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의 청중이 보기에, 고루한 아리스텔레스주의 철학자는 수학자만큼이나 ‘전문적인‘(따라서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 P256

1608년 무렵 갈릴레오는 군용 컴퍼스를 발명하더라도(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유용할지라도) 궁정의 고위직을 확보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깨달았다. 컴퍼스는 성채축성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상당수 끌어모으기야 했겠지만, 궁정 수학 교사의 자질보다 본인의 이미지를 기념하는 일에 더 정신이 팔린 위대한 군주가 그를 탐낼 만한 가신으로 여기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곤차가 가문은 컴퍼스 선물에 감사를 표했고, 메디치 가문 또한 컴퍼스 사용법을 설명한 책의 헌사를 반겼다. 하지만 두 가문의 어느 군주도 갈릴레오가 원하던 직위를 하사하진 않았다. 바로 그때 갈릴레오는 수학 교사나 군사기술공이 아닌 신사로서 궁정에 입성하려면 컴퍼스보다 기계적 성격이 덜한 선물이 필요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 P269270

과학적 경이를 궁정 담론으로(혹은 목성 위성의 사례처럼 특정한 가문의 담론으로) 번역한 갈릴레오의 작업에서 새로웠던 것은 자연철학이라고 해서 반드시 궁정 바깥의 활동일 필요는 없음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군주의 권력 이미지와 연결함으로써 그것들을 정당화했다는 사실이었다. - P273

그러므로 시선을 ‘끌어당겨‘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 향상시키는 능력은 궁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다. 이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궁정 에티켓은 지위와 정체성의 미묘한 협상을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도록 끌고 가는 틀이었기 때문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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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자렛 - 즉흥의 상태
이기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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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형식이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제목에 부합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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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운 내 아버지는 비행기 소리를 듣곤 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독일 비행기들이었다. 그들은 깊은 밤이면 다시 독일로 날아갔다.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켄트Kent 지방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는 1934년에 태어났다. 그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아버지가 다섯 살이었다는 뜻이다. 켄트는 영국의 폭탄 골목Bomb Alley으로 불렸다. 독일 군용기들이 런던으로 향하며 지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폭격기가 표적을 놓쳤거나 남은 폭탄이 있을 경우 돌아오는 길에 아무 곳에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길을 잃은 폭탄이 할아버지 댁 뒷마당에 떨어졌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 P7

우리가 어린 시절의 흥미와 관심을 다 잃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스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소설이라면 모조리 읽었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몇 년 전 어느 날 책장을 살피다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전쟁을 다룬 논픽션 서적을 엄청나게 많이 모아두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역사를 다룬 유명한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특수한 역사적 문제를 연구한 책, 절판된 자서전, 학술서까지. 그 책들 대부분은 전쟁의 한 측면을 다루고 있었다. 무엇일지 짐작이 가는가? ‘폭격‘이다. 스티븐 부디안스키Stephen Budiansky의 《공군력 Air Power》, 타미 데이비스 비들Tami Davis Biddle의 《항공전의 수사학과 실제Rhetoric and Reality in Air Warfare》, 토머스 M. 코피Thomas M. Coffey의 《슈바인푸르트에 대한 결정Decision over Schweinfurt》 등 폭격을 다룬 역사서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권만 더 예를 들어볼까? 로버타 월스테터Roberta Wahlsteter의 《진주만: 경고와 결정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을 읽어보았는가? 아니라면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책을 놓친 것이다. - P9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당시 미 공군 참모총장이던 데이비드 골드페인David Goldfein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장소는 워싱턴 D.C.에서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바로 건너 버지니아 북부에 있는 합동기지 마이어-헨더슨 홀Myer-Henderson Hall 내의 에어하우스Ar House였다. 많은 미국 고위 군 관계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웅장한 빅토리아풍 거리에 자리한 커다란 빅토리아식 건물이었다. 저녁 식사 후, 골드페인 장군은 그의 친구와 동료, 그러니까 다른 공군 고위 관리들을 초대했다. 다섯 명이 장군의 뒷마당에 모여 앉았다. 그들은 대부분 전직 군 조종사들이었다. 그들의 아버지들도 대개 군 조종사였다. 이 책에서 다룰 사람들의 현대 버전인 셈이다. 밤이 깊어 가면서, 내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에어하우스는 레이건 국립 공항Reagan Nationglal Airport 바로 아래쪽에 있다. 거의 10분에 한 번씩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 특별할 것이 전혀 없었다. 시카고나 탬파 또는 샬럿으로 향하는 일반 상업 여객기였다. 이 비행기들이 머리 위로 날아갈 때마다 장군과 그 동료들 모두의 시선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위쪽을 향했다. 어쩔 수없는 집착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 P11

