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은 서로의안녕과 자유이지, 이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않는 진리나 이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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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남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깜깜해진 밤하늘 위로 폭죽처럼터진 별 무더기가 고운 빛가루가 되어 쏟아졌다. 꿈인 것을 알면서도 성곤은 눈을 뜨지 않았다. 란희의 속삭임과 아영이의 웃음소리, 손을 스친 풀포기의 보드라운 감촉,
언젠가 벌컥벌컥 들이켜던 물의 맛이 생생했다. 몸 안에있는 모든 감각이 하나로 뒤섞여 오로라처럼 찬란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무늬를 만들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그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혀 훼손되지 않고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 P167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배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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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결속하는 것은 피도 유전자도 아닌, 다만 함께 보낸 수천 번의 나날들, 말과 몸짓, 음식들, 차를 타고 다닌 거리, 의식한 흔적 없는 다수의 공통된 경험들의 현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 < 세월, 아니 에르노 지음 / 신유진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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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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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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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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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역시 기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저의 수많은 모습 중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모아 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척척 맞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그것은 기만입니다. 실제의 제 삶은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지 않거든요. 제가 선택한 제가 그럴싸한 이야기였듯이 선생님이 분석한 저 역시 또다른 그럴싸한 이야기겠지요. <사건의 결말> 제작진이 편집한 저 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요. 그러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어떤 이야기도 아니에요. 저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카오스그 자체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김연수 ‘진주의 결말‘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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