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기사에 스스로 점점 만족을 못 느낀다고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과학에 관해 쓰고 싶지만, 다른 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자가 으레 하듯이, 조가 이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 물었을 때 나는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 P2324

기사에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주위를 흘깃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자신의 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은 이곳이 월드와이드웹의 탄생지임을 알까? 디지털 우주가 기원한 이곳에서 물리적 우주의 기원도 탐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 P25

고생물학자나 고고학자와 달리, 물리학자에게는 연구를 시작할 유적이나 화석이 없다. 변하지 않은 채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 전혀 없다.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모든 것은 변형되고 진화하고 융합한다. 진리는 그냥 발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현해야 한다. - P25

물리학과의 우리 모두는 그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잘 알았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잘 쓴 기사였다. 그는 연구자들을 희화화하지 않았고, 그들의 연구 경력에 입발림하는 칭찬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사가 크게 호평받은 것은 그가 연구 정신과 그 연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내가 지나다니는 복도 게시판에 꽤 오랫동안, 몇 달 동안 붙어 있었고, 나는 작게 나온 그의 사진과 이름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뭐 그런 쪽이었다. - P31

이론물리학은 대체로 사적인 활동,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열정이 흘러나와 외부 표현물을 찾아낸 듯하다. 나는 설령 의미 없는 소품이라 할지라도, 이 강당의 분위기를 다시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 ‘세른 공기: 2012. 7. 4.‘라고 라벨을 붙인 볼품없는 주석 깡통이라도 누군가 팔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걸 사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설 것이다. -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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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 하드SF 단편선
위래 외 지음 / 구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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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 SF’의 정의를 너무나 대충 잡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과학 지식이 좀 더 깊고 정확하게 서사와 결합한 SF하드’ SF일 것이란 수준의 얄팍한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다.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하드 SF에 관한 내 엉성한 정의와 이 단편집 속 작가들이 생각하는 하드 SF가 어떻게 겹치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였다.

 

사적인 이야기가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저는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이 궁금합니다. 무아레 현상과 플랑크 단위에 대한 논문 말입니다.”

. 세상에! 가족 문제에 이어 이번에는 30년 전에 쓴 학위 논문까지 들추겠다는 건가요? 대체 이 늙은이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이유가 뭐죠?”(남세오, 벨의 고리) -102

 

 이산화 작가의 마법사 에티올의 트루 엔딩 퀘스트는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세계의 평화라는 퀘스트를 달성한 게임 제브라시아 모험기영웅들이 어째서 후속편에서는 그렇게 처참하게 변질되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이 게임 캐릭터를 분신처럼 여기는 현실의 게이머가 최근 과학의 연구들을 근거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남세오 작가의 벨의 고리에서는 양자역학의 새로운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시상식장의 물리학자들 앞에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시위한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과 비슷한 얼굴인데서 비롯된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이처럼 이 책은 과학을 더 깊이 바라보고 끌어들이는 현재 한국 SF의 방향과 양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준다. 이런 분산된 일관성이야말로 현대 과학의 성격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 단편집이야말로 하드한 SF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바다의 표면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색일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랑은 머릿속에서 논리를 지우고 낮추고 직감과 즉흥에 상상의 광경을 맡겼다. 그러자 검푸른 액체로 된 산과 언덕, 계곡이 나타나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얼음이 사라진 바다였다. 새파란 산이 언덕 위로 무너지고 계곡이 갈라질 때마다 새하얀 무언가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먼지일까? 얼음? 자그만 공기 방울?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광경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랑은 상상을 멈추지 못했다. 그때 상상 속 바다의 표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표면을 찢고 나와 공기 중으로 솟아 오른 것은 거대한 세뿔고래였다. (해도연, 거대한 화구) -196~197

 

 이 단편들을 쓴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과학의 밀도를 높인 서사를 들려준 덕분에, 과학을 소설로 쓰는 것과 이른바 과학 소설(SF)를 쓰는 것이 어떻게 다를 수밖에 없는지도 보다 선명히 보였다. 서사를 과학에 이용하는 것과 과학을 서사에 이용하는 것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차이는 설명력의 한계도 분명하다. 해저에서 생존하도록 진화한, 지상에서 생존했었다는 사실도 잊은, 지구가 아닌 행성의 미래 인류가 다시 땅을 삶의 공간으로 인식하기까지의 그 과정과 그 인식하는 순간의 경악과 경이를 고스란히 담아낸 해도연 작가의 거대한 화구같은 작품은 서사의 설득력과 치밀함을 위해 과학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들여온다.

 

 어떤 과학적 사실보다도 어렵고, 직시하기 곤란할 때조차 있는 과학을 충분히 알아도, 혹은 알아서, 그 과학의 가정마저 철저히 부인하는 인간의 한계야말로, 과학이 있는 까닭에 인간들이 서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밑바닥이다. 과학이 있어도 없는 취급당하거나 있으나마나한 존재처럼 보이는 이 역시 과학의 핵심이다. ‘거대한 화구처럼 결국 그런 어거지를 뚫고 나가는 힘 역시 과학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이 땅에서 살 수 있을 리가, 살았을 리가 없다는 악다구니는 과학의 일부인 셈이다.

