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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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제는 소설책의 서평단 모집이 예전만큼 많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은 정말 문학을 안 읽는다는 걸 체감한다. 이 정보화 스마트 시대에 허구적인 이야기를 자꾸 봐서 뭐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아니 뭐든지 유익하고 득이되는 것만 보고 듣고 살아야 하나? 반대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은 전공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단 말이다. 먹고사는 데에 그런 건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는 사람하고는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깊은 빡침이 전신을 감싸고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세상, 이런 장르문학으로 해소하고 사는 거지 뭐. 여하튼 오래간만에 읽는 국내 미스터리 소설인데 진지하게 리뷰 한번 써보도록 하겠다.


안덕은 다 쓰러져가는 낡아빠진 작은 도시이다. 이곳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 온 검사 출신 변호사 세휘. 그리고 그녀의 당숙이자 이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최종 보스 장 회장. 얼마 뒤 도시는 연쇄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장 회장을 따르던 오른팔들이 연달아 실종된다. 어쩌다 보니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그녀는 당장의 돈이 필요했고, 방화범을 찾아내면 뒤를 봐주겠다는 당숙의 제안에 넘어간다. 주인공을 정계로 진출시켜 너 좋고 나 좋자는 당숙의 계획이 뻔한 선악과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야 하는 그녀는 이 일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님을 느끼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대체 이 연쇄 사건으로 범인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잘 쓴 책이다. 김호연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었지.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주요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범죄소설은 남성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이 이끌어가는 작품이 거의 없다. 국내 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여성 캐릭터들이 수사나 액션을 담당하는 게 한계 아닌 한계가 있긴 하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고, 비협조적인 타인들의 태도도 그렇기에. 범죄소설의 주인공들 직업이 대부분 검사, 변호사, 경찰, 군인, 탐정이고 아무래도 이쪽 바닥이 남성들로 조직화되어 있다 보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이런 장르는 예측이 안되면 안 될수록 흥미롭고 집중도 잘 되거든. 게다가 악역도 골렘 같은 피지컬의 여성이었고, 남성들이 저지르는 범죄 계획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 여러 번 편견을 깨준 책이다. 


이것 말고도 작가는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중 양심과 탐욕의 공존을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 놀라웠다. 당숙인 장 회장은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그만큼 비밀도 많고 뒤가 구린 사람이었다. 반면에 치매 걸린 엄마와 반항 기질을 보이는 자식을 케어하며 집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주인공은 당숙의 협박 어린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법조인이면서도 돈 때문에 장 회장의 개가 되어야만 했던 그녀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숨이 막혔지만, 집안을 위해서라면 똥이든 된장이든 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건에서 손 떼고 싶어도 가족을 걸고넘어지는 당숙의 협박으로 수사는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진퇴양난의 번뇌가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여기에 완급조절도 훌륭하고 장면들이 곧바로 영상화될 만큼 매끄러워서 저자가 무슨 시나리오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일반 회사원이라고 함.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원피스 만화를 보며 감탄했던 게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전부 깊은 사연을 안고 있다는 거였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주연이든 엑스트라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는 더욱 탄탄해지고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이 책도 그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잠깐 지나가는 비중 적은 인물에게도 사연을 심어주어 리얼리티를 살렸다. 여기에 정유정 작가의 특기인 음산한 분위기 연출까지 집어넣었다. 이만하면 장르문학으로써 웬만한 건 다 갖췄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사건 수사보다는 도시의 부조리와 주인공의 집안 문제 쪽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있다는 점과, 주인공이 변호사보다는 아이의 엄마 캐릭터로 더 부각돼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작품의 성격이 어중간해져 버렸다. 연쇄 실종사건을 다루는 플롯으로 소개된 책인데 진짜는 사회소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제목인 콘크리트의 의미가 본문에 나오진 않았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가리킨 게 아닐까 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듯이, 돈과 세상도 그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범인의 승리로 끝나는 배드 엔딩이다. 근데 난 오히려 흔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오랜만에 정말 잘 만든 국내 문학을 읽게 되어 감격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준 황금가지 출판사에도 감사드린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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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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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기간 동안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했던 계획과 달리 저질체력의 몸뚱이는 잉여로운 침대 생활 속에 젖어버렸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해진 일정대로만 살다 보니 흐르는 세월이 아까워 뭐라도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독서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제는 낭비되는 시간들이 그렇게 아깝지만도 않다. 나의 독서는 삶의 템포를 늦추고 유연한 생각을 만드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나를 옭아매는 사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정녕 나는 독서가 좋은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이었다. 독서 슬럼프의 원인과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전된 배터리는 재충전을 해야 한다. 단 것도 먹어주고, 카페인도 섭취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독서가 안 내킨다면, 아직 회복이 덜 된 것이니 좀 더 주무시면 된다. 책을 의무가 아닌 취미로 읽는 사람이라면 참고해보시길. 게으른 나의 독서 생활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오랜만에 코넬리 옹의 서브 시리즈인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를 골라봤다.


