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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로테스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지 않다해도 그로테스크라고 하면 일단은 얼굴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게 된다. 혐오라는 의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나는 그 괴기스러운 느낌의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무섭다.
내가 갖고 있는 그런 느낌의 기억은 어린시절 읽었던 검은고양이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집에서 벽장속의 고양이... 그러한 기억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정적이 감도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무서운 책을 읽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책이라해도 일단 집어들고 나면 자꾸 주위를 힐끔거리면서도 그 끝이 궁금해 자꾸만 책을 들춰보게 되는 것이다. 내 온몸에 칼자국이 나는 것과 같은 공포와 무서움, 역겨움이 엄습해도 그 긴장감과 이야기구성때문에 절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대단한 책이라며 권하는 '검은선'도 그런 책이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은 그러한 기억과 더불어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의 그림, 판의 미로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물론 그 느낌이 아주 다르기는 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도 떠오르기는 한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로테스크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짐작을 하게 되리라.
그로테스크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한 말로 15세기 말 로마를 위시해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특정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혐오스럽다기보다는 괴기하고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그것은 어쩌면 어릴때 많이 읽는 동화 빨간 구두라거나 푸른 수염같은 내용에서 좀 더 가까운 뜻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멈출 수 없는 춤으로 인해 빨간구두를 신은 발목을 잘랐더니 두 발은 빨간구두를 신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라는 내용의 글을 왜 우리는 어린시절에 읽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 볼프강 카이저는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로테스크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주제가 되고 일반적인 것에 개별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방법론적인 매력, 미술과 문학을 총괄해 연구하는 일의 보람,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일의 즐거움, 유명한 작품들을 연구하며 얻는 지식 등으로 인해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고 했다. 문학과 미술뿐만 아니라 연극을 볼때도 어느 특정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을 그로테스크라는 주제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책이 어렵고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그 느낌으로만 알수있을뿐이다.
"그로테스크는 생경해진 세계이다... 우리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던 것이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해 인간의 세계가 어떤 변화를 거친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갑작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은 그로테스크의 본질적 특징이다. ... 그 대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껏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세계에 대한 신뢰가 허상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전율은 어마어마하다.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변해 버린 세계에 머물 수 없음을 감지한다. 말하자면 그로테스크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이다. 일상적인 삶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로테스크의 구조에 속한다."(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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