 

 서사가 승한 SF는 물론 좋다. 서사가 승한 바로 그 이유로 좋을 수밖에 없다. SF의 서사가 승해도 그것이 꼭 과학에 박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이 책 덕에 생각했다. 서사가 승한 SF가 있는가하면, 서사처럼 과학이 함께 승한 SF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이야기만의 각별한 감각을 보여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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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예능을 읽다‘라는 제목을 듣고 처음에는 제아미世阿弥와 리큐利休, 그리고 꽃꽂이의 이케노보 센오池坊専応 등과 같은 명사 중심의 인물 열전 형식으로 풀어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중세 예능에 대한 통상적이지 않은 문제나 주제를 설정한 후에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쪽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권진勸進‘ ‘천황제天皇制‘ ‘렌가連歌‘ ‘선禅‘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각각의 측면에서 중세의 예능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 P11

불상을 만들거나 사원을 세우거나, 신사 건물을 수리하거나 하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행위를 권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권진은 중세에 매우 성행했었지만, 중세 말기에 이르러 세속화되었다. 근세에 들어서는 더욱 심하게 세속화되어 권진이 걸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 P14

이와 흡사한 예를 들자면, 일본의 불교에서는 ‘오치고상お稚児さん‘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 제도는 속세의 미소년이 승려 세계로 들어온 것으로, 한반도와 중국, 인도에는 없지만, 일본에서 탄생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대신하여 오치고상이라 불리는 미소년이 스님과 잠자리를 갖고, 스님은 자신에게 속한 오치고상에게 다양한 학문을 가르친다. 불교에서는 엄연히 여성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계율이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오치고상 제도를 이용하여 남자를 범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공공연해졌다. 본래 근대 이전의 일본은 승려의 세계뿐 아니라 동성애에 관해서 매우 관용적이었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변질되어 승려의 세계에서 ‘치고稚児‘의 존재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었다. 말하자면 속세가 불교계에 들어와 중간영역을 만들어가면서 승려의 세계를 변화시켜갔다. 권진히지리勸進聖도 치고와 같은 중간영역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의 일본인은 신성과 세속 사이의 중간영역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했다고 생각한다. - P1920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교도란 모두 무연의 존재여야 한다. 석가모니도 국왕의 지위를 버리고 세상과의 연을 끊은 무연의 인간이 되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기 때문에 불자는 모두 무연이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일본의 경우는 ‘진호국가鎭護國家‘ 불교로 국가 봉사를 위해 불교를 인정했었던 경위가 있으므로, 불교도를 국가공무원으로서 간주하게 된 역사는 깊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천태종天台宗의 히에이잔比叡山, 혹은 진언종眞言宗의 세계 등에서 장남에게는 귀족 집안을 잇게 하였지만, 생계를 잇기 어려운 네, 다섯 번째 정도의 아들은 사원에 취직시켜서, 사원에서 일하며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헤이안平安 중기가 되면 히에이잔이나 진언종의 세계도 귀족들의 대부분이 세력을 부리며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사원이 귀족의 사적인 소유물과 같은 장소가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 P21

‘짓코쿠히지리十穀聖‘가 권진히지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며, 그 짓코쿠히지리의 기원이 죠겐重源이라고 하는 인식이 중세의 염불계 승려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 짓코쿠히지리란 열 종류의 곡식을 끊고 수행하는 승려를 일컫는 말로 산간 수행자이다. 예를 들면, 하코네箱根에 있는 짓코구 고개十穀峠라는 것도 열 개국을 전망한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짓코쿠히지리의 왕래와 연관된 장소라고 생각된다. 권진히지리를 곡기를 끊은 산간 수행자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그 권진히지리의 기원이 죠겐이라고 보는 것이다. 죠겐 자신은 귀족 무사인 기紀씨 가문 출신이다. 일족에 다키구치滝口나 우마노죠馬充, 에몬노죠衛門尉가 많으므로 무사 출신이라 여겨지고 있다. 이는 고미 후미히코五味文彦도 주목하고 있듯이 사이교西行의 출신과 가깝다. - P2324

하지만, 죠겐의 아미타 신앙은 고야산高野山 계통이다. 고야산에서는 가쿠반覚鑁이라는 사람이 원정기院政期 중기쯤에 등장하여 밀교와 아미타 신앙을 융합하는 새로운 교리를 수립하였다. 그 종파가 신의진언종新義眞言宗이며 현재는 나리타산成田山의 신쇼지新勝寺와 가와사키다이시川崎大師라는 사찰로 이어졌다. 가쿠반 교리의 새로운 특색은 대일여래大日如来를 중심으로 하는 밀교 세계에 아미타 신앙을 접합시킨 점이다. 대일여래란 법신法身,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그 자체로써 그것이 실제로 현세에서 고통받는 자를 구원할 때는 아미타여래로서 나타난다고 하며, 염불 신앙과 밀교의 세계를 융합시킨 것이다. - P28

사이교는 일생에 두 번 미치노쿠陸奧(현재의 동북지방)를 여행한다. 마지막 미치노쿠 여행길인 사요노나카야마小夜の中山에서는 "노령의 나이가 되어 이 산을 다시 넘게 될 줄이야, 사요노나카야마를 넘을 수 있는 것은 목숨이 붙어 있는 덕분이구나年たけて また超ゆべしと おもひきや 命なりけり 小夜の中山"라는 훌륭한 노래가 탄생한다. 예전에 지나갔던 시즈오카현의 사요노나카야마에서 스스로의 생명의 연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하는 내용의 노래를 읊은 것이다. - P29

십몇 년 전에 ‘신안선 침몰‘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한반도 남서쪽 해안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던 배를 발견하여 인양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는 1323년에 침몰한 배였는데, 인양 후에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유물 명부에서 ‘권진히지리 교센勸進聖教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는 이 배가 도후쿠지 조영을 위해 권진히지리 교센이 탔던 무역선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침몰선은 배 바닥에 대량의 동전을 싣고 있는데, 대량의 동전은 배의 안정을 유지함과 동시에 그대로 동전 수입이 되기도 하는 이중의 효용이 있었다. - P34

당시에는 여러 설교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고칸시렌虎関師練이라고 하는 선종의 승려가 지금의 설교는 ‘변태백출変態百出‘의 모양라고 말하며, 진실을 예능으로 속이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지넨거사自然居士의 경우는 격식 있는 설교, 다시 말해 창도唱導라고도 하는데, 그러한 설교의 장에 사사라佐々良 설교 계통인 민중 가무를 들여왔다. 그림(’덴구조시天狗草紙’)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지넨거사의 노래 문구로, 그는 노래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넨은 단지 춤을 추는 것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며 가무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사는 상좌에 앉아 설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의 라쿠고落語 예인이 앉았던 방석 한 장이 상좌의 자취인데, 이 상좌에서 툇마루의 평평한 곳으로 내려와 민중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대담하게도 민중의 가무를 넣어 설교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설교가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 P47

