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도서관과 정독도서관에서 낙소스 라이브러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연주자의 차이도 있고 CD 음질에 미치지 못 하는, [Near CD]와 [FM] 음질로 들을 수 밖에 없지만

내가 황금귀(ㅋㅋ)의 소유자도 아니고, FM 정도면 라디오 듣는다 생각하고 감안할 수 있으니

몹시도 사랑하는 몇 장의 CD를 제외한 나머지는 싹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이건 TOOL의 위엄인가!)



종종 듣는 작품들 (새삼스럽지만, 피아노에 맺힌 원한;;만큼이나 추운 나라에 대한 동경도 깊구나!)


1) BACH, J.S.: Brandenburg Concertos Nos. 1-6 

2) BACH, J.S.: Cello Suites Nos. 1-6 (Casals, Pablo)

3) BACH, J.S.: Organ Works (Schweitzer, Albert)

4) BACH, J.S.: Violin Concertos, BWV 1041 and 1042

5) BACH, J.S.: Concerto for 2 Violins, BWV 1043


1) DVORAK, A.: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

2) PROKOFIEV, S.: Violin Concertos Nos. 1 and 2

3) TCHAIKOVSKY, P.I.: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4) SIBELIUS, J.: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5BARTOK, B.: Violin Concertos Nos. 1 and 2

6) BRUCH, M.: Scottish Fantasy, Op. 46

7) SHOSTAKOVICH, D.: Symphonies Nos. 1-15


(난 평생 이것만 먹어도 될 것 같다!)

Jascha Heifetz (violinist), David Oistrakh (violinist), Leonid Kogan (violinist)

Daniil Shafran (cellist), Mstislav Rostropovich (cellist)

Valery Gergiev (conductor), Gennady Rozhdestvensky (condu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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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 전집 2 - 연인희곡총서 4, 장막극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이주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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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이 작품의 장르를 드라마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희극이나 보드빌로 해석되길 바랬다. 그는 스따니슬라프스끼와 네미로비치-단첸꼬가 [세 자매]를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래서 처음 모스끄바 예술극장에서 배우들과 강독할 때 모두들 이 작품을 비극으로 해석하고 눈물을 흘리자, 체호프는 자신의 희곡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공연은 실패할 것이라며 불안해하였다. 이러한 체호프의 생각은 인물에 대한 해석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는 약혼녀 끄니뻬르가 연기한 마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오, 좀 들어봐! 어떤 장면에서도 슬픈 표정을 짓지마. 슬픈 표정이 아니라, 그래, 화난 표정이야. 오랫동안 슬픔을 지니고 그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자주 생각에 빠져있어." 스따니슬라프스끼와 체호프의 장르에 대한 이견은 이후 [벚나무 동산]에서는 더욱더 첨예하게 드러난다.-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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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최인훈 전집 4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구판절판


시인 김중배씨와 헤어져서 구보씨는 관훈동에 있는 책방 거리로 갔다. 근래에는 사고 싶은 책이 별로 없었다. 다만 나온 김에 버릇이 되어 둘러보는 것인데, 그때마다 역시 이렇다 하게 갖고 싶은 책이 없다는 사실을 다짐하고는 안심 비슷한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책방에서 나와 안국동 로터리 쪽으로 나오다가 구보씨는 길가에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케이크를 하나 사서 천천히 먹었다. 아이스케이크의 부피만한 행복이 몸 속에 산뜻하게 퍼지는 것이 알린다.-88쪽

이것도 못난 일이지만 구보씨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무슨 음악 연주 같은 것이어서 악전(樂典)을 모두 익히고 연습곡을 필한 다음에야 자 이제부터 하고 들어가는 그런 것인 줄로 알았다는 데 잘못이 있었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는 것, 연습도 모두 본 연극이라는 사실을 숱한 시간을 낭비한 다음에야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결혼을 너무 크게 생각한 말이 되겠다. 구보씨도 사랑의 연습은 조금은 해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홍역 치르듯이 대번에 알아야 할 슬기를 그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따진다면 당자가 못한 탓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탓을 하거나 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그렇다면 못났다 치고 결혼이란 것이야 목숨 가진 것들이 다 하는 것인데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이야 무엇이리 한다면 거기는 약간은 역시 이 시대의 탓도 있었던 것이다.-150쪽

