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동기들과 함께 1박 2일간 전주에 다녀왔다. 내게 익숙한 공간을 그곳을 모르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 기분은 분명 특별했다. 내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친구를 그들에게 소개하는 느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항상 신간이 늦게 들어오는 정읍을 못 견디던 중,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주말의 전주 서점행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3달 동안 벌써 네번째 다녀온 전주는 내가 한창 드나들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단지 그때의 내가 몰랐던 전주의 모습도 있지만, 내가 서울로 떠난 후부터 이 도시가 변한 부분이 더 많다. 대단한 명소라고 하기에는 실은 어색한 점이 적지 않은 경기전-전동성당을 중심으로 한 한옥마을이 대표적이다.
첫날은 도착하자마자 전주에 사는 친구가 공들여 구한 백반 전문 식당에서 거창한 밥상을 받았다. 이름이 백반일 뿐, 수준 높은 백반이 관광객 호주머니를 노리는 닳고 닳은 한정식보다 나으리라던 예상대로였다. 자주 올 일이야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손님 '대접'한다는 느낌이 드는 식사도 나쁘지 않다.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점심 후에 먼저 숙소인 한옥 민박에 들러 짐을 풀었다. 새로 지은 2층 한옥은 깨끗하고 따뜻했다. 주인 내외는 다소 잔소리가 심했지만 꼼꼼하게 지어진 집만큼은 칭찬할 만 했다. 다만 날이 추워 거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 새해 봄이나 가을쯤에 누군가와 다시 올 수 있다면 좋으리란 희망사항뿐.
잠시 뒹굴대다 전주천을 따라 걸었다. 갈대가 우거진 천변은 당연히 바람이 차가웠지만 걸을만은 했다. 그저 걷기에 좋은 도시라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는 질리지 않는다.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으로 향했다. 멀리서 볼때는 평지에 우뚝 솟은 산이 터무니없이 높아보여 여자 동기들은 어떻게 가냐고 했지만, 다행히 올라보니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는 않았고. 실은 가는 길에 노을을 받으며 펼쳐져있었던 군경묘지가 은근히 인상적이었다. 하필 겨울 석양이 죽음의 공간에 드리워진 탓에. 순교자 성당에 도착하기 직전에 산 정상에서 전주시를 내려다봤다. 투명한 겨울하늘 아래 나지막하게 펼쳐진 유유자적한 도시. 다행히 같이 온 친구들도 이 도시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본 듯 했다. 한동안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올라온 것이 다행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게 마시기 적당하게 따뜻한 자스민차를 보온병에 담아온 전주 친구의 배려는 충격.ㅋ 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잡은 성당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공간에 맞춤하게 자리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교자들을 표현한 내부의 타일 모자이크도 생각 이상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봄, 가을날 오후에 꼭 다시 한번 찾으리라 마음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겨울의 추위는 아무래도 마음을 급하게 하는 지라 오래 있기는 어려웠다.
온 길을 거슬러 다시 숙소에 돌아와 몸을 녹이고 길을 나섰다. 바로 얼마 전 전주에 왔을 때 마셨던 핫초코를 향한 순례. 단지 추워서 주문했던 핫초코에 스팀밀크에 따로 큼직한 생초콜릿을 녹여먹는 제대로 된 녀석이 등장해 놀랐었다.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사진까지 찍어 보여줬던 탓에 오기 전부터 별렀더랬다. 유명한 건축가 오기사에게 설계한 카페로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에서 운영하는 '납작한 슬리퍼'. 지나치게 재는 분위기도 아니고 적당히 느슨한 데다가 이름도 특이해 처음 왔을 때부터 맘에 들었다. 추운 거리를 걷고 걸어 도착한 핫초코는 역시나 맛났다. 은근한 호사스러움이란. 그리고 여섯 사람이 주고 받는 이런 저런 이야기, 이야기.
저녁 대신 막걸리를 마셨다. 다들 주당은 아닌 탓에 세 주전자를 비웠는데, 실은 안주만으로도 배가 너무 불렀다. 전주의 여느 막걸리집과는 약간 다르게 잘 지은 한옥에서 바닥에 앉아서 마시는 주점을 찾았다. 친구들의 취향을 고려해 전주 친구와 미리 한번 방문했던 곳을 택했다. 앉아서 막걸리를 비우는 동안에도 지금 서울에서 만난, 서울 출신의 이 친구들과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실감이 안나는 순간이 있었다. 실은 이들과 만나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기에 마치 내것이 아닌 것같은 느낌은 언제나 있었다. 두렵지는 않고 다만 고마운.