사루가쿠猿楽가 어떻게 국가 예능으로 발전해 갔는가. 이는 사루가쿠, 혹은 노能 배우들이 가진 우주 감각이 국가 예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길러졌고, 그 우주관이 노의 텍스트인 요쿄쿠謡曲의 내용을 규정지어 가는 점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권진의 장에 나타나는 무연, 자유라고 하는 유목민적인 관념·감각으로부터 농경민적이며 음의 기운이 도는 감각으로 되돌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양쪽의 측면을 생각해 가지 않으면 중세 예능과 중세 사회, 나아가 현대 사회를 생각해 갈 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P59

이러한 기준은 있지만 경우에 따라 정말로 부정이 발생한 것인지, 혹은 죽기 직전에 사람을 밖으로 날랐기 때문에 그 집은 부정 타지 않은 것인지 등의 매우 어려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명법박사明法博士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매번 일일이 판단하여 부정을 탔는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국가적인 행사 수행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일본적인 음침한 풍토에 대해 냉정하다고 할까, 유교에 정통하여 비판적이었던 사람이 후지와라 요리나가藤原頼長였다. 그는 『우카이잣쇼宇槐雑抄』에서 "부정에 관해서는 율령에 싣지 않고, 식에서 나온다. 명법박사의 상신을 더욱 신용해서는 안된다穢の事, 律令に載せず。式より出づ。明法博士の申狀, 更に信用すべからず"고 하는 식으로 말한다. 12세기에 요리나가는 부정이라는 것은 원래 『율령律令』에는 없지 않은가. 일본화한 『엔기시키延喜式』에서 나오는 말에 불과한 명법박사의 말을 신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소수 의견으로 요리나가는 호겐의 난保元の乱때 죽음을 맞이한다. - P6768

천황의 ‘신체‘는 정결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며, 부정이 타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부정을 한 몸에 짊어지는 존재, 스스로가 불결한 존재가 되어서 부정 탄 공간과 접촉하여 부정을 외부로 떨쳐 버리는 역할을 짊어진 사람들—이들이 ‘기요메清目‘라 불리는 ‘비인‘ 신분의 사람들이다. 그 안에 ‘가와라모노‘ ‘예인‘ 등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구조이다. 흥미로운 것은 천황과 기요메의 중간에있으면서 양자를 매개하는 ‘게비이시検非違使‘라는 존재가 있다는 점이다. 게비이시라고 하는 사람들의 위상을 선명하게 묘사한 연구서가 뉴노야 데쓰이치丹生谷哲一의 『게비이시-중세의 부정과 권력検非違使一中世のけがれと権力』이라는 책이다. 게비이시는 중세의 바사라バサラ 문제와도 링크한다. 예를 들어 사사키 도요佐々木道誉라고 하는 바사라 문화의 중심인물은 게비이시이기도 했다. 그는 오하라노大原野의 쇼지지勝持寺에서 거대한 벚나무에 커다란 화병을 땜질하여 꽃꽂이 형식의 하나인 릿카立花로 간주하고, 거기에 다량의 향을 피워 대연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행사의 기획과 제작의 재능을 지닌 사사키 도요는 남북조 시기의 바사라 문화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었으며, 게비이시를 경험하였다. - P6869

누에鵺라는 것은 궁중 안에 둥지를 틀고 있던 부정이 괴물로 형상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누에라는 괴물로 형상화된 궁중의 부정이 강을 통해 흘러가 최종적으로는 나니와 포구에서 바다로 버려진다. 그로 인해 교토의 혹은 궁중의 부정이 제거된 것이다. ‘나나세노하라에七瀬祓‘라는 것은 사람 모양을 만들어 거기에 부정을 부착시켜서 강에 흘려보내거나 포구에 떠내려 보내 없애는 방법이다. 이것이 왕조의 부정을 없애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 P73

시카이제四境祭는 ‘시카쿠시카이제四角四堺祭‘라고도 불린다. 여기에서도 ‘나나세노하라에‘의 경우와 같은 동심원 구조를 볼 수 있다. 궁궐에서는 궁궐 사방의 모퉁이에서 부정이나 역병을 막아내기 위한 제례를 올리고, 동시에 와니和邇·오사카会坂·오에大枝·야마사키山﨑라는 교토의 네 경계에서도 같은 제사를 지낸다. 시카쿠시카이제에 관해서는 다카하시 마사아키高橋昌明가 매우 흥미로운 논문을 썼다. 『일본의 사회사日本の社会史』 제2장에 수록된 「경계의 제사-슈텐 동자 설화의 성립境界の祭祀一酒呑童子說話の成立」이다. 다카하시에 의하면 붉은 얼굴을 한 슈텐酒呑 동자는 역병으로서의 천연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오에야마大江山는 원래 오에야마大枝山로, 오에大枝라는 장소에서 시카이제가 거행되면서 여기에서 슈텐 동자 이야기가 성립했다고 한다. 그는 오에 지방으로 들어온 천연두와 같은 역병, 그 형상화가 슈텐 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 P7475

더욱이 가마쿠라鎌倉 말기경의 『하치만구도쿤八幡愚童訓』은 몽고 내습 후에 성립하였는데, 신라, 백제, 고려, 즉 고대 한반도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라·백제·고구려의 왕민은 탐욕이 만족할 줄 모르고, 교만방자가 끊이지 않아 일본을 공격하여 빼앗으려고 쳐들어오기를 수차례······그 자손은 지금 백정이다.
新羅·百濟·高麗国ノ王民ハ、貧欲心ニ飽タル事ナク、驕恣意身ニ不レ絶余リ、日本我朝ヲ討取ントテ寄来事、数個度······其子孫ハ今世ノ屠児也。

