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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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제는 소설책의 서평단 모집이 예전만큼 많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은 정말 문학을 안 읽는다는 걸 체감한다. 이 정보화 스마트 시대에 허구적인 이야기를 자꾸 봐서 뭐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아니 뭐든지 유익하고 득이되는 것만 보고 듣고 살아야 하나? 반대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은 전공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단 말이다. 먹고사는 데에 그런 건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는 사람하고는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들을 때마다 깊은 빡침이 전신을 감싸고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세상, 이런 장르문학으로 해소하고 사는 거지 뭐. 여하튼 오래간만에 읽는 국내 미스터리 소설인데 진지하게 리뷰 한번 써보도록 하겠다.


안덕은 다 쓰러져가는 낡아빠진 작은 도시이다. 이곳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 온 검사 출신 변호사 세휘. 그리고 그녀의 당숙이자 이 지역을 쥐락펴락하는 최종 보스 장 회장. 얼마 뒤 도시는 연쇄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장 회장을 따르던 오른팔들이 연달아 실종된다. 어쩌다 보니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그녀는 당장의 돈이 필요했고, 방화범을 찾아내면 뒤를 봐주겠다는 당숙의 제안에 넘어간다. 주인공을 정계로 진출시켜 너 좋고 나 좋자는 당숙의 계획이 뻔한 선악과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야 하는 그녀는 이 일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님을 느끼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대체 이 연쇄 사건으로 범인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잘 쓴 책이다. 김호연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었지.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주요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범죄소설은 남성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이 이끌어가는 작품이 거의 없다. 국내 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여성 캐릭터들이 수사나 액션을 담당하는 게 한계 아닌 한계가 있긴 하다. 신체적인 문제도 있고, 비협조적인 타인들의 태도도 그렇기에. 범죄소설의 주인공들 직업이 대부분 검사, 변호사, 경찰, 군인, 탐정이고 아무래도 이쪽 바닥이 남성들로 조직화되어 있다 보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이런 장르는 예측이 안되면 안 될수록 흥미롭고 집중도 잘 되거든. 게다가 악역도 골렘 같은 피지컬의 여성이었고, 남성들이 저지르는 범죄 계획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 여러 번 편견을 깨준 책이다. 


이것 말고도 작가는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중 양심과 탐욕의 공존을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 놀라웠다. 당숙인 장 회장은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그만큼 비밀도 많고 뒤가 구린 사람이었다. 반면에 치매 걸린 엄마와 반항 기질을 보이는 자식을 케어하며 집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주인공은 당숙의 협박 어린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법조인이면서도 돈 때문에 장 회장의 개가 되어야만 했던 그녀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숨이 막혔지만, 집안을 위해서라면 똥이든 된장이든 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건에서 손 떼고 싶어도 가족을 걸고넘어지는 당숙의 협박으로 수사는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진퇴양난의 번뇌가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여기에 완급조절도 훌륭하고 장면들이 곧바로 영상화될 만큼 매끄러워서 저자가 무슨 시나리오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일반 회사원이라고 함. 이럴 수가.


개인적으로 원피스 만화를 보며 감탄했던 게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전부 깊은 사연을 안고 있다는 거였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주연이든 엑스트라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는 더욱 탄탄해지고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변했다. 이 책도 그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잠깐 지나가는 비중 적은 인물에게도 사연을 심어주어 리얼리티를 살렸다. 여기에 정유정 작가의 특기인 음산한 분위기 연출까지 집어넣었다. 이만하면 장르문학으로써 웬만한 건 다 갖췄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사건 수사보다는 도시의 부조리와 주인공의 집안 문제 쪽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있다는 점과, 주인공이 변호사보다는 아이의 엄마 캐릭터로 더 부각돼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작품의 성격이 어중간해져 버렸다. 연쇄 실종사건을 다루는 플롯으로 소개된 책인데 진짜는 사회소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제목인 콘크리트의 의미가 본문에 나오진 않았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가리킨 게 아닐까 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듯이, 돈과 세상도 그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범인의 승리로 끝나는 배드 엔딩이다. 근데 난 오히려 흔한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오랜만에 정말 잘 만든 국내 문학을 읽게 되어 감격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준 황금가지 출판사에도 감사드린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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