, 즉 형이상학적 질문으로까지 나아갔다.

같은 시기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폭력과 죽음, 불행과 고통에 맞서 "평화와 평온을 가르쳤다.” 싯다르타가 전해준 새로운 사유의 제1 전제는 “우주와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고통을 야기하는 욕망과 열정의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 시기의 중국은 발전된 정치문화를 갖고 있었음에도 “정치권력의 부패로 인해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에 공자는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길(道)을 정의(定義)"하는 이론영역과 "그것을 개발하는 것을 돕는” 실천영역으로 이루어진 에토스 세트를 내놓았다. “조화로운 관계, 위정자의 지도력과 통솔력, 타인들과 함께 잘 지내고 또 그들을 격려해주는 것, 자기반성과 자기혁신, 개인적인 덕을 배양하고 악을 피하는 것 등"이 공자의 일반론이었다.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노자는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의해 도출된 세계이해에 있어서 공자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 "노자는 자연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였는데, 그만큼 인간사회에 대해서는 덜 중요시하였다.” 공자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것은 곧 사회적인 것"이었다면, 노자에게 "개인적인 것은 자연과의 일치"였다.

페르시아에서는 자라투스트라가 "하나의 포괄적인 도덕적 일신론을 지향하기 시작하였다.” 자라투스트라는 “무엇이 ‘악의 문제'로 불릴 수 있는가에 관해 고심"한 끝에 "선과 악이 모두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도덕적 이원론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고대의 히브리인들은 비록 "위대한 철학자를 배출하지 못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중의 하나인 한 권의 완전한 책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특히 <창세기>)는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말하는 기술"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기원전 6세기와 4세기 사이에 "단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 결과 철학, 종교, 과학을 포괄하는 다양한 사상, 즉 “넓은 의미의 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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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사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서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런데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철학은 확정된 정의가 없는 학문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확고한 정체성이 없기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물으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인간학이다. 이처럼 철학을 인간의 내적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잠정적 정의일 뿐 철학의 확고한 정의는 아니다. 이래저래 철학은 확고한 개념정의가 어려운 학문이다.

철학의 확고한 개념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철학개념을 내놓았다. 그들은 어떤 것을 철학이라고 간주해 왔는가. 그 역사가 철학사이다. 철학자와 철학자, 텍스트와 텍스트가 묻고 답하고, 논박하고 재논박해온 역사. 다시 말해 철학적 사색에 의한 성과물로서의 텍스트의 역사가 철학사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에는 시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사유모형이 담겨있다.

사유모형은 이론체계이고 생활세계는 실천체계이다. 사람들은 사유모형 위에 세워진 생활세계에서 살아간다. 생활세계에서 어떤 문제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하고 헤쳐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사유해야 할 때 사유모형이 필요하다. 사유모형이 부족하면 사태를 근본적으로 원리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철학의 역할은 구체적 일상생활에 적용할 사유모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사유모형들이 만들어져 왔는가.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내가 구체적 일상생활에 적용할 사유모형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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