장기간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변호사로 복귀하는 미키 할러는 라이벌이던 변호사가 갑자기 살해당하면서 그의 모든 담당 사건들을 넘겨받게 된다. 의뢰인 중에는 살인범으로 찍힌 영화사의 대표가 있었고, 이 거물의 변호에 반드시 성공해서 완벽한 부활 신고식을 할 생각이다. 죽은 변호사가 숨겨둔 마법의 총알을 찾아낸 할러는 그것으로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간다. 한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인범의 냄새를 맡고 불안에 휩싸이는 할러. 그리고 그에게 접근하는 해리 보슈와 경찰들. 할러는 어떤 위험에 빠진 것일까.


형사물인 ‘해리보슈 시리즈‘는 사건을 파헤치고 수사하는 속도가 시원시원한 편인데, 법정물인 ‘미키 할러 시리즈‘는 액션이 필요 없는 작품이라 진행이 매우 더디다. 또한 등장인물은 많은데 이해관계는 복잡해서 정리하느라 집중력이 오래가질 못했다. 더군다나 1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읽은 지 한참 지나서 시리즈의 전후가 가물가물하다. 이래서 시리즈는 텀을 길게 두면 안 됨. 암튼 자칭 교활한 천사였던 할러는 1년의 공백 기간이 지나서 매우 유해져 버렸다. 실력이야 여전했지만 어쩐지 캐릭터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아무튼 이번 편부터 할러와 보슈 두 사람은 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데, 스타일이 정반대라서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으르렁 갸르릉 거리고 있다. 보슈에겐 융통성과 온유함이 필요하고, 할러에겐 윤리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두 캐릭터를 붙여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했다. 다 좋은데 브로맨스는 자제해줬으면.


일거리를 여러 개 받아서 좋기도 하겠지만 범인이 라이벌의 중요 자료들을 들고 날랐다는 게 문제였다. 나름대로 사건을 정리해봐도 구멍은 많았고, 사건들 간에도 연관성이 보이는데 그것마저 알 수 없으니 지금 가는 길이 막힌 길인지 뚫린 길인지 캄캄하기만 했다. 암튼 여러 사건을 맡아서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내용이 계속 교차되고, 등장인물도 여럿 쏟아져 나와 중간까지는 정신이 너무 없었다. 갈수록 판은 커지는데도 좀처럼 명확한 길이 안 나와서 너무 시간만 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 그래도 느릿느릿한 장르인데. 이번 작품의 핵심은 ‘거짓말‘이다. 법조계의 고인 물이 다 돼가는 주인공은 그간의 경험으로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고 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짓말로 남들을 이용하던 그가, 반대로 그 거짓말에 이용당하는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나는 놈의 입장에 있다가 뛰는 놈의 입장이 되고 보니 답답해 죽으려 한다. 늘 그렇듯이 당근 한입 주고 미친 듯이 채찍질하는 사디스트 작가 마이클 코넬리였다.