(로리스) 노스태드Lauris Norstad는 원한다면 (이 제21폭격기사령부에서)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의 부사령관으로 잔류해도 좋다고 말했다. 너무나 모욕적인 제안이었기에 (헤이우드) 핸셀Haywood Hansell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노스태드는 열흘 안에 정리를 마치라고 지시했다. 핸셀은 멍한 상태로 주위를 서성였다. 괌에서의 마지막 날, 핸셀은 평소보다 술을 좀 더 마시고 젊은 대령이 연주하는 기타에 맞춰 부하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늙은 파일럿은 죽지 않는다. 결코 죽지 않는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 P17

미 육군 장교들을 키워낸 유서 깊은 훈련장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사관학교의 예배당은 허드슨강 위의 가장 높은 지대에 서서 학교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하고 있다. 이 예배당은 1910년 웅장한 고딕 복고 스타일로 지어졌다. 오로지 어두운 회색 화강암으로만 만들었으며 창은 좁고 길다. 이 건물은 견고하고, 꾸밈없고, 흔들리지 않는 중세 요새의 힘을 가지고 있다. 빌더(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펜타곤의 외부 연구 기관 역할을 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만들어진 싱크탱크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oion에서 일했던 정치학자 칼 빌더Carl Builder)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서로와 그리고 그들을 키워낸 땅과 가까운 사람들이 간단한 의식을 치르는 데 적합한 조용한 장소다."
이것이 바로 육군이다. 애국심 강하며 국가에 대한 봉사에 뿌리를 둔 군대인 것이다. - P5354

해군사관학교 예배당은 아나폴리스Annapolis에 있다. 웨스트포인트 예배당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었으나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아메리칸 보자르beaux-art[신고전주의 양식이 프랑스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유입되어 새롭게 정립된 구성 중심의 예술 사조] 스타일의 이 건물에는 파리 앵발리드 Invalides의 군 예배당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돔이 있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섬세하고 화려한 내부를 비춘다. 오만하고, 독립적이며, 세계적 규모의 확고한 야심을 품고 있는 대단히 해군다운 장소이다. - P54

공군이 콜로라도 언덕 한가운데에 알루미늄과 강철을 이용해 수직으로 세워둔 전투기 모양의 예배당을 건설했다는 것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는가? 칼 빌더는 그의 책에서 이런 의문을 던진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공군은 자기들을 군의 오랜 가지, 즉 육군이나 해군과 가능한 한 차별화되기를 필사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또한 공군은 유산이나 전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현대적이길 원한다. - P55

하지만 히틀러가 폴란드를 공격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으며, 1941년 여름에는 모두가 미국 역시 곧 전쟁에 나설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면, 강력한 공군력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강력한 공군력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나 많은 비행기가 필요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워싱턴의 육군 고위 지휘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 해답을 갖고 있을 법한 유일한 전문가 집단을 불러들였다. 앨라배마주 맥스웰필드에 있는 전술학교의 교관들을 말이다.
이렇게 해서 폭격기 마피아는 워싱턴으로 갔고, 미국이 공중전에서 한 모든 일의 본보기가 된 놀라운 문서를 내놓았다. 문서의 제목은 〈AWPD-1(Air War Plans Division One)〉이었다. 이 문서는 미국에 필요한 항공기(전투기, 폭격기, 수송기)가 어느 정도인지 극히 상세히 제시했다. 얼마나 많은 조종사와 몇 톤의 폭발물이 필요한지는 물론 초크 포인트 이론에 따라 선정한 이 모든 폭탄의 독일 표적, 즉 50개의 발전소, 47개의 수송망, 27개의 석유 정제소, 18개의 항공기 조립 공장, 6개의 알루미늄 공장, 6개의 ‘마그네슘 공급원‘도 포함되었다. 이 놀라운 기획 작업은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단 9일이 걸렸다.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앨라배마주에 은둔해 10년을 보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종류의 초인적 개가였다.
폭격기 마피아는 전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P6364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정량적인 세계와 관련한 모든 생각을 이름은 (프레더릭) 린더만Frederick Lindemann(이후 처웰 경Lord Cherwell이 되었다)의 두뇌에 저장했다. 그리고 1940년 전쟁이 터진 직후 총리가 되자 린더만을 옆에 두었다. 린더만은 처칠 내각에서 처칠 정신의 문지기 역할을 했다. 그는 처칠과 콘퍼런스에 갔다. 처칠과 식사를 함께 했다. 린더만은 술고래인 처칠과 식사할 때 외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럴 땐 취하도록 마셨다. 주말이면 처칠의 시골 별장으로 갔다. 사람들은 새벽 3시에 불 옆에 앉아 함께 신문을 읽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
스노C. P. Snow는 이렇게 표현한다.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대단히 깊은 우정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에 대해 얼마간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처칠의 가까운 다른 동료들은 린더만을 몹시 싫어했지만 처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린더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처칠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 P81