악전(樂典)이란 말을 썼거니와 이 시대에 사랑의 악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가짜 악전만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 구보씨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산 모든 사람이 당한 일이기는 하지만, 보통 같으면 악전을 몰라도 콧노래가 나가면 그게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마련인데 구보씨는 한사코 악전 없는 콧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다는 물구나무선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이 역시 구보씨의 잘못으로 인생과 연극을 헷갈린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구보씨에게는 허망한 뉘우침만이 남아 있었고 뉘우침의 모두가 자기 탓은 아니라는 느낌을 짐짓 뭉뚱그려서 가끔 "에익 神哥놈" 하고 내뱉어보는 것이다. 지금 1971년 9월 중순의 어느 날, 서울에 있는 조선 왕조의 옛 궁전인 경복궁의 삼청동 쪽 담을 끼고 걸어가고 있는 삼십대의 남자인 구보씨는 이런 사람이다.-150쪽

-그러나,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젊은 허무주의자의 노트를 너무 직업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안 된 생각이 든다. 스물 안팎의 그의 눈에 세상이 이렇게만 비쳤다면 그를 탓해야 할 것인가. 더 여유를 주면 그에게 어떤 만족할 만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말을 반박할 무엇을 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더 교활해지라. 더 더러워져라. 너도 손에 피를 묻히고 우리 공범자가 되어라. 그리고 유혹해서 끌어들이고.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을 살아보아서 배울 슬기란 건 하루를 더 살면 하루만큼 더 공범자라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손이 말짱한 대로 착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구보씨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228쪽

그러나 어떤 사람이 출발점에서 삶에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문제일 뿐이지 옳고 그르고가 없다. 옳고 그르고는 늘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시비 가림이다. 죽은 사람은,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도 한 순간에 헤아릴 길 없는 먼 벼랑에 올라선다. 시인이란 살아 있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이다. 유언을 남기듯이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젊은이도 그러므로 살아 있다.-229쪽

더 얘기하면 입맛이 떨어질까봐 구보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문득 구보씨는 사람이 짐승이나 푸성귀를 먹고 산다는 것이 끔찍스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어떤 낱말이 낯설어보이는 경우처럼 자기가 낯설어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좋지 못한 일이었다. 목숨 가진 것이 자기 목숨을 뜯어보는 것은 적당한 데서 그쳐야 할 일이었다. 실험실 속에서 하는 과학이니, 소설이니 하는 소독 장치 없이 평시 삶에서 그런 버릇이 붙으면 살아가기가 까다로워진다. 구보씨는 그러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런 생각을 잘라버렸다. 그에서 그치지 않고 구보씨는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의젓이 입에다 넣었다.-251쪽

- 그건 그래요. 나같이 못난 사람이 부처님 가르침을 이처럼 가까이서 받는다는 게 큰 복이지요.
- 그렇구 말구요
- 사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늘 귀에 못이 박히게 길들이는 게 제일인가봅니다
- 속세에 있다보면 그처럼 못이 박힐 계제가 없는 게 탈입니다
- 여기서는 모두 소승보다 뛰어난 분들만 계셔서 그 무리에 싸여 있는 것으로 큰 공붑니다
-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 사실 사람이 옳은 살림을 하는 게 별다른 게 아닌가 봅니다. 옳은 사람을 찾아서 본을 받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으뜸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나지 못합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 나 혼자 속세에서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 네
- 매일 다니는 이 길을 걷는 게 제일 편합니다. 눈감고도 다닐 수 있으니깐요
- 어려서 들어오셨으니 그러시겠군요
- 부처님이 꼭 여기만 계시지야 않겠지요. 온 세상을 다니면서 중생을 구제하시니 이 세상 어느 곳인들 부처님 발길 닿지 않으시는 데가 있겠습니까?
- 그렇지만 부처님은 밤에만은 여기서 주무실 테니 여기가 제일 많이 뵙는 처소가 아니겠습니까?
- 네-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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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상처의 블루스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주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9월
품절


그렇다. 소설은 좌절한 의식의 소산이다. 좌절된 욕망이라고 하면 더 정확해지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좀 천박하다. 아무튼 소설가는 좌절한 것이다. 좌절하지 않은 자가 골방에 틀어박혀 담배를 꼬나물고 소설이나 쓰고 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은 그걸 좌절이라고 하지 않고 부적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이란, 혹은 예술이란 그런 제도의 부적응자들이 부적응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또 하나의 제도라고 말이다. 욕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좌절된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성취시키려고 하는 또 하나의 욕망, 그 제도라고 말이다. 그러나 구보씨는 그 부적응의 적응, 혹은 좌절된 욕망을 성취하려는 또 다른 욕망의 제도라는 개념은 썩 내키지 않는다. 그건 결국 세계와 다시 쉽게 화해하려는 철저하지 못한 소설관인 것 같아서이다. 구보씨는 차라리 어떤 소설가가 말했던 좌절한 자의 복수 의식으로서의 소설관에 더 마음이 끌린다. 소설이란 좌절한 의식이 세계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64쪽

