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世紀는 삶의 基準으로서의 참다운 것에 대한 理性的 正當化가 要求되는 時代였다. 안셀무스는 理性的 根據에 立脚한 信仰의 知的 解明을 바탕으로 神 存在를 證明하고자 하였다. 안셀무스에서 始作된 神 存在 證明은 18世紀 칸트에 의해서 反駁되었고 이로써 宗敎的 信仰과 事實的 眞理는 서로 다른 領域으로 分離되었다.

生産力의 增加로 삶이 豊饒로워진 12世紀로 접어들면서 生活世界는 한층 複雜해졌다. 共同體와 個人의 關係는 敎會와 個人의 關係, 國家와 個人의 關係로 細分化되고, 敎會와 國家의 關係도 問題가 되었다. 삶이 複雜해지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問題가 提起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問題 삼는 것은 삶의 基準이 되는 참다운 知識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이다. 베르나르두스는 福音을 통해서만 참다운 知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徹底한 靈的 生活을 통해 內面의 變化를 일으키려고 努力하였다. 이와 달리 안셀무스는 信仰과 理性의 調和를 追求하였다. 그는 人間을 超越的 次元으로 이끄는 것은 信仰이며, 理性은 自己 自身에 대한 참다운 理解를 可能하게 함으로써 信仰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했다. 理性으로 自己 自身을 理解하고 이것을 基盤으로 해서 絶對的 完全者를 向한 信仰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안셀무스는 神의 存在를 證明하고자 하였다.

안셀무스의 存在論的 神 存在 證明에 따르면 神은 더 이상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은 觀念 안에서만이 아니라 觀念 밖에서도 實際로 存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神은 實際로 存在한다. 이처럼 안셀무스는 槪念으로부터 現存을 이끌어냈다. 안셀무스가 絶對的으로 完全한 存在를 觀念적인 槪念으로 想定했던 理由는 基準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神은 絶對的 完全者이기에 實在한다는 안셀무스의 立場이 極端的 實在論이라면 아벨라르두스는 穩健한 實在論者였다. 槪念은 人間의 思惟의 産物이다. 槪念만으로는 絶對的 眞理에 이를 수 없다. 理性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理性的 認識만으로 信仰을 完全히 理解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벨라르두스의 생각이었다. 그는 理性을 信仰보다 아래에 두고 理性과 信仰의 共存을 追求하였다. 理性의 힘으로 神의 存在를 證明하려는 努力은 17世紀의 데카르트에게까지 이어졌다.

데카르트는 “神의 現存이 그 분의 本質로부터 分離될 수 없다는 것은 三角形의 內角의 合이 180度라는 것이 三角形의 本質로부터 分離될 수 없는 것처럼 明白하다"고 했다. 存在論的 神 存在 證明은 안셀무스에서 데카르트까지 500年 동안 이어질 程度로 影響力이 깊었다. 이를 反駁한 것은 칸트였다. 그는 眞理를 分析判斷에 의한 必然的 眞理와 綜合判斷에 의한 事實的 眞理로 區別하였다. 分析判斷은 數學的 眞理에 局限되고, 綜合判斷에 속하는 事實的 眞理는 經驗을 통해서만 證明된다. 칸트는 이처럼 實在의 領域과 槪念의 領域 各各에 適用되는 原理와 方法論이 다르다는 것을 分明히 하면서, 經驗에 의해 證明해야 할 領域에 속한 것을 말로만 證明하려는 것이야말로 人間이 가진 深刻한 問題라고 하였다. 經驗을 통한 證明이 不可能한 神 存在 證明은 不可知論이 되었다. 宗敎와 道德은 事實的 眞理의 領域에서 除外되었고, 삶의 基準을 세우는 問題는 事實的 眞理의 領域으로부터 合意를 이끌어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참다운 것이라는 삶의 基準에 대한 理性的 正當化가 要求되었던 12世紀의 問題狀況 앞에서 哲學者들은 槪念으로부터 神의 現存을 이끌어냄으로써 信仰과 理性의 調和를 追求하였다. 哲學은 언제나 눈앞에 펼쳐진 狀況에 대한 根本的 물음을 提起해왔다. 그것은 낡은 것이 아니며, 單純히 理性的인 問題에만 局限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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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告白錄》은 自身의 罪에 대한 告白이면서 同時에 神의 사랑에 대한 讚美다. 告白과 讚美가 同時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아우구스티누스가 自身의 삶에서 經驗한 事件들을 總體的이고 回顧的인 觀點에서 ‘否定的 必然的 契機’로 認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認識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卽自的 狀態에서 自覺的 狀態로의 移行을 보여주는 ‘意識의 經驗의 敍述’을 完成하였다.