린더만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은 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적을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뻔히 아는 논거도 주저하지 않고 이용할 사람이었다." - P83

헤이우드 핸셀은 남부의 명문 군인 가문 출신이다. 그의 현조부玄祖父와 존 핸셀John w. Hensell은 미국독립혁명에 참여했다. 고조부 윌리엄 영 핸셀William Young Hansell은 1812년에 일어난 미영美英전쟁 때 육군 장교였다. 증조부는 남부 연합군의 장성, 조부는 장교였다. 아버지는 흰색 리넨 양복에 파나마모자를 쓰고 저녁 식사 자리에 등장하는 육군 군의관이었다. 헤이우드는 영국군 장교처럼 단장短杖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모두가 그를 어린 시절 별명인 포섬Possum이라고 불렀다.
핸셀은 키가 작고 호리호리했다. 춤을 잘 췄고, 시를 썼으며, 가극 〈길버트와 설리번Gilbert and Sullivan〉의 광팬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돈키호테》였다. 그가 가장 우선하는 것은 비행이었고, 두 번째는 폴로, 가족은 한참 격차를 둔 3순위였다. - P90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핸셀은 이런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불굴의 정직함과 약간의 순진함을 지닌, 근본적으로는 로맨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 P91

볼베어링은 칼 노든이 첫 번째 원형을 제작할 때도 큰 문젯거리였다. 폭격조준기는 수십 개의 가동부可動部로 이루어진 기계식 컴퓨터였다. 폭격조준기의 계산이 정확하려면 각각의 가동부가 정확한 위치로 정밀하게 회전해야만 했다. 볼베어링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완벽하게 매끈하지 않다면 폭격조준기 자체가 엉망이 된다. (중략)
문제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수천 개의 폭격조준기를 만들어야 했다는 데 있었다. 이는 노든이 더 이상 볼베어링을 손으로 일일이 닦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생산 쪽을 맡고 있던 동업자 (테드) 바스Ted Bath는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한 회사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수십만 개의 볼베어링을 생산해주셨으면 하오." 그러고는 사람들을 시켜 볼베어링의 크기를 측정하게 했다. 완벽한 혹은 허용 오차 범위 내에 있는 볼베어링을 발견하면 그것을 폭격조준기에 집어넣었다. 완벽한 제품을 찾으려면 50, 60, 100개쯤의 볼베어링을 검토해야 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나머지는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 방식이 돈이 훨씬 덜 들었으니까. - P9596

육군항공대 전략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그 어떤 계획보다 기발한 계획을 세웠다. 두 지역에 대한 공습이었다. 주된 작전은 B-17 폭격기 230대를 슈바인푸르트의 볼베어링 공장으로 출격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주의를 돌리는 우회 작전이 필요했다. B-17 폭격기들이 슈바인푸르트로 떠나기 직전 다른 B-17 비행단은 슈바인푸르트 남동쪽의 작은 도시 레겐스부르크로 떠나기로 했다. 독일은 그곳에서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전투기를 만들었다. 레겐스부르크 공격으로 독일 방어군의 주의를 끌어 슈바인푸르트로 향하는 폭격기들의 길을 터준다는 생각이었다. 레겐스부르크로 향하는 폭격기들은 미끼였다. - P97

