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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펜스 하우스 - 책 마을에서 길을 잃다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7월
"집에 책이 너무 많네요. 집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부동산 중개업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이라니까요. 숨겨 놓으셔야 해요."– 13쪽
자기네 제국이 세계를 정복한 때에, 쇠망기에 자기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예술가들이 이렇게 많았던 나라가 영국 말고 또 있을까 싶다.– 27쪽
오늘날 쓰이는 건축 자재는 대부분 우아하게 나이 들지 않는다. 그러라고 만든 재료도 아니고. 오직 새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오래된 런던의 벽돌집도 사실 애초부터 먼 미래에도 아름답게 보이길 기대하고 지은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벽돌 건물들은 특성상 완벽하게 폐허가 될 수 있다.– 28~9쪽
가죽 장정 책은 아주 돈이 많이 드는 벽지다.– 30쪽
사실 영국은 사람 좋고 말 더듬는 사람들의 나라다. 휴 그랜트가 그런 캐릭터를 영원불멸의 이미지로 구현했다.– 45쪽
미국에도 계급 갈등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적의를 표출하지는 않는다. 시장이나 경찰이나 기업이나 아니면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더라도 부자들한테만은 뭐라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부자가 되고 싶고, 부자가 되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72쪽
"다른 정신이상자들의 망상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더욱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망상에는 고집스레 매달린다." (의사인) 윌리엄 헤먼드가 말한다. (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79쪽
미국 잡지에 나오는 것 같은 침실에서 생활하려면 침대 옆 테이블에 늘 노출계를 놓아두고 침대 양쪽에 우산형 반사기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108쪽
미국 인테리어 잡지는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실내장식을 맡기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다. 영국은 스스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고. 또 실내 사진은 모두 자연광을 이용해 찍었는데, 여기가 영국이다 보니 빛이 거의 없다.– 108쪽
하지만 교외나 시골로 가서 '왕의 머리'나 '검은 말'이나 '돼지와 장미'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펍에 들어가면, 낡고 조그만 슬롯머신 기계에 달린 조그만 전구가 유일한 조명인 어둑한 실내에 앉아 기름에 전 새우튀김을 씹으며 밖에 달린 간판을 이렇게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용한 절망 오전 10시~오후 11시 매일 영업– 117쪽
이 경쟁에서 가장 서글픈 점은 부스가 리언 모렐리에 대해 분개하며 보내는 시간은 엄청 많은데 반해 모렐리는 부스한테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가고도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는 게 힘 있는 자의 특권이다.– 142쪽
책 제목 글자가 요철로 되어 있거나, 금박을 입혔거나, 요철에 금박을 했을 경우,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스파이, 로맨스, 유명인, 살인 사건에 관한 읽기 쉬운 책이에요."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전 쓰레기에요."– 150쪽
이에 질세라 하버드 대학 출판부는 발터 베냐민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엄청나게 도톰한 금박 글씨를 넣어 출간했다. 군복 재킷을 입은 마초 스타일 중장년 아저씨가 이 책을 샀다가 여기에서 말하는 프로젝트가 19세기 파리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문화적 분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만 할 따름이다. 변절한 러시아 과학자와 핵잠수함에 탑승한 미친 장군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151쪽
채소와 양념통이 부엌을 장악할 수 없듯이, 등장인물은 소설을 장악할 수 없다.– 184쪽
여러 신문에서 똑같은 기사를 읽으니 마치 스테레오로 글을 읽는 것 같다. 좌편향인 <인디펜던트>의 피콜로처럼 재잘거리는 소리, 우편향인 <텔레그래프>의 첼로처럼 웅얼거리는 소리.– 204~5쪽
미국 시사만화는 세상 누구나, 신문을 보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조차도 뜻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중략) 미국 시사만화가들은 사람들의 멱살을 움켜줘고 흔들어댄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알았냐고? 왜 웃기는지 알겠어?"– 207쪽
"밤은 약간 씁쓸한 맛을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이루지 못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크리스토퍼 몰리의 <존 미슬토>)– 263쪽
영국인들은 아주 과감하게 광고를 한다. 북쪽 지방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는 이런 묘비명이 적혀 있다.
존 로버츠를 기리며
석수 겸 묘비 조각가
1800년 10월8일 토요일 사망
영업은 프레시필드 플레이스 1번지에서 미망인이 계속합니다.– 276쪽
오늘 아침에 제니퍼가 읽던 책은 <타임스>에서 "눈부시다"라고 칭찬한 책이었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등유를 흠뻑 적셔서 불을 붙인다면 말이다.–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