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유한 에토스 세트(ethos set)에 따라 살아간다. 에토스 세트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계이해라는 이론적 측면이다. 두 번째 측면은 앞서의 세계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행위원칙과 그 원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체적 행위라는 실천적 측면이다.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에 의해 도출되는 세계이해가 바뀌면, 행위원칙과 그에 의해 도출되는 구체적 행위도 바뀐다. 이러한 변화가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다.

기원전 6세기와 4세기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 일어났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이 시기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에토스 세트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더이상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신화적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본질과 현상을 구별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1차적 질문으로부터 "무엇이 인간의 올바른 삶인가?"라는 2차적 질문, 즉 형이상학적 질문으로까지 나아갔다.

같은 시기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폭력과 죽음, 불행과 고통에 맞서 "평화와 평온을 가르쳤다.” 싯다르타가 전해준 새로운 사유의 제1 전제는 “우주와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고통을 야기하는 욕망과 열정의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 시기의 중국은 발전된 정치문화를 갖고 있었음에도 “정치권력의 부패로 인해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에 공자는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길(道)을 정의(定義)"하는 이론영역과 "그것을 개발하는 것을 돕는” 실천영역으로 이루어진 에토스 세트를 내놓았다. “조화로운 관계, 위정자의 지도력과 통솔력, 타인들과 함께 잘 지내고 또 그들을 격려해주는 것, 자기반성과 자기혁신, 개인적인 덕을 배양하고 악을 피하는 것 등"이 공자의 일반론이었다.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노자는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의해 도출된 세계이해에 있어서 공자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 "노자는 자연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였는데, 그만큼 인간사회에 대해서는 덜 중요시하였다.” 공자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것은 곧 사회적인 것"이었다면, 노자에게 "개인적인 것은 자연과의 일치"였다.

페르시아에서는 자라투스트라가 "하나의 포괄적인 도덕적 일신론을 지향하기 시작하였다.” 자라투스트라는 “무엇이 ‘악의 문제'로 불릴 수 있는가에 관해 고심"한 끝에 "선과 악이 모두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도덕적 이원론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고대의 히브리인들은 비록 "위대한 철학자를 배출하지 못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중의 하나인 한 권의 완전한 책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특히 <창세기>)는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말하는 기술"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기원전 6세기와 4세기 사이에 "단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에토스 세트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 결과 철학, 종교, 과학을 포괄하는 다양한 사상, 즉 “넓은 의미의 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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