커티스 르메이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가난한 지역에서 성장했다. 형편이 어려운 대가족의 장남이었던 그는 야간에는 주조공장에서 일하며 혼자 힘으로 오하이오주립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마치고 육군에 입대한 그는 항공단에서 놀랄 만큼 빠르게 승진했다. 33세에 대위가 된 이래 소령, 대령, 준장을 거쳐 37세에 소장으로 진급했다. - P9798

"아무런 불만도 없었습니다." 커티스 르메이는 불평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더구나 외부인에게는. (연합국의 제2차 세계대전 기록용) 영화 관계자들이 헤이우드 핸셀을 인터뷰했다면, 그는 유창하게 몇 마디 똑똑한 대답을 한 뒤 사람들을 장교 숙소로 불러 자비로 술을 대접했을 것이다. 핸셀은 르메이와 정반대였다. - P100

표적에 직선으로 날아가는 B-17 폭격기를 격추하려면 대공포 377발을 쏘아야 한다. 300발하고도 77발이라면 많은 양이다. 따라서 직선비행은 위험하긴 하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위험이라고는 할 수 없다.
르메이는 이렇게 말했다. "해보자. 직선비행을 하자. 7분간 직선 고정 비행으로 접근하자." 자살행위처럼 들리지 않는가? 휘하의 모든 조종사가 실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덧붙였다. "내가 우선 시도해보지." 르메이는 1942년 프랑스 생나제르Saint-Nazaire 폭격 비행에서 선두에 나섰고, 회피 기동을 하지 않았다. 자,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표적에 떨어진 폭탄은 이전 폭격의 두 배였지만 그들은 폭격기를 한 대도 잃지 않았다. - P103

칼라일배럭스Carlisle Barracks의 육군유산교육센터Army Heritage and Education Center 소장이자 미국육군역사연구소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 소장을 역임한 콘래드 크레인Conrad Crane은 르메이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군 사령관이라고 칭했다.

그는 역동적인 리더였습니다. 부하들의 어려움을 공유했죠. 그는 공군 역사상 최고의 항법사였고. 뛰어난 조종사였으며. 정비까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리더로서의 측면은 물론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그는 공군 최고의 문제 해결사였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묻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 P107108

그러나 세심하게 계획된 이 유인 임무는 예정된 미끼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르메이의 조종사들은 여름날 새벽의 짙은 안개 속에서도 이륙할 수 있었다. 르메이가 그런 문제를 대비해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이륙 훈련을 반복했다.
"장비만을 이용하라. 밖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 하지만 다른 사령관들은 르메이처럼 하지 못했다. 전투기 승무원들은 독일로의 장거리 출격에 지쳤고, 동료를 잃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잠이 부족했으며, 불안하고 기진했다. 이런 부하들에게 "향후 임무 수행 때 안개가 낄 가능성이 있으니 오늘 새벽 6시에 맹목 이륙盲目離陸[시계視界 비행이 아닌 상태에서 계기나 무선 장비를 이용해 행하는 이륙]을 연습을 한다"고 말한다는 게 사령관으로서 얼마나 힘든 일일지 짐작이 가는가?
그런 일은 르메이만이 할 수 있었다. 그는 가차 없이 엄격한 사람이었다. 의미 없는 연습으로 보이는 것을 밀어붙일 때 부하들이 하는 불평 따윈 그의 관심 밖이었다. - P114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심리학자가 되었다. 나는 공군을 위한 연구 경험이 전후戰後 그의 유명한 연구의 동기, 즉 ‘시커스Seekers‘라고 불리는 시카고의 한 종교 집단을 분석하게 된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하게 여겼다. 페스팅거는 한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시커스에 접근했다. 수년 전 폭격기 마피 l아가 믿었던 게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었던 참혹한 시기 동안 그의 마음을 스쳤을 것이 분명한 질문이었다. 확신이 현실에 부딪혔을 때 진정한 신자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리언 페스팅거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바나 자신이 하는 일에 잘 부합하는(그것을 정당화하는) 인식만을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그런 일이 아주 흔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죠."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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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무라) 리도는 실크해트를 벗어 거기서 비둘기 다섯 마리를 잇따라 꺼냈다. 무슨 감자라도 캐는 듯했다. 리도는 실크해트에서 꺼낸 비둘기를 담담하게 무대에 풀어놓았다.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침묵했다. 정적 속에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공허하게 들렸다.
"아시겠습니까? 비둘기를 꺼낸다고 선언하고 비둘기를 꺼낸들 누구도 놀라지 않죠." (마술사) - P1011