《告白錄》은 아우구스티누스가 人生의 絶頂期에 卓越한 라틴語로 쓴 텍스트다. 《告白錄》에서는 告白과 讚美가 同時에 이루어지는데, 神의 偉大한 사랑을 느끼고 讚美하는 瞬間 罪의 告白이 일어나고, 罪를 告白하는 瞬間 偉大한 神의 사랑을 讚美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自己愛에 빠져 罪의 狀態에 놓인 人間이 神의 恩寵으로 神的인 사랑을 自覺하고 神에게로 돌아오는 過程이다. 이 過程을 歷史的 局面으로 가져와 客觀世界에 代入하면 地上의 나라에서 神의 나라로 轉換이 일어나는 《神國論》의 構造와 一致한다. 同一한 構造가 《告白錄》은 個人의 局面에서, 《神國論》은 歷史의 局面에서 펼쳐지고 있다. 믿음으로 神을 向해 올라가고 神의 恩寵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構造가 《告白錄》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告白錄》 1~9卷은 아우구스티누스 自身의 人生에 대한 歷史的 敍述이고, 10卷은 그 過程과 現在의 狀態에 대한 觀照的 解說이다. 그리고 11~13卷은 神이 만든 世界와 神의 本質에 대한 說明이다. 1~10卷이 내가 누구인지 確認하는 過程이라면, 11~13卷은 神이 어떤 存在인지를 理解하는 過程이다. 바꿔 말하면 神과 神이 만든 世界를 理解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確認하는 過程이 반드시 必要한 것이다.

自身의 存在를 確認하는 過程인 1~9卷을 자세히 살펴보면, 1卷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나 사랑을 自覺하지 못한 卽自的 狀態, 2~4卷은 罪惡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疏外의 狀態, 5~8卷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歸還의 過程, 그리고 9卷은 하나님의 사랑을 確認하고 깨달아 다시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온 狀態다. 2~4卷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契機들이 羅列되는데, 그 契機들은 情欲, 修辭學, 마니敎다. 또한 5卷에서는 파우스트를 만나고,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고, 新플라톤主義 哲學을 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自身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다시 돌아오는 過程에서 登場하는 契機들 全體를 精神과 肉體의 總體的 側面에서 理解하고 把握하여 再構成했다. 이 契機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必然的 契機들이다. 否定的이지만 必然的인 契機인 것이다. 情欲, 修辭學, 마니敎에 빠져 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낯설게 여긴다. 靈魂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靈魂의 疏外 狀態에 빠진 것인데, 이 狀態를 깨닫는 것 또한 重要하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疏外 狀態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거쳐서 더 나은 狀態로 올라서게 되기 때문이다. 2卷의 배나무 밑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8卷의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로 올라선 것이다.

“이처럼 永遠히 當身을 떠나 돌아서서(abs te) 當身 밖에서(extra te) 純粹하고 깨끗한 것을 찾으려고 할 때 곧 外道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靈魂이 當身께로 다시 돌아가기까지는(ad te) 그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2, 6, 14) 이 文章은 《告白錄》 全體의 構造를 보여준다. 出發點인 1卷은 神의 사랑 안에(in te) 있는 狀態다. 2~4卷은 神의 사랑에서 떠나 멀어지는(abs te) 狀態, 神 밖에(extra te) 있는 狀態다. 5~8卷은 神을 向하여 가는(ad te) 狀態다. 그리고 마지막 9卷은 다시 神의 사랑 안에(in te) 있는 狀態다. in te에서 始作하여 in te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두 in te 사이에는 差異가 있다. 처음의 in te는 自覺하지 못한 in te였지만 마지막 in te는 自覺한 in te가 되었다. 깨닫지 못한 狀態에서 깨달은 狀態로 올라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깨달음의 狀態로 올라선 자리, 1卷부터 9卷까지를 모두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告白錄》을 쓰고 있다. 自身의 삶 全體를 自身의 精神에서 觀念化된 知의 形態로 떠올리고 있다. 이는 意識이 經驗한 바를 敍述하는, ‘意識의 經驗의 敍述’이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經驗을 精神化하였다. 自身이 겪은 것들이 어떤 意味가 있는 것인지 思惟한 것이다. 겪음을 통해서 精神을 陶冶하고, 精神을 陶冶해서 靈魂을 高揚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告白錄》은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人間’이라는 目的을 前提하고 自身의 삶의 局面에서 일어나는 모든 事件들이 그 目的을 成就하기 위한 必然的 契機였음을 回顧的 觀點에서 再構成하여 敍述한 책이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中世 神學과 哲學의 定礎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 個人으로서 人間이 精神을 陶冶함으로 高揚된 靈魂을 지닌 高貴한 存在로 올라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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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二分法的 存在論은 現象界와 知性界 사이의 斷絶이라는 限界를 가지고 있다. 플로티노스는 이 限界를 存在의 大 連鎖라고 하는 流出說로 克服하고자 하였다. 流出說은 矛盾을 同時에 가진 제3의 것으로서의 靈魂에 대한 規定을 核心으로 한다.

