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
보에티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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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책 표지의 소개보다 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 영향을 끼친 것은,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한 차동엽 신부님의 답변이었다. 스치듯 지면에 짧게 인용되었지만 느낌만큼은 강렬해서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저자인 보에티우스는 귀족 가문인 아니키우스 가문에서 태어났고, 당대 유력자였던 심마쿠스의 입양자였다가 그의 딸 루스티키아나와 결혼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로마의 인문학과 연계하려고 노력했던 심마쿠스의 영향을 받았고, 신학적 논의에 익숙했다. 명민한 명문가 출신답게 승승장구하여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에 해당하는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 직까지 역임했고 그의 두 아들은 10대에 집정관에 임명받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지나친 정의로움 때문에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비아에 유배되었다가 처형된다. 


그는 유배지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 책을 쓰면서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통해 철학에서 신학으로 인도되는 여정을 그려내면서, 죽음의 운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이 책은 보에티우스와 철학의 여신, 운명의 여신과 참된 행복, 참된 행복과 최고선, 신의 섭리와 운명,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 등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은 시와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매우 흥미롭게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감옥에 갇힌 보에티우스의 비참함을 시와 음악의 여신들이 달래주는데, 탄식의 말을 끊임없이 넣어주는 시의 여신을 질책면서 어느날 철학의 여신이 그에게 찾아온다. 그녀는 시의 여신들은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지 않고 감정을 질식시켜, 냉철한 이성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힐난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도 무고로 죽었지만 끝까지 철학을 붙들고 승리를 거두었다면서, 보에티우스만 억울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면서 어리광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이 세상의 바다에서 온갖 풍파를 겪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무분별함과 어리석음에 맞서는 이성적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보에티우스는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숙청파들의 음모와 기만을 있는 그대로 적었고 억울하게 유배왔다고 항변하지만, 철학의 여신은 인간은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을 유배시킬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 때문에 유배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만유가 무작위가 아니라 신적인 이성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는 믿음을 되찾아야 하며, 그를 속이는 비탄, 슬픔, 무기력함 등이 소용돌이치는 어둠에서 벗어나도록 약을 처방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녀가 처방한 첫 번째 약은 운명의 여신이 가진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가 운명의 여신에 기대 거짓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하는 데 집중한다. 철학의 여신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은 누구에게나 온갖 선물 보따리를 풀어 혹하게 한 후 안심하고 지내면 어느 순간 등을 돌려 떠나므로 고통을 안겨주는데 이런 식의 행보가 운명의 여신의 속성인데도, 유한한 인간은 운명의 여신이 주었던 생의 조건이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착각한다고 일갈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태어났기에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운명의 여신이 주는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는 어리석음을 직시하고, 오히려 모든 운명의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물질, 권력, 명성, 육체적 쾌락 등 운명이 주는 것들이 참된 행복이라면 육체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끝이 나지만, 참된 행복은 소유하는 것이나 물질, 권력, 명성에 있지 않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녀는, 참된 행복은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어서 그 자신 속에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을 다 담고 있으며 완전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에 반해 부, 권력, 명성, 육신의 쾌락 등은 채우면 채울 수록 더 갈망하게 하는 불완전한 행복, 즉 거짓된 행복임을 설명해 나간다. 불완전한 선과 대비하여 완전한 선, 즉 최고선이 존재하며, 그 존재가 바로 신이라는 데 논리적 귀결의 방점을 찍는다. 사람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 만족과 연결되어 있고, 만족은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결과에 따른 것이므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의 정수는 결국 선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은 서로 다르고 그 추구하는 각각의 것들은 완벽한 선을 가져다 줄 수 없으므로, 최고의 선이라면 각각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선이어야 하며  단일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설득해 나간다. 선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떨어져 나가면 완전성을 잃어버리기에 하나로 존재하는 단일성이 그 속성일 수 밖에 없으며, 만물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선이기에 만물의 목적은 선이라는 점도 유추한다. 이를 통해 만유는 선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추리하고, 그러므로 하나의 선, 완전한 선이자 최고의 선인 신이 만유를 다스린다는 데까지 보에티우스의 인식을 견인한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 철학의 여신은 억울한 보에티우스에게 신이 과연 정의를 베푸는 것인지 가르친다. 보에티우슨는 만유를 다스리는 선한 신이 존재하는데 악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데, 철학의 여신은 힘의 관점에서 그의 의문을 풀이해 나간다. 인간의 행위를 이루는 의지와 능력을 예로 들어 행복은 선이므로, 선을 추구하고 선을 얻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악은 선을 추구하는 본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여 선을 얻지 못한 채 흉내만 내고 있으므로 참된 함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다. 선을 추구하고 선을 얻을 수 있는 미덕을 갖는 것이 참된 힘이며, 그러므로 오히려 악은 악을 실행에 옮겨 실제로 이룰 수 있을 때 선에서 더 멀어져 더 불행해지고 비참해지는 역설에 놓여 있다는 점도 가르친다. 