아무리 무죄를 주장한다지만 당당함이 우주를 찌르는 의뢰인의 태도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다기보다, 사회의 위치가 그런 인품을 낳은듯해 보였다. 어쨌건 이 거물의 변호를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건 맞지만, 할러 자신이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다는 불안감과, 지나치게 간섭하는 해리 보슈와, 비록 이혼했지만 다시 점수 좀 따보려는 아내와의 줄다리기 등등 서브 스토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좋게 보면 상다리 휠만큼 먹을게 많은 거고, 나쁘게 보면 메인 요리가 부실한 거다. 후속편을 생각해서 여기저기 밑밥을 뿌리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되지. 이런 구멍을 강렬한 캐릭터로 메꾼다면 모를까, 순둥이가 되어버린 할러에게는 더 이상 배꼽을 커버칠 힘이 없었다. 어째서 작가는 그렇게나 개성 가득했던 캐릭터를 겨우 두 편만에 탈바꿈한 것일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테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제프리 디버가 떠오른다. 둘 다 미국을 대표하는 하드보일드 스릴러소설 작가이고, 시리즈 작품을 쓰면서 매번 대박을 터뜨리는 것도 똑같고, 범죄 분야의 전문성과 문학의 대중성까지 갖췄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디버의 글이 김경호라면 코넬리의 글은 박완규이다. 디버는 김경호처럼 날카롭고 스트레이트한 음색이고, 코넬리는 박완규처럼 묵직하고 와일드한 음색이다. 여러 면에서 닮아있는 둘이지만 차갑고 강렬한 디버의 글은 겨울 왕국을 연상케 하고, 코넬리의 글은 어둡고 후덥지근한 분위기라서 지하 던전을 연상케 한다. 이상하게도 그 던전에 한번 들어가면 숨쉬기가 힘든데도 나오고 싶지가 않다. 느낌 아시죠?


원래 법정 스릴러 하면 존 그리샴이지만 워낙 벽돌 책이라 읽어볼 엄두가 안 났는데, 코넬리 표 법정물은 두꺼워도 별 부담이 없어서 좋다. 장르 특성상 법정물은 진지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연속이어서 일정한 재미를 주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높은 전문성을 요한다. 그 어려운 걸 코넬리는 보란 듯이 해내고 있는데 1편도 그렇고 이번 편도 매우 준수한 내공을 보여준다. 흔한 변호인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만으로 재미를 뽑아내는 게 한계가 있으므로, 기자나 형사들과도 엮어 의뢰 사건의 안팎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일명 텐션 뻥튀기라고 하는데 코넬리가 이걸 참 잘한다. 타고난 감각과 고유의 컬러를 정말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코넬리 작품은 무조건 읽어주자. 칭찬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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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2020-06-03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넬리의 해리보쉬 시리즈도 볼만합니다. 미키할러 변호사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정통수사물
느낌이 많이 나요.