마술은 연출이 전부다.
지금은 나도 잘 안다. 물론 기술이나 트릭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잘 살려내는지는 연출에 달려 있다. 연출을 잘하면 시판되는 마술 도구로도 사람들은 놀라고, 연출이 서툴면 고도의 기술을 써도 쇼는 망한다. ‘지금부터 공중으로 떠올라보겠습니다‘라 말하고 공중에 뜨기만 한 내 무대가 프로 마술사인 누나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지금은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공중에 띄우기 위해 필요한 연출을 해야 했다. (마술사) - P15

작가가 되고 오 년째 되는 해 가을, 십오 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교토 병원에서 아버지가 말기 암이라고 연락이 왔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사후 수속에 관해 몇 가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병원으로 갔다. 오 분 정도 병실에 얼굴을 비쳤다가 병원에서 나와 바로 도쿄로 돌아왔다. (한 줄기 빛) - P51

아버지의 글씨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처음 산 자전거에 아버지가 내 이름을 써주었을 때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유성 매직펜으로 새 자전거의 흙받기에 내 주소와 이름을 썼다. 왜 그런지 그때 아주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년 뒤 깜박 잊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는 바람에 자전거를 도둑맞았을 때 아버지는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다. 자전거의 색깔도 모양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쓴 내 이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분명히 자전거에 ‘도카이 데이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기억한다. 도카이 데이오가 우승한 아리마 기념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왔다. (한 줄기 빛) - P58

플로리스 컵은 1907년 마필 개량을 목적으로 미쓰비시 재벌의 고이와이 농장이 영국에서 수입한 서러브레드 20두頭 중 하나다. 청일 및 러일 전쟁을 통해 일본 육군은 군마의 질이 서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자각했다.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던 일본에서 말은 주로 감상이나 의례용이었고 군사 작전에 쓸 일이 없었다. 당시 국내산 말은 키가 작고 성미가 거칠어 전쟁터에서 해가 됐다. 가령 1900년 의화단 사건에서 ‘일본은 말처럼 생긴 맹수를 탄다‘라고 열강에게 비웃음을 샀을 정도다. 그 때문에 질 좋은 말을 생산하고자 거국적으로 경마 육성에 주력했다. 플로리스 컵은 바로 그런 시기에 수입된 영국의 서러브레드였다. (한 줄기 빛) - P59

남은 것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미스 캐넌의 딸뿐이었다. 딸을 보여달라‘라는 (마미야) 쇼지로의 말에 브로샤르는 당혹했다고 한다. 아비를 모른다‘라는 말은 서러브레드에게 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서러브레드는 혈통이 전부다. ‘부모가 모두 서러브레드‘여야 서러브레드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혈통 등록이 시작된 18세기 이후 모든 서러브레드는 혈통서와 함께 관리되고 있다. 그 관리에서 벗어난 말은 서러브레드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소지로는 딸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한 줄기 빛) - P62

레티시아의 첫 새끼는 580엔이라는 비싼 값에 팔렸다.
경매 시장에서 육군 장교가 첫눈에 반한 탓이었다. 메구로는 3세대 전에 아랍종의 혈통을 이어받았는데, 장교는 그 사 실을 알고 더욱 만족했다.
생산한 말이 군마로 징용되는 것은 말 생산업자에게 더없는 명예로 간주되었다. 검사소로 출발하는 날, 레티시아의 새끼는 군기軍旗를 짜넣은 천을 덮고 지역 주민들의 성대한 배웅을 받았다. 농장에는 무수한 일장기가 휘날렸다. 다른 군마와 함께 만주로 보내질 예정이라고 했다.
쇼지로는 울었다. 물론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군마로 징용되는 명예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은 일본 더비에서 우승할 말이었다. (한 줄기 빛) - P77

