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비유의 주제는 통치자의 교육이다. 비유에서 동굴 바깥쪽은 episteme(참된 앎, 진리)의 영역을, 안쪽은 doxa(의견)의 영역을 의미한다. 통치자의 삶에는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영역의 세계가 결합되어 있다.
동굴의 비유는 통치자 교육의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을 종합적, 정합적으로 제시한다. 이 교육은 좋음의 이데아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좋음의 이데아는 올바름(眞), 착함(善), 아름다움(美)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통치자 교육은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좁은 의미의 윤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 정치, 법률 그리고 신체의 훈련 등이 좋음의 이데아라는 원리 아래에 종합적으로, 또한 정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유에서 묘사하는 동굴 안쪽의 죄수는 이러한 윤리적 자각이 없는, 따라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말한다.
동굴 안쪽의 죄수처럼 좋음을 모른 채 모방물의 그림자만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인간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다. 동굴 안 담벼락에 그림자를 만드는 인형과 불은 동굴 바깥에 있는 사물과 태양의 mimesis(모방)일뿐이다. 진짜 원인(aitia)은 동굴 바깥에 떠 있는 태양이며 이는 좋음의 이데아를 상징한다. 동굴 바깥의 세계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세계이며 초월적 이데아의 영역이다. 이는 동굴 밖의 세계가 불멸하는 신적 영역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동굴 안에서 그림자만 보면서 살 수도 있고, 밖으로 나가 신적인 것을 보며 살 수도 있다.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는 것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안다는 것이다.
태양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그림자만 보던 고개를 돌려(periagoge) 동굴 밖으로 올라가는(anabasis) 사람이다. 이 사람은 동굴 밖 빛의 세계를 본 후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동굴 안으로 내려와(katabainein) 다른 사람들에게 태양의 존재를 알려준다. 올라감과 내려옴의 전환을 이루는 지점에 페리아고게가 있다. 페리아고게는 이론과 실천, 정신과 육체를 포괄하는 총체적 사건이다. 페리아고게를 통해 올라감과 내려옴으로 이끄는 힘은 에로스,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에 이끌려 밖으로 올라가고 다시 안으로 내려오는 이 사람의 삶은 동굴 밖의 철학적 영역의 삶과 동굴 안의 정치적 영역의 삶 모두에 걸쳐있다.
빛과 어둠, 앎과 무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상이한 두 차원을 결합하여 동시에 살아가려면 ‘고개를 돌리는’ 실존적, 실천적 결단이 필요하다. 동굴의 비유에는 누가, 왜 고개를 돌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동굴 밖 태양에 대해 말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