물감 2020-06-03 09:49   좋아요 0 | URL
아 보슈 시리즈는 몇권읽었어요! 제 취향은 해리보슈가 더 좋네요ㅎㅎ
 
1초 후 원더그라운드
윌리엄 R. 포르스첸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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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는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놓았다. 전 세계를 골고루 강타한 이번 재앙이 주는 여러 가지 교훈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꼽는다. 인간의 힘으로 재앙 자체를 차단하는 건 불가하나 대비만 잘해도 피해가 줄어들 테니.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 징조를 보고도 안일하게 생각하여 대처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먹구름을 보고도 소나기일 뿐이라며 우산 없이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은 미련한 자와도 같다. 왜 리뷰 시작부터 이런 말을 하냐면, 이 책 역시도 아무런 대비 없이 대재앙을 직면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재난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의 재난이 역대 최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이 내용에 비벼보지도 못한다. 자, 이제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이 1초 후에 황폐한 지옥으로 뒤바뀐 천조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갑자기 찾아온 정전으로 미국의 일상은 정지해버렸다. 거리의 자동차들이 멈추었고, 전자기기들도 먹통이었으며, 비상 전력과 배터리들도 무반응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전자기 충격파(emp)로 발생한 재난의 시작이었다. 공중에서 터진 핵폭발로 감마선 에너지가 방출하고 전자기의 회로가 파괴되어 모든 전자 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이제 생계에 위협을 감지한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고 약탈과 폭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고립된 미국의 소도시는 구멍 난 배처럼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시종일관 분위기가 어둡다. 전기를 못 쓴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줄 상상도 못했다. 전기의 부재는 인류의 문명을 청동기 시대로 되돌려놓았고, 현대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에 손도 못써보고 죽어갔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건 역시 환자들이다. 맨 먼저 의료시설에 의존하는 노인들의 죽음부터 시작되었다. 병원과 약국이 전부 강도 맞은 탓에 병자들도 줄줄이 죽었다. 술 담배가 끊어지자 중독자들은 정신 질환을 일으키고, 물과 식량 부족으로 성직자마저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이윽고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붕괴 중인 사회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통제불능인 사람들로 기관 및 시설들은 제구실이 불가할뿐더러 직원들도 전부 달아나 수습할 수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피난 오는 외지인도 막아야 하고, 구호물품 거래도 해야 했다. 또한 질병 보균자가 있다면 전염병이 퍼질 것도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굶주린 개들이 언제 맹수로 돌변할지 몰라 사전에 죽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국 답지 않은 생각과 정책들로 미칠 지경이었지만 감정적인 판단은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죽어가고, 식량과 약품은 바닥치고, 외지인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지도자들 간에 의견 충돌에서 주인공은 길잡이가 되고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역사학자라는 타이틀을 주어서 과거에 있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한부 인생의 딸 걱정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설정도 주었다. 겉사람은 모두를 살리기 위한 지도자의 입장이었지만, 속사람은 가족을 먼저 살리려는 한 아버지의 입장이었다. 가족이 우선인 게 당연하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 혼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회복될 미국의 역사 속에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길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의 존망을 해결하기도 숨 막혔지만 지도자로써 먼 훗날의 비전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실체가 없는 적과의 싸움은 이 얼마나 소모적인가. 승리에 대한 기쁨도 없었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쪽에서는 사이비 신흥교가 일어나 지구 종말을 외치고, 저쪽에서는 인간 말종들이 강도 짓을 하고 다닌다. 미쳐돌아가는 세상이었고, 다들 죽지 못해 사는 꼴이었다. 반려동물마저 잡아먹어야 하는 악몽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 전역을 파괴하고 다니는 단체가 쳐들어와 전쟁을 치른다. 운 좋게 이겼다지만 대다수가 사망했고 부상자들도 치료약이 없어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같은 미국인들과의 살육전이라니, 참담한 현실이었다. 적들은 겨우 EMP 하나 터뜨렸을 뿐인데, 미국은 서로 싸우고 자멸한 것이다. 전자기 펄스 폭발은 식량난에서 민족 전쟁으로, 마침내는 전염병으로 이어졌다. 거리에 방치된 수많은 시체와,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한 질병 보균자들로 인해 면역이 약해진 사람들은 치료제 없이 병마와 싸우다 죽는다. 사랑하는 이가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지켜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게임에서만 보던 EMP 충격파가 현실에서는 이렇게나 위험한 것이었다니. 이 모든 시나리오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하였다. 읽어보시면 이 책의 재난이 핵 전쟁이나 코로나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는 내 말이 이해될 것이다. 약이 없어 죽고, 굶어죽고, 강도 맞아 죽고, 전쟁으로 죽고, 역병으로 죽고, 또다시 아사하고... 그렇게 죽음은 당장이라도 산 자를 데려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보통의 재난 소설들이 디스토피아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몰락한 시점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러나 이 책은 시민들이 공황상태가 되고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매우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이런 일이, 내일이 지나면 저런 일이 발생하는 연쇄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정말 철저히 준비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의도한 대로 독자에게 충분한 경각심을 갖게 한다. 문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설정이 다소 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 과학소설이 다 그렇지 뭐, 잘 알잖소? 