플라톤은 世界를 現象界와 知性界로 區分하였다. 意見(doxa)의 領域인 現象界는 눈에 보이는 可視的 世界이며, 眞理(episteme)의 領域인 知性界는 知性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이데아의 世界로 知性界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이데아 중의 이데아인 善의 이데아가 있다. 現象界와 知性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間隙이 있다. 플라톤은 現象界의 物質과 知性界의 이데아가 關係하는 方式을 個物에 대한 이데아의 關與, 또는 個物이 이데아를 나누어 가지는 分有로 說明했다. 하지만 関與나 分有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說明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동굴의 比喩에는 동굴 안쪽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동굴 밖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인지, 왜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동굴 밖으로 올라가는지, 또 동굴 밖에서 다시 안으로 내려오는 理由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여기에 플라톤의 二分法的 存在論이 가진 限界가 있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二分法的 存在論이 가진 限界를 認定하고 그 問題 設定을 받아들였다. 플로티노스의 流出說은 바로 이러한 現象界와 知性界의 斷絶을 克服하기 위한 試圖였다. 그는 知性界를 一者와 精神(nous)으로 나누고, 精神과 物質 사이에 이 둘을 連結하는 靈魂(psyche)을 介入시켰다. 一者로부터 精神이 흘러나오고, 精神으로부터 靈魂이 흘러나오며, 靈魂은 物質世界를 創造한다. 一者는 모든 것을 包括하는 者로서 모든 存在者의 窮極的 原因이다. 一者로부터 流出된 精神은 創造의 틀이고, 精神으로부터 流出된 靈魂은 現實化의 原理다. 여기서 만들어진 物質은 끊임없이 生成되고 消滅된다. 플로티노스는 이러한 方式으로 存在의 大 連鎖를 만들었다. 存在의 大 連鎖는 一者의 固有함이 物質에 스며들어 가는 것이다. 太陽이 빛을 비추듯이 一者는 精神에게 빛을 비추고, 精神은 靈魂에게 빛이 된다. 一者가 빛을 비춤으로써 物質世界도 有意味한 것이 된다.

플로티노스의 流出說에서 核心은 靈魂의 性格에 대한 規定이다. 靈魂은 플라톤에게는 없던 槪念이다. 精神的 世界와 物質的 世界 사이에 있는 靈魂은 위로는 精神을, 아래로는 自然을 바라보면서 萬物을 創造한다. 플라톤의 二分法的 存在論에서는 있을 수 없는, 精神的인 것이면서 同時에 物質的인 것이다. 플라톤에서 始作되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同一律과 矛盾律이라는 論理的 形式으로 定立된 二分法的 存在論은 矛盾을 肯定하지 않는다. A=A이고 A≠not A이다. 따라서 精神이면서 同時에 物質인 것은 存在할 수 없다. 그런데 플로티노스의 流出說에서 物質世界를 만들어내는 現實化 原理인 靈魂은 精神이라는 創造의 틀에서 流出된 것이다. 精神과 物質이라는 矛盾되는 두 가지 것이 同時에 들어있다. 이처럼 矛盾을 肯定하는 플로티노스의 靈魂 槪念은 精神的 世界에 속하면서 同時에 物質的 世界에 속하는 第3의 것으로 規定된다.

플로티노스는 靈魂이라는 第3의 것을 介入시켜서 플라톤의 二分法的 存在論이 가진 現象界와 知性界의 斷絶을 克服하고자 하였다. 矛盾되는 두 가지 것을 同時에 가진 第3의 것이라는 槪念은 新플라톤主義로부터 影響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리스도敎와 만나 예수는 神이면서 人間이라는 三位一体 敎理의 定立에 影響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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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敎의 한 分派였던 初期 그리스도敎는 에게 海 地域으로 퍼져나가며 希臘語의 脈絡으로 들어가 헬레니즘的 그리스도敎로 發展하였다. 유대敎的 그리스도敎에서 헬레니즘的 그리스도敎로 普遍化 過程을 거치는 동안 敎會가 成立되었고, 이 敎會는 사랑의 共同體라는 독특한 性格을 가진 集團이었다. 神의 抽象的 命令인 사랑은 敎會를 통해 個人 次元의 內面的 自覺과 共同體 次元의 社會的 實踐이 統合된 福音으로 具體化 되었다.