일본을 몇 차례인가 공격해 온 고대 한반도의 자손은 현재 일본에서 백정과 같은 자라고 하고 있다. 고대부터 일본에서는 중국은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만, 고대 한반도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한층 악화하여 이미 가마쿠라 시기에 한반도에 대해 이러한 표현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고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각은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에 이르러 크게 변하였으며, 가마쿠라 시대에 이런 식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재 일본인의 감각과 직접 연결되는가 하면 그것은 다소 의문이지만, 이미 이러한 표현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의 국경 밖에는 오니鬼가 있으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그곳에 있으므로 외국과의 대등한 외교 관계를 갖는다는 감각이 없는 셈이다. 오니와 교섭할 일은 없다고 하는 독선적인 외교 감각이라고 할까, 대외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이즈음부터 이미 대두하였다.
백정이라는 일본 사회의 최하층 천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외국인에 투영하는 담론이 이미 이 시점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 P7677

노 <세미마루蝉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천황제 내부의 부정이 왕자의 기형적인 신체로 표현된 것이라는 시점에서 보고자 한다. 세미마루(쓰레ツレ)의 경우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누나인 공주는 머리가 곤두서는 ‘사카가미逆髪(시테シテ)‘라는 기형이다. 머리는 여성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곤두서버린다는 것은 결정적인 결함일 것이다. 이러한 기형을 가진 공주가 사가카미이며, 그녀가 경계 지역에 버려졌다. 그에 앞서 앞 못 보는 왕자 세미마루가 경계 지역인 오사카야마逢坂山로 유기되는 부분부터 노 <세미마루>는 시작된다. - P78

또는 이에 관해 ‘사신설四神説‘이라고 하는 신화적 원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낳은 아이는 처음이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이며, 쓰키요미노미코토月読命가 두 번째로 태어난다. 세 번째로 히루코ヒルコ라는 다리를 저는 아이가, 네 번째로 스사노오スサノヲ가 태어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 신의 자손이 천황으로서 일본을 통치하는데, 네 번째 왕자인 스사노오는 저항하고, 세 번째 왕자 히루코는 바다에 떠내려 보낸다. 이 유형으로 해석하면 히루코의 계보에 있는 것이 사카가미이며, 스사노오의 계보에 해당하는 것이 세미마루라고 하는 이해도 가능하다. 양자 모두 부정이라는 것이 신체장애로 형상화되어 경계 지역으로 유기되거나, 배제되거나 하는 일이 실제로 노 <세미마루>에서 나온다. 노 <세미마루>는 전쟁 중에는 공연이 금지되었던 곡이다. 메이지 이후의 천황제는 이러한 부분을 허용하지 않는 천황제였다. 그러나 그 이전의 천황제는 천황의 권위가 약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부분을 허용하는 천황제였다. - P79

또 구로다 히데오黒田日出男가 쓴 『왕의 신체 왕의초상王の身体 王の肖像』(平凡社)이라는 흥미로운 저서가 있다. 이 책에서는 중세의 천황이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를 연구하고 있다. 일식이나 월식 때에 천황에게 부정을 입히는 요광妖光이라고 하는 빛을 발하기 때문에, 이 빛으로부터 천황을 지키기 위해 천황의 거처를 거적이나 멍석으로 에워싼다고 적혀 있다. 천황의 몸에 직접 거적을 두르면 더욱 흥미로웠겠지만, 거기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천황의 거처를 금종이로 두를 수도 있었을 텐데 거적으로 싼다는 것이 매우 상징적이다. 거적은 비인의 세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거적으로 궁궐을 에워싼다는 것은, 비인이라고 불리는 계층의 사람들이 천황의 방패가 되어서, 천황을 괴이한 빚으로부터 수호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교겐 작품 중 <도즈모唐相撲>에서도 중국 황제가 일본인 씨름꾼과 씨름할 때 가슴에 거적을 두른다. - P8384

추나追儺의 기원은 중국이다. 중국의 경우는 방상씨方相氏라고 하는 네 개의 눈이 달린 가면을 쓴 사람이 오니를 쫓아낸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도교 사원 등에 네 개의 눈이 달린 가면이 있어 방상씨의 후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방상씨는 창과 방패를 들고 오니를 쫓는데, 그 의식은 중국에서부터 고대 한반도와 일본에도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이를 ‘나례儺禮‘라고 한다. 오니를 쫓는 의례에서 연극, 혹은 퍼포먼스가 탄생하는 과정을 중국과 한반도에서, 또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삼국의 가면극은 오니를 쫓는 가면 의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노라는 가면극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일본의 경우 방상씨라고 하는 오싹한 가면을 쓴 사람이 오니를 쫓아버리는, 즉 부정을 쫓는 행사가 섣달 그믐날에 거행되었다. 그와는 약간 다른 형식의 나례가 정월, 혹은 2월의 연초에 사원에서 열리는 국가적인 법요인 슈쇼에修正会와 슈니에修二会로 유입되었고, 그러한 사원에서의 추나 의식 속에서 노가 형성된다. - P8788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시로도 사루가쿠後戸猿楽‘의 등장이다. 추나 의식에서도 사루가쿠 예인들은 사원 공간 안의 경계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이 ‘우시로도後戸‘라고 불리는 공간이며, 사원 후면의 경계 공간이다. 예를 들어 도다이지東大寺의 산가쓰도三月堂는 불공견색관음不空羂索観音이 주존主尊이며, 그 뒤쪽에 역방향, 즉 북쪽을 향해 비불秘佛이 놓여있다. ‘집금강신執金剛神‘이다. 이 불상은 가스가와카미야온마쓰리春若宮祭の御祭り때인 12월 16일 하루만 개장開帳한다. 아름다운 채색이 남아있는 훌륭한 불상이다. 지금은 1년에 한 번만 공개하고, 보통 때는 열어서는 안 되는 비불이다. 사원 안의 어둠의 공간을 관리하며, 사원의 뒤쪽에서 비불로써 전체를 지키고 있는 것이 집금강신이다.
(중략) 마루 밑이라든가 불당 후면의 공간은 죽음으로 직결되는 어둠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공간으로, 거기에는 비불이 놓여있거나 묘지가 자리하고 있어, 이에 따라 어둠의 세계로부터 빛의 세계에 있는 신전이나 산가쓰도의 불공견색관음과 같은 주존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사원의 우시로도 공간에 사루가쿠 패들이 들어가게 되었고, 우시로도 사루가쿠後戸猿楽라고 불린다. - P9697