사막에서는 금보다 물이 귀하다는 말이 있다. 작중에서는 굶주림 끝에 인육까지 먹는 자들도 등장한다. 그런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몇이나 될까. 디스토피아 문학이 다루는 인간 군상을 보면 완전히 타락하여 짐승의 탈을 쓴 자도 있고, 아싸리 다 포기하여 추악할 대로 추악해진 자도 있고, 생존을 위해 더럽고 꺼림칙한 것도 다 받아들인 자도 있다.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이들을 마냥 혐오하고, 가족을 위해 남을 헤치는 자들을 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작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 현대 시스템에 감사하라고 쓴 것도 아니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이 재난의 경고를 무시했다가는 우리도 청동기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 비 맞기 전에 우산은 미리미리 준비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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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4-25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굶주림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인육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감 2020-04-25 23:03   좋아요 0 | URL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지만 재앙 앞에서는 들판의 짐승들과 다름이 없음을 느낍니다. 오히려 어떤 법도 규정도 없는 미물들의 세계가 인간보다 더 질서있으니까요. 비관주의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메시지가 워낙 강렬해서 말이죠... 😥
 
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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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학을 위주로 읽는 편이지만 어쩌다 가끔씩 국내 문학이 땡길 때가 있다. 밖에서 온종일 놀다가도 역시 집이 최고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한국소설을 고를 때면 배스킨라빈스에서 한 가지의 맛을 정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신중해진다. 그리하여 벼르고 벼르던 선우 행님의 두 번째 작품이자 세계문학상 대상작인 저스티스맨을 읽어주었다. 넘나 정의로운 제목에 비해 시리어스한 표지 디자인은 이번에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과연 무엇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뺏었는지 어디 한 번 잘근잘근 씹어보리다.


일곱 명이 죽은 연쇄살인사건 발생. 피살자들의 이마에 나있는 두 개의 총구멍. 수사는 좀처럼 맥을 못 추었고, 국민들은 경찰에 질타와 비난으로 각자의 두려움을 해소했다. 그러던 중 ‘저스티스맨‘이라는 닉네임의 카페 유저가 사건의 전말을 각색하여 올린 글들이 화제가 된다. 그는 피살자들이 전부 사회의 썩은 생선들이었음을 드러내었고, 따라서 살인마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들만을 죽인 꼴이 되었다. 비록 한 유저의 각색한 글에 불과하지만 제시한 근거들이 워낙에 팩트였으므로, 피살자가 늘어나고 추리 글이 올라올 때마다 누리꾼들은 점점 더 저스티스맨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경찰도 모르는 피살자들의 정보를 안다는 이유로 저스티스맨이 살인마가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펼쳐지는데...


정유정 작가가 악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도선우 작가는 정의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의 데뷔작 ‘스파링‘에서도 정의에 대한 본질과 통찰이 끊이질 않았었다. 단순히 정의의 부재가 악이 되는 건 아닐 테지만 이 둘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분명하다. ‘스파링‘에서 지켜주지 못한 정의와 그것이 낳은 결과를 주로 다뤘었다면, 저스티스맨에서는 과도한 정의가 양성하는 피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알다시피 온라인에선 남녀노소가 평등하다. 그것이 익명의 위력이다. 일상에서는 루저 취급받던 사람도 웹에서는 전지전능한 신의 보좌에 앉는다. 어떤 글이든 악성 댓글을 다는 키보드 워리어들도 있지만, 반대로 정의를 외치는 일에 선을 넘는 에너자이저들도 많다. 이 책은 후자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저스티스맨은 확실치도 않은 대상을 질타하고 그것이 정의 구현이라도 되는 것마냥 여기는 것을 지적하였고, 정의라는 이름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것처럼 온라인에서는 과도한 정의가 마녀사냥으로 이어졌고, 오프라인에서는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졌다. ‘스파링‘에서도 얘기했었던 정의의 범위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저스티스맨의 조사 결과에 의거하면 피살자들은 하나같이 정의 구현을 한답시고 추악한 짓을 일삼던 자였고, 살인마는 그런 부류만을 죽여왔던 터라 자연스럽게 사회적 영웅으로 둔갑하였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건만, 법이 해결해주지 못한 일들을 대신 해결해주고 있었기에 살인마는 추앙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결국 이것마저도 저스티스맨의 말대로 과도한 정의감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안된다는 파와, 그럼 그냥 당하고 살란 말이냐는 파로 나뉘어 독자들에게 선택 아닌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나라의 허수아비 법률과 솜방망이 처벌을 보고 있노라면 의적 홍길동에 열광하는 대중이 이해 안 될 것도 없단 말이다. 법을 세우는 자들이 오히려 도덕과 윤리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에서 국민의 광분함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나랏님들의 답변이 듣고 싶다.


