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웹소설을 말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이융희 지음 / 요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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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있는 이론, 가르칠 수 없는 기술

웹소설 교육 현장에서 웹소설을 다시 생각하다

예전에 웹소설에 푹 빠져있는 대학 후배와 만난 적이 있다. 눈물이 맺힌 빨간 눈동자를 한채 왔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새벽에 웹소설을 읽느라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말고 우선 한번 읽어보라는 후배의 말은 그냥 흘러 들었었다. 웹소설은 다소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에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공전의 히트작을 만나게 되었고 미친 듯이 빠져들었는데, 그 드라마의 원작이 웹소설이었다니?! 그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장르소설 중 않은 신작들이 웹을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다시 종이책으로 발간한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웹소설이 무엇이고 매력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 "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를 만나게 되었다. 웹소설 작법 위주의 실용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논문을 책으로 다시 편집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 이융희씨는 2006년에 소설 " 마왕성 앞 무기점" 을 출간하고 이후 장르 관련 글을 쭉 쓰고 있고, 한국 판타지 소설을 주제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래서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남달랐구나 싶다. 현재 대학에서 웹소설과 장르 관련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다. 놀란 것은, 웹소설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니 (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 ) 그리고 이제 웹소설은 사회 현상을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달까?

이 책은 웹소설이라는 주제를 넓고 깊게 파고든다. 웹소설의 본질, 즉 웹소설이 과연 무엇인가? 에서부터 웹소설의 기원, 즉 이 장르가 생기게 된 사회적 역사적 배경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웹소설의 가치는 뭐고 좋은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웹소설에 대한 강의에서 주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지까지 제시한다. 웹소설이라는 현상이자 문화를 매우 다각도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현재 대학에서 실제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탄탄하고 체계적인 강의 커리큘럼이 필요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책이 그 피와 땀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큰 흐름을 잡아가는 이론서이자 실질적인 작법으로까지 연결되는 충실한 책이라고 하겠다.

“ 그러나 웹소설은 하루에 한 편 연재되며, 독자들의 댓글 반응이 좋지 않으면 24시간 이내에 내용을 A/S 하지요. 그렇다보니 소설의 내용은 작가만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소설에 바라는 욕망이 즉각적으로 포함되고, 동시에 그것이 다시 작품이라는 콘텐츠에 흡수되지요.”

그렇다면 웹소설이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의도대로 완결되어 나오는 종이책과 달리 웹소설은 그날 그날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까지 하는, 즉 독자들의 반응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분야였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쌍방향 시스템이랄까? 넷플릭스에서 본 한 영국 드라마에서 독자들이 선택하는 결말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구조를 봤었는데, 웹소설에서는 이미 시작된 현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독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비패턴과 문화적 형상을 해시태깅해 소비함으로써 텍스트의 장르의 바꾸는 시대가 된 것이다.

“ 대학이라는 공간의 제도적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 강사들은 커리큘럼을 짤 때 학생들의 역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받았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복된 커리큘럼을 교육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완비한 컨트롤타워가 역량 있는 사람을 제 공간에 배치해야만 합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틀어 글쓰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나 기관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웹소설이라는 특정 분야를 가르치는 학과가 대학에 있다는걸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가진 특수성 ( 게임 산업, IT분야 발달 ) 덕분에 웹소설 분야가 발전했고 그런 문화를 누린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웹소설을 소비하는 주체이자 창작하는 주체가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웹소설 분야와 산업은 쑥쑥 성장하고 있는데 작가나 비평가 등등 웹소설에 대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아직 빈약하고 앞으로도 더 보충해야 할 분야임을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데 매우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전문적이고 깊이있었던 책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웹소설이라는 우물만 수십년 파온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강의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다면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만족감도 굉장히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고 난 후 웹소설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뀐 느낌이다. 나름 엘리트인 후배가 웹소설에 빠져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웹소설은 여러 정체성을 거치면서 발전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웹소설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책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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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 - feat. 1평 좁은 주방
한태희 지음 / 지콜론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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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촉박하게 흘러가는 직장인이라 충분한 요리 시간을 낼 수 없다? 혼자 살고 있기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를 꼭 읽어봐야 한다. 집에 있는 재료로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들, 가성비도 높고 맛도 있는 요리들이 빽빽하게 책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직장을 다녀온 후 바로 선 자리에서 뚝딱뚝딱 만들 수 있고, 사진만 봐도 군침이 흐르는 음식들이 책에 소개 되어 있다. 내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훌륭한 레시피 북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로 들어가본다.

