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영하 10도 아래에 머물러있는 기온은 올라갈 줄을 모른다. 숫자로 표시된 기온만 보면 움츠러든 몸이 펴지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곧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올 것을 안다. 돌고 도는 계절, 그 순환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이 더 추웠는지, 아니면 그나마 견딜 만 했는지,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겨울이 지나고 어김없이 봄이 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안다. 작년뿐 아니라 재작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으며 언제나 그래왔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과거를 기억한다.
과거를 의식하고 있으면 현재 벌어지는 사태 앞에서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된다. 해 아래 새로운 사태는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늘 비슷한 위기가 있었고, 끊임없이 인간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현재가 가장 절망스러운 것 같아도 역사에는 그보다 더한 시기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찰나에 지나지 않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위기와 혼란과 절망의 연속이었음 알 수 있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을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헤겔의 말은 옳다.
사실 역사를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해 역사를 읽는다.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은 "조선이 망할 때쯤에는 국가는 없고 가문만 있을 정도였다. 가문의 이익이 우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저 멀리 유럽 한구석에서 피어오른 종교개혁의 불길은 부와 권력을 향한 메디치 가문의 탐욕이 불쏘시개가 되어 전 유럽으로 번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 사례는 널려 있다.
권력을 쥔 자는 교활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부를 챙긴다. 재력을 가진 자는 '사료'를 먹이듯 돈으로 길들인 권력의 비호 아래 가문의 성벽을 높이 세운다. 이런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결말 또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다가 망한다. 그리고 역사는 그 수치스러운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누구의 통치를, 누구의 다스림을 받을 것인가. 어떤 나라에서, 어떤 법과 질서에 따라 살 것인가. 제국 로마의 임박한 멸망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전한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