또한 철학의 여신은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에 갇힌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평면의 도면을 걸으면서 조건적 필연성으로서 자유의지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으나, 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삼차원의 세계 밖에 있으므로 평면에 놓인 인간의 모든 행보를, 순수한 필연성의 관점에서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영원'의 개념은 미래가 계속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신에게는 영원이 언제나 '현재'로써 인식된다는 점을 들어, 낮은 차원의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죽음을 앞둔 보에티우스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을 깨닫고 흔들림 없는 평안함으로 자신을 다잡는다. 정적에 의해 육신은 유배되었지만, 정신과 영혼은 자유로워 세기의 걸작을 집필한 그의 지성과 집념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 지면이었지만 차동엽 신부님께 좋은 책을 추천 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이렇게 그것은 본질상 하나이고 동일해서 여러 부분들로 나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에 의거해서 그것을 구분하고 나누어서 그 중의 한 부분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그 부분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그 부분도 얻지도 못하고, 그 전체를 얻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 자체도 얻지 못하게 된다..중략..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을 얻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모은 돈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많은 즐거움들, 심지어 자연스러운 본성적인 즐거움들조차 포기하고서 이름 없이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살면, 그 사람은 비록 부를 지녔다고 해도 만족을 얻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권력도 없고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며 명예도 없어서 멸시받고 명성도 없이 비천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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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유럽사 1 -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역사
김상훈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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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일단들을 모아 연혁을 추적하고 흥망성쇠를 기록하는 역사만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쉽게 충족되기 어려운 분야가 있을까, 일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 같다. 시험처럼 특정한 목표를 앞두고 익히다 보니 단편을 억지로 엮어낼 수는 있었지만, 어떤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스스로  교훈을 맞뚫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저자의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대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에 설득된 까닭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설득은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저자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맥락 간 관계를 추적하는 데 그악스러우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약속을 꼼꼼히 메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유럽사에서 늘상 헷갈렸던 부분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의 탄생과 이슬람의 침략 부분 등이었는데 나름 맥락을 잡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 건설의 목표가 달랐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인데, 그리스는 늘어난 피지배층의 수용과 공물의 상납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고, 농업의 발달로 농지를 마련하기 위해 로마는 내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후 노르만 민족의 이동에 따른 러시아의 건설과 슬라브 민족의 남하에 따른 동구권 국가의 탄생 배경 역시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를 단순히 시간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공간, 민족, 정치, 종교, 경제의 다양한 배경을 사안들과 접목시켜 입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제도의 탄생을 식민지 개척의 역사와 연결하면서 분권화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제시한다. 


또 두 권이기는 하지만 짧은 지면 탓에 모든 것을 교과서처럼 담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으나, 중요한 역사적 전환의 국면에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지 유추할 수 있도록 친절한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함으로써 의외로 많은 역사적 가르침을 상기하게 한다. 즉 경제적 축적과 평등이 사회 전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명분이 정치에 있어서 얼마나 민감하게 작동하는지, 기득권층의 이합집산이 이성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훈족의 등장처럼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던 요인들이 역사의 궤를 완전히 틀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능긍할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민족 분쟁, 종교 전쟁, 각국의 패권 전쟁의 시초가 되는 연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동안 유럽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마이너 리그 격인 역사를 간과하지 않고 다루어준 점도 두드러진다. 덕분에 로마 제국 초기에 영향을 끼친 에트루리아나, 초기 철기 문명이 시작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문화, 발트해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스웨덴의 대립, 강대국 사이에서 거듭된 영토 분할의 피해국이 된 폴란드 등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한번의 독서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다각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실체를 맛봄으로써 더 확장된 공부에의 의욕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 

세계사 공부의 기본은 이와 같습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무턱대고 한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세게사 흐름의 큰 틀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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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 - 인생의 샬롬을 이루어 가는 21일 묵상
류인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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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효율과 성과, 능률과 성취를 기반으로 삼는 치열한 세상 가운데 은혜의 복음에 붙들린 성도들이 어떻게 살고 또 살아내야 할지 21일간의 묵상을 제시함으로써 잠잠히 가르친다. 