수면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이 수면 아래서는 온갖 더럽고 추악한 수단과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누구라도 익명이라는 감투를 통해 권위자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은 현실에서도 타인의 약점을 잡아서 쥐락펴락하며 권력을 행사하곤 했다. 반대로 약점이 잡힌 자들은 궁지에 몰리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이 약자들은 작품 속 피살자들이 괴롭혀오던 대상이었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대상들이 전부 똑같은 패턴으로 고통받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개인에게만 찍혔던 약자들이 나중 가서는 사회의 악이라는 누명을 썼고 집단의 공격을 받아 사회에서 생매장을 당하였다. 물론 가해자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했다 믿고 있으니 진실의 여부는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옳다고 하면 그것이 곧 정답이었고 정의였으므로. 현실이 이러하니 법보다 주먹이 가깝단 말까지 나온 게 아닌가. 나랏님들도 어디 한번 반문해보시라.


일반적인 소설의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평론가들의 해설문 혹은 연작 시사칼럼 같은 성격의 작품이다. 장강명 작가와 비슷한 케이스라 보면 된다. 이런 스타일의 장점은 가려운 곳들을 시원시원하게 긁어준다는 것이고, 단점은 메시지 전달의 목적이 다분하여 문학적인 맛은 쏘쏘하다는 것이다. 추가로 피살자들의 사연과 추측한 내용이 되게 리얼해서 몰입감이 쩌는데에 비해 너무 짧은 분량으로 호흡이 끊기는 점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저스티스맨의 정체와 허무한 결말이 유일한 반전이었다. 사실 주인공이 필요 없는 구성이었지만 그래도 저스티스맨이 매 챕터의 중심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웃돼버리다니. 스토리는 계속되지만 어쩐지 모호해진 방향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후 뒷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도선우 작가의 광팬으로써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어 몇 자 적어본다. ‘스파링‘ 때도 느낀 건데 작가가 자주 쓰는 접속사가 있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그러니까‘ 같은 것들인데 이걸 대부분 쉼표 뒤에 넣다 보니 흔치 않은 문장이 되어서 금방 눈에 띈다. 분명히 고급 스킬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고 있어 작가의 개성이 아닌 습관 중 하나로만 비춰진다. 사실 어떤 독자가 그렇게까지 분석할까 싶지만서도 행여 작가 고유의 색깔이나 매력이 가려질까 염려 아닌 염려가 든다. 또 다른 아쉬움은 글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 과거 비토씨는 초등생도 이해할 눈높이의 리뷰를 쓰겠다 선언하였고, 과연 읽기 쉬우면서도 내공 빵빵한 글들로 ‘좋아요‘를 휩쓸곤 했었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어려운 문장과 문법, 일상에서 잘 안 쓰이는 단어들, 난이도 있는 비유 예시 등등, 하이레벨의 기교로 가득하여 버겁다고 느낄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스파링‘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쩐지 독자 연령을 너무 높게 잡은 듯한데, 이건 뭐 행님께서 생각한 바가 있으실 테니 이쯤 적고요, 아무튼 이번에도 축하가 늦었습니다. 연속 수상이라니, 행님의 덕후이자 빠돌이인 제가 참 자랑스럽슴다ㅎㅎㅎ 올해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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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걸 읽어야 하나 오랫동안 망설였던 책이다. 장르소설 매니아층에서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는 듯한데, 어쩐지 그럴수록 더 손이 안가더랬다. 우연히도 회사 도서관에 고이 잠들어있길래 함 가져와봤는데 세상에 이리 재밌는 걸 왜 이제야 읽게 된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도다, 나님이여. 노래도 옛것이 좋았듯이, 소설도 그렇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시겠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독일문학이라니? 이 정도 수준이면 삐뚤어진 내 선입견도 고쳐볼 만하겠는데. 역시 거장은 레벨이 다르다 이겁니까. 분위기나 문체는 ‘주제 사라마구‘와 비슷하고, 비유와 표현력은 ‘토머스 쿡‘의 느낌이며, 재미와 속도감은 ‘장용민‘을 닮아있다. 사기캐를 발견했으니 저자의 다른 책들도 섭렵해봐야겠다. 벌써 기분 좋고 난리다.