이 부분은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어쨌든 원정기 전후로 민간 사루가쿠가 국가체제로 편입되면서, 사루가쿠는 매우 중요한 국가행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로운 가면극이 발생하는 한편, 천황과 예인이 직접 연결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사루가쿠 무리의 우주관, 혹은 감각으로 이어져가는 사이에 노의 다양한 기예와 텍스트가 탄생하였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 P100

와카和歌의 경우는 상류층에 한정되어 유행한 문예이며, 하위층 사람들까지 와카에 열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세의 렌가連歌는 상당히 하급 계층까지 확산해 갔다.
(중략) 다시 말해 사회의 하위층까지 렌가가 퍼져있었고, 렌가를 체험함으로써 일본의 고전에 접하는 경험도 한다. 일본의 고전 중에서도 노의 세계는 현대 일본인들이 읽으면 이해 불가능한 어려운 말이 이어지지만, 중세 사람들이 연극으로서의 노를 보았을 때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렌가가 일반 농민들 사이에서까지 유행하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농민들보다 약간 위에 있는 지방의 토착 무사 계급까지는 렌가가 퍼져있었고, 그들은 렌가를 열심히 배운다. 거기까지도 렌가의 세계가 퍼져갔으며, 그러한 렌가 문화 확산을 토대로 중세의 다양한 예능이 꽃핀다. 렌가도 예능의 하나이며, 렌가는 중세의 문예적 기반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 P105106

자신이 다른 주체로 전위하고, 그 전위한 새로운 허구의 주체가 되어,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의 경험 속에서 노래를 짓거나 해석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허구의 주체로 자신을 전위시키면서 상상력을 발동시킨다고 하는, 일종의 배우와 같은 상상력이 혼카도리本歌取り를 지탱하는 상상력이기도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세모노가타리伊勢物語』의 고전 변형이라는 시점에서 말하자면, 여자가 되거나 메추라기가 되거나 하면서 노래의 세계를 변화시켜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우와 같은 상상력에 의한 고전 변형의 연속이라는 와카의 작법을 보다 집단적으로, 보다 역동적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렌가의 장인 것이다. 거기에서 커다란 위상의 변화는 렌가가 집단적이라는 점이다. 와카의 세계에서는 개개인이 별개로 그러한 세계를 일회적으로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것을 자기의 체험으로 받아들이거나 한다. 저 사람이 이러한 노래를 지었으니, 나 자신은 이렇게 짓겠다고 하는 데에서 끝나버리지만, 렌가의 세계는 집단으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간다. - P116117

렌가에는 엄중히 제한된 규칙이 있는데, 규칙이 없으면 엉망이 되어버리므로 오히려 규칙이 있으므로 해서 렌가 구의 전환이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소나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면, 일곱 구절 이상 진행이 된 다음에야 다시 소나무라는 단어를 넣어서 노래를 지을 수 있다는 규칙이 있다. 즉, 렌가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윤회라고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꽃‘이라는 구가 왔을때, 그 다음 세계에서도 꽃이, 또 다음에도 꽃이 등장한다면 세계가 전혀 전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꽃과 같은 누구나가 만들 수 있는 구가 나왔을 때는, 가령 여덟 구절 정도 간격을 두어야 꽃을 노래할 수 있다든가, 달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며, 좀 더 인지도가 낮은 단어라면 세 구절 정도 간격을 두는 것으로 괜찮다든가, 이러한 식의 꽤 상세한 규칙이 있는 것이다. - P122

이는 뒷장에서 논하려고 하는 중세의 잇키一揆(무력 봉기)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일종의 초월적인 힘을 배경으로 하여 무연 평등의 인간집단이 형성되는 것이 잇키이며, 그 위에 잇키 집단과 렌가를 짓는 사람들의 집단이 정확하게 겹쳐지는 상황이 중세 후기에 나타난다. 그러한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하나노모토렌가花の下連歌가 명계冥界의 힘을 배경으로 하거나 초월적인 세계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자유 공간과 같은 장이 형성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 P140141

렌가 중에서 좋은 구를 짓는 것은, 취직해서 좋은 지위에 오르는 것보다도 즐겁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중세 후기이다. 서민이 렌가의 장에 참여하여 창작의 즐거움을 손에 넣는 사회 상황이 중세에 생겨났다. 이와 같이 렌가는 중세예능의 기반이 되는 것인데, 이는 일본인의 교양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때에 일본인의 식자율이 높았다고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도, 중세 시대에 있었던 렌가의 사회침투는 예능에 한정되지 않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 P156157

일반적으로 이 시대(중세) 선승의 의식은 상당히 국제적이라 국적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고대 한국으로부터도 많은 유학생이 와있고, 일본에서도 유학생이 갔지만, 중국의 승려들은 그들을 차별 없이 대했으며, 인간 대 인간이라는 자세로 일종의 국제적인 불교 구도자들의 커뮤니티 내지는 네트워크가 성립하였다. 그래서 중국 승려의 제자가 일본 승려이고, 그 일본 승려의 제자가 중국 승려라는 식의 관계가 많고, 그러한 커뮤니티가 국제적으로 성립해 있던 시대이다. - P174

예를 들어 일본에 최초로 선종을 들여왔다고 일컬어지는 에이사이栄西가 교토에 겐닌지建仁寺를 세운다. 교토에 선종의 사원인 겐닌지가 건립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 사원은 밀교密敎와 천태종의 현교顯敎 등과 함께 수련하는 도장으로써 설립을 인가받았다. 그에 한정 지어 교토에서 선종 사찰의 건립이 허락된 것이다. 그래서 겐닌지는 선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고, 밀교와 천태 등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그러한 밀교와 천태라는 구불교의 가르침과 함께 공부한다는 전제가 없는 한, 교토에서는 선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종만을 독립시켜 사원을 세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나온 경우에는 구불교 측으로부터 심한 반발이 일어난다. - P185

