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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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명작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도 이견이 없다. 이 소설은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이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미진함, 혹은 황홀감 뒤에 남은 의혹이 떨쳐지질 않는다.

 

 

'미친 사람만 볼 것.' 헤세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경고를, 아니면 고도의 위로를 저 한 문장으로 시도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하리 할러가 바로 그 미친 사람이며 독자는 그를 따라 미치거나 미치고 싶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할 것이다. 하리 할러의 광기는 시민사회, 질서와 법과 평안한 생활과 적당한 쾌락을 추구하는 바로 저 시민사회에 대한 경멸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리 할러는 시민사회를 경멸하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요, 한 마리의 이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연약한 인간이다. 하리 할러가 경멸하는 시민사회의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이나 오늘날의 시민사회 역시 하리 할러의 시민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당시에 재즈가 있고 전쟁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수 없이 많은 팝이 있고 물질적 부를 둘러싼 전쟁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전한 시민사회라는 공통적 조건 속에서 하리 할러처럼 미칠 수도 있는, 혹은 미치고도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헤세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에게서 더욱 유별난 영혼이라는 것의 광부이자 선장이고 탐험가이다. 세계에 대한 경멸과 소외의식으로 인해 부유하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그의 목적처럼 보인다. 이 영혼의 소유자는 고귀하고 고상하다. 그는 결코 세계와 한 번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지함이란 무게를 고작 농담으로 덜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귀한 영혼이 시민사회와 위선적인 방법 이외에는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 그는 영원히 부유하며 사회에 소속되길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 이 사실로 인해 야기되는 불편함이 여전히 남는다. 세계의 전쟁과 분란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하리 할러라는 고귀한 영혼의 부유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따분하고 덜 미친 시민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시민사회 안에 잠재되어 있을 힘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에 가득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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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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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처음이다. 내게는 언제나 그렇듯 책도 사람도 첫인상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람의 경우라면 오히려 첫인상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일이 잦다. 그만큼 아직 사람을 겪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고, 실제로 사람이란 시간의 외피를 더해갈 수록 복잡다단한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책이란 녀석은 사람보다 첫인상에 있어서 냉엄한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어떤 면에선 어쩔 수 없이라도 동행해야 하는 것이 개개 인간의 사회적 관계라면 낱 권의 책이란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고, 책으로서는(실제로는 작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모욕과 치욕을 받는다고 해도 역시나 이쪽은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읽어야 할 책이라면 개인의 생으로는 감당 할 수 없이 많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소설은 따분하다는 설 같은 것이 은연 중에 떠돈다. 물론 그것은 노벨 문학상이라는 권위를 입은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을 광고에 넘어가 읽게 된 독자들의 푸념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 꼭 따분하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는 카뮈, 스타인백,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재미면에서도 상당히 만족하며 읽었다. 그리고 단 한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는 이 목록에 오에 겐자부로를 포함시켰다.

 

 

젊은 예비 아빠인 '버드'는 일상의 무기력으로부터 포박 당한 소시민이다. 그의 유일한 생의 에너지는 아프리카를 향한 열망에서만 발생한다. 그런 그는 '뇌헤르니아'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자신의 아이의 출생으로 인해 악몽 같은 괴로움에 시달린다. 수술을 해도 정상적인 생활의 가능 여부가 불투명한 아이를 두고 아프리카행 적금을 위해 모아둔 돈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보다 자신이 저 '뇌헤르니아'에게 자신의 삶을 잠식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절망과, 보통의 도덕적인 양심의 목소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위선적이면서 위악적인 소시민의 심리 상태를 철저히 추궁한다. 대단히 차갑고 관념적인 문체와 히스테릭한 분위기는 한층 강한 설득력과 흡인력을 주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기이함이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 낙관적이고 급작스러운 도덕적 선회로 보이는 소설의 결말이 맥을 빠지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떻게든 절망의 진창에서 버드가 빠져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결말은 탐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뇌에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을 둔 작가의 실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문학 외적인 휴머니즘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이전까지의 버드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오에 겐자부로의 이 소설 속 결말이 나에게는 조금 앞당겨진 채 끝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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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모색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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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의 진실이란 받아들인다는 것이 매우 버겁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경우의 진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물론 우리는 진실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이중적이고 가변적인 진실의 진실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나 갖추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엄격한 잣대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눈앞의 진실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핑계거리로 전락해 버리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5년 전에 발표된 촘스키의 미국식 자본주의 신화에 대한 입체적인 비판은 받아들이기 버거운 진실의 경우에 속하는 것처럼 들린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을 앞세워 이룩한 결과들은 놀라울 정도로 위력적이다. 브라질, 멕시코, 니카라과, 아이티 등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자본의 침략은 현재 해당 국가 국민들의 생활상을 생각할 때, 알고서도 못 막는 어느 미친 스트라이커의 활약만큼이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엔 자발적인 찬탄을 보내지만 전자의 경우엔 강요된 경탄이나 시체의 유언 같은 비난을 보낸다.

 

 

15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촘스키가 비판한 세계적 부의 불평등과 거대 기업의 횡포,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 등은 여전히 지속되거나 더 심화되고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의 유일한 열쇠를 쥐고 있는 세계의 파수꾼이자 최후의 무기인 민중들은 사실 얼얼하기만 할 것이다. 정녕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상대가 강하고 교활한 것이고, 사실 어쩌면 도대체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열쇠는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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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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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어두움이 현재의 청춘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은 서글픈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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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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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물줄기에 몸을 맡기도 떠내려가면 된다. 그러면 조금 씁슬한 웃음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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