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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꿈 외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고 니체는 말한다.
러시아 작가의 소설들은( 이라고 일반화 하는건 옳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서도) 보드카와 같다. 무색의 강렬함이다. 차갑게 넘어가지만, 삼키고 나면 뱃속에서 불이 난다.
강렬한 성격의 주인공들은 그러나 보기에 유럽식의 로맨스와도 중남미의 뜨거움과도 비슷하지조차 않다.
이 책에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와 '아저씨의 꿈' 이라는 한 편의 미완성 장편과 한편의 중편이 나온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창작활동을 보통 3기로 나누는데,이 책은 그 중 중기에 속한다. 1기는 그가 일약 무명의 청년에서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로 24세의 나이에 평론가의 극찬과 더불어 화려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사상을 옹호하고 당대 러시아 상황에 대한 비판적 모임이었던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당할 때까지의 기간이 이 기간에 해당한다. 이후 4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치고 복직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여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던 기간이 그의 창작활동 기간중 중기에 속하고, 도스또예프스키의 자아의 정수가 표현되었다고 하는 1864년의'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부터 그의 생의 마지막 대표적 장편소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이르는 기간이 그의 창작의 마지막 시기가 된다고 대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여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의 글들에서 모티브를 따온것이 분명해 보이는 짜집기식의 스토리에 그 완성도로서도 일반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일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후에 읽을 도스또예프스키 작품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악령', '죄와 벌' 그리고 '백치' 등에서 등장하게 되는 도스또예프스키의 전형적인 인물상들을 미리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또츠카에서 등장하는 까챠의 모습.
'여러분도 한번 이상적이라 할 만큼 매력을 지닌 인물. 충격을 줄 정도로 눈에 번쩍 띄는 미인을 상상해 보라.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어러분은 무엇에 찔린 것처럼 기분좋게 당황하다가 환희에 흠칫 몸을 떨며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어린 까챠의 모습은 유형이후 도스또예프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도도한 여성상의 선구가 된다. ( '노름꾼'의 뽈리나, '백치'의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악령'의 리자 그리고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그리고 '아저씨의 꿈'의 지나의 모습도.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죄와 벌'의 소냐, '미성년'의 소피아, '악령'의 다사에게서 나타나는 온화한 여성상의 모습을 우리는 네또츠까나 3부에 나오는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둘째, 전집 두권씩으로 나온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두장도 넘어가는 후기의 주옥같은 장편소설에 비해 짧다. 맛뵈기로 읽을만하다. 그리고, 평소 러시아 소설을 안 읽다가 '까라마조프' 같은 책을 읽으면 체하기 십상이니, 체해버리고 도스또예프스키 같은 그러니깐 니꼴라이 베르쟈예프라는 사람이 말하길 ' 도스또예프스끼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는 정도의 이 초인간의 초작품들을 던져버리고, 죽을때까지 쳐다보지 않는 것보다는 중기의 중,단편들부터 접해도 무리 없다.
셋째, 내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에서 항상 놀라워하고 느끼는 바는 인간의 심리묘사이다. 그런면에서 니체가 말한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저씨의 꿈'에서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가 남편을 어서 빨리 모르다소프로 데려가서 공작을 시골로 모셔가기 위해, 남편이 있는 시골로 가며 조급해 하는 장면이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마음속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만큼 묘한 불안이 계속해서 엄습해 오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는 것을 필자는 숨기지 않겠다. 이런 심정은 참다운 영웅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이 정작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찰나에 느끼게 되는 그러한 기분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본능이 그녀에게 모르다소프에 그냥 있으면 위험하다고 소곤거려 준 것이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기 손을 비비면서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하긴 어려움이라야 그리 대수로운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손을 쓸 수도 있긴 했지만, 문제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모든 것을 정복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욕심이 강한 스스로의 성질을 아무래도 억누를 수가 없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성질을 끊임없이 아파나시 마뜨베이치에게 퍼붓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제(專制)를 하게 되면 마침내 그것이 습관화되고 습관은 필요로 변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로는, 아시다시피 상류 사회에 속하는 우아한 귀부인 가운데는 무대 뒤로 가면 살롱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언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
넷째, 이것저것 짜집기 했으니깐, 어쨌든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뒤에 작품해설을 읽고 있자니, '아저씨의 꿈'은 블랙코메디로 쓰여진 것이란다. 블랙코메디! ...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미국식,유럽식 블랙코메디에는 익숙한 나이지만, 도스또예프스키의 블랙코메디라. 키득. 하며, 다 읽고, 괜히 다시 재미있어했다.
사족 : 러시아 작품 속의 등장인물 이름은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