『다이헤이키太平記』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선의 유게遺偈, 그것은 조법사肇法師와 무학조원無学祖元의 유게로부터 영향을 받아, 모두 그러한 한시를 쓰고 최후를 맞이했다. 그것과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서 미나모토 요리마사源頼政가 와카를 읊고 죽는 방법을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는 다시 태어날 극락과 지옥의 세계를 믿고 정토적인 파라다이스, 또는 재탄생 할 세계가 있다고 믿었으므로 와카의 영탄조詠嘆調가 최후를 장식했다. 그렇지만 『다이헤이키』에서는 현재의 순간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서 생사를 뛰어넘으려 하였고, 그때 선종의 게의 반짝임과 속도가 일생 최후의 주안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타계를 믿지 않고 지금 현재의 순간순간이 전부이며, 그것이 인간의 생 그 자체로서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순간은 영원한 지금이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이다. - P192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던 선의 유게에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선종, 특히 임제선臨済禅의 기봉機鋒의 날카로움, 속도, 순간 지향성 등과 같은 것이다. 이는 그때까지의 일본인이 체험한 적이 없는 신선한 감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전광 운운하는 번개 치는 순간의 이미지는 그때까지의 일본문학에서는 중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 말경부터, 특히 남북조기의 『다이헤이키』 시대가 되어 그러한 것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은, 선이 유입됨에 따라 새로운 감각이 일본문화 속에 주입되고, 그것이 일본문화의 일부가 되어 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P193

일종의 극한적인 속도 감각, 곡예와 같은 감각인데, 그러한 것이 가마쿠라 문화로 유행했다. 게다가 금은주옥의 번쩍번쩍한 문화가 가마쿠라 시대에 성립한다. 그 가마쿠라가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에 의해 모두 불타버리지 않았다면, 관동의 문화 또한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전멸한 후의 가마쿠라는 조촐한 마을로 몰락한다. 하지만, 가마쿠라가 전멸함으로써 바사라 문화의 번영이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선의 감각을 배경으로 가마쿠라에서 꽃피기 시작했던 신흥문화는 1333년의 가마쿠라 멸망, 호죠씨의 멸망에 따라 맥없이 소멸하였다. 하지만, 그 문화와 신체적 감각을 이어받은 동국 무사들이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겐무 신정建武新政 계획에 대거 참가하여, 이윽고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를 중심으로 이를 무너뜨리고, 그를 쇼군으로 하는 무가 정권이 교토에 수립되는 과정에서, 교토에서는 새로운 ‘문화복합文化復合‘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사라이다. - P214215

여기서 선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정리해 두자. 선은 빛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중국 직수입의 당물唐物 문화와 함께 일본에 들어왔다. (중략)
또한, 선의 순간오입瞬間悟入의 태도는, 지옥이나 극락 등의 타계를 부정하고 현세에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며, 속세인이 선을 깨달은 듯이 행동하면 그것은 일종의 현세 향락주의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예컨대 같은 현세 긍정주의에서도 번뇌와 깨달음은 표리관계에 있다고 하는 천태본각天台本覺 사상은 매우 미온적인 사상으로, 순간성과 강렬한 힘은 거기서부터 나오지 않는다. 무학조원이 죽는 순간에 ‘전광처럼 일순간에 춘풍을 베듯이‘라고 노래했던 것과 같은 힘이 선에는 있으며, 그러한 힘이 선의 정신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현세에서의 향락을 추구하는 쪽으로 전화해 가는 일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에는 현세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진정한 부정을 매개하지 않고 현세를 통째로 긍정해 버리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측면이 있다. 그러한 태도가 일반인에게 흘러가면, ‘바사라적‘인 풍조를 지지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바사라 문화는 감각적인 수준에서도 정신적인 수준에서도 화려하고 이국적인 문화이다. 선은 일본문화 전체에서 보면 이질적인 문화라고 생각되는 바사라 문화를 지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P216217

또 기센슈쇼亀泉集証라는 선승은 어느 승려의 집에 갔을 때 본잔盆山에 대해 지은 시를 보고, 그 시를 옮겨 적었는데, 시의 끝 구절은 "중생이 살고 있는 대륙의 모든 대상을 축소하여 나타낸, 그것이 이 승려가 만든 본잔의 전체이다閻浮八万四千の境,縮置す野僧が盆水の涯"라는 내용이다. ‘염부閻浮‘는 현세를 뜻하므로 세계전체를, 현세 전부를 응축해 놓은 것이 본잔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한 구절은 앞서도 소개했던 이케노보 센오가 읊은 ‘소량의 물과 짧은 초목을 가지고 웅대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있는 것을 방불케 하여‘(『센오구전専応口傳』)라는 릿카立花에 관한 표현과 매우 가까운 울림이 있다. 표현이 닮았다고 해서 실제로 본잔의 정신을 이어받아 릿카가 성립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를 설명하고 있는 말이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릿카의 모델은 전 세계를 응축한 본잔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꽃의 세계에서 어떻게 전환해 갈 것인가 궁리하는 과정에서 꽃이 우주를 응축한 강력한 대상으로서 성립하였으며, 그것이 이케노보 센오의 ‘꽃‘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P222