저자 한태희씨는 어느 정도 요리와 음식에 일가견이 있어야 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만든 요리들은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섞으면 맛있을 지 알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본격 요리책인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과거 경험들이 잘 익은 고등어찜 속에 들어있는 묵은지처럼 잘 섞여 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라면 백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실려 있다. 우선 1장의 제목은 "퇴근 후, 나를 위한 소중한 한 접시" 이다.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니며 주님을 영접했으나 직장인이 된 후에는 주로 酒님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저자 ( 요리 뿐만 아니라 글도 대단히 맛깔스럽게 쓴다 ) 1장에는 유독 숙취나 직장인 스트레스에 좋은 요리가 실려 있다.


술 때문에 속이 쓰려서 위장 내시경을 했던 날, 끼니를 죽으로 떼우라는 의사 선생님의 충고를 과감히 패스하고 저자가 만들어 먹은게 있다. 그것은 바로 " 무조림덮밥" 저자는 이 요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 건강 검진이 끝나고 빈속인 날 또는 숙취로 고생하는 날은 부드럽고 담백한 그리고 든든하고 맛있기까지 한 음식이 무엇일지 머릿속을 바삐 굴린다. 부드럽고 담백한데 든든하고 맛있는 것. 그것은 뿌리채소다. 푹 익히면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속을 든든히 채워 준다. " 저자의 표현만으로도 이미 무조림덮밥을 한그릇 뚝딱한 기분이다. 잘 배어든 양념에 푹 쪄서 부들부들한 무와 쌀밥의 조화라니!





2장의 제목은 [온전한 나의 하루를 위한 요리] 이고 3장의 제목은 [구태여 시간을 더하는 일] 이다. 2장의 경우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후 지친 자신을 위한 맛있는 야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배달 음식에 딸려온 쌈장, 김치, 초장 등을 이용해서 만든 감자탕 볶음밥 ( 들기름, 들깻가루, 들깻잎이 충분히 들어가서 감자탕 맛이 난다 한다 ) 과 냉장고에 쓰고 남은 자투리 채소를 이용해서 만든 부침개를 보니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히 든든한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3장에서는 좀 복잡한 레시피에 시간이 좀 드는 요리법들이 주로 등장한다.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바질은 근처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저자는 직접 길러낸 바질을 이용해서 만들어낸다. 구태여 몇 달의 수고로움을 더한 일을 통해 여유로운 주말을 더 천천히 음미하는 저자. 직접 길러낸 바질의 향이 더욱 향기로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장에는 석탄주와 사과시럽과 칵테일 등 술을 빚는 내용이 등장한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발효를 하는데 드는 시간까지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레시피이긴 하지만 직접 만들어낸 술은 또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각 요리에 대해 소개를 할 때 마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 곁들어진다. 마치 사람 좋은 주인장이 운영하는 포차에서 술과 안주 그리고 그날의 특별 요리를 먹으면서 주인장과 재미있는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시험을 치고 나면 반드시 들렀다는 “공주 칼국수” 의 특별 레시피, 눈물 쏙 빼는 매운 칼국수와 아빠의 고향 평창에서 할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들기름 묵은지 막국수” 는 이번 주 주말에 꼭 만들어 먹고 싶은 요리들이다.

업무로 인해 지친 마음, 혼자살면서 느끼는 외로움 등등 급습하듯 몰려오는 여러 부정적 감정들을 잘 달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만들어준 따뜻한 요리 한 끼가 아닌가 싶다. 혼자 살기에 누군가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들어주면 된다. 집에 있는 재료를 쓰면 되고 조리법도 굉장히 간단해서 이 책에 나오는 요리는 거의 대부분 만들어먹을 수 있겠다 싶다. 저자의 글솜씨도 얼마나 좋은지 읽는 내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재주 있는 손끝이 빚어낸 맛있는 레시피 북 [고독한 직장인의 자취 요리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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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베이킹 수업 - 정말 쉽고 맛있는 베이킹 레시피 54
고상진 지음 / 리스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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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워낙 좋아해서 삼시 세끼를 빵으로 먹기도 한다. 밀가루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는 체질임에도 근처 빵집에 거의 매일 들리다시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어릴 때는 특히 카스텔라를 좋아했었는데, 엄마가 가끔 전기밥솥이나 전기 프라이팬을 이용해서 빵집에서 파는 제품 못지않은 촉촉하고 폭신하고 달콤함 카스텔라를 만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우유와 함께 먹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요리를 잘 할 줄 몰라서 결혼하고 나서도 배달음식만 시켜 먹다가 최근에 탕수육이나 김치찜 같은 요리를 남편에게 만들어줬는데 다행스럽게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남편도 나만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요즘에는 건강 때문에 양을 줄이긴 했지만 빵돌이에게 한번 솜씨 발휘를 해줘 봐?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이 책 [나의 첫 베이킹 수업]을 만나게 되었다.