아, 그렇다. 진정하고도 완벽한 복수란 그런 것이다. 복수의 대상은 점점 더 커지고 복수의 시기는 점점 더 지연된다. 작은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복수는 진정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소설이란 진정하고도 완벽한 복수와 같다. 햄릿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죽느냐, 쓰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죽는 것도 복수이고 쓰는 것도 복수이다. 진정하고도 완벽한 복수는 그것밖에 없다. 그것만이 세계와 자신의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복수다. /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구보씨는 절망했다. 정말 소설이란 그런 걸까. 빌어먹을.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진정하고도 완벽한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을까. 헤어날 길은 없을까. 교회라도 나가볼까. 빌어먹을. 앓느니 죽지. 그래 아마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야. 그리고 뭐, 꼭 그런 거라고 하더라도 무슨 수가 있겠지. 죽으란 법이 있을라구.-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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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 '바람 구두'를 신은 당신, 카뮈와 지드의 나라로 가자!
김화영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5월
품절


'젊은 여자들의 무리'는 볼 수 없어도 알제의 아침나절은 거리에 차와 사람이 쏟아져 나와 붐비는 시간. 이 거리 93번지 널찍한 현관에 깡마르고 눈이 조그만 노인이 나와 서 있다가 이내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파리의 여느 건물과 그리 다르지 않을 듯한 인상의 계단을 따라 3층까지 올라가니 문에 손으로 쓴 세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세간이 거의 없는 넓고 정갈한 방에 놓인 것은 작은 차탁자를 사이에 두고 1인용 안락의자 둘이 마주보고 있는 것이 전부다. 원래 매우 안락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의자의 쿠션은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그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도처에 스카치테이프를 바른 채 주저앉아 그 위에 몸을 올려놓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도 노인은 나를 위해서 매우 아껴두었던 커피 믹스를 더운물에 타서 권한다. 필요하면 한 봉지를 더 타서 마셔도 된다고 말하며 초라한 과자봉지를 자꾸만 내 앞으로 밀어주는 그 호의가 그만 가슴을 찡하게 한다.-80쪽

안락의자 옆 벽에는 머리에 검은 히잡을 쓴 여인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다. 약간 우울해보이는 그 여인의 찌르는 눈빛이 왠지 가슴을 흔든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여자의 사진이죠." 샤반느 씨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설명한다. 저 사하라의 여인도 샤반느 신부님처럼, 탁자 위에 해골을 올려놓고 창밖으로 찬란한 피렌체의 풍경을 내다보는 피에졸레의 수도사처럼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은 채 사막을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 신부님 셋이 살다가 한 사람은 죽고 지금은 둘뿐이라는 이 휑하고 고요한 아파트에서 사하라 여인의 눈빛은 이들의 고독하고 사색에 잠긴 삶을 요약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실내의 분위기나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얼굴에나 다 같이 공통되게 느껴지는 것은 일체의 불필요한 것들이 완전히 제거된 메마름, 가난, 정결한 고독, 그리고 매우 높고 가벼운 정신…… 그런 것이다. 카뮈가 '사막'이나 '메마른 가슴'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군더더기 없는 정신의 높이와 자유 말이다.-81쪽

"그들이 헐벗은 채 사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을(그 무슨 내세의 삶이 아니라) 위한 것이다. 전라 상태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육체적 자유의 의미를, 손과 꽃들 사이의 일치를, 인간성으로부터 해방된 인간과 대지의 연인 사이와도 같은 공감을 담고 있다." ([사막], [결혼·여름])-82쪽

샤반느 씨는 옆에 있는 침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자신의 조그만 서가를 구경시켜주었다. 작은 책장에 3분의 2도 채 안되게 꽂힌 빈약한 책들이지만 모두가 카뮈의 책, 카뮈에 관한 책들이었다. 한결같이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고 헐어빠진 책들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카뮈의 작품세계와 사귀어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태어난 프랑스와 자신의 전 생애가 배어 있는 알제리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마음의 균형을 찾아야 했을 그는 누구보다도 비슷한 입장의 카뮈를 내면으로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한 사람 같았다.-87쪽

그러나 막상 독립 회교국 알제리 수도 한복판에 앉아서 오늘의 그가 카뮈를 이야기할 상대를 찾는 것은 지난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멀리서 찾아온 내게까지 다급한 일이라도 있는 양 전화를 걸었던 것이리라. 어둑한 문간에서 작별할 때 샤반느 씨는 내게 그의 저서 두 권을 서명하여 선물해주었다. 열린 문 뒤쪽 창문으로는 맞은편 건물의 베란다에서 담요를 털고 있는 알제리 여인의 미소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꿈처럼 떠 있었다.-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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