初期 그리스도敎는 歷史的 예수의 죽음 以後 그의 追從者들과 함께 에게 海 地域으로 퍼져나갔다. 그리스도敎가 유대敎의 한 分派였을 때 지켜야 했던 유대敎의 律法과 慣行들은 점차 廢棄되었다. 同時에 靈智主義, 스토아主義, 自然哲學, 플라톤, 로고스와 같은 헬레니즘的 要素가 들어오면서 그리스도敎는 새로운 모습으로 變化했다. 臨迫한 하나님 나라(Gottesnahe)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終末의 遲延으로 인해 折衷主義的 形態로 轉換되었으며, 그리스도敎는 헬레니즘이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普遍化의 길로 나갔다. 이러한 普遍化 過程에서 重要한 役割을 擔當한 것은 使徒 바울이었다. 그는 헬레니즘 그리스도敎의 核心을 集約한 書信들을 記錄함으로써 그리스도敎 敎理의 定立에 크게 寄與하였다.

헬레니즘 그리스도敎의 核心은 그리스도, 三位一體, 예수의 代贖的 죽음으로 要約된다. 그리스도는 히브리語 메시아를 希臘語로 飜譯한 것인데,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人間의 罪를 代身하여 十字架에 달려 죽음으로써 人間을 救援하였다. 예수의 죽음은 人間에 대한 神의 사랑의 證票로 人間은 이를 믿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믿음을 共有한 이들이 모여서 敎會가 成立되었다. 敎會는 사랑이라는 槪念을 통해 가난한 者와 베푸는 者라는 範疇를 提示하였다. 福音이 “가난한 者에게(눅 4:18)”전해진다. 그리스도人은 “즐겨 내는 者(고후 9:7)”다. 이로써 서로 “不足한 것을 補充하여 均等하게(고후 8:14)”된다. 이제 敎會는 유대敎의 民族主義에서 벗어나 現實 世界에서 가난한 者를 돌보는 普遍的 共同體로 發展하였다.

로마 帝國 治下에서 ’가난’과 ’기쁘게 주는 이’라는 槪念은 劃期的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을 삶의 基本的인 實踐 德目으로 삼은 사람은 共同體에서 社會的인 實踐으로 사랑을 나타내야 했다. 初期 그리스도敎는 個人의 內面의 靈魂으로 파고들어 사랑에 대한 自覺을 促求하고, 그 內面的 自覺을 社會的인 實踐으로까지 이끌어냈다. 敎會가 전하는 福音은 가난하고 抑壓받는 者들, 즉 窮乏한 者들의 解放을 意味했다. 왜 窮乏한 者들의 解放이 福音인가? 人間은 神의 被造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人間의 靈魂은 高貴하며, 따라서 窮乏으로부터 解放되어야 한다. 이는 예수에 의한 人權宣言이며, 가장 急進的 實踐哲學인 人權運動이다. 여기서 그리스도敎의 社會哲學的 意味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헬레니즘的 그리스도敎는 사랑이라는 主題를 中心으로 世界를 把握하고, 이러한 理解의 바탕 위에서 個人的 次元과 社會的 次元의 急進的 實踐을 要求하는 思想으로 發展하였다. 다시 말해서, 初期 그리스도敎의 福音은 個人의 靈魂을 돌보게 하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써 하나님과 人間의 關係를 直接的인 人格的 關係로 만들었으며, 하나님과 直接的인 人格的 關係를 維持하는 사람들 사이에 相互 結束과 兄弟 關係를 志向하게 하였다. 이러한 關係는 人間들 사이에 包括的이고 깊이 있는 사랑의 共同體 設立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福音은 사랑을 媒介로 한 個人과 共同體의 統一을 이루었다. 이때 以後로 사랑은 西洋哲學에서 重要한 社會哲學的 主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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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과 道는 中國 思想을 理解하는 核心 槪念이다. 天을 根源으로 德治를 펼칠 것을 主張한 儒敎는 中國 政治思想의 基本 原理로 作動하였으며, 萬物의 理致인 道를 中心으로 自然의 흐름에 順應할 것을 强調한 道敎는 中國的 思惟의 바탕에 폭넓게 자리한 傳統이 되었다. 道敎를 바탕으로 成立된 中國 佛敎는 印度에서 發生한 本來의 佛敎와는 完全히 다른 現世指向的 宗敎로 變化되었다.