일종의 무의식의 층이라고 할까, 연기자의 내면에 의식이 집중하여 빠져들고, 일상적인 신체기법이 아닌 정신의 층까지 빠져든 지점에서, 그러한 신체기법이 관객을 촉발하여 무대에 보이지도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제아미는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선행 문장에서 "배우의 예술적 힘의 근원인 마음의 작용이다一身感力の心根なり(『유가쿠슈도후켄遊楽習道風見』)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힘‘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아마도 신체 깊이 내부집중해가는 힘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며, 그러한 신체를 제아미는 파악하고 있다. 그때 좌선하는 신체 감각이 큰 참고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를 무대 연극의 신체로써 재편성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좌선하는 신체와 연기하는 신체는 어느 부분까지는 같고, 어느 부분부터 나뉘겠지만, 제아미 자신이 40대에 선의 세계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좌선의 신체를 노 무대의 신체로써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여기에서 표현의 억제가 나오는 것이며, 표현을 억제하는 가운데 내부집중을 하고, 그 신체를 통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다양한 경치가 보이는 무대가 탄생한다. 그러한 일을 제아미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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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 잘 듣는 개로만 받아들여져도 곤란하다. 개를 기르는 사람은 말을 듣지 않는 개를 길들였을 때 더 좋아하니까.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 P24

이 드넓은 우주에서 통일된 하나의 행성이나, 몇 개의 위성 거주구 따위를 묶은 연합체, 성계 동맹 따위를 제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천 광년 단위로 떨어진 수백 수천 성계들을 하나의 권위 아래에 놓을 수 있어야만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문은 머나먼 별들 사이를 넘나들게끔 하지만 관문선이 닿지 않는 머나먼 미답지들은 제국의 통제 밖에 놓여 있다. 지구의 정신과 문명을 잃어버리고 미개하게 단절된 선주민들을 제국은 다시금 포용할 의무가 있기에, 황제 폐하는 대원정을 결정했다. 대원정의 방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했다. 황제 폐하의 목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다면, 그들에게 황제 폐하와 그 심복들을 복제해서 제국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통치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통치한다면 그 또한 제국이니까.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 P26.27

기대했던 대로 남자는 박투술에 익숙하지 않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남자는 총을 버리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총을 가지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총구가 당장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 P38.39

일인칭의 원한은 이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하다. (위래, 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 P50

그리고 포이페는 아일랜드어로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길상우는 포이페 켈리와 메르센 켈리가 쌍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둘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것도 어쩌면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을. 왜 진작에 포이페를 붙잡고 캐묻지 않았을까.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포이페는 사라졌고 두 사람을 찾을 단서는 아일랜드라는 국적이 전부였다.
길상우의 발상이 빛이 난 부분은 그다음이다. 메르센 소수와 완전수를 따서 쌍둥이 딸의 이름을 지었다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쪽은 딸이 아니라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길상우는 켈리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모든 논문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기는 최소 30년 전, 분야는 물리나 수학일 것이다. 상우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만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로레인 켈리,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89년에 ‘무아레 현상을 이용한 플랑크 단위 미시구조의 탐색‘이라는 주제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다가 로레인은 아직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상우는 홀린 듯 휴가를 내고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남세오, 벨의 고리) - P98.99

"사적인 이야기가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보다 저는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이 궁금합니다. 무아레 현상과 플랑크 단위에 대한 논문 말입니다."
"오. 세상에! 가족 문제에 이어 이번에는 30년 전에 쓴 학위 논문까지 들추겠다는 건가요? 대체 이 늙은이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이유가 뭐죠?" (남세오, 벨의 고리) - P102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의 구조는 난수가 적힌 난수표다. 그게 숨은 변수가 적힌 양자의 비밀문서다. 우리 우주에 진정한 난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로 난수를 생성해 본 사람은 시작 지점이 같으면 항상 같은 순서로 난수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에는 무작위로 숫자를 고르는 능력이 없다. 시작 지점과 불러오는 규칙을 알려 주면 커다란 난수표를 찾아가며 숫자를 고른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양자 현상의 불확실성은 무작위가 아니라 우주의 난수표에 의해 결정된다. 상자 속의 양자가 빨간색일지 파란색일지는 이미 난수표에 적혀 있다. (남세오, 벨의 고리) - P106.107

포니아가 뫼를프의 말에 동의하며 악수를 하는 동안, 하랑은 눈을 감았다. 새파란 빛의 공허 속에서 거대한 화구가 타오르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갈고리 물체가 빛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고개를 돌리니 공허를 떠도는 크고 새하얀기 같은 존재도 보인다. 시선을 내리자 완전히 녹아내린 바다의 표면이 보인다. 바다의 표면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색일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랑은 머릿속에서 논리를 지우고 낮추고 직감과 즉흥에 상상의 광경을 맡겼다. 그러자 검푸른 액체로 된 산과 언덕, 계곡이 나타나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얼음이 사라진 바다였다. 새파란 산이 언덕 위로 무너지고 계곡이 갈라질 때마다 새하얀 무언가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먼지일까? 얼음? 자그만 공기 방울?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광경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랑은 상상을 멈추지 못했다. 그때 상상 속 바다의 표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표면을 찢고 나와 공기 중으로 솟아 오른 것은 거대한 세뿔고래였다. 세뿔고래는 무사히 적응을 한 것이다! 하랑은 기뻐하며 세뿔고래가 몸의 빛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모습을 감상했다. 세뿔고래는 공기를 잠시 맛보고는 중력을 따라 다시 바다의 표면을 웅장하게 찢으며 사라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밀어 멀리 떨어진 마른 땅을 바라봤다. 바다 아래만 해도 놀라울 만큼 다양한 풍경이 있었다. 마른 땅의 세상에서는 얼마나 놀랍고 다양한 광경이 펼쳐질까? 그곳에서도 동물과 식물이 살 수 있을까? (해도연, 거대한 화구) - P196.197