다행히 많이 춥지는 않은 전주의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향했다. 경기전 돌담길을 타고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걸음이 마치 서울에서 만나 저녁 먹고 버스를 타러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공간에 있으니 이 둘이 서로 나눠진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는 길에 어느 벽에 이명박 대통령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벽화가 있더라고 한 친구가 이야기해줬다. H와 나는 이 동네는 말하자면 반군의 소굴이라고 떠들어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처음으로 카드 놀이를 했다. 잡기에 너무도 둔한데 그냥 자기가 아까우니 이리저리 배워서 한참을 놀고 2시반이 넘어서야 눈을 붙였다. 말 그대로 친구들끼리의 여행.
한옥의 방바닥이 딱 기분 좋게 따스해 짧은 시간이지만 기분 좋게 잘 수 있었다. 8시 반에 일어났을 때 어제 걸었던 것치고는 피곤함이 거의 없었다. 숙소로 찾아온 H와 함께 천변을 따라 걸어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아점으로 남부시장의 대표 음식이라는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관광객보다 전주 토박이와 시장 상인이 많이 찾는다는 가게를 따로 물색해뒀었다. 딱히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역시 맛은 좋았다. 다들 해장으로 좋을만 하다고 이구동성. 그러고보면 남부시장 안에는 순대국밥이며 콩나물국밥집이 정말 많다. 이 작은 도시에 술꾼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시장을 나와 전동성당이 건너 보이는 풍남문 앞에서 버스를 타고 모악산의 금산사로 향했다. 근 10년 만에 찾는 길인데, 이 친구들도 이곳에 연고가 없으니 나중에 따로 오기는 어려울 듯해 일정을 잡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절의 마당은 여전히 시원스레 넓었다. 3층짜리 미륵전이나 5불에 6보살을 한곳에 모신 대적광전 모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건축물이다. 오래 전에 다녀오고 상상만 하던 것보다 이 절의 규모며 권위가 높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전주로 돌아와서는 마무리 겸해 전동성당에 들어갔다. 밖에서 봐도 사랑스러운 건물이지만 발을 들여 놓아야 비로소 이 건물이 얼마나 아리따운지 알 수 있다. 실은 외관만으로는 다소 작아보이고 또 명동성당과 비슷해보여 느낌이 썩 와닿지 않는다. 그에 반해 내부는 그 아담한 규모가 얼마나 섬세하게 배치되고 조화를 이뤄 성스러움으로 집약됐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10년 전에 처음 이 성당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곳은 소중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앞으로 또 어떤 소중한 사람과 이곳을 찾게 될까.
지난 초가을에 와서는 팥빙수를 먹었던 카페에서 이제는 단팥죽을 먹었다. 삼청동의 그곳에 비해 딱히 부족하지 않은 맛이었다. 먹는 사람이 많을 수록 죽을 많이 쑤게 될 테니 맛은 나아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넓지 않은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제 이 카페도 추억의 장소가 됐다. 앞으로 언제 다시 오더라도 오늘 이 날이 생각이 나겠지. 그 때는 어떤 기분이 들려나.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경기전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나라를 세운 경사의 터를 닦았다는 이 건물은 실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본전보다도 제사를 모시기 위한 주변 건물이며 후원이 훨씬 맘에 든다. 그저 머리를 비우고 걷기에 이만한 공간은 흔치 않았다. 묘하게 긴장이 풀리는 정취가 있다. 친구들은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본전 너머의 한옥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경내를 감싸안은 돌담길 너머로 전동성당의 첨탑까지 보이는 위치에서는 저절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이른 저녁은 비빔밥이었다. 정작 전주 사람들은 특별히 자주 먹지 않고, 밖에서 손님이 올 때 접대용으로 먹을 때가 더 많다. 나 역시 요즘 들어 전주를 자주 찾았어도 굳이 먹지 않았다. 전주가 내게 그렇게 낯선 도시는 아니니까. 다만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겐 다소 통속적인 기념품도 필요할테니. 그렇다해도 모처럼 먹고 보니 역시 맛은 좋았다. 앞으로는 이따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 그대로 이틀 동안 걷고 마시고 보고 먹고의 연속이었던 여행이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일정한 구역 안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시간을 보냈던 셈이다. 딱히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의미를 찾아서 온 여행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저 이 사람들과 이 장소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게 목적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과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함께 한 3명의 아가씨와 전주에서 수발을 들어준 1명의 아저씨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