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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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석습(朝花夕拾)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라는 제목의 루쉰 자전적 산문집이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냉큼 주워 향기를 맡지 말고, 그 운치를 충분히 음미하고 저녁에 가서 비로소 꽃을 주워 드는 마음이랄까. 그런 느긋한 맘으로 당신의 책을 읽어 달라는 뜻일까. 아침에 일어난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저녁까지 기다려 현명하게 대처하자, 뭐 이런 뜻도 되겠다. 결실을 위한 기다림, 깊은 사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등의 의미로도 생각해봤다.

 

   루쉰만큼 근대 중국 상황 개조자를 자처한 이도 드물다. 21세기에 20세기 중국(중국 근대사의 암울함)을 얘기하는 시대적 역행에서도 어쩜 이리 얻을 게 많은지. 보편타당한 통점이 담겨 있는 어록들이 폐부를 찌른다. 루쉰의 시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자국상(?)을 그의 글을 통해 확인한다. 과거이지만 결코 지난 게 아닌, 현재형 일침이 지금 우리 상황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폐부 깊숙이 느낀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루쉰 같은 사상가가 나온다면 세상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봤다. 패배자 의식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선지적 통찰가라고 추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과 상관없이 그는 난 사람이다. 학습된 악습과 게으른 미몽에서 헤어나게 하려는 중국인들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왜곡된 진실이나 주권자로서의 뭉개진 자존심을 제대로 곧추 세우기엔 한두 명의 루쉰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새기게 된다. 청년 정신, 깨어있는 지성을 향한 부단한 외침에 메아리가 미흡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17(한 사람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는 루쉰의 말에) L은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그것은 자연의 말이지, 사람의 말은 아니네. 자네 조심해야겠네." 나는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1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면서 괴상해지고, 노년에서 죽음을 맞기까지는 더욱 기상천회하게 변해 소년들의 길을 막고, 소년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자신들이 다 마셔버리는 인간들 말이다.

23청년들은 깊은 웅덩이를 메워 자기가 갈 수 있도록 해준 나이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가 메운 깊은 웅덩이를 지나 멀리멀리 나아가는 청년들을 고마워한다.

30성인이 되더라도 오직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추종할 뿐, 그 역시 자식을 만드는 도구일 뿐, 인간의 부모가 되지 못한다.

31우리 중국에는 자식의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아버지다.

34먼저 자신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래야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떳떳하다.

49자녀를 해방시키려는 부모는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더더욱 합리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한다.

51결사적으로 효도를 권장한 것도 사실상 효자가 드물었음을 증명한다. 위선적인 도덕만 제창할 뿐 진정한 사람들의 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53자녀들을 내버려둔 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효경>을 읽으라고 윽박지르고 옛날 가르침을 배워 자신을 희생하라고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낡은 도덕, 낡은 습관, 낡은 방법의 책임이여 생물학적 진리 탓이 아니다.

54중국의 각성한 사람들은 어른을 따르면서 나이 어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있다.

61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남녀 간에 동등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은 참정이나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어려울지 모릅니다.

65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를 얻으면 그것으로 인형이 아닐까요? 역시 인형입니다. 다만 남에게 조종당하는 일이 적어지고,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될 수 있습니다.

67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 채찍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히 내려칠 것입니다.

79놀이는 어린이들의 가장 정당한 행동이며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 연을 망가뜨린) 정신적 학살의 광경이 불현듯 눈앞에 떠올랐고 내 마음도 납덩이로 변해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79그런 일이 있었어요? 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81나는 침묵할 때 충만감을 느낀다. 나는 입을 열자마자 공허감을 느낀다.

95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향한다.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향한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들한테만 눈눈을 부라리는 영웅들이 수두룩하다. 그 비열한 무리들!

96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원귀처럼 매달려라. 낮과 밤이 없이 매달리는 자라야 희망이 있다.

119많은 인부들이 이 장성 때문에 고역에 시달리다 죽기만 했다. 장성 덕분에 오랑캐를 물리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장성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 장성에 새 벽돌을 더 보태지 않아도 될까?

120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도가에서 말하듯 그렇게 초연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욕망의 덩어리다. 욕망을 차마 정면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인간은 온갖 음모와 술수를 동원한다. 이로 인해 날로 비겁해진다.

123승리의 조짐이 보이면 와, 하고 몰려들고, 실패의 조짐이 보이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

123우승자는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들이다.

125우리는 너무도 쉽게 노예가 될 수 있으며, 노예가 된 뒤에도 매우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줄곧 중국인들은 ‘사람’의 자격을 획득한 적이 없다. 잘해야 노예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노예보다 못했을 때도 많았다. 낡은 것이든 새것이든 어쨌거나 규칙을 제정하여 그들을 노예의 궤도에 올려주기를 바란다.

129노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한 시대, 잠시 안정되게 노예가 되었던 시대.

135중국인들은 열등한 존재이기에 원래대로 사는 것이 어울린다면서 중국의 낡은 것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135(외국인들이) 자기 여행의 재미를 더하려는 사람들로 중국에서는 변발을 보고, 일본에서는 게다를, 고려에서는 갓을 보고, 복장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다고 여겨서 아시아의 서구화를 반대한다. 참으로 가증스럽다.

135요컨대 받들어 올림을 받는 것들은 십중팔구는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 안일을 꾀하기 위해 여전히 받들어 올린다. --금송아지를 바라는 자에게는 황금쥐는커녕 죽은 쥐도 주지 말아야 한다. 복을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하는 길은 내려파는 것이다.

149순하다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다. (물에 빠진 개를 동정심 때문에 살려주면 화를 당하기 쉽다는 말의 우회.)

153선량한 사람들은 용서하라는 그 말이 옳다면서 악인을 구해준다. 그러나 악인들은 구제되고 나서, 자신들이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얼마 안 가서 빛나는 명성을 되찾게 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못된 짓을 한다.

156개혁가들만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늘 손해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아직도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159선각자는 늘 고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동시대인들에게 박해를 받는다. 큰 인물도 항상 이러하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예찬을 받으려면, 반드시 죽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아니면 눈앞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162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 없다.

186온순한 것이 발전하여 무슨 일에서나 온순하기만 하다면, 이것은 미덕이 아니라 바보짓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0자기는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남의 보복을 받는 것을 두려워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만하는 것은 아닌가.

207고슴도치는 학습에 의해 마침내 적당한 간격을 발견하고, 이 거리를 유지하며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사교의 필요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고, 또한 각기 싫어하는 많은 성격과 흉한 결함 때문에 떨어져 산다. 그들이 마침내 발견한 것은 ‘거리’다.

258더 이상 군벌을 위해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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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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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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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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