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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인데 책의 제목이 조지프 앤턴인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 조지프 앤턴이며 '악마의 시'로 이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살만 루슈디가 사용하는 가명이 조지프 앤턴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이 십수년, 그는 "상징적 인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실존 인물이 되고 싶었다"(476)라고 항변하고 있다.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야 하는 그 시간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렴풋이 알 듯 하면서도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의 체험이 아니기에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엊그제 읽은 황경신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책은 작가의 책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 놓는다.
'악마의 시'도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의 책상 바깥의 세상에서 이 책은 유난히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었다. (129)
나는 '악마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비유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전하는 은유의 세계를 이해할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종교의 지도자들이 왜 종교적 금기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신성에 대한 모독은 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모독처럼 느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악마의 시에 대한 관심은 아예 갖지 않았다. 호기심에 슬쩍 들춰본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악마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긴 연작시같은 느낌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살만 루슈디와 악마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 조지프 앤턴을 읽다보니 이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고 악마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는 분명 이슬람을 모독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표현처럼 작가의 책상을 떠나 책이 된 '악마의 시'는 바깥의 세상에서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으며 그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지프 앤턴은 파트와 기간동안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자유로움도 속박당하면서 지내야 했던 13년간의 기록이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그 기록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커녕 그저 단순히 살만 루슈디의 자저전이라는 인식조차 별로 없이 막연하게 한 작가의 삶, 정도로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중하며 빠져들기보다는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3인칭 화자로 쓰여졌기 때문에 소설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 자신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로 행동을 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특히 세상 사람들의 온갖 편견과 오해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는지... 그의 마음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살만 루슈디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고 항변하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던 그 자신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학은 우주를 조금 더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인류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증가시켜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위대한 문학은 이미 알려진 세계의 변경까지 나아가 언어, 형식, 잠재력의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세계가 전보다 더 크고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한다"(811)
조지프 앤턴을 읽기 전까지는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을 뿐이지만 이제는 읽고 있는 책들이 좀 정리가 되면 빠른 시일내에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을 풀어내는 살만 루슈디의 글솜씨로 봐서는 그의 소설들은 정말 흥미롭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도 그의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