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남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깜깜해진 밤하늘 위로 폭죽처럼터진 별 무더기가 고운 빛가루가 되어 쏟아졌다. 꿈인 것을 알면서도 성곤은 눈을 뜨지 않았다. 란희의 속삭임과 아영이의 웃음소리, 손을 스친 풀포기의 보드라운 감촉,
언젠가 벌컥벌컥 들이켜던 물의 맛이 생생했다. 몸 안에있는 모든 감각이 하나로 뒤섞여 오로라처럼 찬란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무늬를 만들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그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혀 훼손되지 않고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 P167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배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
-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