구원, 속죄, 은혜의 복된 소식이 부, 명예, 건강, 성취 등의 기복으로 변질되면서 죄로부터의 구원에 따른 영생과 부활은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소위 세상 부귀 영화도 놓치지 않는 끈덕진 욕심을 갈라 터뜨린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저자가 묵상한 내용을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용기있게'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파트에 7가지 주제를 배치하여 총 21일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독서의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각 내용은 알차고 단단해 밀도있게 느껴진다. 


저자는 제목을 붙일 때 '고래'를 선택한 이유로 혹등고래의 삶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보다 느리지만 춤을 추고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일상을 즐기는가 하면, 바다의 수호 천사를 자처해 물개며, 다이버 등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한다. 거기에 바다의 유기물을 순환시켜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돕기도 하고 나무 1천 그루만큼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죽고 나면 심해 생물에게 먹이로 제공해준다고 하니, 동물계의 예수님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시선은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 및 성과 사회가 압박하는 주된 테제인 '자기'로부터의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 행복 강박, 자기 추구의 매몰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이어져 은혜의 복음이 허락하는 진정한 삶 살기를 가리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성장과 성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르면서 다시 사랑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쉼을 잃어버리고 자족이 엷어진 까닭은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돌보는 소박함을 잊어버린 까닭이라는 주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되찾고 주어진 삶을 참되게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공감하며 감사하고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는데, 복음 안에서 흠결 없는 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들어 구체적인 자아, 이상적인 자아에는 집중하면서도 우리의 상황이나 성취와는 아무 상관 없는, 하나님 안에서 진실한 평안을 얻는 진정한 자아를 등한시 한다는 지적이나, 스티븐 버글라스의 <성공 신드롬>에 따른, 모든 것을 성취한 성공한 이들이 걸리는 병인 네 가지 증상, 즉 오만, 지독한 외로움, 파괴적인 모험 추구, 간음 등을 소개한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을 뒤로 남겨두고 오직 성취의 목적만을 향해 나아갈 때 마주하는 결과가 얼마나 허망하고 두려운 것인지 생각하면, 복음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소박하고 느리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참된 삶으로 진척하지 못하는 행보를 회개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오래 참음이다.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강하고 굳은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오래 참을 수 있다. 아무리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고 주 앞에서 오래 참으면 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안심할 수 있다. 결말을 알면 인생은 쉽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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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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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흩어져 있는 조각을 맞추어 논리적 산물을 획득하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추리의 결과가 진위 여부로 정확하게 판별될 때 희열은 극대화 된다. 존재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흡사 추리와 닮아 있는데, 추리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극명하게 갈리는 관점의 교차가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진위 여부를 현세에서 확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때로는 논란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적 호기심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에 회의적이지만,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창조론이 내세우는 창조의 순서와 진화의 차례가 흡사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생명의 시작도 세포가 아니라 우주 대폭발, 빛의 창출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어떤 전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저자는 생각의 출현을 철저하게 진화와 물질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생명 탄생의 기원을 우주에서 출발하여 다시 우주에 빗대어 뇌가 발현하는 생각의 확장, 창조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대칭성이 깨지면서 우주의 외연이 만들어지고 이 때 만들어진 잔류물들이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의 초석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생명의 초연으로 세포가 등장하는데, 단세포들이 모여 다세포가 되고 다세포들은 다시 계통별로 연합해 기능화되었다고 소개한다. 세포들의 역할 구분의 이면에는 DNA가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뇌의 신경 세포는 수초화,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등의 구조화 및 미세 조정 등을 통해 운동을 명령하고, 감각을 수용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 즉 의식의 출현은 철저하게 이러한 뇌세포의 화학적 반응, DNA의 변주, ATP에 의한 에너지 합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운동과 감각으로 축약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적 시스템의 산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을 비롯해서 시상, 편도체, 해마, 소뇌 등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해부도나 도표를 활용하여 제시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간추려 소개함으로써 주장의 체계성을 갖춘 것이 무엇보다 탁월하다. 우주의 기원과 물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연계하여 창의적 사고의 확장성을 설명한 부분도 인상 깊다. 