어려서부터 후각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나 정작 제 몸엔 아무 냄새가 없어 늘 기피 대상이었던 주인공. 고아 출신의 소년은 훗날 향수 제조인의 길을 걸으며 무형의 재능을 유형으로 바꾸어 세상을 놀래킨다. 반면 냄새의 수집을 위해 충동적으로 살인을 한 그의 내면에는 엄청난 악마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궁극의 향수 제조와 냄새 수집을 위해 세상을 떠돌며 인간 사냥을 시작한다. 점차 세상을 공포로 몰아가는 이 애정결핍 히키코모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 작품은 관점에 따라 냄새에 환장한 변태의 유치뽕짝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전례 없었던 고전과 스릴러를 혼합한 퓨전 판타지 장르일 수도 있다. 일단 만물의 냄새를 맡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라 취향 면에서 갈릴만 하다. 그래서 주인공을 선이 아닌 악으로 세워서 살인자의 이야기를 쓴듯싶다. 후각이라는 소재로 뭘 얼마나 보여줄지 기대는 안 했는데 이거 원 예측불가한 참신함의 연속이었다. 보통 악역 시점의 작품들이 심리 쪽도 같이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감정이 결여된 캐릭터라 심리 장면이 전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앞을 예상하지 못한다. 근데 이렇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플롯도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후각으로 세상을 배워나갔다. 사물의 존재를 냄새로 인식한 다음 머리에 입력하였다. 그렇게 점차 모든 냄새를 수집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광기는 깊어져만 갔다. 일생을 혐오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의 광기는 타인의 멸시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첫째는 향에 대한 갈망으로 빚어진 순수함이 악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래서 살인을 했어도 그게 죄인지 몰랐고, 향수로 타인을 속이거나 조종하는 행위도 무엇이 잘못인지를 몰랐다. 둘째는 자신의 무(無) 존재에 대한 수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이 두려워 7년의 동굴 생활을 떠나 마을을 찾아가고, 인체 향수를 만들어 자신의 무체취를 감추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여러 번 보여준다. 반면 향수 제조를 위한 계획을 실천하는 치밀함도 보여주며 독자를 계속 들었다 놓는다.


냄새에 마음을 뺏겨 살인에 손을 댄 주인공은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였다. 죄악의 눈이 열린 이상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향기에 미칠 대로 미친 그는 결국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인간의 냄새를 수집한다. 과거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이 나비효과가 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순수한 욕망일 뿐이어서 허무하게 붙잡혀버린다. 이쯤부터 점점 텐션이 떨어져 이 책도 용두사미인가 했는데 또 한번 판을 뒤집어놓는다. 이 살인자는 궁극의 향수로 모든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무력을 쓰지 않고도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자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 속에서 만족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모든 계획을 성취했는데 이젠 뭘 할까 싶던 차에, 작가는 기발한 방법으로 주인공의 운명을 던져주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살인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기분 참 이상하네.


휴대폰만 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 위의 만발한 벚꽃을 보지 못한다. 이 책의 살인자도 그런 케이스이다. 냄새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 외엔 아무것도 보질 못하고 있다. 그게 어째서 안타까웠냐면 어렸을 땐 나름 감정이란 게 있기는 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기쁘게 해줄 줄도 알았다. 허나 아무도 케어해주지 않았으니 올바른 길이 어딘지 누가 알랴. 그 결과 악의가 전혀 없는 그의 행동은 극악무도한 범죄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 살인자가 요즘 핫이슈인 N번방 사건의 조 모씨와 여러모로 캐릭터 겹치는 듯. 이런 악마는 소설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였고,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쥐스킨트 작품 추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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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shac2 2021-03-26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잘쓰셔서 쓰신거 다보고있어요ㅋㅋ별4개이상인건 다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물감 2021-03-26 18: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이웃님 같은 분들이 있어 글쓰는 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