세상에 적합한 희생이란 없었고 문명이 고도화를 이룰수록 더더욱 그러했으므로. (이하진, 지오의 의지) - P209

"그리고 해당 명령은 정확히 2천 8백 5십 3번 지시되었고, 시행되었습니다."
"2천··· 뭐? 그러니까 항상 똑같이?"
"지오는 긍정합니다. 또한 로그를 분석한 결과, 횟수가 누적될수록 명령의 입력이 지연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말을 더듬었거나 망설였다는 뜻이었을까. 아, 항상 그래왔던 것이다. 우주의 흐름은 경외롭게 거대했고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 우주의 순간은 너무나 무한하게 다가왔다. 인간에게 역사는 바꿀 수 없이 반복된다고 체감되어 왔지만 그렇게 시나브로 변화해 왔던 것이었다. 매번 시간을 되돌리며 반복을 의심하고, 그에 쌓인 죄책감을 가늠하고,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지라도 그 미세한 흐름이 모여 충분한 가치를 지닌 파랑이 되도록 그날을 고대하며. (이하진, 지오의 의지) - P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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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 - 수면부터 생체 리듬, 팬데믹, 신약 개발까지, 생명을 해독하는 수리생물학의 세계
김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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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수학 교육에서 미적분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종종 들어 왔다. 즉 그리 신선한 주제는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서 그 무용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그 맞은편에 미적분의 효용이 최근의 과학과 기술 발달에서 얼마나 광범위한지, 대학에 입학해서야 필요한 학과에서 새로 가르치느라 어떤 비효율이 일어나는지 등의 반박도 있다. 이렇게 상이한 입장들은 물론 대학 입시라는 장에서 가장 날카롭게 부딪힌다. 하지만 수학 교육과 미적분의 역할에 관한 더 큰 문제는 대학교와 대학 입시 너머에 있음을 이 책은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렇습니다. 적분은 쉽게 측정할 수 있지만 그다지 관심 없는 속도로부터 궁금하지만 측정할 수는 없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

 

미적분학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30

미분은 속도 변화를 직관적으로 묘사하게 해주고, 이것의 적분은 직관적이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게 해줍니다. -48

 

 이 책의 부제처럼 수면부터 팬데믹까지수리생물학은 인간의 직관이 놓치거나 풀지 못한 생명 현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방향을 예측한다. 그 핵심 수단이 본질적으로 계산 기계인 컴퓨터이며 그 컴퓨터의 핵심 언어는 미적분이다. 그리고 컴퓨터와 미적분이 결합해 생명 현상을 번역하는 수리생물학에서 의학, 약학, 생명과학 등의 연관 분야와의 협업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미적분은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계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직관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생명 현상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수리 언어의 핵심 문법이 미적분이다. 인간의 역할은 생명 현상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미적분으로 묘사하고, 그 컴퓨터가 생명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을 운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이 미적분을 잘 알아야 하지만, 그 구체적, 세부적 계산까지 인간의 몫은 아니다.

 

이번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기존의 치료 체계를 여러 관점에서 더 정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료 시간의 관점에서, 그리고 성별의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볼 때 비로소 더욱 효과적인 치료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시간이라는 차원을 추가해 약의 효과를 예상하려면 시간에 따른 변화를 예측하는 미분방정식 기반의 수리 모델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32

이렇게 계산 결과를 보면 납득이 가지만, 이 결과를 보기 전까지 정상세포와 감염 세포의 수가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이용하기 전에는 우리가 직관을 이용해 얻은 결과들이 언뜻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우리의 직관에 잘 와닿지 않더라도 정상 세포와 감염 세포의 수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서로 공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시스템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이보다 훨씬 복잡한 실제 생명 시스템을 인간의 직관만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53~54

 

 생명 현상은 생명체의 평생부터 하루하루의 생존까지 시간 척도 간의 편차가 크고, 생명체 내외에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종류와 그 요인들이 상호 작용하는 양상은 다양하다. 결국 이 모든 조건이 결합한 생명 현상은 인간이 한번에 하나로 꿰어서 직관적으로 예측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영역이다. 애초에 인간의 인지 능력은 이런 수준의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는 상정하지 않고 진화했다. 이제야 급하게 필요해졌지만 준비되지 않은 역량이다. 생명 현상을 미적분으로 묘사하는 수리생물학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이 복잡한 주제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서인 동시에, 인간의 인지적 특성이 이 주제와는 영 상성이 좋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인간이 생명 현상의 방정식을 포괄적으로 구성하는 측면과 그 미적분을 토대로 컴퓨터가 생명 현상을 구체적으로 계산해석하는 측면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미적분의 역할과 효용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것과 그 계산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완전히 같은 의미도 아니다.

 

 따라서 미적분의 계산 원리를 교육하고 숙지하며, 미적분 계산 능력을 제고하는 것만이 미적분의 유일한 의무 교육 방식은 아니다. 그것이 정량적 평가와 대학 입시를 전제한 가장 효율적, 일반적인 미적분 교육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미적분이 필수적인 의무 교육 과정에 편성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 주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교육 방식은 내가 겪었거나 생각하는 그것과 다를 듯하다. 미적분은 생명 현상을 번역하는 수리 언어, 수식의 핵심 문법이지만 연구 주제가 아닌 연구 도구다. 인간이 미적분이라는 도구 자체가 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모두가 미적분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할지라도, 가급적 많은 사람이 미적분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남에게도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 미적분이 의무 교육의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한다면 바로 그래서다.

 

융합 연구를 자주 하는 만큼, 강연이 끝날 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녀를 어떻게 하면 융합 연구자로 키울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저의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융합 연구자의 두 가지 특성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 번째 특성은 대화를 유쾌하게 이어가는 것입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지난 10여 년간 의학, 약학, 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 수십 명과 협력해 융합 연구에서 여러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실패한 공동 연구도 있었지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융합 연구를 함께 성공적으로 끝맺은 이들은 모두 유쾌한 대화 상대였습니다. (중략)
두 번째 특성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융합 연구는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동일한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219~220쪽


 결국 이 책은 미적분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수학자의 글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막연하거나 단호한 당위의 영역과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 본인의 구체적이며 유연한 융합 연구, 협업의 성과를 미적분의 가치와 효용으로 연결하는 까닭에 설득력이 더욱 높다. 수학교육으로 학부를 시작한 저자가 최근 각광받는 수리생물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의학약학면역학 등 수학적 접근이 낯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해 연구한 경험들, 생명과학의 오랜 난제 앞에서 수학자로서 겪은 시행착오까지 간결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내서 더욱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저자에게 이렇게 대중적인 저술까지 할 수 있는 환승 시간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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