큼직한 크기의 책에는 사진이 보기 잘 정렬되어 있다. 사진과 글의 배치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게 되어 있다. 여백이 적절하기 때문에 눈이 아프지도 않은 것 같다. 특히 이 책은 나 같은 베이킹 초보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빵을 만드는데 드는 기본 재료에서부터 기본 도구까지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진도 같이 정렬되어 있어서 뭐가 필요한지 한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도구가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쿠키 틀이나 식힘망 등 특이한 도구를 제외하면, 저울이나 유산지 그리고 계량 수저와 컵 등은 집에 이미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빵 종류가 이렇게 많았다니! 이 책 [나의 첫 베이킹 수업]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빵에 대한 베이킹 방법이 나와 있다. 책의 맨 앞 쪽에는 본격적으로 특정 빵을 굽기 전에 알아야 하는 베이킹 기본 과정에 대한 용어가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가루 재료를 체 치는 방법에서부터 버터와 달걀이 분리되지 않게 섞는 방법까지,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설명이 나와 있기 때문에 초보 요리자도 아무 부담 없이 오늘부터 빵을 구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뿐 아니라 생크림 거품 내기나 머랭 만들기 그리고 오븐 정확하게 사용하기까지 디테일 만점인 책이다.





우선 머핀 만들기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카페에 가면 어떤 머핀이 있나 먼저 둘어볼 정도로 머핀을 좋아한다. 다양한 머핀들 중에서 눈이 가는 것들은 바나나 머핀과 레몬 포피 시드 머핀인데. 그냥 잘 찍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고 향긋한 냄새를 맡은 기분이다. 조리법 아래에 살짝쿵 미리 준비하기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핏 보면 군더더기 같지만 베이킹을 좀 더 완성도 있게 이끌기 위해서 넣은 작가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목표는 레몬 포피 시드 머핀이다! 사진과 함께 요리법을 자세하게 훑어본다. 달걀과 설탕 섞기와 같은 기본도 있지만 포피 시드 넣기 같은 생소한 부분도 보인다. 포피 시드는 양귀비의 씨앗으로 아작아작한 맛이 좋아서 베이킹에 자주 쓰지만 혹시 포피 시드가 없으면 빼도 된다는 작가의 말에 다소 안심이 된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틀에 반죽을 담아 오븐에 굽고 난 후 아이싱만 뿌리면 레몬 포피 시드 머핀 완성이다. 구하기 쉬운 재료에 쉽고 간단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읽어만 봤는데도 이미 머핀을 다 완성한 느낌이다. 이번 주말에 해야 할 일은? 바로 레몬 포피 시드 머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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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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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즐겨 읽지만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에 비해서 SF 소설에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너무 어려운 개념이 등장한다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소설을 읽다 보면 뇌에 정지가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SF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이 장르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 한편, SF 가 선사하는 기묘하고 독특한 세계관, 그 한계 없는 상상력이 주는 매력 때문에 쉽게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나의 경우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전달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만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배명훈 작가의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는 그전에 읽었던 소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굉장히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 미래를 다루긴 하지만 광활한 우주나 망해버린 지구 이런 게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읽다 보니까 한 5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일들이 훅 다가오는 느낌이다. 코로나를 겪은 후 비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침 튀는 센 발음이 싹 사라진다는 설정 -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과 진지하게 조우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아이들의 수능 시험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진지하게 읽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게 되는 이야기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의 정교하고 치밀한 "SF 적 상상력" 혹은 "세계관"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하고 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류가 가진 비장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세계관 특유의 감정적 소비는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듯한 실험적 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 하나하나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나의 뇌를 간지럽힌다는 싶은 느낌도 들었다. 9편의 소설 중 내 마음에 더 깊이 남았던 소설들은 [수요곡선의 수호자], [미래 과거시제], [접히는 신들] 그리고 [절반의 존재]였다.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가진 인공 지능들.. 앞으로 그들에 의해 지배될 어두운 미래를 가끔 상상하곤 하는데, [수요곡선의 수호자]에 나오는 주인공 로봇 마사로는 특이하게도 소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로 공급에 초점이 맞춰진 A.I.들의 무시무시한 공급력을 상쇄하고 경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수요곡선의 수호자랄까? 인간 못지않은 감수성을 가진 마사로와 함께라면 소비활동이 상당히 즐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과거시제]에는 독특한 언어를 말하는 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주인공 강은신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자가 등장하고 그가 가진 특유의 언어 습관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독특한 단편이라는 느낌도 들고 예전에 봤던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떠올랐다.

