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사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서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런데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철학은 확정된 정의가 없는 학문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확고한 정체성이 없기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물으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인간학이다. 이처럼 철학을 인간의 내적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으나 이 또한 잠정적 정의일 뿐 철학의 확고한 정의는 아니다. 이래저래 철학은 확고한 개념정의가 어려운 학문이다.

철학의 확고한 개념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철학개념을 내놓았다. 그들은 어떤 것을 철학이라고 간주해 왔는가. 그 역사가 철학사이다. 철학자와 철학자, 텍스트와 텍스트가 묻고 답하고, 논박하고 재논박해온 역사. 다시 말해 철학적 사색에 의한 성과물로서의 텍스트의 역사가 철학사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에는 시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사유모형이 담겨있다.

사유모형은 이론체계이고 생활세계는 실천체계이다. 사람들은 사유모형 위에 세워진 생활세계에서 살아간다. 생활세계에서 어떤 문제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해결하고 헤쳐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사유해야 할 때 사유모형이 필요하다. 사유모형이 부족하면 사태를 근본적으로 원리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철학의 역할은 구체적 일상생활에 적용할 사유모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사유모형들이 만들어져 왔는가.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내가 구체적 일상생활에 적용할 사유모형은 무엇인가. 이 물음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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