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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평점 :
오후 네시의 루브르,라는 제목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미술관이라는 곳을 일상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 뚜렷한 목적없이 한번 떠나보자 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고 아무런 정보없이 길거리를 헤매며 구경을 하던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단 두시간만이라도 루브르를 찾아가보자는 생각으로 찾아갔던 것이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때 북적거리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박물관 내부 지도도 없이 마구잡이로 떠돌다 어느 순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이었지만 그 앞에 스케치북을 펼치고 주저앉아 그림을 모사하던 한 젊은 화가의 모습은 루브르에서 실제로 봤던 모나리자나 비너스, 니케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날마다, 오후 네시가 되면 산책을 하듯이 루브르를 찾아오는 이들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십여년전의 그 마음 그대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설레임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는 그림이 별로 없어 헤매다 돌아왔던 기억도 안타까웠지만, 단체여행으로 찾아간 루브르는 감상하고 싶은 그림을 찾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에 더한 안타까움이 생겨났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보게 되는 그림이 달라지는 것 같아 흥미롭기도 했다. 언니와 둘이서만 루브르를 헤매고 다닐때는 간혹 들어오는 한국관광객을 따라 다니며 곁다리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그림 앞에서 설명을 듣기도 하고, 푸생의 그림이 방 안 가득한데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가버리길래 어린 조카녀석 손잡고 푸생의 사계를 보다가 뛰어 쫓아가야하기도 했고, 박물관 지도를 받았을 때 1번으로 기록되어 있는 장 르 봉이라는 초상화를 스치듯 지나쳐가며 처음 보는 이 그림이 왜 중요해? 라는 의문을 듣기라도 한 듯이 초상화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쳐다보고 지나쳤던 기억도 있다. 아, 그래서일까. 오후 네시의 루브르의 첫 장이 초상화로 시작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루브르는 한달동안 날마다 드나든다고 해도 작품 감상을 다 하지 못할 지경인데 하루도 아니고 겨우 몇시간만을 둘러보느라 만인이 다 아는 유명세를 탄 그림과 조각만 보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쫓겨 다녀온 기억밖에 없는 내게 이 책은 조금 신선한 느낌이었다. 다른 미술관련 서적에서는 방대한 루브르 미술관의 작품을 다 언급할 수 없기에 미술사적으로 언급할만한 가치가있는 작품들과 유명한 작품들 위주로 간략히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파리에 오랜세월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 종교화,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작품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저자 자신이 골라낸 루브르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특이했던 것은 루브르에 걸려있는 작품과 그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이 함께 찍혀있는 사진이 작품사진과 함께 실려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나면 왠지 저자의 설명으로 전문가의 평론을 듣는 느낌보다는 내가 먼저 그 작품을 감상하고 느낀 후,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되는 것 같아 루브르를 간접적으로 관람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골라낸 작품들이기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미술책에 언급된 그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더 많고 다양한 작품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각 작품의 특징과 성향, 화가의 전기적 사실, 일화등을 곁들여 소개하고 미술사적으로 필요한 경우 그 작품과 관련되어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충하여 설명해주고 있어 저자의 그림감상만이 아니라 미술사에 연관이 되는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충하여 설명해주고 있어 작품 하나만이 아니라 좀 더 개괄적으로 넓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루브르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다음에 갈 때에는 시간과 동선을 잘 그려내어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고 오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나니 왠지 루브르에 갈때는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야만 할 것 같다. 거닐듯이 지나치다 문득 눈길이 닿는 작품앞에 가만히 서서 감상을 하고 난 후 길을 나서는, 그러니까 풍성한 숲속 오솔길을 거닐며 즐기다가 문득 눈에 와 닿는 들꽃을 잠시 바라보게 되는 그런 마음으로 루브르를 거닐고 싶어진다.
내 그림 보는 안목이 없으면 어떠랴. 모든 작품들이 다 내 눈을 호사시킬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