쇼지로는 또다시 메구로에게 가장 알맞은 상대를 찾아 씨암말을 사러 두 번째 유럽 여행길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거센 전화戦火로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1943년에 정부가 경마 중지를 발표했고 이 년 뒤 도쿄 경마장은 식량난 해소를 위해 고구마 밭이 됐다. 다른 몇몇 중소 목장과 마찬가지로 마미야 농장은 경영난에 처해 전쟁이 끝난 직후 폐쇄됐다.
쇼지로는 서러브레드 몇 두를 매각한 돈으로 목장을 ‘마미야 승마 클럽‘으로 개조했다. 씨수말에서 은퇴한 메구로도 숭마용 말 중 하나가 됐다. (한 줄기 빛) - P87

우리가 사는 ‘현재‘에 ‘과거‘와 ‘미래‘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때 그것은 곧 현재입니다.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라는 상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모순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저는 이 모순에 대해 ‘시간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모순을 해결하는지는 곧 알게 되실 것입니다. 혹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모순 자체가 마음에 걸리지 않게 되셨다는 뜻이겠지요. 그 또한 모순을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시간의 문) - P99

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점은,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늘 알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문‘에 관한 한, 과거가 바뀐 것도, 과거를 바꾸었다는 사실도 배경이 아닙니다.
배경은 세부에 깃듭니다. 그리고 그 세부가 과거를 바꾼 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거듭해서 말씀드리는 ‘대가‘입니다. (시간의 문) - P117118

장대한 효론의 전주에 트럼펫이 들어왔다. 차분하게 확장되는 곡이다. 중반에 클라이맥스를 맞이한 뒤 안정되어 밑음으로 끝난다. 음높이 변화도 없이 완만한 멜로디가 두 번 반복될 뿐인 단순한 구성이었다. 도중에 조바꿈하면서 8분의 6박자로 바뀌는 부분이 작은 악센트일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예의 바른 느낌이 있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음대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고지식한 청년이 자신의 가치관을 모조리 쏟아부어 만든 것 같은 곡이었다. (무지카 문다나) - P140

모모야마는 문화를 사랑했다. 영화도, 소설도, 음악도, 패션도, 미술도 모두 좋았다. 자신은 어째서 문화를 사랑하나. 모모야마는 ‘불필요해서 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없다고 굶어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것‘이 자신들의 생활에 색채를 부여하고 있었다. 저출산 고령화 경향은 멈출 줄 모른다. 일본 경제는 쇠퇴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접함으로써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어떤 것에 감동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런 기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문화 덕택이었다. (마지막 불량배) - P179

나가노 출신인 모모야마는 내내 도쿄를 동경했다. 일 년에 한 번 친구와 함께 완행 첫차를 타고 도쿄에 갔다. 시부야,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아오야마를 돌며 용돈과 세뱃돈을 털어 옷이며 신발, 시디를 샀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는 모두 미인이고 남자는 모두 멋있어 보였다. 딱 한 번 익숙지도 않은 헌팅을 했다가 "도쿄 사람 아니구나?" 하고 웃음을 샀다. 창피했지만 역시 자신들은 촌티가 나는구나 하고 납득했다.
상경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해 도쿄에 있는 사립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막상 도쿄에서 살게 되니 시부야나 하라주쿠에 거의 가지 않게 됐다. 기술의 진보에 의해 옷이나 신발은 인터넷으로 살 수 있었고 음악은 클릭 한 번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점원에게 추천을 받는 일도, 시디 가게에서 몇 시간씩 청음하는 일도 없어졌다. 모든 게 원클릭이었다. (마지막 불량배) - P18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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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와 마찬가지로 포커에서도 특정 결과는 우리의 전략뿐 아니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우연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받는다. 훌륭한 포커 선수는 현명한 전략이 한 번의 경기에서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승률을 높여준다는 것을 안다. - P287

7장에서 논의한 ‘딴 데 보기‘ 효과를 기억하는가? 충분히 다른 방법들과 충분히 다른 분석들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이 입증하고 싶은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하지만, 그 결과는 실은 무작위 잡음 요동에 의한 것이다. 맹분석으로 대처하려는 위험이 바로 이런 종류다. 인간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는 분석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가설을 우연히 뒷받침하는 분석에 집중하는 핑곗거리를 임기응변식으로 찾아내는 데 매우 능하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이런저런 분석을 시도하는 것을 p해킹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심리학자 유리 사이먼슨Uri Simonsohn, 조지프 시먼스Joseph Simmons, 레이프 넬슨Leif Nelson이 지었다. - P288