좋은 책의 요건이 독서 후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기준을 가뿐히 통과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우연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 것 같다. 우주의 잔류물들이 모여서 우연히 세포를 만들고, 세포들이 진화해 왔다면, 왜 어떤 존재들은 거기에서 진화를 멈추고(?) 더 진화하지 않은 걸까, 혹은 왜 못한 걸까. 


또 단순히 DNA의 변주에서 출발하여 세포들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의 결과물로 의식을 설명한다면 무의식, 양심이나 영혼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만 범위를 좁혀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기계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의식이 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가, 문화, 환경, 역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질문과 더불어 통찰을 제공해주는 점도 있는데, 우주의 작은 먼지 하나부터 빛 한 줄기, 나뭇잎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생명을 관통하는 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 개체의 생명을 넘어서 개체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전체의 생명이 있다는 것, 온생명의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세포의 연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결합이나 연합일 수도 있지만 세포의 각자도생을 연합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 즉 오히려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의 오류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건강의 배신>이 보여주는 면역 세포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생명의 유사성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종류가 다르고 계통이 다른데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각자에게 적합한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의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화학, 물리적 반응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튼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꼼꼼함과 바지런함 덕분에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의 현 좌표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다.  

생명현상 역시 대칭성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주 대칭이 깨어져 네 가지 힘이 분화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한 후에야 지구 생명현상이 발현으로까지 연결되니까요. 대략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서 태초의 생명현상이 일어났죠. 그 무렵에 생명 진화 역사에서 중대한 랑데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커다란 아메바성 생명체와 세포 내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세포 생명체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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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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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상당 부분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삶'에 대한 소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생존에 대한 분투기로 가득 차 있다. 정치, 경제, 건강, 사회, 문화의 모든 소식은 추적하면 결국 생과 접목되어 있다. 물론 죽음의 소식도 분명 존재하지만, 삶의 소식처럼 다채롭고 구체적이지 않다. 물론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죽음은 흥미로운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대게는 죽음은 '삶의 종결'이라는 큰 맥락에서만 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선택하면서, 모두가 경험하고, 경험해야 할 죽음이지만, 이토록 죽음에 대해서 무지할 수 있을까, 어떤 소소한 각성 같은 것이 일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물리적인 지면 탓에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동기화는 충분해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법의학자로서 살아오면서 고민한 내용을 담백한 어조로 전달한다. 책은 크게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우리는 왜 죽는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법의학이란 무엇이며 법의학자는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검시와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법원, 보험 회사 등의 자문을 맡는다는 점이 새롭다. 철저하게 증거로 대변하는 학문이다 보니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부침도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한 몇 몇 학자로부터 법의학 분야가 발전해온 과정을 읽다 보면 소명 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선진국과 비교하여 열악한 기반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2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간단하지만 죽음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의학으로 일임하게 되었는지 설명한 대목이다. 과거 영혼 불멸과 필멸 등 죽음을 영혼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과학이 발달하면서 주로 죽음을 유물론적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의학이 주도하게 된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주도권을 의학이 가지면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영, 혼, 육의 존재에서 육의 존재로 축소되고 어떤 기계의 소멸처럼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에 죽음에 대한 문제를 왜 의학에만 떠넘겨서는 안되는지 어떤 단초를 발견한 느낌이다. 


3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 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의 문제, 연명의료, 죽을 권리,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기술한다.


일본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유행하는 종활, 근엄한 장례식이 아니라 유쾌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저자의 준비, 과학의 발달로 더는 죽을 수 없는 세대의 도래 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준비와 수용에 대한 부분이 더 할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독사를 넘어서 무연고사가 많아지고, 국회에서는 사회적 개념 확립과 지원을 위해 고립사라는 법적 용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죽음의 양태마저 누군가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고 할까.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에서의 죽음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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