[절반의 존재]에는 사고로 인해 절반의 몸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 지하임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절반이 아니라 다른 절반이 기계로 대체된 경우이다. 고통을 이겨낸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받아들이지만 어머니는 도저히 변한 지하임을 딸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부모님 모두와 함께 하게 된 자리에서 지하임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어머니 안세미씨에게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딸임을 항변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소설들 외에도 [접히는 신들]이라는 단편도 너무나 독특하게 다가왔다. 2차원이라는 평면의 세계가 눈앞에서 3차원으로 변하고 공간에 우뚝 서게 될 때 느끼는 그 감동, 얼마나 경이로울 것인가? 평면에서 입체감을 구현해 내는 화가들의 위대함이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공간적 상상력이 남들에 비해서 더 뛰어난 사람들이면 이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배명훈이라는 이름이 워낙 낯익어서 책장을 좀 뒤져보니, 작가의 책들이 몇 권 꽂혀있었다. [타워]라는 책과 [안녕, 인공존재]라는 책인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책장에 꽂아놓은 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특유의 실험적 정신과 재기 발랄함이 녹아있겠지? 미래 세상에 대한 다소 삐딱한 시선이 만들어놨을 그 풍부한 세계로 다시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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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요괴상점
기구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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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장터 외진 골목, 이상한 이름의 상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요괴를 사고팔거나, 요괴를 잡아들이는 곳

조선 팔도에 끊이지 않는 요괴 사건을 해결하는 한성 요괴 상점이었다.

한성 요괴 상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모두들 매우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 것 같은 평화로운 조선 시대에도 역병과 환란을 일으켰던 요괴들이 들끓었다니?! 이 책 [한성 요괴 상점]은 기상천외한 요괴들이 등장하며 세상을 어지럽혔던 판타지 조선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책에는 가끔씩 들어봤던 요괴 두억시니뿐만 아니라 새로운 요괴들도 많이 등장한다. 서양의 호러 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목 없는 기사, 즉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 같은 존재도 있다. 독특하고 기이한 요괴들도 재미의 요소이지만, 이 [한성 요괴 상점]이 재밌는 이유는 역시 독보적인 캐릭터, 주인공 최한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부모의 실종으로 혈혈단신으로 요괴를 물리쳐야 하는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특유의 호연지기와 유머감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애송이 요괴 사냥꾼, 엽과 한기의 활약으로 들어가 본다.

한밤중 한기는 채 잠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이 불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 그런데 집은 폭삭 주저앉을 정도로 타버렸지만, 한기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살아남는다. 알고 보니 그 전날 어머니가 준 적룡 혈담이라는 환 덕분에 살아났다는 걸 알게 된 한기. 다가올 재난을 어머니가 미리 예측하셨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어떤 변괴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서 서둘러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한성 요괴 상점으로 달려가지만 가게는 누군가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부모님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소에 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씀에 힌트를 얻어서 매화나무 곁을 파본 한기, 거기서 요괴 화첩과 아버지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조선에서 알아주는 신출귀몰한 요괴 사냥꾼들인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신 이유는 뭘까?

한편, 후농리라는 마을에서 마진이라는 역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혜민서에서 나온 의녀와 의원들이 약과 탕제를 처방하지만 환자들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삿갓을 쓴 낯선 사내가 후농리를 찾아오고 그가 건넨 검은 환약을 먹은 방산댁과 그녀의 딸이 차도를 보이게 된다. 불법적인 의료 행위라고 주장하며 환약 복용을 뜯어말리는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돌이 삿갓 사내의 환약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완쾌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차가운 인상착의의 삿갓 사내 이야기를 들은 한기는 곧바로 무시무시한 요괴 두억시니를 떠올리게 된다. 요괴 화첩에 따르면 요괴 두억시니가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끝내는 머리가 터져 죽는다고 하는데,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환약으로 병을 낫게 만드는 삿갓 사내의 정체는 진짜로 무엇이란 말인가?

요괴가 등장하는 장르는 자칫하면 너무 유치해지거나 소설로서의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기구름 작가의 "한성 요괴 상점"라는 요괴와 조선시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글을 읽다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옛 요괴들이 생명력을 갖추고 생생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한국인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져서 요괴라 해도 크게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다는 면도 좋았다. 예를 들자면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 두억시니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머리 없는 요괴인 무두귀는 가족들이 누군가의 손에 몰살을 당한 뒤 생긴 한으로 인해서 요괴가 된 케이스였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것은 바로 요괴들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하는 거대한 힘, 요괴들을 조종해서 조선을 삼키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그는 허벅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요괴이다. 과연 한기는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실종된 부모님, 요괴들의 습격으로 인해 너덜너덜한 백성들, 그리고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나라의 운명... "한성 요괴 상점" 속 판타지 조선은 이제 애송이 엽괴 최한기의 손에 달려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에 작가의 현란한 필력 덕분에 정말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읽은 책이다. 특히 한기가 요괴들과 대적할 시 외우던 주문 때문에 여러 번 박장대소를 했다. 우스꽝스러운 주문이지만 그 주문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무협지 같기도 하고 머털도사 같은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건 애송이 요괴 사냥꾼이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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