호응이 커지고 있는 또 다른 전략은 학술지들이 등록 보고서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학술지에 연구를 제안하면 학술지는 이론적 근거와 제안된 방법이 전문적 동료 평가에 의해 승인되는 한 연구 수행 이전에 발표를 승인한다. 이렇게 하면 예상에 들어맞지 않는 결과를 학술지에서 실어줄 가능성이 낮아져 생기는 확증편향을 없애고, 더불어 흥미로운 가설을 입증하는 결과만 발표하고 반증하는 가설은 외면하는 학술지의 자연스러운 편향도 없앨 수 있다. - P292

맹분석에 친숙해졌으면 전문가를 고르거나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일 때마다 맹분석(또는 확증편향을 줄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을 모색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란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는지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고 싶은 전문가는 자신이 적절한 맹검법이나 사전 등록, 그 밖의 확증편향 방지책을 통해 결과에 도달한다는(또한 타인의 결과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더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문제를 연구하기 전에 자신이 답을 안다고 가정하는 경우에는 예/아니요 결과나 숫값을 결정하거나, 여러 조치들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경계해야 한다. - P293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새 기법을 발명해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명료한 생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꺾이는 것 또한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 세상과, 서로와, 현실에 대한 집단적 연구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신기술이 발명될 때마다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는 전혀 새로운 방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는 컴퓨터가 더 복잡한 분석을 내놓고, 프로그래밍 버그의 더 많은 여지를 만들어내어 게임 규칙을 바꾸는 일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 P295

앞 장들에서 논의한 많은 개념과 마찬가지로 논의를 사실적 토대가 있는 측면들과 가치, 목표, 감정에 대체로 의존하는 측면들로 분리하는 데는 현실적 유익이 있다. 이 분리의 토대가 되는 정의와 분류에 이론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 방향을 추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현실이 결정을 어떻게 제약하는지를 당사자들이 따로따로 고려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 P327

(클로드) 스틸Claude Steele의 추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가치에 도전하는 정보는 위협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회복력을 키울 수 있고 위협을 이겨내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스틸과 동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핵심 가치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이를테면 가치 목록에 대한 설문에 응답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경직적으로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면, 새 증거를 더 기꺼이 고려하고 심지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자들은 학교 등의 다양한 현실 상황에서 자기긍정 프로그램을 실시해 규칙적 자기긍정이 학생들의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려는 의향을 증가시켜 학업 성적을 개선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 P329

우리는 정책 결정의 요소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점검해야 하는지 모른다. 최종 결정에 이견이 있는 사람과 논쟁하는 법을 모른다. - P333

마지막 장을 앞두고 놀라운 명제와 차분한 난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명제부터 보자.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항구적 세계의 건설을 합리적 수준에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최초의 세대다. 이 명제는 틀림없이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심지어 가능성이 희박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참일 가능성만으로도 당신은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 P335

우리의 집합적 과제(아마도 우리 시대의 유일한 대난제)는 힘을 모아 생산적으로 생각한 다음 그 결과를 활용하는 도구를 발명하는 것이다. 세 번째 밀레니엄의 들머리인 지금 이 난제를 풀 수 있다면 행성의 번영을 위한 기초를 쌓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 P337

공론조사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인 무관심과 불참 문제를 해결하는 유망한 해답인지도 모른다. (짐) 피시킨Jim Fishkin과 동료들이 진행한 공론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참가자를 무작위로 선발했는데도 경이로운 참여율을 거둘 때가 있었으며, 숙의를 시작한 인원의 95퍼센트 이상이 끝까지 동참했다. 게다가 참여한 사람들은 그 뒤에 뉴스 미디어를 더 많이 접했다. 이를테면 신문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가 매일 세 종을 읽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참여 초대를 받으면 이것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실제 의무로 받아들인다. - P343

(훠턴스쿨Wharton School의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과 바브 멜러스Barb Mellers가 개발한 좋은 판단 프로젝트Good Judgment Project, GJP에서 예측의 정확도가 높은) 슈퍼 예측자가 나머지 예측자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했듯 대단한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치적 소양이 풍부하고 지적 능력 검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하지만 그들은 열린 생각이라는 인지적 태도를 갖췄으며,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고, 논증에 약점이 있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믿음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꺼이 인정했다. 이것은 보정 점수에 반영되었는데, 그들은 평범한 예측자에 비해 덜 과신했다. - P35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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