‘中國'은 동아시아 地域이라는 地理的 條件에서 歷史的으로 形成된 政治的, 文化的 産物들을 가리키는 槪念이다. 따라서 中國은 狹小한 民族 槪念이 아닌 中國, 韓國, 日本, 베트남을 包括하는 槪念이라는 것을 留念해야 한다. 中國的 世界觀은 世界를 흐름으로 把握한다. 다스림과 어지러움이 循環하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뜻의 一治一亂은 中國 思想의 特徵을 보여준다. 中國 思想을 理解하는 데 必須的인 槪念으로 天과 道가 있다. 天은 殷나라에서 세운 帝라는 槪念에서 비롯되었는데, 帝는 人格的인 神의 性格과 法則的인 性格을 同時에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周나라로 넘어오면서 人格的 神 槪念이 除去되고 理致와 法則으로서의 天 槪念으로 變化되었다. 天은 하늘이 定한 理法이다. 天으로부터 命을 받아, 天命으로 世上을 다스리는 이가 天子다. 天子도 天命을 따르지 않으면 命이 바뀐다. 命을 바꾸는 것, 이것이 革命이다. 天命은 特定한 사람만이 啓示를 받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天은 道德規範의 源泉이며 政治思想의 土臺가 되었다.

天을 道德的 源泉으로 定立한 것은 孔子였다. 祈雨祭와 葬禮, 祭祀 등을 擔當하는 儒 集團에 屬했던 孔子는 여기서 呪術的인 部分을 除去하고 그 안에 담긴 宇宙와 人間을 連結하는 理致를 窮究하여 하나의 原理로서 學問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天이 道德規範의 源泉으로 자리를 잡은 以後 中國은 다시 超越的 神 槪念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儒敎는 天에 根源을 둔 德으로 世上을 敎化하는 政治思想의 基本 原理가 되었다. 儒敎가 天에 根源을 두고 있다면 道敎는 道를 世上의 理致로 생각했다. 自然의 흐름을 일컫는 道는 萬物에 內在한 理致이자 萬物의 根源이며 同時에 그 根源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原因인 同時에 結果이다. 道의 法則은 物極必反이다. 世上 萬物은 極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極은 '다하다'라는 뜻으로, 다한다는 것은 消滅을 意味하기도 하지만 質的 轉換을 意味하기도 한다. 固定된 狀態와 運動하는 狀態 그리고 質的으로 다른 狀態를 同時에 表現하는 物極必反은 中國的 思惟의 모든 것에 들어있다. 世界를 흐름으로 把握한 中國的 世界觀의 基盤에는 道敎가 놓여있다.

道敎의 目標는 道와 合致를 이루어 不老長生하는 神仙이 되는 것으로, 이를 得道라고 한다. 道敎의 核心은 東洋五術이라고 부르는 命卜醫相山에 있는데, 마지막에 있는 山은 冥想의 狀態에 到達하는 것으로, 이는 印度 佛敎의 禪定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中國 佛敎는 道敎 위에서 成立되었다. 印度 佛敎의 涅槃은 中國으로 들어오면서 得道로 飜譯되었고, 中國 佛敎에서는 부처가 된다는 意味인 成佛로 變化되었다. 中國 佛敎는 自我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로 自我를 채워야 한다. 現世의 利益에는 關心을 두지 않는 本來의 佛敎와는 反對로 現世의 利益을 追求하는 데 도움이 되는 宗敎로 바뀐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世界가 모두 부처님의 世界라는 華嚴經을 經典으로 삼는 華嚴宗, 모든 人間이 부처가 되도록 가르침을 펼치러 超越的 存在인 부처님이 世上에 왔다는 法華經의 天台宗, 經典에서 벗어나 日常的 삶에서 부처의 道를 닦아 成佛하는 것을 目標로 삼는 禪佛敎 등 中國 佛敎의 宗派들은 모두 中國 佛敎가 現實 世界에 대한 絶對的 肯定의 宗敎로 탈바꿈하였음을 보여준다.

中國 思想의 特徵은 物極必反의 法則을 따르는 道와 이를 基盤으로 하는 現世指向性에 있다. 21세기 한반도에 사는 사람에게 道는 동아시아에 屬한 한반도라는 地理的 條件에서는 익숙한 面이 있지만, 西歐 文明에 익숙해진 21世紀라는 歷史的 狀況에서는 낯선 面도 없지 않다. 現在를 올바르게 理解하려면 西洋 思想과 더불어 中國 思想에 대한 理解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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